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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란

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Comment ' 66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15:58
    No. 1

    대륙의 별에서 소봉의 친부 소원산(?)이 교봉의 양부와 사부와 아는사람을 죽인이유는 소봉이 고통을 받아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유없이 산천유람을 하던 자신을 공격해 아내를 죽이고 아들과 생이별을 하게 만든 무림인에 대한 복수와, 거란인인 자신의 아들 소봉을 송인인 교봉으로 키운 부모, 스승, 교봉의 친우들에 대한 분노의 표현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 송인인 교봉이 고통을 받지만, 자신이 거란인인 소봉임을 알게 된다면 그러한 심적인 고통도 없어질 것이라 자신의 잣대로 자식을 맘데로 잰 것이지요.

    소설을 읽었다고 해서, 얕은 잣대로 기준을 세우고, 이유를 만들고, 이론으로 무장한다고 전부 비평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비평에 해당되기는 하겠지만.... 아마추어비평이지요. 법도 허용하고, 관습도 허용하니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논란의 소지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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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1 17:16
    No. 2

    암중광님. 당신은 나의 교육수준이나 문학, 소설이론을 어느정도 공부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얕은 잣대 운운하다니 예의에 벗어났을뿐만 아니라 무례하군요.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고자한 뜻도 이해를 못한것 같군요. 당신의 말데로하자면 전 세계의 소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들이 잘못 되엇다는 뜻이 된다는것을 아십니까?
    복수, 좋지요. 그럼 소봉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양부가 원수인가요? 소봉을 천하 제일의 고수로 키운 스승이 원수인가요? 참으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을 섞고싶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공부한, 배운 소설이론으로 말했을뿐 김용을 높일 생각이 없듯이 폄하할 생각도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썼느냐? 감히 밝히건데 나는 우리 무림의 독자들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아지고 시장에의 요구에의해 더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고급 독자들이 즐겨찾는 무림이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밝혔듯이 이론으로만 공격하시고 개인의 감정으로는 공격하지 말아주십시요. 그것이 지성인의 바른 자세이며 예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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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1 18:34
    No. 3

    원래 제목에 소고,고찰,단상,고언 이런 단어에 거부감이 있어서 잘 안읽는데....

    소봉의 아버지에겐 그들이 원수 아닌가요? 자신의 부인을 죽이고 아들과
    생이별을 시킨 사람들... 전 소설전개에 아무 하자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소용녀가 16년이라 쓴 까닭은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자신을 잊을거라
    생각(참 천진난만한 소용녀죠^^)하여 죽음을 앞에두고 썼다고 나중 만남때 양과한테 이야기하던데....

    당시에도 황용이 꾸며낸 16년간의 이별이유(남해신니)를 미심쩍지만 납득하는 양과의 모습도 보이고 ....

    윗글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자기하고 싶은 말을 하기위해 상황을 억지로
    꾸민 느낌이 드네요. 주장하는건 옳으나 예를 잘못 드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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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19:47
    No. 4

    응? 제가 말한 것은 일반적인 독자이야기 입니다.
    최담천님을 꼬집어 이야기 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읽혔다면 정말 죄송하군요.

    하지만 10명이 같은 글을 읽어도 10명 모두 동일한 감상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이에게는 개연성이 없어 보여도 다른이에게는 충분한 개연성을 보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곽정과 양과의 16년후 비무 약속도 최담천님께는 개연성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제게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습니다. 양과와 곽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구처기와 곽정의 사부될 사람들, 찾을 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현실, 제자를 길러 그들의 승부로 자신들의 승부를 가르자는 구처기의 꽴, 제자를 가르칠 최소한의 시간 16년, 한쪽만 찾는다면 찾는 쪽이 승자라는 조건, 등을 볼 때 16년의 약속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원산이 교봉의 양부 스승을 원수로 여기는 것도 거란인을 송인으로 키웠다는 점에 원수로 여긴다고 글 중에도 나왔습니다. 소원산과 소봉이 상봉하였을 때.
    지독한 독선이고 오만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김좌진장군이 살아있고 자신의 아들 김두한이 일본놈의 양자로 입적되어 자라 일본놈의 압잡이가 되어있다면 김좌진장군도 소원산과 비슷한 짓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닐 수도 있고..... 소설의 개연성이란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정도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최담천님이 찾지 못한 개연성을 저는 글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최담천님처럼 껄끄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별로 그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비평, 비평가 말은 많지만 그거 어짜피 정한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법, 인간의 도덕으로 만들어진 규칙입니다. 법이나 규칙은 항상 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추어비평을 법이나 도덕이 아직은 규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합법이고 독자의 누구나도 비록 미숙하더라도 비평을 할 수 있다가 제 의견의 요지입니다. 미숙한 비평이 논란의 요지가 있던 말던....

    얼빠진 소설도 출간되는데 미숙한 비평이 금지되면 짱나지요.

    진짜 비평이 되려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작가가 글에서 전하려는 의도와 사상등의 숨겨진 부분까지 파해진 후에, 비평의 요건에 맞게 글을 써야 진짜 비평이지. 실상 비평란에 올라오는 대부분이 비평이라기보다는 글꼬집기 정도랄까? 비평이 아니지요.

    하지만 잘 봐줘서 아마추어비평쯤으로 높여준다. 정도.....

    ----------------------------------------------------
    집에 와서 바로 문피아 들어오려 했는데 한참동안 안들어가 지더군요. 또 잠시 서버다운? 문피아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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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20:06
    No. 5

    다시 읽어보니 신조협려군요. 저는 사조영웅전인줄 착각하고.....

    신조협려의 16년후 약속 그거 소용녀가 그저 양과가 죽지않게 속인 것 아닌가요? 거짓말에 무슨 개연성을 찾으시죠?
    양과도 소용녀의 말이 거짓말임을 은근히 짐작하고 있지만 그녀가 죽었다는 현실을 믿기 싫어서 억지로 안위하고 있을 뿐.
    결국 양과도 16년 후 절정곡에서 소용녀가 없음을 알자마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그 내심은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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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2 심검
    작성일
    06.12.21 21:11
    No. 6

    쭉 읽어보았는데 저는 암중광님의 의견에 많은 공감이 갑니다. 그동안 비평을 보면 자신의 얕은 기준을 중심으로 비평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것을 보면 많이 답답했습니다. 그 기준이 모두에게 통하는 일반적인 기준도 아닌데 그런 것을 중심으로 비평을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물론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그런점이 어쩌면 당연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보완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자신의 얕은 기준을 너무 믿고, 자신이 틀릴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다들 하시는것 같지 않아서 좀 그런 비평들도 많습니다.
    비평란의 댓글을 보면 무슨빠 라는 표현이 들어간 댓글도 있는데 이는 비평을 동의하지 않고 작가의 편을 드는 글을 보고 무슨빠 라고 표현하는것 같습니다. 이것은 비평을 하시는 분들이 자신이 틀릴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평을 하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릴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다른 생각을 매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최담천님이 말한 의견에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토의를 하는데 그 줄기를 보지 않고 곁가지로 딴지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난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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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1 22:27
    No. 7

    rock님.
    나는 분명히 지금까지 내 사견을 이야기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단 감상란에는 개인적 감상을 토로했습니다. 묻습니다. 상황을 억지로 맞춘 부분을 분명히 지적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나에게 무례를 범한 것입니다. 내가 한 번 답답해서 밝힌적이 있으니 다시 한 번 밝히죠. 나는 50이 넘고 60은 못 되나 당당하게 살아온 보잘것 없는 사내입니다. 내 이야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무협은 소설의 작법으로 평가 할 수 없는 부분이있다.(작법대로 쓰기도 어렵거니와 선배작가들이 이미 작법 파괴를 해버렸고 시장에서도 재미 아니면 용납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시장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1) 그리고 장르문학, 혹은 무협소설이라는 말을 당당히쓰고 무협작가들이 tv에도 출연하고(극단적인 예임) 넓게 사랑받고 존경 받기 위해서는(2) 작법에 충실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충실하자. 그래서 고급 독자들에게도 기쁨과 새로운 경험을 주자는 것입니다(3)그리고 저도 김용이 뛰어난 무협작가이며 태두(뜻 아시겠지요.)임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지난 여름 처음으로 데리고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가입했는데 비뢰도와 (제목 잊었슴. 아이가 자신을 키워준 어미 기생과 부부 비슷하게 되어버린 소설)에 대한 논쟁이 뜨겁더군요. 나도 올리고 싶었으나 지금도 독수리 타법으로 쓸 수는 있으나 올리지 못하는데 어찌 올렸으리요. 단 금강이란 사람이 '비뢰도는 좋은작품이다. 왜 유쾌, 통쾌. 상쾌하니까.'라고 했더군요. 사적 감정으로 그가 아들이엿다면 호적에서 팠을 것입니다. 왜? 작가라면, 아니 이미 공인(?)이 되어버린 금강이라면 그런 말을하고 싶을경우 혀를 깨무는 것이 낳았으리라고 봅니다. 왜? 비판 능력이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들중 거의 매일 들어와서 보고 무협작가를 꿈꾸는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금강은 실수를 한 갓이죠. 사적 견해는 접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 갑시다.
    1. 억지로 맞췄다.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2. 치열하게 ㅡ공부해온, 지금도 자주뒤적이는 소설의 이론, 그 원칙의 공식에 대입해보고 한 소리 엿습니다. 제 말이 거슬리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소설작법 딱 한 권만 사서 읽어보시고 그 이론으로 때려주십시요. 독수리 타법 수정 없이 올림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연말을 맞이하여 건강에 유의 하시고 좋은 문학서설도 많이 읽으시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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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6.12.21 22:38
    No. 8

    야인시대님 왜그리 까칠하신지요?
    이본문의 내용을 읽은 것은 낮이였고, 4번의 댓글은 저녁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4번글에 최담천님에 대한 사과를 했습니다.
    또한 예를 들은 신조협려를 사조영웅전으로 오해했다 했으나 바로 글을 남겼습니다.

    야인시대님이 제게 까칠하게군 이유를 모르겠군요? 님이야 말로 좀 제대로 읽어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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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1 22:38
    No. 9

    심검님.
    나는 나의 의견을 이야기 한 것이아니라 소설의 이론, 소설의 원칙에 비춰보면 이러이러한 부분은 오류다라고 지적 했을뿐입니다. 도전적으로 요구합니다. 문학을 공부(소설을 이론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면)하지 않았다면 침묵하세요. 화가 난다면 서점에가서 소설작법이라도 한 권 사다가 세번만 읽고 댓글다세요. 그리고 또 묻습니다. 김용의 작품에는 오류가 전혀 없습니까?
    김용의 작품이 지금 고무림에 올랐을 경우 출판율을 어느정도로 보십니까?
    제가 이론적 오류 이외의 비판은 사양한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그 뜻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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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6 신기淚
    작성일
    06.12.21 22:50
    No. 10

    지금이야 다 잊어버렸지만 김용의 작품에 오류는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내용으로 쓴 것인지 알 수가 없고, 주위에 별로 얘기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기억도 안납니다만...

    그런데 예의나 무례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하시는군요...
    더 원이라는 게임글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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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1 22:57
    No. 11

    아아.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올리려던 글인데 닉네임을 심검님으로 착각했군요.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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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1 23:16
    No. 12

    신기루님.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중 하나가 예의 입니다. 그 예의가 없을 경우 무례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피차에 상대의 나이, 직업, 교육수준 등등등,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데 단정적으로 공격하거나 상대가 분명히 이론적인 근거에서 말하고 이론적 공격을 할 수 없을 경우 공격하지 말라고 요구 했을 경우 지켜주는 것이 예의 이자 지성인의 자세가 아닐까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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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메마른하늘
    작성일
    06.12.22 01:07
    No. 13

    최담천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가장큰점은 바로 위에서 저를 짓누르며 이렇게 봐라 이렇게 느껴라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듯한 느낌일까요?
    그런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전에 쓰여졌던 사사우사나 혹은 고대산전기비평 글에서도 그렇게 느껴졌었습니다만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글 단맥을 따져가며 논리적으로 반박은 못하겠습니다 순 감성적인 느낌이니까요 허나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분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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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4 서향(書香)
    작성일
    06.12.22 09:35
    No. 14

    최담천님은 어정쩡한 이론으로 스스로를 정당화 하시는데 스스로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거나 글에 녹여서 표현할 수 없다면 이론을 끌여들이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또한 자신의 글이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예의에서 어긋난 점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왜 자신의 글에 이론적으로 반박하지 않느냐만을 따지시는데, 이론적인 반박에 앞서 글에 대한 무례함이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그 동안 최담천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이 꾸준히 지적해 왔던 윗사람이 아래사람을 가르치는 듯한 뉘앙스와 어투에 대한 것은 인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겁니까?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남들을 무례하거나 교양이 부족하다고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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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2 10:08
    No. 15

    제가 소설 쓴적도 없고 쓸일도 없을 겁니다. 교본 사보라는 강요는 하지 마세요. 이것 역시 비례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설작법에 대해선 제가 무지해서 옳은지 그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문의 글을 올려주신 성의를 보건데
    대학에서 저렇게 공부하는군 하고 유추해볼 따름이지요.

    작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다가 김용의 작품 두 가지 경우를 드셨습니다. 김용을 폄하하면 무조건적인 반발을 하는 사람은 어쩌구 저쩌구 하시면서요.듣기에 따라선 내 글에 딴지 걸지말라라는 경고같이도 보이네요. 님이 강조하시는 예의에 준하는 글인가요?

    제 글 말미에 님의 작법로은 옳으나(실은 잘 모름) 예를 잘못 든 것 같다고 분명 써놨습니다. 왜 예가 잘못 되었는가는 위에 설명했고요.
    차라리 '왜 양강의 모친은 16년간 생부의 존재를 양강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이와같은 예를 드셨다면 저의 댓글은 없었을 것입니다.

    님의 글에서보면 16일,1년6개월(도) 아닌 16년인가?
    16일이나 1년 6개월은 되고 16년은 왜 안됩니까? '도'를 사이에 는건 앞엔 된다는 의미겠지요? 작법에 대해 잘아시니 문법은 당연히 잘아실테니...

    왜 16년인가에 대해 제가 썼는데 뭘 또 해명하라고 하시는지 조금 답답하네요. 제 글 어디에 님의 작법론에 대한 말이 있습니까?
    참으로 무례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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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2 10:09
    No. 16

    님께서 쓰신 말 돌려 드립니다.

    우리 모두 달을 가르키며 달만보자 손가락을 보고 헐뜯어서 무엇을 얻겠는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플플플
    작성일
    06.12.22 10:24
    No. 17

    음.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공부가 많이 된 글입니다.

    그리고 대륙의 별의 원제는 『천룡팔부』, 대륙의 별은 아무래도 출판사가 영웅문 시리즈와 운을 맞추려고 지은 제목인듯 하니 원제로 하시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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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외계생
    작성일
    06.12.22 11:00
    No. 18

    최담천님 무림천지님은 잘계신가요? *___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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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Personacon 文pia돌쇠
    작성일
    06.12.22 11:39
    No. 19

    비평에 대한 일반론으로 보아 카테고리를 '비평총론'으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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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2 13:34
    No. 20

    서향씨 내 이론 어느부분이 어정쩡한 것인지 분명히 밝혀주시오. 아니면 정식으로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그 어떤 문장으로 가르치고 따르라고 했는가요. 개인의 느낌만으로 단정하는 것은 안됩니다. 예를들어서 당신이 '허 이놈 이런 문장력으로 글을 쓰다니'하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던지........
    그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논지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소설작법에(그 공식에 대입해보면) 비춰보면 이런부분은 맞지 않다는 말과 감상평이건 비평이건 남의 글에대해서 이론적인 오류를 지적 할 수 없다면 예의를 지켜서 침묵하자고 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어떤 교육을 받았고 ........기타등등등,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요. 그런데 어정쩡한 이론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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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2 13:42
    No. 21

    rock님
    나는 16일도 1년6개월도 옳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 세계의 교수들이 가르치고 있는 소설작법, 그 공식에 대입해보면 어긋난다는 말일뿐이고 내 논지의 중심말은 남의 감상평이나 비평에 대해서 이런적인 오류를 지적하거나 아니면 예의를 지켜서 당신은 .....이렇다식의 인신 공격성 대응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가의 어미가 안밝힘점 옳다고도 하지 않았고, 가볍게 김용의 작품에도 이런 오류가 있다. 즉, 나는 그가 누구이건 이론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할때는 아! 그런가보구나 하는 문화가 속히 정착되기만을 바랄뿐입니다.
    초딩생 수준. 면상을 보자. 책을 얼마나 읽었냐? 등의 공격을당하다보니 나이까지도 두 세번이나 짐작 할 수 있도록 밝혓습니다. 왜? 이것은 토론도 논쟁도 아닌 졸렬한 집단폭행에 준하는 짓거리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24 서향(書香)
    작성일
    06.12.22 16:27
    No. 22

    내참 ...

    최담천님 또 자기 할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하시는군요.

    이론적인 면에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시는데 그에 앞서 기본적인 것부터 지켜 달라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글의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떤 근거를 대라고 하시는건지요?

    자신의 글이 아래사람을 가르치듯 위압적인 글이라는 것이 글에 나왔는데 어떤 근거를 말씀하시는겁니까? 독해 못하십니까?

    그리고 소설작법을 지금까지 몇번이나 말씀하시는데요, 소설작법중 어떤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대충 듣고 아는것만 해도 15가지 정도의 작은 방법들이 있는데 최담천님은 어떤걸 말씀하시는건가요?

    정확하게 소설작법중 어떤 것을 지칭하고 그에 따른 설명을 하신적있습니까? 그저 소설작법에 따라서 .. 라고 대충 어정쩡하게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까? 큰 테두리에 속한 소설작법에서 그에 속한 몇가지 방법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해야 하는데 오로지 소설작법만 언급하시니 당연히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줄수 밖에 없지요.


    최담천님부터 소설작법중에서 적절한 근거와 논거를 가지고 글을 작성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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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4 서향(書香)
    작성일
    06.12.22 16:32
    No. 23

    또 하나 더 ..

    최담천님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관심도 없지만 그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알아서 이야기가 전개가 되는 상황입니까?

    대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끌어 들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최담천님은 정확한 이론적 근거가 아니라 자신만의 근거를 끌여 들인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2 17:32
    No. 24

    서향씨.
    나는 내 글에서 누차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소설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 햇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도 소용녀가 160년 후에 만나자고 했다라도 그것은 시비거리가 안 됩니다. 어떨경우? 작가는 독자에게 인과간계가 정확히 드러나게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 의무에 따랐을 경우에 한해서지요. 좀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16년이 아니면 도저히 안될 이유를 독자에게 제시해줘야하고 그런것이 제시 되엇을때만 소설로 인정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작가지망생들이 문학수업(소설부문)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 거의 첫시간에 소설은 무엇인가라고 묻지요. 그리고 답하기를 소설이란 인생(인간)에 대해서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만한 사건을 언어의 배열과 조합행위를 통해서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가르치지요. 그리고
    1. 왕이 죽었다. 그러자 왕비도 죽었다. :정의 이것은 이야기다.
    2.왕이죽자 왕비도 죽었다. 그것은 슬픔때문이었다. ;정의 이것은 소설이다.
    3. 왕이죽자 왕비도 죽었다. 왕을 사랑했던 왕비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죽었다. :정의 이것은 훌륭한 소설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여러번 했고 위 글에서도 김용은 16년이 아니면 안되는 상황을 설정해서 제시해줄 작가로서의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리고 교육수준 이야기를 왜 했느냐? 어정쩡한 이론으로 이야기 햇다고 공격을 하기에 위에서 인용한 이론은 내가 정립한것도 아니고 어느 일 개인이 정립한것도 아닌, 전 세계의 대학에서 문학도들에게 가르치고 잇는 내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듯하다. 그검은 본의와는 전혀 별개로 그럴수도 있다고 인정을 합니다. 왜? 비판적인 문장에서는 그런 뉘앙스를 배제하고 쓰기가 , 사실 내 문장력이 그 정도밖에 안되나 봅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차라리 그런 것으로는 공격하지말고 '병신 같음놈 이 따위 문장밖에 못 쓰는놈이 글을 올리다니' 하고 마음껏 비웃으라고요. 이래도 어정쩡한 이론일까요? 그렇다면 전 세계의 소설작법 집필가들과 소설작법을 강의하고 있는자들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이되고 마는 것이죠. 나는 누차 밝혔지만 상호 존중의 위에서 비판과 토론 문화가 활성화되고 그를통해 작가들도 더욱 정진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보내고 일반 소설만 읽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세상을 소망 할 뿐입니다. 50이 넘은놈이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겠소? 더구나 욕과 인신공격까지 받아가면서, 다만 시민운동을 하던 습이 남아서 아직도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바른지 않다라고 느낄경우 목소리를 내다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
    자 위에서 열거한 이론이 어정쩡한 이론이고 내가 지어낸 말인가요? 그래서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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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 하우
    작성일
    06.12.22 18:37
    No. 25

    "나는 손자병법도 읽고 육도삼략도 읽었다! 헌데 어찌하여 제장들은 나의 계책이 틀렸다 말하는가!"
    "읽었을 뿐 통달하지 못한 탓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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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2 21:00
    No. 26

    <김용의 신조협려를 보면 16일도 1년6개월도 아닌 16년 후에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분명 소설 이론으로 보자면 엄청난 오류다. 작가는 16년 안에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해둔 후 이말을 썻어야 한다.>
    최담천님이 쓰신 글입니다.
    신조협려에 나온 '절대 만날 수 없는 상황 설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양과는 정화라는 식물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독에 대한 전문가는 이막수의 손에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리고 소용녀도 내상을 치료하던중 곽부에 의해 빙백은침에 중독됩니다. 무협에서 흔히 말하는 대라신선이 와도 못고치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황용은 양과의 독을 치료하는 치료제를 알아냅니다. 그리고 소용녀에게 말해줍니다. 소용녀는 너무나 사랑하는 과아를 살리기 위해서 임의대로 16년이라는 글 귀를 남기고 절벽에서 몸을 던집니다. 이것은 후에 16년이 지난 후 우연히 양과와 소용녀가 만나면서 밝혀집니다. 양과도 황용의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희망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둘이 다시 재회한 후에 양과가 소용녀에게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16년이었냐고. 더 빨랐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 소용녀는 이렇게 대답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 정도면 자신을 잊지 않겠냐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양과를 살리기 위해 의미 없이 적은 것일 수도 있고 양과의 자신(소용녀)에 대한 마음을 16년이라는 기간으로 측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양과의 사랑에 대한 소용녀의 측정은 양과가 소용녀를 따라서 절벽에서 뛰어내림으로 해서 실패한 거고 사랑은 측정할수 없는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신조협려의 큰줄기, 즉 밑바탕은 변하지 않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도면 충분한 설정이 아닐까요? 이 16년이라는 부분을 설정이 이상하다고 꼬집으신다면 그것은 제대로 신조협려를 안 읽은 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조협려에는 앞 뒤에 그런 이야기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신조협려를 읽고 파악한 내용입니다.
    아, 그리고 덧붙인다면 소용녀는 양과를 좀더 일찍 만나기 위해서 벌의 날개에 글씨를 써서 날려보냅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적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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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2 23:04
    No. 27

    나의 산에서님.
    정말 반갑습니다. 예의를 지켜주셔서요. 제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1. 무협은 소설작법을 온전히 지키고 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르문학, 소설이라고 부르는 이상 가능한 부분에서만이라도 작법을 지키자.
    2.이야기와 소설의 차이는 담천이란놈도 올리자 산에서님이 올렸다. 이것은 이야기라고 정의 하고 잇다는 것이죠. 전 세계의 교수와 필자(소설강의 하는)그러나 담천이라는 놈이 올린 글에 화가(?)나서 님께서 올렸다는 소설이라고 정의를 한다는 것이지요.
    즉, 1에는 결과는 있으나 원인이 없지요. 소설이란 모든 행동에 그 이유가 있고나서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정의 한다는 말이지요. 즉 16년이 아닌 160년도 시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단 소설이라고 스스로 부른다면 16년이 아니면 안될(절대안될) 상황을 만들어서 주인공(작중 인물)을 옭아 넣어야 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유명한 작가중 1인이자 강원대의 교수였던(현재도 교수인지 몰라서 였던으로 씁니다) 전상국님의 책을 인용합니다.
    '좋은 소설이란, 자기가 읽은 그 소설이 결코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착각을 일으켜 현실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럴듯하게 과장된 거짓말을 의미한다.' 라고 했습니다
    제 소망은 단순합니다. 독자의 비평을 통해서 좋은 소설, 소설다운 소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독자도 스스로의 독서 수준을 높이자. 비평, 토론시 이론에 대한 공격은 그 오류를 찾아내서 이론으로만 공격하자 그리고 가장 중요헌 것은 나의 산에서님께서 저에게 해주신것 처럼 예의를 지켜서 공격하자는 것이지요. 예의를 지켜주신분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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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09:51
    No. 28

    가슴이 답답합니다. 최담천님의 글을 보고있자면......

    작법의 오류를 설명하기 위해 아무 작품이나 무조건 자신의 잣대를 이용하시면 안됩니다. 저는 충분히 설명을 드렸고 인정을 하신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셔야 됩니다.
    '이런 이런 지적을 받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예를 잘못든 것 같다.'
    이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절대 만날수 없는 상황이 아닌지 저한테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제가 납득할 수 있다면 사과를 하겠습니다.
    두리뭉실하게 제가 예의를 지켜줘서 고맙다 이렇게 넘어가시면 결국은 제가 말한 내용을 인정못하겠다는 이야기 뿐이 안되지 않습니까?
    작법의 오류를 설명하시려고 예를 들으셨는데 예가 잘못되었다면 결국 최담천님이 설명하려는 작법의 오류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년이라는 설정을 드러내놓고 뻔하게 쓴다면 재미가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독자들은 숨겨진 뜻을 찾아내면서 그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독자의 상상력과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일종의 추리기법이지요.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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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3:12
    No. 29

    나의 산에서의님.
    아직도 예의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답을 하기전에 한가지 조건이 잇습니다. 즉 인과관계가 없이 배열된 사건은 이야기이고 인과관게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 사건(이야기는 소설이라는, 현재까지 불변의 원칙에 동의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밤에 한잔하고 올려서 전상국님을 인용했는데 오늘도 그분의 책을 인용하겠습니다.
    '소설 구성의 요체는 인과관계에 있다.'
    '소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에 우연성을 용서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구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저도 무협은 모든작법을 지키고 쓰기가 어렵다. 그것은 재미를 위한부분에서도 그렇고 이미 초기 선배들 때부터 작법파괴가 이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독자들도 성장 발전하기를 바라고 그로인해 작가들도 성장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예를 들자면 전동조, 설봉, 좌백님등은 제가 알기로 기존문단(일반소설)에서 활동하신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작품을 초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아마도 차이를 느끼실 것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묻겟습니다. 신조협려 1권 1장을보면 사조영웅전에서 멀쩡하던 무삼통이 갑자기 미쳐서 등장을 합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위에서 제가 인용한 전상국교수의 말이 그 개인의 주장일까요? 정립된 소설 이론일까요?
    저에게 무삼통에 대해서 묻는다면 단호하게 소설작법으로 따지자면 결정적 오류 중의 하나라고 할 것입니다. 2곱하기 2는 4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바꾸거난 부인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제 이야기는 소설에도 원칙과 이론이 있다는 것이고 ,........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히지만 시장을 넓히고 당당하게 장르문학, 무협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기연, 우연, 주루에서의 뜻 밖의 만남등은 그냥 가더라도 싸울경우 그 싸움의 결과못지 않게 이유도 밝혀서 소설의 틀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말이죠. 다시 문제의 16년으로 가 봅시다.
    이것이 7권 2장(32장)에 나오는데 134페이지 중단에 양과의 독백이 나옵니다. '16년 후에 만나자고?..........왜 16년 후에 만나자고 한 걸까?'
    다시 135페이지 중단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그래요. 왜 16년이라고 했을까요? 16년이 무슨 의미일까요?"
    위에 인용된 소설 이론, 그 원칙에 대입해보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이 온당할까요?
    16년이 치료 기간이다. 혹은 16년이면 양과가 소용녀를 잊을 수 있는 기간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읽은분의 상상일뿐 김용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하지 않았지요.
    즉, 제 이야기는 1. 독에중독-(원인)-2.1이라는 원인때문에 약을 구하려고 애를 씀(1의 결과)-3.2의 결과로 약을 구함(단 약이 부족함)-4. 3의 이유로 (약이부족한이유)-5 소용녀는 16년을 약속하고 떠남.
    여기까지는 인과관계에 흠을 잡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왜?16년인가?
    '소설 구성의 요체는 인과관계에 있다'는 이론이 없다면 관계가 없고 김용의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면 그 또한 관계가 없겠지요.
    16년은 치료기간이다. 왜 꼭 16년이 걸려야하는가? 당장이라도 한 알의 해약만 구하면 되지 않겠는가?
    160년ㅇㅣ 걸려도 나는 시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점을 다시한번 밝힙니다. 16년이 양과가 잊을 수 있는 기간이다. 혹시 김용이 어디에 그렇게 써 놓았나요. ?
    그리고 중간에 소용녀가 옥봉에 글자를 새겨서 기약없이(그 벌이 양과나 그 지인들에게 발견된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는 상태) 보낸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홍용이 남해신니 이야기를 꺼내서 한 이야기, 그것이 정말이였을까요? 양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일까요?
    저는 단호하게 참도 거짓도 아니다. 오ㅐ? 김용은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으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독자가 거품을 물고 그것은 분명히 참말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그순간 김용의 작품을 개작해버린 위대한 영웅이 되는 것이지요.
    조심스러운 제 사견은 거짓말이라고 홀로 가늠해봅니다. 왜? 1.황약사의 성격에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받을까? 2. 황용의 그 대화 이외에 남해신니가 등장을 했던가? 지나가는 대화에서라도. 3. 황약사에게 가르침을 줄정도고 16년만에 한번씩 나왔다면(실존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ㄱ)남해신니는 오절을 뛰어넘는 고수라고 유추해도 오류가 아닐것이다.
    ㄴ) 그리고 반드시 세상에, 특히 무의 길일가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을것이다.는 가정이 성립될 수가 있겠지요. 물론 소설에는 독자에게 상상의 기쁨을 주뿐만 아니라 그 자유도 주지요. 그러나 개작까지하는 무례한 자유는 저라도 허용치 않을것입니다.서툰 독수리라 오자 고쳐서 보시고 양해바랍니다.
    무삼통이 미친것도 문제 될것이 못 됩니다. 단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독자에게 정보를 줘야한다.(복선: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장차 소설 내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짐작하게 하는 기법)는 것이지요.
    같은 작가이자 교수의 글을 인용합니다.
    '인과관계에 중점을 둔 사건의 서수리 되기 위해서는 서로 맞물려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사건속의 인물들이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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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3 14:09
    No. 30

    책을 진짜 제대로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무삼통이 왜 미쳤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저 뿐일런지.....
    16년간의 이별의 이유도 소용녀가 양과와의 만남의 자리에서 밝혔는데.

    고려원 양장본 영웅으 별 6권 324p

    그날 양과가 반쪽의 절정단을 골짜기의 깊은 연못에 던져 버리자 소용녀는 자기의 중독을 풀기 힘들어 그가 혼자 살아 남고 싶어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여 우선 자기가 죽어서 그의 애정을 끊어야만 비로소 그의 몸에 있는 정화의 독이 없어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만약 자살한 흔적을 남기면 그가 자기를 따라 죽을까 두려워 다시 한참을 생각한 후 마침매 칼끝으로 단장애에 그런 내용의 몇 글자를 새겨 일부러 16년 후에 만날 약속을 하고는 몸을 날려 심곡으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 소용녀는 양과가 하늘의 도움으로 생명을 보존하면 이 길고 긴 16년이 흐르는 동안에 애정이 식어서 결코 자기를 따라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째서 하필이면 16년으로 약속을 했지? 만약 당신이 8년으로 약속을 했으면 우리는 8년이나 빨리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나에 대한 당신의 깊은 애정이 짧은 8년 동안에 결코 식어 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16년 후의 약속을 믿고 당신은 계곡으로 뛰어들지 않았나요!"


    제발 실수를 인정해 주시는 성숙한 모습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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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5:38
    No. 31

    저의 상상이라고 하셨는데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위에 제가 적은 내용은 신조협려의 기억을 더듬어서 쓴 내용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저의 상상으로 치부하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책이 없어서 정확히 몇 페이지 몇 째줄에 나왔있는지 확실히 적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침 rock님이 정확히 올려 주셨습니다.
    <"그래요. 왜 16년이라고 했을까요? 16년이 무슨 의미일까요?"
    위에 인용된 소설 이론, 그 원칙에 대입해보면 어떤 평가를 내리는 것이 온당할까요?
    16년이 치료 기간이다. 혹은 16년이면 양과가 소용녀를 잊을 수 있는 기간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읽은분의 상상일뿐 김용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하지 않았지요.
    즉, 제 이야기는 1. 독에중독-(원인)-2.1이라는 원인때문에 약을 구하려고 애를 씀(1의 결과)-3.2의 결과로 약을 구함(단 약이 부족함)-4. 3의 이유로 (약이부족한이유)-5 소용녀는 16년을 약속하고 떠남.>
    최담천님이 쓰신 내용입니다. 이제 반론 하겠습니다.
    첫째로 16년이 치료 기간이라고 한 것은 황용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둘재로 양과가 소용녀를 잊을 수 있는 기간이다 라는 이부분은 제가 뒤에 나오는 글을 읽고 유추한 내용이고 rock님이 올리신 글을 보면 그와 비슷한 내용이 책에 분명히 나왔있습니다.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을 쓴 것입니다. 만약 김용이 소용녀가 사라지고 나서 소용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뛰어내렸는데 운좋게 살아서 혼자 16년동안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써 놓았으면 얼마나 책이 재미없었겠습니까? 최담천님이 주장하는 내용은 글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은 완전히 배제한체 작가가 책을 써야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셋째. 약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양과는 정화라는 식물의 독에 중독이 된 상태였고 치료제도 황용에 의해서 어느정도 밝혀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소용녀는 내상을 치료하던 도중 빙백은침에 다시 중독되서 이미 치료를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천축고승은 이막수에게 죽은 상태입니다.
    <16년은 치료기간이다. 왜 꼭 16년이 걸려야하는가? 당장이라도 한 알의 해약만 구하면 되지 않겠는가?>
    최담천님이 쓰신 내용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다면 최담천님이 정말 제대로 읽으셨는지 더욱 의심이 갑니다.
    넷째. 소용녀는 16년을 약속하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자취를 감추었지만 모두들 죽었다고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의미심장한 글씨와 상황이 그것을 증명하고 죽으려는 양과를 살리기 위해 황용이 나서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rock님이 위에 올려주신 내용
    <그날 양과가 반쪽의 절정단을 골짜기의 깊은 연못에 던져 버리자 소용녀는 자기의 중독을 풀기 힘들어 그가 혼자 살아 남고 싶어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골똘히 생각하여 우선 자기가 죽어서 그의 애정을 끊어야만 비로소 그의 몸에 있는 정화의 독이 없어지리라 믿었다. 그러나 만약 자살한 흔적을 남기면 그가 자기를 따라 죽을까 두려워 다시 한참을 생각한 후 마침매 칼끝으로 단장애에 그런 내용의 몇 글자를 새겨 일부러 16년 후에 만날 약속을 하고는 몸을 날려 심곡으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 소용녀는 양과가 하늘의 도움으로 생명을 보존하면 이 길고 긴 16년이 흐르는 동안에 애정이 식어서 결코 자기를 따라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이부분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만약 최담천님의 주장대로 소설을 쓴다면 극적구성. 클라이막스를 완전히 배제한 정말 엉터리 소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용은 그렇게 인기를 끌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작법이나 이런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것을 많이 알고 기교가 뛰어나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작법 많이 아는 대학교수 = 훌륭한 소설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장르문학의 태생은 재미와 흥미 유발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일반 소설도 예외는 아닙니다. 작법은 그것을 앎으로 해서 좋은 글을 쓰는 밑바탕이 될 수 있을 지언정 그 위에 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소용녀가 옥봉에 글자를 새겨서 기약없이(그 벌이 양과나 그 지인들에게 발견된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는 상태) 보낸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
    반론입니다. 소용녀는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살아남았습니다. 독도 우연히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합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자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에 보면 나와있습니다.

    <홍용이 남해신니 이야기를 꺼내서 한 이야기, 그것이 정말이였을까요? 양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일까요?
    저는 단호하게 참도 거짓도 아니다. 오ㅐ? 김용은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으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독자가 거품을 물고 그것은 분명히 참말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그순간 김용의 작품을 개작해버린 위대한 영웅이 되는 것이지요.>
    분명 그때는 아니지만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황용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중에 양과와 황약사가 만나는 장면에서도 그 부분이 밝혀집니다. 참고로 저는 처음부터 황용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의문을 갖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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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5:44
    No. 32

    산에서님.
    맞습니다. 소용녀가 그렇게 말한것 알고 있습니다. 묻습니다. 김용이 그 기간을 (잊는 기간) 10년이라고 썼다면 무조건 그렇게 믿어야하고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김용의 개인 의견일뿐이라는 말이 성립 되는데 인정하십니까? (물론 소설에서 사견을 쓸 수 없다고는 안했으니까 효과적 토론을 위해서 사견부분은 우선 논외로 하기로 하지요)
    다시 돌아갑니다.
    대학에서 소설의 정의
    1.(아주 오래된 예이지만 적절해서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짐작합니다만.) 왕이 죽었다.(어떤 결과) 그러자 왕비도 죽었다.(어떤결과) 이 문장을 가지고 전 세계의 강단에서 교수들이 가르치기를 이것은 이야기라고 가르친다는 말입니다. 왜? 두 사람의 죽음의 결과만 덩그라니 서술해 놓고 그 죽음의 이유가 서술, 묘사 되지 않앗다는 단 하나의 이야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거듭 밝히지만 이것은 제 생각도 어떤 일개인의 주장도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2. 왕이 죽었다.(결과) 그러자 그 슬품을 견디지 못한 왕비도 죽었다.고 쓴 글에대해서는 소설이라고 가르친다는 말이지요. 즉 똑 같은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몇 단어의 첨,삭 혹은 배열에 대해서 이렇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제 말의 요지는 그 문장이 김용의 오류가 아니기 위해서는 16년이라는 기간이 보통(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잊는데 당시 16년 걸렸다는 널리 유포된 기록이 있거나 요즘 세태가 보통 그 경우 16년이 걸린다면 논쟁고리가 아니겠지요.
    묻습니다.
    1. 소용녀가 신인가요? 아니면 양과가 자신을 잊는데 10년 혹은 20년, 15년도 아닌 16년이라고 할수 있었으까요?
    2. 하필 16년을 제시한데 어떤 타당성이나 보편성이 있는지요?
    3. 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예측하십니까?
    4. 다수의 사람들은 어느정도 기간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대의 마음을 잴 수가 있을까요?
    6. 님께서 진실로 사랑하는 분이 있는데 헤어질 수 밖에 없는데 정확히 그 기간을 설정할 수 있습니까?
    7. 인명재천이라는 말을 부정 하십니까? 즉 무인이고 거지고 사람의 생명은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는것은 하나의 진리이죠. 그런데 신도 아닌 소용녀가 어찌 그렇게 정확히 상대의 마음을 추론, 예측해 낼수가 있었을까요? 소용녀의 무공이나 특기중에 그런것이 있다고 쓰인 개정판이라도 나왔나요?
    산에님 죄송하지만 제가 인용한 이론이 틀렸다면 저는 아무런 책임, 아니 그 이론이 이미 폐기 되엇다는 사실을 모르고 인용한 책임만 지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아직 그 이론들이 폐기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사과하고 인정하라고 하는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예의를 지켜주신점은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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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6:00
    No. 33

    <조심스러운 제 사견은 거짓말이라고 홀로 가늠해봅니다. 왜? 1.황약사의 성격에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지도를 받을까? 2. 황용의 그 대화 이외에 남해신니가 등장을 했던가? 지나가는 대화에서라도. 3. 황약사에게 가르침을 줄정도고 16년만에 한번씩 나왔다면(실존 인물이라고 가정하고)
    ㄱ)남해신니는 오절을 뛰어넘는 고수라고 유추해도 오류가 아닐것이다.
    ㄴ) 그리고 반드시 세상에, 특히 무의 길일가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을것이다.는 가정이 성립될 수가 있겠지요. 물론 소설에는 독자에게 상상의 기쁨을 주뿐만 아니라 그 자유도 주지요. 그러나 개작까지하는 무례한 자유는 저라도 허용치 않을것입니다.서툰 독수리라 오자 고쳐서 보시고 양해바랍니다.>
    황용은 그럴듯한 참과 거짓말, 정황등을 섞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양과를 믿게 만듭니다. 절벽에 글을 남긴것도 소용녀의 필적이 확실하고요. 지모가 출중한 황용은 양과를 설득시키는 대 성공합니다.
    ㄱ, ㄴ의 부분에 의문을 품은 양과는 남해부근에 돌아다니면서 남해신니에 대한 정보를 구하러 다닙니다. 그리고 황약사에게 묻게되고 황용이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상상력이라고 할 것 같지 없고 책을 읽게 되면 아는 내용입니다.

    <무삼통이 미친것도 문제 될것이 못 됩니다. 단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독자에게 정보를 줘야한다.(복선: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장차 소설 내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짐작하게 하는 기법)는 것이지요.>
    무삼통이 미치게 된 내용은 이야기가 전개 되면서 나옵니다. 무삼통은 자신의 수양딸을 좋아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아주 자세하게 설명이 나옵니다.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는 내용이 이어지지만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시간도 몇 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입니다. 김용이 글을 쓰는 스타일이 그런 것이지요.

    <같은 작가이자 교수의 글을 인용합니다.
    '인과관계에 중점을 둔 사건의 서수리 되기 위해서는 서로 맞물려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사건속의 인물들이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
    글을 쓰는 스타일은 누구나 틀리기 마련입니다. 김용은 김용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일반화 시키시면 안됩니다. 윗 글에도 말했지만 이론을 많이 안다와 좋은 작가라는 등식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삼통 이야기가 왜 나오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삼통의 이야기도 충분히 책에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당부하건대 신조협려를 정말 차분하게 일독하시기를 바랍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옛말에 길을 가는 세사람중에 스승이 될만한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글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린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신만 옳다고 생각한다면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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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6:18
    No. 34

    산에님. 16년부분은 과오를 인정합니다. 어떤? 김용이 말하지 않앗다는 말에대해서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6년을 제시한점에 대해서 아무런 보편성이나 타당성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문학박사가, 즉 이론이 뛰어난 사람이 잘 쓴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년 5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1. 자기가 쓴 글도 아닌데 비판을 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애비 뻘이 되는지 손자 뻘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향해서 '초딩수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 교육수준을 어느정도나 되느냐? 면상을 좀 보자'고 공격을 하는 세상. 사내 새끼라면 당당하게 찾앙ㅘ서 면상을 보자고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2.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거기에 대입해보면 이런점은 오류더라는 말이 그렇게도 껄끄러운지, 제가 부모 죽인 원수도 어떤 피해를 준 악당도 아닌데...........
    제 개인의 경험(?) 일부를 말씀 드리지요. 저는 어렸을때부터 아들놈에게 책을 읽히는 일에는 지나칠 정도였고 제 대신 작가가 되기를 바라고 나름데로 문학수업을 시켜왔지요. 그럼에도 무협책 중에서는 읽지 못하게 하는 책들이 상당히 있지요.
    이런 논쟁이라면 더 이상 흥미가 없어지는군요. 대학 강단에서 이렇게 가르치더라. 그래서 거기에 대입해보니 이런부분은 오류더라. 이론까지 제시해줬는데 2곱하기2는 4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소설의 기본 원칙, 그 이론을 인정 할 수 없다면 공연히 화기를 다치기 전에 접고 싶군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추신 지금도 (올해산 개정판으로 영웅문씨리즈를 갖고 있고 인용한 문장도 아침에 급히 찾아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과연 김용의 작품에는 전혀 오류가 없을까요?
    있다면 어느부분 어떤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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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6:21
    No. 35

    너무 길어서 제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 탓에 제가 좀 지체했더니 다른 댓글을 다셧더군요.

    일단 32번 댓글에 반론 들어갑니다.

    <맞습니다. 소용녀가 그렇게 말한것 알고 있습니다. 묻습니다. 김용이 그 기간을 (잊는 기간) 10년이라고 썼다면 무조건 그렇게 믿어야하고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김용의 개인 의견일뿐이라는 말이 성립 되는데 인정하십니까? (물론 소설에서 사견을 쓸 수 없다고는 안했으니까 효과적 토론을 위해서 사견부분은 우선 논외로 하기로 하지요) >
    그럼 최담천님은 독자가 작가의 설정에 끼어들어야 합니까? 그것은 작가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독자는 그부분을 침해해서는 안됩니다. 글에서 작가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작가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비평을 해야되겠지만 정말 너무 어이가 없는 내용이라 무어라 할 말이 없습니다.

    <1. 소용녀가 신인가요? 아니면 양과가 자신을 잊는데 10년 혹은 20년, 15년도 아닌 16년이라고 할수 있었으까요?
    2. 하필 16년을 제시한데 어떤 타당성이나 보편성이 있는지요?
    3. 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예측하십니까?
    4. 다수의 사람들은 어느정도 기간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상대의 마음을 잴 수가 있을까요?
    6. 님께서 진실로 사랑하는 분이 있는데 헤어질 수 밖에 없는데 정확히 그 기간을 설정할 수 있습니까?
    7. 인명재천이라는 말을 부정 하십니까? 즉 무인이고 거지고 사람의 생명은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는것은 하나의 진리이죠. 그런데 신도 아닌 소용녀가 어찌 그렇게 정확히 상대의 마음을 추론, 예측해 낼수가 있었을까요? 소용녀의 무공이나 특기중에 그런것이 있다고 쓰인 개정판이라도 나왔나요? >
    최담천님 무언가 착각을 하시나 봅니다. rock님이 올리신 글을 먼저 읽어 보시죠.
    <당시 소용녀는 양과가 하늘의 도움으로 생명을 보존하면 이 길고 긴 16년이 흐르는 동안에 애정이 식어서 결코 자기를 따라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신조협려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 입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16년으로 약속을 했지? 만약 당신이 8년으로 약속을 했으면 우리는 8년이나 빨리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나에 대한 당신의 깊은 애정이 짧은 8년 동안에 결코 식어 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16년 후의 약속을 믿고 당신은 계곡으로 뛰어들지 않았나요!" >
    양과와 소용녀의 대화로 서술된 부분입니다. 이래도 그런 식으로 글을 올리시겠습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그리고 인명 재천을 부정합니다. 삶은 자신이 개척하는 거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왜 이렇게 인정을 못하십니까?
    이론을 그렇게 앞세우시는데 이것은 이론하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했다고 그렇게 비꼬는 듯이 말장난식으로 글을 적으신다면 정말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반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발 어른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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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6:32
    No. 36

    산에님. 무삼통이 미친 이유도 알고 이습니다. 왜? 들고 나왔느냐? 즉, 절대적인 마니아층이 있어서 잘못 건드리면 죽을지도 모르는 (?) 김용에게도 오류는 있더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엇지요.
    일등대사의 능력이 어느정도나 될까요. 치료나 교화부문에서요.
    무삼통이 뒤에는 멀쩡해지지요. 물론 그 이유도 나와 있지요. 그리고 김용도 아니, 그 어느 누구도 같은 스타일로 쓸 수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같은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문체와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도 할 수 있고 그것은 논쟁거리가 되지 않지요.
    (......서술이....사건이나 ... 인물들이 충분한 개연성을 가져야한다.)
    제 이야기는 개연성에 대한 것이지 스타일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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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6:36
    No. 37

    34번 댓글에 대한 반론

    <산에님. 16년부분은 과오를 인정합니다. 어떤? 김용이 말하지 않앗다는 말에대해서만, >
    나름대로 이유있는 작가의 설정에 대해서 끝까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작가는 글을 읽는 독자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글안에 모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6년을 제시한점에 대해서 아무런 보편성이나 타당성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 묻겠습니다. 최담천 님 같으면 어떤 식으로 개연성을 부여하시겠습니까? 16년이라는 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설정일 뿐입니다.

    <추신 지금도 (올해산 개정판으로 영웅문씨리즈를 갖고 있고 인용한 문장도 아침에 급히 찾아서 올렸습니다.)
    그리고
    과연 김용의 작품에는 전혀 오류가 없을까요?
    있다면 어느부분 어떤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제말을 기분 나쁘게 보지 마시고 제발 급히 찾아서 일부분만 보지 마시고 처음부터 일독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처음 무협이라는 곳에 발을 디디게 된 개기가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 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이 신조협려였구요. 그리고 저도 김용에 한참 열광할 적에는 몇 가지 오류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16년이라던가 뻔히 책 내용에 나오는 이런 내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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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6:46
    No. 38

    36번 댓글에 대한 반론

    <일등대사의 능력이 어느정도나 될까요. 치료나 교화부문에서요.>

    무삼통은 미쳐서 집을 나간 상태입니다. 일등대사를 만나지 못했지요. 그리고 일등대사의 능력을 문제 삼으시는데 그러면 일등대사가 정신병을 고칠수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까?

    <(......서술이....사건이나 ... 인물들이 충분한 개연성을 가져야한다.)
    제 이야기는 개연성에 대한 것이지 스타일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은 그럼 그냥 말장난을 한 것입니까? 제가 지금까지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신조협려의 스타일은 사건이 나오고 나중에 그럴듯한 설명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개연성 운운하시면 정말 ........ 단어 하나를 꼬집지 마시고 문장의 앞, 뒤 문맥과 이야기의 서술구조를 파악해 주십시요. 부탁드립니다.

    댓글을 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나름대로 최담천님의 기분이 안상하게 하려고 하다 보니 댓글이 자꾸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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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6:52
    No. 39

    산에서님.
    즉 소용녀가 말한 16년이라는 기간은 소용녀가 짐작으로 설정한 기간이라는 말이지요. 증거 이미 산에서님이 답은 통해서 말씀하신데로 그 안에 치료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즉 소용녀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몰랏지요. 그렇듯이 하필 16년(이라야만이 과가 자신을 잊을 것이다)이라는 것도 세상 사람도 나도 아닌 소용녀 혼자의 어림 짐작이엿다는 말이지요. 즉 타당성이나 보편성 혹은 개연성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그녀만의 생각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지난해인가? 큰 문학상을 받은 천 모라는 작가의 고래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는데 거기에도 작법을 무시한 부분이 많이 나오고 평자들도 지적을 하더군요. 그 작가가 무협소설의 기법을 사용한 부분이 좀 있었지요. 산에님 장르도 무협도 당당하게 문학, 소설로 평가 받는다면 멋있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법이 가능한한 지켜지고 이론을 토대로 한 비평은 이어져야하겠고 비평에 대해서는 예의를 ㅈㅣ키며 반론을 제기하고 ...... 독자의 수준도 성장하고 작가들도 더욱 정진 노력해서 품격 높은 글들을 쏟아 놓고........
    그런 충정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상국님이 말한 독자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를 기억하시리라 믿고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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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3 16:58
    No. 40

    타당성,보편성,개연성을 가진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위한 세월은 어느정도입니까? 신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른다고요?

    소용녀는 글을 새길때 '당신이 나를 잊을 때 그때 만나요'하고 썻으면 위 3가지 요소가 충족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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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7:12
    No. 41

    지금 까지 댓글을 단 제가 바보가 된 느낌이랄까? 제가 하고 싶은 반론은 위에 rock님이 하셨으니 하지 않겠습니다.
    고래라는 소설이 유명한지 아닌지 문학상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그것은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상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상문학상은? 작법에 맞추어 썼다고, 작법이 훌륭하다고 좋은 소설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장르 문학이 발전한다면 좋은 일이라는 부분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처음 최담천님이 제시하신 김용의 16년이라는 부분의 소설작법의 잘못된 오류의 예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된 저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지으신다면 뭐 할 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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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7:16
    No. 42

    산에님.
    10년 10일. 아무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1. 일등대사 무시하지 않습니다. 단 우리 상식의 선에서 생각을 해 봅시다. 삼통이가 한 눈을 파는데 그 부인이 가만히 있었으까요? 거개가 어떤 반응을 보이겟지요. 이것이 바로 보편성이고 타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답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상상해봅시다. 사람이 미칠때 어느날 갑자기 1.2분, 1.2시간만에 미칠까요.? 아마도 분명히 그 전에 어떤 낌새가 있었으리라고 가정하는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위의 두 가지 가정이 성립 된다면 일등대사도 제자가 집을 나가기전에 모를 확률보다는 알았을 확률이 많앗다고 추론한다면 무리일까요?
    오늘 아침에 문득 소설과 의학은 닮은점 이잇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원인없는 결과나 개연성이나 타당성 보편성이 없는 그 어떤 결과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말이지요. 그리고 김용의 모든 작품이 무협이라는 테두리에서 보자면 크게 흠을 잡고 싶지도 생각도 없습니다. 단지 저는 소설, 혹은 문학 작품이라는 전제하에서 제기한 문제일뿐입니다.
    사담한마디 하자면 저도 2권 초입까지 올린 글을 스스로 지웠습니다. 제가 처절할 정도로 맞고 싶어서 남의 글 두 편을 비평하면서 제목을 애기 했더니 홍보하려고 글을 올렸다고해서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처음부터 대여점에는 낼 생각이 없었기에.......
    그 글도 오절이 등장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의천 도룡기 다음인 셈이었지요.
    보편타당성, 글쎄요 사전이 옆에 없으니, 대개의 사람들이 이의 없이 수긍 할 수 있는 어떤 내용이 아닐까요.
    예를 들자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은 적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은 독특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등 처럼 말이지요. 나는 그런 식으로 16년을 풀엇고 삼통의 경우도 복선에 대한 아쉬움과 스승인 일등과의 관계에서의 아쉬움에서, 그러나 그 이론이 점수로 매겨서 몇점의 오류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 이론적인 근거에서 지적해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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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17:27
    No. 43

    1. 일등대사 무시하지 않습니다. 단 우리 상식의 선에서 생각을 해 봅시다. 삼통이가 한 눈을 파는데 그 부인이 가만히 있었으까요? 거개가 어떤 반응을 보이겟지요. 이것이 바로 보편성이고 타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답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상상해봅시다. 사람이 미칠때 어느날 갑자기 1.2분, 1.2시간만에 미칠까요.? 아마도 분명히 그 전에 어떤 낌새가 있었으리라고 가정하는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위의 두 가지 가정이 성립 된다면 일등대사도 제자가 집을 나가기전에 모를 확률보다는 알았을 확률이 많앗다고 추론한다면 무리일까요?

    왜 갑자기 일등대사와 무삼통이 나옵니까? 저의 반론은 16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위에 내용에 대한 반론을 하자면 그시대의 기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조협려의 시대적 배경은 원나라와 남송의 시대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만 봐도 어떴습니까? 삼처, 사첩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삼통의 부인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등대사가 그리고 정신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참으로 답답합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런 말씀을 못할 것 같습니다.

    최담천이 글을 올리고 2권넘게 쓰셨던 저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 입니다. 제발 논지를 빗나가지 마십시오. 잘못된 오류의 예라고 말씀드렸는데 자꾸만 곁가지로 빠지니 정말 더욱 최담천님이 신조협려를 제대로 읽지 않고 글을 올린다는 생각뿐이 안듭니다. 집에 소장하고 계시면 제발 간곡히 부탁하는데 읽고 글을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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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3 18:03
    No. 44

    기존에 올리셨던 글마저도 의심스러워지네요. 그 간 제가 안본 책들에 대해서 올리셨기에 그런가하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최담천님의 횡설수설을 보니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거 같아요.

    쉽게 물어볼게요. 최담천님이 쓰셨던 김용의 심각한 오류의 예가 잘못 예를 들었다는게 저와 산에서님과의 의견입니다.

    저희 의견에 동조하시는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19:14
    No. 45

    두 분에 대한 답 우선 횡설수설등의 단어는 분명 예의가 아닙니다.
    '소서른 [구성] [인물] [주제] [시점] [문체]등의 요소로 이루어진다. ㅇㅣ러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총체적 감동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통일된 조직을 갖췄을때 우리는 그것을 혀상화에 성공한, 좋은 소설이라고 한다.'
    '인과관계에 중점을 둔 사건의 서술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맞물려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사건 속으ㅣ 인물들이 [개연성]을 가져야 한다.'
    '......그 인물이 활동하는 사회적 배경에 맞게 설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설의 인물은 반드시 어떤 정형성을 가져야 한ㄷㅏ. 여기서의 정형성이란 보편성과 통하는 말이다.'
    '소설이 개연적 진실을 위해서 꾸며내는 거짓일때 [개연성]이 보여줄 수 있는 [타당성] 있는 진실이 [사실성의 ] 획득이 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위에것은 전부 인용입니다.
    개연성 타당성 사실성 등의 중요한 단어는 일부러 제가 []로 묶어 봣습니다.
    두 가지 묻습니다. 1. 제가 잘못 적용을 햇다고 가정을 합시다. 왜 내가 두 분에게 인정을 해야합니까? 울가 인간인 이상 같은 이론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실수가 될까요?
    2. 다시 읽어라 읽엇느냐? 어이가 없군요. 분명 이 부분과 다른 글도 이것을 볼때 알조라는 식의 말은 예의도 아니고 온당한 태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 시대 원말, 좋습니다. 16년을 제시한데 과연 어떤 타당성이 있나요?
    위의 인용문중 그 사회적 배경에 맞게 설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떠올려 봅시다. 물론 당시의 상식으로 사제간에 결혼도 안 맞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 부분은 이해를 해ㅆ습니다. 왜 김용이 소용녀의 성장과정뿐만 아니라 양과의 과정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이지요.
    사회적 배경, 개연성 보편성이나 타당성등에 비춰 볼때 제 생각은 위의 이론이 오류가 있어서 수정되거나 아니면 김용에게 그 크기는 어느정도인지 모르지만 일부분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즉 둘다 , 이론이나 김용모두는 옳지 않을 말이라는 것이죠. 둘 다 옳다면 그 순간 바로 모순에 직면하게 되겟지요.
    일등대사. 왜? 제 생각에 당시의 무림도 시대도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일등 대사가 제자의 정신병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해야 온당한 태도라고 봅니다. 그럴경우도 집도나가고 미친짓도 할 수있지요 . 단 그렇게 보는것이 타당한, 사회 상황에 맞는 추론이라면 분명히 고치기 위해서 노력도 했을 것이고 집을 나가지 못하게 살폈겠지요. 즉 단 한줄이라도 설명과 복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나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제발 부탁인데 당신은 이러니까 이런 사람이다는, 그것은 , 단정, 그것은 참으로 무례하고 건방진 행위라고 여깁니다. 물론 나도 내 답글에서 그렇게 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있었다면 그 부분은 용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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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20:13
    No. 46

    <두 가지 묻습니다. 1. 제가 잘못 적용을 햇다고 가정을 합시다. 왜 내가 두 분에게 인정을 해야합니까? 울가 인간인 이상 같은 이론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실수가 될까요?>
    그럼 실수가 아닙니까? 일반적인 사실을 잘못된 예를 들었기 때문에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논점에서 이탈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시고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회피하신다는 것 밖에 안된다고 느낍니다. 거창한 충고처럼 이야기를 하시고서는 맞지않는 예를 드셨기에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다르게 해석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백히 들어난 사실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시고 계신 겁니다.

    <2. 다시 읽어라 읽엇느냐? 어이가 없군요. 분명 이 부분과 다른 글도 이것을 볼때 알조라는 식의 말은 예의도 아니고 온당한 태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하게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16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무삼통 이야기를 하시지 않나 무삼통 이야기를 하다가 일등대사가 나오지를 않나....... 최담천님이 지적하신 이야기들은 책을 읽었다면 알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16년이라는 논점을 이탈해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시며 회피를 하시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예의를 무척 좋아하시나 본데 토론을 할때 그럼 나이가 많다고 자신이 아는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저는 예의를 지켜서 썼습니다. 최담천님의 32번 댓글처럼 비꼬는 듯한 논조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너무나 답답하고 책을 읽으면 뻔히 나와있는 내용에 꼬투리를 잡으니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이야기 입니다.

    <자. 시대 원말, 좋습니다. 16년을 제시한데 과연 어떤 타당성이 있나요?> 원말 아닙니다. 신조협려의 배경은 원이 남송을 공격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뒤에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무삼통의 아내가 무삼통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최담천님의 글에 시대적 배경을 들어서 반론을 했습니다. 16년과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지요.

    (위의 인용문중 그 사회적 배경에 맞게 설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을 떠올려 봅시다. 물론 당시의 상식으로 사제간에 결혼도 안 맞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 부분은 이해를 해ㅆ습니다. 왜 김용이 소용녀의 성장과정뿐만 아니라 양과의 과정도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이지요.>
    사제간에 대한 반대도 책에 나와있습니다. 사제간의 사랑에 대해 곽정이 격한 반응을 보이지요. 이부분은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 현대의 잣대에 맞추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김용도 충분히 글에서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 일등대사. 왜? 제 생각에 당시의 무림도 시대도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일등 대사가 제자의 정신병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해야 온당한 태도라고 봅니다. 그럴경우도 집도나가고 미친짓도 할 수있지요 . 단 그렇게 보는것이 타당한, 사회 상황에 맞는 추론이라면 분명히 고치기 위해서 노력도 했을 것이고 집을 나가지 못하게 살폈겠지요. 즉 단 한줄이라도 설명과 복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나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제발 부탁인데 당신은 이러니까 이런 사람이다는, 그것은 , 단정, 그것은 참으로 무례하고 건방진 행위라고 여깁니다.>
    곁가지 이야기 입니다. 일등대사가 도대체 왜 자꾸 나오는 것입니까? 그리고 스승이 제자의 모든 일을 꼭 알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누군가 무삼통을 말리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등대사는 자은인가를 대리고 그 당시 은거상태였습니다. 단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내용이나 아니면 rock님이 올리신 본문 내용을 가지고 반론을 폈는데 최담천님은 저의 그런 내용에 반론을 펼치셨습니까? 자꾸 곁가지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았습니까? 단정이라? 그것은 책에 나와 있기때문에 한 것입니다.

    그냥 최담천님이 쓰신 글에 오류가 있는 것 같기에 적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니....... 만약 자신이 올린 글에 그런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는 것이 바른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예의니 이런 말을 쓰시면서 이런말은 쓰지 마라 예의 없다.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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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20:17
    No. 47

    참으로 난감합니다.
    <횡설수설등의 단어는 분명 예의가 아닙니다.>
    예의인지 아닌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논점을 자꾸 이탈하시기 때문에 rock님께서 한말이 아니겠습니까?

    <단정, 그것은 참으로 무례하고 건방진 행위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무례하고 건방진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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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3 22:03
    No. 48

    산님. 줄임 용서바랍니다. 단정 또한 용서 바랍니다. 두 분에게 쓰다보니 , 읽었느냐? 읽어라에 대한 반감에서 쓴 문장이니 이ㅎ ㅐ 바랍니다.
    바꿔서 묻습니다. 제가 인용한 문장, 그 이론은 수용해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그런 이론을 인정하신다면) 사회적 배경, 보편성 타당성으오 16년을 저에게 납득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세요. 사회적 배경(시대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가 몇자 더 쓰겠ㅅㅡㅂ니다.
    '2005~6 년 한국 사회 상황은 그 이전부터 이오져온 갈등과 imf로 인한 ㅎ후유증, 사회 양극화와 실업문제 부패등의 문제가 구조화 되어가는 양상을 띄기도 했다.'
    제가 준비 없이 써본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지금을 배경으로 쓰면서 가족 붕괴, 팽배한 개인주의 , 배금주의,부패,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 등을 날줄로 삼건 씨줄로 삼건 썼을 경우 사회적 배경을 맞게 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담천이란놈과 그 마누라가 죽도록 사랑함에도 두 사람다 죽게되어(약이 한 사람분이 있어도 관계없고 어ㅃㅅ어도 관계 없습니다) 그 마누라가 담천이란놈을 살리기 위해서 , 사랑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16년이면 자신을 잊고 잘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믿음, 소망, 기도)에 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숨기건 뛰어들건 떠남에 포함되니까. 그 대상, 즉 양과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대체 이 사회적 배경과 그 16년이 맞는점이 무엇일까요?
    보편성과 타당성 또한 차이 없으니 넘기고 다른 사람.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이자 교육자였던 한국문학학교 교장(지금은 모르지만)이 었던 김정한님이 가르친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행선지를 묻는 택시가 다가왔다. ........그들에게 온 존재가 집중되는 순간이었다.(중간에 생략을 했는데 원하시면 내일 모두 올리겠습니다.)
    '화자는 젊은 여자.....그러나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것. 경찰이 발견한 그녀의 연고는 찢어진 진찰권뿐이라고 했다. 화자는 경찰서로 간다. 자살한 환자는 복역 경험이 있는 운동권 출신이었다. ...........그녀의 집을 방문한 화자는 그녀의 일기를 발견한다. '
    위의 글이 얼핏보면 고등학생이 쓴 글로는 흠잡을 곳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김정한님은 제자의 글에 딴지를 겁니다.

    즉, '경찰이 발견한 연고는 진찰권뿐이었는데, 집에가서 그녀가 일기를 발견했다? 경찰이 게을렀거나 그 일기가 아주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다가 어떤 계기로 그녀의 수중에 들어 왔거나 둘 중 하나다..........
    .....화자는 남자친구와 어떻게 헤어졌는가? 여자는 운동을 싫어하고 남자는 열혈 운동원이라고? 그건, 너무 가당찮다. 이쯤 되면 문제는 어떻게 헤어졌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만났는가이다..........
    1.가족끼리 안다. 2. 같은 학교 같은 과다. 3.아주우연한 계기로 서로에게 끌렸는데 서로 성격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1.은 필연이고 2는 공간적 필연이고 3.은 우연이다. .............3은 삼류 작품의 해결 방법이다.'
    여기까지가 인용입니다. 본문에도 두 사람, 남녀에 대한 별 정보가 없군요.
    제가 물은데로 사회적. 보편적인 상식의 선, 타당성에서 16년을 증명하신다면 님께서 저보더 독해력이 높다고 인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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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3 22:29
    No. 49

    쓸데없는 곁가지들 자꾸 붙여 쓰시지 마시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시회적,보편적인 상식의 선,타당성에서 몇년이였어야 합니까?

    작가의 고유권한인 설정을 물고늘어지는 모습 보기 안좋네요.

    분명 책에서 그거에 대한 이유가 없다고 해서 일부터 짜증을 무릅쓰고
    타이핑해서 올려드렸건만 소 귀에 경읽기 같네요.

    그냥 '제가 예를 잘못 들었군요' 하시고 정정하시면 그만인 것을 참 답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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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3 22:45
    No. 50

    김용의 영웅문에 나타난 설정인 16년이라는 것을 소설 작법상 틀렸다고 해서 그것을 반론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16년의 사회적 보편, 타당성을 증명하라? 김용의 소설상 설정인 16년을 어떻게 사회적 보편, 타당성을 증명합니까? 논지는 분명히 소설작법상의 오류인 16년의 예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까지 그것때문에 반론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제가 쓴것은 모두 헛소리 였습니까? 책 본문에 있는 내용으로 손이 아프도록 몇차례를 올렸습니다. 위에 올린 제 반론은 모두 헛소리라는 것입니까?
    이제는 쓴웃음뿐이 안나옵니다.
    제발 이런식으로 계속 꼬투리를 잡지 마십시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천천히 사람들이 써 놓은 댓글을 읽어보십시요. 그리고 김용이 쓴 신조협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십시요. 부탁드립니다.

    50이 넘으신것을 글로 사람들에게 알리기 이전에 마음으로 50넘으신 분의 연륜과 포용력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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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4 서향(書香)
    작성일
    06.12.23 23:20
    No. 51

    흠 ... 잠시 관심을 접은 동안 꽤 많은 덧글이 달렸군요.

    이 글에 제가 쓸 마지막 덧글입니다.


    제 덧글에 대한 최담천님의 반론이라고 쓴 ... 반론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한 덧글도 읽었습니다. 특별히 할 말이 없군요.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걸 반론이라고 해야 하나요?

    고지식 하신건지 이해력이 부족하신건지 알 수가 없군요.

    "rock"님과 "나의산에서"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는 덧글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딴소리 하시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감을 못 잡겠습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소설작법은 그저 소설의 잘 쓰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게 곧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소설작법은 원론적이고 총체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적용을 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작법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모든 걸 끼워 맞추려고 하니 지금처럼 이야기가 겉돌고 잘못된 예시라고 남들이 지적을 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겁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라는 소리만 계속 반복할 뿐, 타인이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할 뿐 명확한 반박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 글에 달린 타인의 덧글을 차근차근 읽어 보십시요.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어쩔수 없는 겁니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서 왜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군요.

    참고로 이건 교육수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자세의 문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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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03:57
    No. 52

    산에님 두 분께 답올립니다.
    일등대사 무삼통등을 거론한것은 논지에서 벗어나기위함이엇는데 실패했네요. 제가 이번에는 또 다른 창으로 김용의 16년을 공격해보겠습니다.
    위에서 인용한것처럼 전상국님은 '우연은 용서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김정한님도 우연은 삼류 작품의 해결방식이다.' 라고 다언을 해 버렸습니다. 즉, 필연성이 결여된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필연성이 결여된것은(없는것은)삼류라는 말인데
    1.소용녀가 제시한 이유나 기간에 어떤 필연성이 있습니까?
    2. 어떤 의사가 당신은 ......쯤 되어서 죽겠다고 진단합시다. 그래서 왜 그때 죽겠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생각에 그렇다고 했는데 이 의사의 말에 손톱만한 필연성이라도 있습니까?
    3. 소용녀가 혼자 헤아려보고 결정한 기간과 의사가 혼자 헤아려보고 결정한 기간, 아니 결정 방법에 조금의 차이도 없음을 인정해 주시겠습니까?
    사전을 찾기가 밤이라....... 아마도 반드시 그리되어질...어쩌고 저쩌고 일 것입니다.
    위의 의사가 필연성을 가지려면 당신의 장기중 현재 ㄱ는 이러이러하고 ㄴ은은 이러이러하며 ㄷ은 이러해서 종합해서 판정해보니.....쯤이되면 죽을것이다고 했다면 되겠지요.
    아직도 부족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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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04:09
    No. 53

    정정합니다 일등 무삼통을 거론한것은 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를 돕기위해서였는데 제가 목적을 이루지 못했네요.
    rock님 어디에 소설가의 설정은 빼고 평하라는 학설이 있던가요?
    소설은 제목부터시작해서 마지막 마침표까지가 한권의 소설이고 평의 대상이 됩니다. 저는 설정을 시비하고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바로 위의 글을 읽고 과연 소용녀가 말한 이유로 16 에 어떤 필연성이, 아니 터럭만한 필연성이라도 있는지 살펴보시고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억지 소리하는 사람으로 몰리는 기분이 들어서 이번에는 소설에서 요구하는 필연성이라는 창도 꺼내들고 왔습니다. 제 발 필연성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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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04:49
    No. 54

    rock님. 이제 공격적인 자세로 임해보겠습니다.
    산에서님 또 질문 드립니다
    30번 댓글에서 옮겨 적습니다.
    "어째서 하필이면 16년으로 약속을 했지? 만약 당신이 8년으로 약속을 했으면 우리는 8년이나 빨리 만날수 있었을 텐데"
    " 나에대한 당신의 깊은애정이 짧은 8년 동안에 결코 식어버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아.16....."
    35번 댓글에서 옮김
    <당시 소용녀는 양과가 하늘의 도움으로 생명을 보존하면 이 길고긴 16년이 흐르는 동안에 애정이 식어서 결코 자기를 따라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신조협려 본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 입니다.

    참으로 웃기지 않습니까?
    마음이 8년이면 식지 않으나 16년이면 식는 마음이 있습니까?
    나도 김용이 16년을 쓴 의도는 나름ㄷ대로 짐작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타당성 보편성 개연성 필연성을 잠시 덮어두더라도 웃기지 않습니까? 마음이 무슨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도 아니고 사람이 분명 자기의 것임에도 마음데로 할 수 없는 것중 하나가 자기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적 능력을지닌 위대한 신적 존재 소용녀는 8년은 안되나 16년은 될것이라고 재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더.
    소설은 제목부터 마지막 . 까지가 한권의 소설이라는 말에 동의 하십니까? 그렇다면 제목부터 마침표까지가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말에도 동의하시겠습니까?
    나아가서 여기는 설정이다. 여기는 뭐다하고 전체를 두부모 자르듯이 나눌수 이씁니까?
    어떤 유식한분이 다른글에서 젊잖게 타이르더군요. 천마교주가 3첩4처를 거느리는 주제를 모든 작가가 다 써야하느냐고 ? 일장훈시와 함께 준엄한 꾸짖음을 내리더군요.
    왜? 이 말을 썼느냐. 예. 소설이란 주제를 포함한 모든것이 비평의 대상이 되고 모든 부분을 이것은 주제다 이것은 설정이다 하는식으로 정확히 자를 수 없다는 말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설정을 간섭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누차 이미 발했듯이 몇가지의 원칙을 어겼다는, 흔히 작의적인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평가절하해 버리는 이곳에서 몇가지의 원칙, 16년을 끼워 마추려다보니 .... 그 원칙이 무너져 버렸다는 말입니다.
    자. 오늘밤 마지막 질문입니다. 필연성을 제시해주실수 있습니까?
    아직도 제가 예를 잘못들었다고 인정을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내일 질문란에 8년이면 식지 않는 사랑은, 아니 어떤 특정한 기간에 의해 움직이는 마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줬는지? 그런 마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어떤기록이나 증거가 있는지 물읍시다. 아니 물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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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4 08:56
    No. 55

    정말 억지스러운 분이시네요.

    제발 질문에 답좀 해주세요. 그래서 몇년이라 해야 한다는 겁니까?

    '당신이 나를 잊는 그날 만나요' 라고 글을 썻다면 아무 문제 없는 겁니까?

    짧게 답해주세요. 개연성. 필연성 등등 진절머리가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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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09:40
    No. 56

    rock님.
    나는 더 답답합니다. 그리고 몇년이 맞는지 는 김용만이 답을 할 수가 있는 문제고요. 오해마세요 나는 16년이라는 숫자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지적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16년이 나왔느냐?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소설인이상 소설의 이론을 이부분에서 철저하게 외면, 파괴해버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지적한 것은 아니지요. 이 부분은 소설작법에 따르면서도 쓸 수 있을것 같은데 납득할 수 없는 수16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김용이 나에게 이야기 했기 때문에 이부분은 소설 작법에 비춰보면 오류라는 것이지요. 어디가 어떻게 소설작법을 어겼는지는 이미 충분히 인용이 되었으니 더 이상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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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09:46
    No. 57

    서향님.
    나는 전체를 작법에 들이댄적도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 내가 한 말은 김용의 소설에도 작법으로 비춰보면(기연, 우연, 주루에서의 뜻밖의 만남등등등은 제외하고.) 오류가 있다. 이부분도 이러이러한 작법으로 평가한다면 오류라는 이야기외에 한 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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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4 09:54
    No. 58

    이번엔 필연성입니까? 기가 막힙니다.
    최담천님 혹시 난독증 있으십니까?
    그대로 읽어서 받아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16년이라는 것은 김용이 글을 쓰며 정한 설정의 내용이고 그 설정을 바탕으로 독자의 몰입감을 증폭시키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재입니다. 그리고 소용녀의 마음을 김용이 극적 구성을 통해서 16년이라고 풀어낸 것이고요. 자신의 잣대에 맞추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 하면 또 보편, 타당성 운운하시겠지요.) 소용녀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요? 왜 소용녀의 대사까지 필연성이라는 이유로 말장난을 하십니까? 이런 것에 일일이 대꾸를 하는 제가 머리가 아파옵니다. 그리고 제가 단 첫번째 댓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제가 파악한 신조협려의 밑바탕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거기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16년이라는 시간이 길게도 짧게도 느껴질수가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런식으로 계속 말장난 하실 겁니까? 그렇게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싫은 것입니까? 남의 댓글은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인가요? 제가 몇 번을 부탁드렸습니까?
    저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분인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기가 막힙니다. 그냥 평소대로 유령회원으로 있었어야 하는데 얼마전 회원가입을 한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군요.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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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4 10:00
    No. 59

    <나는 16년이라는 숫자에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지적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16년이 나왔느냐?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소설인이상 소설의 이론을 이부분에서 철저하게 외면, 파괴해버렸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지적한 것은 아니지요. 이 부분은 소설작법에 따르면서도 쓸 수 있을것 같은데 납득할 수 없는 수16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김용이 나에게 이야기 했기 때문에 이부분은 소설 작법에 비춰보면 오류라는 것이지요. 어디가 어떻게 소설작법을 어겼는지는 이미 충분히 인용이 되었으니 더 이상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최담천님 그럼 16년 대신 최담천님이라면 몇 년으로 하시겠습니까? 소설 작법에 어긋나지 않게 그럼 한번 써주십시오. 최담천님이 납득할수 있는 수는 도대체 몇 입니까 ? 만약 최담천님이 그 수를 써서 저를 설득시킬수 있다면 저는 최담천님께 사과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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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4 10:46
    No. 60

    최담천님의 글입니다.

    -16년이 치료 기간이다. 혹은 16년이면 양과가 소용녀를 잊을 수 있는 기간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읽은분의 상상일뿐 김용은 그런 이야기를 전혀하지 않았지요. -

    -160년ㅇㅣ 걸려도 나는 시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점을 다시한번 밝힙니다. 16년이 양과가 잊을 수 있는 기간이다. 혹시 김용이 어디에 그렇게 써 놓았나요. ? -

    이렇게 사실확인도 안하고 글을 쓰셨기에 제가 본문을 그대로 옯겨다 드렸습니다. 그에 대한 최담천님 답글입니다.

    -산에님. 16년부분은 과오를 인정합니다. 어떤? 김용이 말하지 않앗다는 말에대해서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6년을 제시한점에 대해서 아무런 보편성이나 타당성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는 것이지요.-

    글 어디에도 밝힌바 없다고 열변을 토하시던 분이 증거를 들이미니 이때부터 보편성 타당성을 물고 늘어지십니다. 김용이 글에서 애기했다면 이미 개연성을 지닌 것인데 그 사실을 분리하곤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서
    제가 물어봅니다. 도대체 어떻게해야 보편 타당하냐고...

    -몇년이 맞는지 는 김용만이 답을 할 수가 있는 문제고요-

    자기 자신도 작가 고유권한임을 인정하면서 뒤에가선 보편,타당을 주장하시는데 제가 지금껏 느낀바로는 16년의 기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분은 최담천님이 유일하신거 같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이 보편 타당할순 없겠고 ...한 번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왜 다른이가 다들 아는걸 모를까를...

    김용의 글에 오류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거론한 예는 아니다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증거도 보여 드렸구요. 작가가 글에서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되었다라 했는데 자신의 생각(이걸 보편타당하고 동일시하면 곤란)과 차이난다고 심각한 오류라 정의하신다면 더 이상의 비평으로 포장된 아집의 글들 안봤으면 싶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샘스페이드
    작성일
    06.12.24 10:48
    No. 61

    우스개 소리로 '나는 때리지 않았다 단지 내 손이 때렸을뿐'

    -산에님. 16년부분은 과오를 인정합니다. 어떤? 김용이 말하지 않앗다는 말에대해서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6년을 제시한점에 대해서 아무런 보편성이나 타당성도 없고 개연성도 없다는 것이지요.-

    위글을 보면서 그 우스개 소리가 생각나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최담천
    작성일
    06.12.24 10:59
    No. 62

    산에서님. 답답하시지요. 저도 그에 못지 않게 답답합니다. 이 답을 끝으로 제가 약간의 동의와 다수의 공격을 받은 세편의 평론을 오늘 중으로 묶어서 정리를 하겠으니 이란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물으신 답.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는것이 제 글이 아니고 김용도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16년이 나온이유, 김용이 설명해둔 그 이유로는 작법을 만족 시킬 수 가 전혀 없다는, 아니 작법으로 이부분만 보자면 큰 오류라는 이야기지요. 처음 이런 저런 이유를 대다가 필연성을 제시한이유는 작법중 한 가지 자로만 잰것이 아니라는 점과 납득시키고 싶다는 이유때문이였습니다. 전상국님이나 김정한님의 이론대로 문제의 부분을 평가할때 과연 어떤 평을 내려야 할까요.
    rock님. 내가 보편 타당성 필연성등의 여러가지 이유를 댄것은 그 모두가 작법속에 들어있고 그 부분에 한해서는 그 여러가지를 어겼기 때문이고 처음 하나로 나오다 여러개를 내민이유는 납득 시키고 싶은 소망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그동안 올렸던 글중 평론부분을 엮어서 올릴 예정이니 하실 말씀이 있다면 그 난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4 11:21
    No. 63

    결론은 대답 회피 입니까?
    작법 ! 작법 ! 그 소리만 하시지 마시고 정확한 예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매한 저는 예를 보아야 알것 같습니다.
    오늘 중으로 정리를 해서 글을 올리신다고 하시는 데 저의 의문을 회피한 또 뻔한 작법 타령이라면 올리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 까요?
    제가 59번 댓글에 제기한 그 부분을 예로 들어서 글을 올리신다면 말리지는 않겟습니다. 작법에 근거를 해서 필연성이 있고 보편, 타당한 년수는 도대체 몇년인지? 이것에 대한 예를 김용의 글을 차용해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어려우시다면 최담천이 생각하시는 작법에 근거한 년수는 몇년인지만이라도 밝혀주시고 그 년수의 필연성과 보편, 타당성을 설명해주십시오. 지금 와서 대답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정하기는 싫고 대답은 없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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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나의산에서
    작성일
    06.12.24 11:23
    No. 64

    아이디 뒤에 님이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절대 고의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붉은떡볶이
    작성일
    06.12.24 21:05
    No. 65

    저는 별로 아는게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하지만 개인적으로 댓글을 읽어보면 최담천님이 다른분들에 비해 설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잘못된의견을 말하신다는게 아니라..저는 아는게 별로 없습니다 -_-; 그냥 제가 덧글들을 읽어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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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7 설매
    작성일
    06.12.29 23:26
    No. 66

    저도 뒤늦게 한 번 적어봅니다. 아마도 10년이나 20년이 아니라 16년이라 얘기했으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그냥 8년은 짧아 보여서란 답이 나왔으니 김용에게 실망하셨나 봅니다. 작가의 생각을 추측해보면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뽑기로 고른 숫자가 16일 수도 있고 치밀한 설정에 의해 16년이 나왔는데 작가가 실수로 두루뭉술 넘겼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트집 잡을 부분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어라 ? 그런 의미였어?' 하고 지나면 될 일에 굉장한 에너지가 소비되었네요. 그래도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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