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용
작품명 : 녹정기
출판사 :
[요즘 비호감 캐릭터(특히 주인공)에 대한 논란이 많아 한번 써봤습니다. 작품과 독자, 그리고 그 구조와 원형을 주제로 살폈지만 많이 어설픕니다 ^^;]
김용 하면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세워줄 만큼 인기있고 존경받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에 이르는 모든 무협의 근간을 이룬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영웅들의 기개와 의협, 그리고 인물과 인물간의 애증. 무엇보다 문파의 개성과 같은 특징들은 거의 여과없이 현재에도 차용되고 있다.
김용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녹정기라 하겠다. 다른 작품에 비해 주인공은 무공도 강하지 않은데다, 그렇다고 의협심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파렴치한 삼류잡배라해도 무방할 정도랄까.
이런 비호감 캐릭터가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녹정기를 읽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위소보.
그는 과연 영웅문의 곽정이나 천룡팔부의 소봉과 같은 영웅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악당인 것일까.
녹정기의 시대 배경은 청나라다. 정권을 잡고 있는 이들은 중화사상에 쪄들어있는 한인들이 아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한인이다.
주인공은 비록 어리지만 약삭빠르고 상황판단에 있어 대단히 뛰어나다. 그런 잔대가리(?)를 최대한 이용해 주인공은 청나라의 고위급 관리나 악당들을 혼쭐내준다. 사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천룡팔부에서 부터 시작해 녹정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김용이란 작가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위소보란 주인공은 결코 본받을 만한 인물이 아님에도 한인과 오랑캐라는 대립구도를 이용해 주인공의 능력을 돋보이게 만든 것이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으니 위소보와 대립되는 오랑캐(청나라)의 고위 관리들은 대부분 음험한 악당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글을 읽게 되는 독자가 한인이 아니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이토히로부미가 우리나라에선 죽일 놈이지만 일본에선 영웅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주인공의 설정 만으로는 녹정기란 대 타이틀을 이끌어 가기 힘들다. 때문에 작가는 여기서 뛰어난 조력자를 등장시키니 바로 '쌍아'란 인물이다. 예쁘고 무공도 강하고 순종적인 쌍아는 남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그런 여성이다. 잔대가리만으로 풀어가기 힘든 상황을 위해 작가가 생각해논 장치라 할 것이다.
쌍아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자(특히 남성 독자)라면 한번쯤 꿈꿔봤을 그런 이미지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작가는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쌍아란 캐릭터를 마음대로 부리는 주인공에 흠뻑 빠져들게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준다.
쌍아의 등장이 매우 새롭고 탁월한 선택인 듯 보여지지만 사실 오래된 동화의 차용에 불과하다. 쌍아란 인물은 장화신은 고양이와도 비교될 수 있는 만능 캐릭터지만, 주인공은 그런 쌍아를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여준다.
단순히 욕심많은 주인공은 쌍아에서 멈추지 않는다. 황궁의 공주부터 시작해 강호의 꽃들과 마교의 애첩(?)까지 가리지 않고 소유한다. 여기에 황제의 총애를 받아 높은 관리까지 오르는가 하면 한족을 위해 힘쓰는 비밀단체의 밀정으로도 활약하는 대립된 모습을 보여준다.
뛰어난 무공도 없고 인물도 잘나지 않은데다 됨됨이도 못된 위소보란 주인공이 어째서 이렇게 잘나갈 수 있는 걸까. 정말 잔대가리 하나로 주인공이 이렇듯 잘나가게 된 것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작가의 농간(?)이다. 약삭빠르고 못난데다 무공도 없는 주인공임에도 오히려 그런 점이 책을 읽는 독자를 통해 자신과 일치되도록 만든 장치인 것이다.
김삼순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 완전한 인물보다는 불완전한 인물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친금감을 얻고 자신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된다.
위소보란 인물이 보여주는 부와 여자에 대한 집착은 대부분의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하다. 단지 그걸 밖으로 표출을 못할뿐. 작가는 위소보란 (비호감 캐릭터) 인물을 통해 우리의 이런 답답함을 숨기지 않고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때문에 너무 얄밉지만 독자는 그의 행보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습게도 마지막 장에 주인공과 그의 주변을 지키던 여인네들은 돌연 사라지고 만다. 그것도 황제가 그에대한 아쉬움이 남긴 한숨과 함께 말이다.
이런 특징은 신화나 전설에서 등장하는 영웅의 원형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아더왕이나 헤라클레스에서 볼 수 있듯이 영웅은 결코 잘 먹고 오래오래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범인과 구별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죽어 사라지던지 하늘의 별이 되어 오래오래 그의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야 비로소 영웅의 마지막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위소보란 인물은 비호감 캐릭터로 남을 수 있다. 어찌 저런 인물이 영웅일 수 있느냐 따질 수도 있으리라.
개인적으로도 위소보를 악당 중의 악당으로 남겼으면 더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점이 오히려 위소보란 주인공의 매력을 좀 더 살리는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에게만은 비호감일지언정 무작정 미워할 수만 없는 그런 인물이 위소보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게 된 까닭이 작가가 만들어 놓은 단순한 장치에 속았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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