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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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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 Cyrano
    작성일
    06.08.06 11:51
    No. 1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좋은 글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조금 불편하더군요. 아마도 글을 쓴 이가 서구인인 탓이려니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북극대성
    작성일
    06.08.06 12:47
    No. 2

    질소는 공기중 80프로를 차지하는 기체인데요, 산소와 습기로 인한 제품의 변형을 막기위해서 희석제와 제습제로 사용됩니다. 흔히 과자를 포장할 때 질소를 주입하면 제품의 변형이 적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질소를 풍선에 넣은 경우를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풍선 속 질소의 세계는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입니다. 산소와 습기를 고무풍선이 원천차단해주고 풍선 속의 산소와 습기는 질소가 막아줍니다. 이러한 고무풍선 속의 세계는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 될 수도 있고 한국의 근대사인 조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풍선 속에서 가끔 햇살이 환하게 비추면 밖의 세상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 자유롭고 싶은 본능을 느낄 터이지요. 풍선을 뚫고 풍선을 터트리고 밖으로 나가면 고무풍선은 사라집니다. 두려운 일이지요.그래서 자유는 두렵기도 합니다. 책임감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보존이 뒤따를 때 자유는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장 속의 새가 자유롭게 하늘을 훨훨 나는 것은 좋지만 새로운 세상에 적응못하고 포수의 총에 맞아버린다면 허망할 테지요. 새장의 존재가치와 풍선의 파괴를 감수하는 자유의 획득 이것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그대 하늘을 맛보았으므로"의 주술사는 이러한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잘 이해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풍선을 터트리고 싶지도 새장속의 새를 놓아주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또한 그는 본문중에 언급된 "인간의 원형적 성격" 그 기저에 자리잡은 호기심이라는 원죄적 요소를 두려워합니다.속된 말로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 여기에 해당될 듯합니다.
    제가 만약 주술사라면 인간의 이러한 원죄적 요소인 호기심의 고약한 취미를 고려해보건데, 소녀는 분명히 선악과를 따먹을 것이며 풍선속을 뛰쳐나갈 것이며 자유롭게 하늘을 비상하고야 말것이며 꾹꾹 억눌러진 욕망은 고무풍선이 점점 하늘 높이 올라갈 때마다 부풀려져서 언젠가는 풍선이 터져버릴 것이라 예상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고귀한 자가 아니라 용기가 있는 자라 생각합니다. 죽음으로써 도피하는 자가 아니라 질기게 붙들어매서 진흙탕에서 뒹굴것을 감수하는 자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이데아의 세계의 상실을 슬퍼하고 이상향을 동경하기보다, 파괴를 통한 새로운 창조를 감수하는 자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 같으면 교육을 시켜서라도, 비록 완벽하게 철학자의 의중을 가르칠 수 없더라도, 그 지혜를 대중이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비판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적어도 꾹꾹 억눌러진 욕망이 일방적으로 폭발하기보다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의견개진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는 고무풍선의 매듭을 풀어서 질소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질소 산소 아르곤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북풍마황
    작성일
    06.08.06 14:37
    No. 3

    추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라이락스
    작성일
    09.02.18 15:58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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