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일단 우리 동네를 가로지르는 경인 고속도로는 건너기 참 애매모호한 곳이 많습니다.
동네를 반으로 쪼개고 달리는 곳이 많아서 그때문에 불편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죠. 뭐 우리나라 개발 당시에는 그것도 참 큰역할을 하긴 했습니다만, 우리 후세대는 그런 치열함은 잘 모릅니다. 무심하게 다니죠.
그 경인고속도로에는 사람들이 왕래하라고 육교도 있고, 차도 다닐만한 큰다리도 있고, 드문드문 사람과 자전거 다니는 굴다리도 있습니다.
우리동내에 그 굴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약간 음침한 그 굴다리에 도시 미화의 일환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만, 전에는 그냥 하얀 페인트 뿐이었어요.
동네 애들이 거기다가 낙서를 합니다.
내용은 뭐...
누구누구가 어느여자랑 같이 잤대요에서부터, 멀쩡한 하트를 그려놓고서 그 안에 ‘야 xx, 이씨팔놈아’ 라고 써놓은, 도무지 이게 사랑한다는건지 만다는건지 애매모호한 낙서, ;‘이제 곧 우주멸망이 올것이다 교회는 각성하라’는 심오한 철학도 봤습니다.
근데 하루는 정말 저 개인적으로 추억 돋는 문구를 하나 봤어요.
‘잘 다녀오세요. 민들레처럼 기다릴께요. 06;30 AM’이라는 문구였습니다.
그걸보고 어떤게 떠올랐느냐 하면, 예전 95년도 였던가요? 아마 제가 마석의 생성 공단에 있을 때였을 겁니다.
그때 사람구하기 힘들어서 이사람저사람 끌어다 같이 일을 했는데, 열아홉살짜리 커플이 들어온적이 있었습니다.
여자애는 그럭저럭 이쁘장 했고, 남자애는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색에 여자애랑 맞먹는 약간 작은 키였습니다만 둘이 잘 어울려 공장에 다녔죠.
지방에는 그런식으로 일찍 사고치는 녀석들이 좀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죠. 일단 애들이 말쌍은 안피웠으니까요.
그런데 알고보니 여자애가 임신을 했고, 여자애 부모님이 아이를 떼라고 하자 둘이 도망쳐서 허름한 방 구해서 살고 있는 거였습니다.
여자아이는 몇달뒤 회사를 그만 뒀어요. 남자애 혼자서 공장을 다녔는데, 어느날 집에 불이 났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퇴근하는 길에 그놈이랑 술한잔 마시고, 생산 책임자랑 같이 뭐 좀 사들고 그집에 가봤습니다.
이불이 탔더군요. 다행히 산모가 약간 놀랐을 뿐 별탈은 없었는데, 둘이 그 추운 겨울 서로 끌어안고 한이불 덮는게 좀 쓴 웃음 나는 거였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것 부터 그 고생을 하고 사는게 불쌍하기도 하고, 대견스럽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것도 있었구요.
그래서...
그 굴다리 벽 모퉁이에 작게 쓰여진 문구를 본 순간 그 커플이 떠오른 겁니다. 정말 저도 거의 잊었던, 근 십년이 다된 기억이 갑자기 생각날 줄은 몰랏습니다.
그런 사연들을 재미 있게 끌고 가서 그 한문구를 딱 박아넣어 보고 싶습니다.
물론 ...
제성질이 급해서 그런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 기회를 착실히 쌓지못하는 나쁜 글쓰기 습관을 가지고 있는 관계로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우리집 개를 끌고 가다가 올해부터는 낙서도 못하게 된 그 벽화를 보면서 다시 그 낙서가 그리워질줄은 몰랐습니다.
지저분한 음담패설이 채워지는 것보다는 벽화가 낫긴하지요. 하지만 개개인의 사연이라는 것이, 아마 값어치가 다를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날씨가 좋아서, 그리고 어제 처남네랑 마신 막걸리의 위력이 아직 덜가셔서 헤롱거리다가 문득 주절 거려 봤습니다.
건필.
우리집 개 코코 입니다. 주제에 수컷이라, 좀 골아퍼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