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30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5.07.25 01:07
    No. 1

    어느시대에나 역사 왜곡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화랑은 우리 스스로 한 역사왜곡이란 점에서 참 아쉽습니다. 작가분이 원화라는 말까지 나왔는데도 왜곡된 역사를 다룬다니..... 뭐 소설이니 허구가 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다만 화랑에 대한 것을 조금은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느 작가분의 홈에서 퍼온 글입니다. 소설을 재미있게 보시더라도 역사의 실체를 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요.
    ---------------------------------------------------------------
    학자는 정직해야 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갈릴레오 이래 많은 학자들은 할 말을 못하고, 안 할 말을 해야 하는 일을 수없이 많이 겪었다. 역사학도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 예가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청년 문화’라고 칭송받는 신라시대 화랑(花郞)에 대한 해석이다. 기존 한국사에서 평가되는 화랑의 모습은 호국의 꽃이었고, 청년 문화에 대한 찬사의 극치였다. 먼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화랑이 그토록 극찬을 받은 지는 지금으로부터 5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역사학자는 1920년대 단재 신채호(申采浩)였다. 이어 1930년대 일제 치하 일본 역사학자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화랑을 거론할 때만 해도 그렇게 찬란한 존재가 아니었고 그저 화랑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청년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이었으며 나중에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역사학자 이선근(李瑄根) 대령에게 한국사에서 청년 문화의 유산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명칭 바뀐후에도 계속 여자

    이에 따라 이 대령이 ‘화랑도연구’(1954)를 출판했을 때 화랑은 하루 아침에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청년 문화의 유산으로 부상했다. 그의 주장을 빌리면 이충무공(李忠武公), 개화파, 독립협회, 동학혁명, 3·1운동이 온통 화랑 정신을 빛낸 사람들이나 사건들이었다는 것이다.

    화랑의 본래 모습이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 화랑이 당초 여자였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최초의 화랑은 원화(源花)라고 불렸으며, 그들이 하는 일은 추석때 서라벌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패를 갈라 길쌈내기를 하던, 이를테면 부락 축제의 리더 역할이었다.

    처음 원화가 된 사람은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이라는 두 명의 여자였다. 그러던 것이 부락제가 국가적 행사로 자리를 잡고 규모도 확대됨에 따라 원화는 화랑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원화가 화랑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화랑은 여자였다고 하는 사실이다.

    ‘삼국유사’ 원본 중에서 화랑에 관한 부분에서 화랑이 ‘花郞’이 아니라 ‘花娘’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첫 번째의 열쇠가 된다. ‘꽃 같은 여자’라는 말은 있어도 ‘꽃 같은 남자’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화랑은 ‘花娘’이라고 쓰는 것이 옳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화랑을 ‘花郞’이라고 표기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삼국유사’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문헌을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라나 고려 시대 사람들은 ‘花娘’을 어떻게 발음했을까? 우선 ‘동국정운’(東國正韻)을 보자. 여기에는 ‘娘’을 ‘냥’이라고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최고의 어문학자였던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와 조선조 후기 음운학자 정윤용(鄭允容)의 ‘자류주석’(字類註釋)에도 ‘娘’은 ‘냥’으로 발음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花娘은 어떻게 발음되었을까? 신라의 이두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조까지도 그것은 ‘화냥’이었다. ‘화랑’이 아니라 ‘화냥’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 얘기를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현대 어문학의 태두인 양주동(梁柱東)은 필생의 저작인 ‘조선고가(古歌)연구’를 발간한 후 “내가 죽은 후 1세기 안에는 이 책의 일점일획도 고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국보(國寶)라고 칭했다. 그는 이 책에서 화랑을 언급하면서 ‘화랑이 한때 타락해 화냥의 칭호를 들었다.’고 기록했고 이선근도 그렇게 풀이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화랑은 당초부터 화냥이었지 화랑이 타락해 화냥이 된 것이 아니다.

    그후 삼국 중에서 신라에만 특유하게 존재하던 모계 중심 사회가 점차 퇴조를 보이면서 화랑도 남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때는 이름도 국선(國仙)으로 불렸으며 그 최초의 인물이 설원랑(薛原郞)이었다. 화랑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상무(尙武)정신과 같은 남성 문화로 바뀐 것이 아니었다.

    화랑의 선발 기준은 여전히 ‘얼굴이 고운 남자’(삼국사기 진흥왕 37년)였다. 화랑이 진정 무사도였다면 왜 우람한 남자를 뽑지 않고 얼굴이 고운 남자를 뽑았을까?

    그것은 모계 사회의 풍습 때문이었다. 정치와 종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던 모계 중심의 부족 사회에서의 여왕은 부락장인 동시에 제주(祭主, 무당)였고 의녀(醫女)였다. 따라서 신라의 여왕은 이미 그의 주신(主神)에게 출가한 몸이므로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왕이 혼자 잠자리에 들 수는 없었고, 그 얼굴 고운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했다. 신라의 여왕들, 특히 진성여왕과 그 얼굴 고운 남자들 사이에 벌어진 진한 에로티시즘에 관한 얘기는 ‘삼국사기’ 진성여왕 편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소위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화랑을 다루고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의 어디를 봐도 화랑과 세속오계를 관련지어 설명한 곳이 없다. 미시나 아키히데의 저서 ‘신라 화랑의 연구’에는 세속오계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결국 세속오계란 화랑과 무관한 서민 청년들의 생활 규범이었다. 세속오계가 화랑의 계율이었다는 것은 이선근의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였을 뿐이다.

    고려시대 땐 ‘병역 면제’

    내가 화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신라 후기가 되면서 화랑이 국선으로 변하고 다시 고려조에 들어오면 국선에게는 ‘병역을 면제해주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였다. 그것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당시는 남자들이 이리저리 군대에서 빠지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부친이 사망한 부선망(父先亡) 4대 독자로 현역에 복무한 나로서는 병역 면제자 ‘화랑’을 상무 정신의 화신처럼 설명하고 있는 한국 역사학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조선조에서 화랑은 엉뚱한 뜻으로 사용됐다. 다시 최세진의 ‘훈몽자회’에 나오는 격(覡)이라는 글자는 오늘날 박수무당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화랑’이라고 풀이했다는 것은 그 당시에 박수무당을 화랑이라고 불렀음을 의미한다. 같은 무당이라고 하더라도 박수(白手)무당은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한량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파생됐다.

    망국의 비분강개함을 느끼며 청년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화랑의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신채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청년들을 전쟁터로 나가게 하기 위해 화랑을 무사도로 미화한 이선근의 논리는 분명 ‘빗나간 애국심’이었다. 차라리 고구려의 당나라에 대한 끈질긴 항쟁에서 청년의 기백을 찾는 것이 더 온당한 필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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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1:10
    No. 2

    음 그런가요? 그런데 역사왜곡 우리나라도 확 질러버리죠
    옆에 있는 섬나라도 하는데 하. 하.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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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가득
    작성일
    05.07.25 01:10
    No. 3

    저도 화랑이 꾸며진 것이라는 것을 봤죠. 꽤 됐죠 밝혀진게...
    그래서 아쉽지만 선호작에 못놓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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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 紅玉
    작성일
    05.07.25 01:10
    No. 4

    월인 님이 아니라 진무령님입니다..

    월인님이 천룡신무 말고 다른것도 쓰시나 해서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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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0 율검향
    작성일
    05.07.25 01:10
    No. 5

    작가님이 월인이 아닌 것같은데 필명을 바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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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1:13
    No. 6

    아 제가 착각했습니다. 진무령님 전 필명하게 햇갈렸네요

    (실수 때문에 추천 효과 못보면 어떻게~~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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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武無
    작성일
    05.07.25 01:22
    No. 7

    작가님의 글을 비판하거나 꼬집자는게 아니고
    화랑이라는 왜곡된 썰을.. 바로 잡자고 쓴 글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신라 - 통일신라(교과서에서 이렇게 표현하니 씁니다만.. 통일신라는 없죠.. 민족의 반역자 신라라면 몰라도..)로 이어지는 역사 중 왜곡된 내용은 말 할 수 없이 많습니다
    향가.. 라고 신라의 유물 중 가장 신라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는 그것의 완역이 이루어 지지 않는 이유도 신라의 진체를 감추기 위해서라지요
    신라-조선을 잇는 역사관은 일제의 역사왜곡과 친일 사관의 영향이 가장 큰 주축입니다.(다른 사유들도 많습니다만.. 대표적으로 가장 자료가 많다.. 라는 것)
    고구려, 백제, 마한, 가야가 '진'을 받아들이고 땅을 내주고 정착을 도와 주었건만 그들은 가야와 백제와 고구려의 뒤통수를 쳤지요.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이민족과 손을 잡고 같은 민족을 공격한 무리들..
    지역감정 때문에 사람들이 백제나 신라의 후손이다 뭐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통일신라 - 고려 - 조선의 후예입니다.
    역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제대로 알고 그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고 주류에서 밀려 났을 지언정 현대에 되살릴 문화유산은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발해를 버려두지 않았다면 고구려를 중국이 넘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말갈이 살아 있었을 것이고 북서여진의 거란과 남동여진의 금-후금-청이.. 그것을 모두 포함하는 대륙네크워크가 우리 역사와 이렇게 멀어지지 않았을 테죠
    마찬가지로 마한을 버리지 않았다면 야마토와 후기 백제와 동남아까지 아우르는 해양네크워크가 우리와 단절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뭔소리를 하는 것인지.. ㅋ
    암튼 그렇다는 거죠..
    요새 잇혀진거 같은데, 짱께와 쪽빠리의 역사 왜곡과 영토 침범에 관심을 지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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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1:24
    No. 8

    왠지 본문은 추천글인데 답글은 역사 바로알자!! 이거 같다는

    쿡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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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1:26
    No. 9

    아 그리고 통일신라 말이 많죠 반쪽짜리 통일이다 차라리 신라 보다는 고구려가 통일했어야 한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미 흘러가고 지난일을,, 다만 앞으로 우리가 그런 역사를 다시 안당하게 철저한 준비와 우리의 노력만이 필요할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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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암중광
    작성일
    05.07.25 01:36
    No. 10

    많은 역사를 다룬 소설들이 허구를 기제하고 있습니다. 작가분은 소설을 쓰고 있고 허구의 내용을 다루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독자분은 그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면 됩니다.

    다만 실상은 이렇게 보고 있는 관점이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보면 되는 것이지요. 소설에서 등장하는 허구를 진실로 오해하는 것만 없다면 소설은 어떠한 허구를 다룬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작가분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분들도 이런 관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소설을 즐기면 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라 후기에는 실제로 많은 화랑들이 전쟁에 동원되어 산화한 것도 사실입니다.(정치적인 이용이 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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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朴成雨
    작성일
    05.07.25 01:43
    No. 11

    단재(丹齋) 신채호라(申采浩)라...
    화랑을 그토록 칭찬했죠.
    그 사람은...
    김유신을 가리켜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이며. 그 평생의 대공이
    전장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하여 인국(이웃한 나라)을 난한(오지럽힌) 자이다.
    아주 혹독한 비판은 한 사람이죠.
    신라의 삼국통을도 아주 신랄하고 더럽게 비판했죠.
    한데 화랑에 대해서 아주 관대했고, 극찬에 가까웠죠.
    "화랑의 역사를 모르고ㅠ 조선사를 말하려 함은 골을 빼고 그 사람의
    저신을 찹음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데 김유신 장군님은 화랑의 제 25대 풍월주 이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 하죠. 이러니 아무리 뛰어난 학자든... 위인이든
    하는 사람의 말을 100%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실례를 남기
    상황이죠.

    그리고 김유신은 가야국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춘추에게
    흥무대왕이란 칭혹까지 받았으며 고려시대 사람은
    "김유신 같은 사람은 온 나라 사람들의 칭송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사대부가 그를 아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 너기와 꼴 베는 아이나
    소먹이는 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알고 있으니..."

    그저 김유신의 이야기가 이순신의 우상화에 의해서 묻혀지는
    것이 아쉬워 그냥 끄적거려봅니다.

    두서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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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1:45
    No. 12

    근데 근데 이거 추천글인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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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朴成雨
    작성일
    05.07.25 01:50
    No. 13

    화랑의 15대입니다. 정정~!
    25대는 춘장(春長)입니다. 죄송^^

    사실은 지금 이 새대에 가장 필요한 인물일 지도 모른다는...!

    김유신의 부친은 김서현... 조부모님은 김무력(金武力)...
    그냥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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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괴도_루팡
    작성일
    05.07.25 01:56
    No. 14

    7///우리가 발해를 버려두지 않았다면 고구려를 중국이 넘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부분 이상한거 같은데요

    발해는 고구려 패망 직후

    대조영이 말갈과 함께 세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해를 버려두지 않았다면 고구려를 중국이 넘보지 않았

    을거라니요?

    발해라는 표현이 발해국의 영토를 말하는 거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순서가 잘못되었네요

    신라......화랑.......정말싫죠...차라리

    고구려때 있었다는

    사무라이의 조상격이라는 사울아비가 훨씬더 좋더군요

    치우천왕기에서 나오는 사울아비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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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2:01
    No. 15

    괴도 루짱님 저도 괴도루짱님처럼 사울아비가 고구려인즐 알았는데 싸울아비는 백제의 그것이구요 고구려는 진xxx 이라고 하네요 갑자기 기억이 안나서.. 화랑세기 5장 정도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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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2:10
    No. 16

    저 여러분 여기 추천 글이에요~~ 우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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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빛한스푼
    작성일
    05.07.25 02:13
    No. 17

    하여간 신라는 정이 안감
    신라만 아니었어도 비참한 조선도 없었을것이고
    ㅋㅋ
    망할 신라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적어도 후에 일본에게 지배당하지 않았을것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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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크리스탈
    작성일
    05.07.25 02:19
    No. 18

    이거 추천 잘못해서 작가님게 민폐 끼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만약 그런다면 진무령님 죄송합니다. ㅠ.ㅠ


    벗뜨 정말 화랑세기 한번 읽어보시면 빨려들어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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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3 묘한[妙翰]
    작성일
    05.07.25 02:29
    No. 19

    화랑세기에 원화가 나왔던 것으로 압니다만, 전 화랑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통일신라 자체는 우리나라 역사상에 오점 중 하나지만, 나름대로의 처세술로 살아남은 나라가 신라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지요. 김유신이 화랑인 것을 모르고 욕했을 리는 없습니다. 화랑 정신 자체는 좋았지만, 김유신 장군에 대해서는 역사의 오점을 남긴 인물이라는 점에서 지적을 한 것이겠지요.

    우리나라 정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참으로 위험한 부분이 많습니다. 작가의 주관적인 시야가 어느 정도 안 들어갈 수는 없는데, 상황에 따라 비난받기 쉽거든요. 그때문에 전 야사를 바탕으로 쓰게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흠..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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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6 랍스타
    작성일
    05.07.25 04:41
    No. 20

    신라의 화랑, 백제의 싸울아비, 고구려의 조의선인..
    삼국 시대때 3대 무력 세력이라 하는데..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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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2 소호검
    작성일
    05.07.25 09:09
    No. 21

    관우의 압박^^;;

    그리고 화랑은 무력세력이 아닙니다... 화랑은 일종의 대학이죠... 산천을 돌아다니며 학업을 연마하고 심신을 단련하는... 다만 상황이 전쟁이였기에 전쟁에 참여한거죠... 6.25때 대학생이 전쟁에 참여햇다고 대학이 무력세력은 아니죠... 상황이 그러했기에 참여했을뿐,,,

    많은분들이 사무라이 기사 화랑을 동급으로 생각하시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사무라이나 기사를 국내에서 찾자면 오히려 조폭에 가깝지 않나 생각되네요..^^;;
    나라바시지키고 보호세 걷고 혹시 보호세 안내면 힘좀쓰고 하는일이 같잖아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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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판타마스타
    작성일
    05.07.25 10:01
    No. 22

    이런이런 추천이 비추가된거같은 하 ~오늘 첨 화랑에대해서알았내요
    잘못된역사가이렇게클줄이라 전 아직도 학생때 배운 화랑기억밖에없내요 화랑에대해짐 알아보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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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6 Anechoic
    작성일
    05.07.25 12:41
    No. 23

    해피데이/ 많이 꼬여있으신가... 리플들이 잘난척으로 보이신다면... 큰일이네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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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6 드라키
    작성일
    05.07.25 12:55
    No. 24

    참 위험천만하네요.
    역사를 주제로 소설을 쓰실분들은 많은부분 고증을 하셔야 할겁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을 읽는분들은 현실속에 살고 계신 여러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주시는 오류를 범하지 마시길......
    여기에 글을 쓰신 분들의 비판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충고로 받아들이신다면 더 좋은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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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6 HappyDay
    작성일
    05.07.25 13:15
    No. 25

    은빛// 지웠습니다만...

    애초에 앞에 분들이 해놓은 말을

    또 중언부언 하는 분들한테 하는 말이었습니다.

    했는 말을 왜 또 새로운 듯이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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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추풍만리
    작성일
    05.07.25 13:36
    No. 26
  • 작성자
    武無
    작성일
    05.07.25 14:27
    No. 27

    14//루팡님의 말이 맞습니다.. ^^ 하지만 제가 쓴 말은
    우리의 바로 윗대의 정시나간 어르신들이
    통일신라만을 취하고 발해를 버려두었지요
    결국.. 우리는 고구려백제신라에서 한반도 중남부의 통일신라.. 가 된 것입니다
    이 것으로 인해 발해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의 역사로 편입된 바나 다름 없지요
    그들은 거기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통일신라.. 그래 한민족 니들은 거기서 살아라
    넓은 북쪽의 대륙은 다 가져가주마..
    고구려를 넘 보기 시작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고조선도 기자조선이니 뭐니 해서.. 이미 춘장을 잔뜩 발라 두었지요
    발해 - 고구려 - 고조선 순서로 침탈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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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4 문태사
    작성일
    05.07.25 16:11
    No. 28

    제가 알기로는 화랑은 단군때,전?부터 내려오는 원래 제사지내는 사람(신에게)?? 이런것이였는데 그것은 초장기에는 남자가 하다가 어느때부터인가 꺼리며(신을 모시던 직업이니 최고였으나 어느순간부터 우리나라의 신들이 조금 배척받게되었고 단군시대만 해도 권력도 엄청났었는데 다 옛날일이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계속내려오다가 신라시대때 화랑이라고 불렸죠. 바뀌기도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화랑세기 쓰신분이 마지막 화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맥이 끊겼죠.
    화랑은 한마디로 무당의 원조격이라고 할수있지만, 무당과는 다르게 격이 높고 국가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하는일도 틀렸습니다.

    그리고 화랑말고 화랑도가 있었는데 우리가 알고있는 화랑도가 그 무력집단일겁니다. 제가알기로는 이렇게 알고있는데 틀릴수있으시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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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괴도_루팡
    작성일
    05.07.25 17:28
    No. 29

    역사 이야기 할때 제일 화나는 점은

    백제의 무시죠.....

    다들 신라,고구려만 할뿐

    백제가 통일 했다면 하는 그런 생각 해보신분 계신가요?

    해상왕국 백제!

    삼국 중 그 누구보다 빨리 성장했으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문화강국

    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67 신기淚
    작성일
    05.07.25 20:24
    No. 30

    ㅡㅡa
    김유신은 싫어했어도 화랑은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했었는데
    날조된 것이었다니...

    그런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화냥X가 저는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에 공녀로 바쳐진 여인들이
    어찌어찌하여 집에 돌아와서
    "환향녀"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이 그 아픔을 보담듬어 주지 못하고
    멸시하며 괴롭히면서 "화냥X"라는 말이 나왔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원래 화랑에서 그런 말이 있다가
    환향녀의 발음이 비슷해 저런 식으로 부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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