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24

  • 작성자
    Lv.49 디다트
    작성일
    07.10.06 03:42
    No. 1

    소재거리로써 풍부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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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만무
    작성일
    07.10.06 03:49
    No. 2

    정답은 작가들의 상상력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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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8 착한늘보
    작성일
    07.10.06 03:59
    No. 3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는 무협의 기본 틀인 구파일방의 형태가 어느 정도 확립이 되었음은 물론 시대상으로 상당히 혼란한 상태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어내서 말하기 좋죠.
    못할 말로 정치깡패의 일대기를 그리는 글의 배경이 6.25 동란 이후부터 70년대 후반 까지로 한정짓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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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5 冬雨
    작성일
    07.10.06 04:21
    No. 4

    음 몇가지 이유를 들자면 영락제는 태조 누원장의 4째아들입니다.조카인 건문제를 죽이고 황제로등극했지요 따라서 명이건립된지 얼마안돼서 즉위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기위해서 백련교라는 도교집단의 도움을 받았다는 역사석 사실을 바탕으로 백련교가 무협에선 주원장이 밴력교를 탑압하였다하여 마교로 표현됩니다. (백련교는 남송이후부터역사에 나오기시작했으며 청말까지 존재했습니다.)그리고 건국초기이기때문에 황실의 지배력이 영토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지못하던 시절이다보니 치안이 어려운건 당연하기때문에 그만큼 소재로쓰일 사건과 사고들이 풍부하다는점이죠. 그리고 요시대에 무당파의 시조인 장삼풍이 등장합니다. 본명은 장군보(후에 장삼봉으로 개명하지만 하루에 세번 발작한다하여 장삼풍이라는 이름을 얻게됩니다.후에는 장삼풍으로 아예고정이됩니다.) 소림사에 들어가 무술을 익히던 도중 소림사에 처들어온 고수와 단독으로 싸운뒤 역근경을 훔쳐배웠다는 누명을쓰고 도망가게됩니다. 요시기가 대충 홍무제(명의태조)가 제위하던시절이라고 합니다. 장삼풍이 후세에 소림오권(사권과 학권)을 연구하여 강맹한 내가권인 태극권을 창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태극권을 창시하였다는 역사적증거는 전혀없습니다.)요시기가 바로 영락제가 제위하던 시절입니다. 실제로 명교(마교 혹은 백련교) 역사적으로 존재했구요. 그만큼 혼란스럽던 시대이다 보니 무협에 자주 등장하는 게지요 ㅋㅋ 이만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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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5 冬雨
    작성일
    07.10.06 04:23
    No. 5

    허거덕 그냥 생각나는대로썼드만 오타가 장난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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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5 冬雨
    작성일
    07.10.06 04:38
    No. 6

    몇가지 더 붙여보자면 건문제가 연왕(영락제)에게 진후 연왕은 불타버린 궁궐에서 건문제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궁궐안에 불탄시체하나를 끄집어내 건문제라고 장사를 지내버립니다. 따라서 후에 수많은 야화가 등장합니다. 건문제는 사실 살았다는둥 비밀통로로 탈출했다는둥 아! 소설 [황제의 검]에서도 비밀통로로 탈출한 건문제가 주인공이죠^^; 영락제는 즉위후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으로 옮기고 대대적인 국토확장을 펼칩니다. 서쪽으로는 티베트까지 북쪽으로는 몽골 동쪽으로는 백두산 근처 간도영역까지 침략하고 남쪽으로는 남만(베트남)까지 진출합니다.
    무협에서 굉장히 포악한 군주로 표현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무협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무림고수의 강제적 징집과 탄압의설정이 여기서 나온거죠.
    정치,학문적인면으로는 영락대전과 더불어 유교의 사상통일을 이룩했습니다. 또한 이대 환관이 정치적으로 전면에 나서게되는데요 무협에보면 간악한 환관이 요시대에 자주쓰이게되는 역사적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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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취설(吹雪)
    작성일
    07.10.06 05:06
    No. 7

    동우님...
    제가 덧글 오타 중 지존은 '누원장'입니다...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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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꼬냥이
    작성일
    07.10.06 07:13
    No. 8

    오타가..하하..ㅇㅅㅇ;; 밴력교..=ㅁ=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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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8 음유시인꽁
    작성일
    07.10.06 08:24
    No. 9

    푸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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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0 수부타이.
    작성일
    07.10.06 08:41
    No. 10

    일종의 보험 같은겁니다.

    무협에서 시대적 배경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아니라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홍무나 영락 또는 선덕이나 정통을 쓰는 이유는 그 기간에 사료가 많기 때문입니다. 무협의 근간이 되는 유교가 건강하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던 시대이기도 하구요.

    대충 플롯을 잡고 시작하는 글이라도 길고 긴 글을 이어가자면 중간에 소제고갈이 두려울 수도 있으니 작가는 보험을 들고 싶은 겁니다. 북쪽에 오이랏이 일어나고 있고 남쪽에 동쪽에서는 조선과 우랑카이의 분쟁이 있었고 중국 강남에서는 왜구의 난동이 심했죠. 정화의 원정이 이때 일이니 무협의 배경으로는 이시대 만큼 좋은것도 없습니다.

    여차하면 어디에서나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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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8 수면비행
    작성일
    07.10.06 09:01
    No. 11

    명나라 초기 빼면 중국인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을 느낄 시기가 없기 때문이죠. 한나라, 당나라는 몇 천년 전의 꿈같은 이야기라 작가분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명초는 기본적으로 혼란한 정국이었지만 외부적으로는 이민족의 통치에서 독립을 쟁취하고 그들을 땅 끝까지 쫓아가 섬멸하던 복수의 시기였죠. 영락제가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했지만 내부정비와 외부확장을 동시에 성공시킨 몇 안되는 성왕입니다. 뭐, 원정이 너무 지나쳐서 그간 모았던 재화를 몸땅 소진해버리긴 했죠.

    명나라 내부적인 이야기야 다른분이 언급하신대로 설화적 요소가 많습니다. 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거죠. 이런 내부의 사정과 외부로 팽창정책이 맞물리면서 명초가 무협의 고정적인 시대설정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아무리 무협이 국가와 별개의 공간으로 설정한다지만 역사적인 흐름은 무시할 수 없고, 또한 시대적 분위기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중국 역사를 한족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암울 모드죠. 한 왕조의 역사는 이백년이 되지 않는데 절반 넘게 이민족 통치입니다. 한족의 이백년 왕국이라고 해도 초반에 반짝 성세를 이루곤 중반 넘어서는 부정부패로 망조가 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인들이 국가에 대한 희망이나 자부심을 느낄 시기가 대략 명나라 초기 빼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협 속의 분위기 자체도 대략 암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건데, 이게 무협이랑 잘 맞지 않죠.

    뭐, 알다시피 영락제가 몽고인 마을을 불태우러 다닌 이 시기 다음에 곧장 토목보의 변이 나옵니다. 황제가 적국의 포로가 되어 버리죠. 이 시기부턴 황궁을 소재로 무슨 이야기를 진행시키려 해도 황제가 황제 같지 않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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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9 둔저
    작성일
    07.10.06 09:13
    No. 12

    여러가지로 써먹을 거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연왕과 건문제의 힘겨루기, 연왕의 반란, 건문제의 시체를 찾지 못한 실종 등등...
    여기서 여러가지 소재가 나오지요.
    이를테면 연왕과 건문제가 본격적으로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암암리에 암투를 벌였는데 거기서 활동한 주인공....이라든가, 강호로 탈출한 건문제가 모모 세력과 손을 잡고 난을 일으킨다든가...
    또 명초면 북쪽으로 쫓겨난 원나라 세력도 등장시킬 수 있고...

    실제 역사나 황실과 아무 관련이 없으면? 그러면 아예 명초라는 배경 자체가 안 나오죠.

    음, 그래도 찾아보면 명초 아닌 글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나라(약 2000년 전쯤?) 시대의 이야기라든가 당나라 말기 이야기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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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1 서코.
    작성일
    07.10.06 10:10
    No. 13

    '그냥 다른 무협소설에서 나오니까...'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넣은것 같은글도 많이 보입니다만....저만 그런 생각이 드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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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Peyote_8..
    작성일
    07.10.06 11:06
    No. 14

    영웅문 3부 의천도룡기 이후 많은 분들이 명초를 배경으로 글을 쓰셨고..

    트렌드가 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뭐 위 님들이 쓰신것처럼 소제거리도 풍부하니 정통으로 무협을 쓰시는(그러니까 역사적 사실 등의 공부가 되어있는 작가분들) 분들이 그때를 배경으로 많이 썼고..

    그런 글들은 대게가 좋은 글들이 많았으며

    그런 흐름이 트렌드가 된게 아닐까 합니다..


    솔직히 당나라나 한나라 요런건 무협이라기 보다는 환상소설같은 느낌이랄까요;;(주나라 쯤으로 가버리면 봉신연의 급이 되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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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4 백면서생..
    작성일
    07.10.06 11:27
    No. 15

    사실 우리가 말하는 무협의 배경은 송대가 가장 비슷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명초의 상황은 주원장의 백련교,건국공신탄압까지 제도정착과 피가 난무하던 시절이어서 쓰기 편하지만,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위에 장삼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명대가 정설이라고 하기에 어렵습니다. 장삼봉은 오호십육국시대설과 북송설과 명대설 3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명대라고 특정짓기에는 좀 어폐가 많지요.

    김용의 영웅문에 나오는 장군보와 장삼봉이 100% 정설이 아닙니다. 훗날 200년 시차를 두고 명말에 장삼봉은 한번 더 출현해 이함허라는 선인을 제자로 키웁니다만, 워낙 신출귀몰한 인물이어서 특정시대에 종속시키기에는 이상한 인물입니다.

    다만, 명대에 장삼봉설이 유력한 것은 원대에 출연한 장삼봉이라는 도사가 몽고군을 죽인 일화나, 민간에 알려진 이야기가 많았던 것이 크고, 영락제가 장삼봉을 초정했으나 결국 실패했던 일화등이 겹치어서, 명대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명초를 사용하는 것 그자체는 좀 작가들이 노력부족이라고 봅니다. 많이 익숙해서 그저 가져다 쓰는 작가들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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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4 백면서생..
    작성일
    07.10.06 11:35
    No. 16

    몇가지 덧붙이자면, 명대에는 중앙집권과 황제의 권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북로남왜가 시작되기 전에는 지방의 무인들이 득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명은 건국초부터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원을 물리쳤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무인들이 득세할 만큼 쉬운 시대가 아니었다고 봅니다. 원을 멸망시킨 일등공신인 백련교가 주원장에게 망한 일화를 봐도 알다시피 무력으로는 쉽지 않는 시기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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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6 해월당
    작성일
    07.10.06 12:09
    No. 17

    질문을 던진 분의 의도는 시대적인 배경이 없이, (즉 어느 황제-영락제, 건륭... 시대라든가 하는) 단순한 무협을 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분명하게 표현된 시대적인 배경이 없이도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술술 풀수 없을까요? 사람 이름만 바꾸어도....
    요즘은 시대적인 고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무협은 단순한 무협이 좋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시대적인 고증이 되어도 분명 무협은 상상속의 것이 될 요소가 가장 많은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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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7 Monophob..
    작성일
    07.10.06 12:32
    No. 18

    특별히 공부 하지 않아도 쓸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독자들 또한 많은 무협을 접했다면 그 시대의 역사쯤은 대충(정설이든 아니든) 줄줄 말할 정도가 되니 굳이 따로 설명하는 번거로움도 줄일수 있구요. 보는 독자들은 아는 내용이 나오니 역사적 사실은 패스하고 내용에만 집중해서 빨리 볼수 있겠구요.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질린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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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0 사수자리
    작성일
    07.10.06 13:53
    No. 19

    그런 의미에서 보면 천마선 쓰신 쥬논님이 대단하다 느껴지네요. 있는재료를 지지고 볶고,... 전혀 새로운 글을 창조해 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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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2 패제
    작성일
    07.10.06 20:15
    No. 20

    중국인이 명나라 말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시대가 없다는 말은 조금 아닙니다. 중국에 가서 지내다 보면 깜짝 놀란 만큼 중국인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일것입니다. 대학교를 중국에서 나오다 보니 중국 학생과 토론도 많이 했는데 칭기스칸조차 중국인 자체적인 역사라고 우겨대는 녀석과 심하게 다툰 기억이 새롬새롬 나네요. 중국은 한국 사람이 생각 하는 것처럼 명나라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나라를 최고의 왕조라고 생각하지요. 실제적으로 한국 무협에는 명나라가 많이 나오지만 중국 무협 자체는 당나라가 배경이 되는 시대가 많습니다. 장나라의 따이오만 공주도 당나라 설정이기도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인식은 조금 잘못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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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2 패제
    작성일
    07.10.06 20:19
    No. 21

    그리고 제 생각에 명나라가 잘 나오는 이유는 무협의 기린아같은 작가들이 많이 나온 전성기(제 나름대로 생각한)에 쓰인 소설이 전부 명나라를 기초로 해서 쓰인 이유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서효원님, 금강님, 용대운님 등등 이분들이 쓰신 글의 영향력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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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2 패제
    작성일
    07.10.06 20:24
    No. 22

    당나라의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생각보다 역사적 사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결코 옛 한나라랑 비교 불가입니다. 간단한 예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나 남북시대, 후삼국시대 등등을 보면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은 옮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일본 처럼 하루빨리 역사를 재인식하고 보존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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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2 패제
    작성일
    07.10.06 20:34
    No. 23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심사상이라고 말할수 있는 유교사상을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중국을 가서 보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유교사상을 보고 놀라실 것입니다. (현재 중국은 도의적인 유교의식만 있고 거의 유교의식이 사라짐) 지금 중국에서 보이는 유교에 대한 관점은 제자 백가에 속해 있던 하나의 사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즉 한국사회랑 일본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그 사상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에서도 유교의 존재는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윤리부분에서 나오는 명나라의 유교 등등 은 중국 역사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북공정에서 보실수 있는 것처럼 원래는 한족인 아닌 이민족의 역사와 관련된 역사를 지금은 역사책에서 더욱 중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역사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한숨만 나옵니다. 한중 비교도 제 생각에 필요할 것 같아 이렇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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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2 白頭仙人
    작성일
    07.10.07 03:38
    No. 24

    패제님

    그건 아마도 왕조의 기간이 문제이지 싶습니다.

    중국에서 유교(유학)를 우려먹은 왕조는 명나라인데 명은 260년 정도이고, 그 이후 청으로 바뀌어서 250여 년 넘어 현재 중국이 되었고,

    우리나라는 조선이 520년 정도 지속하였고 일본침략기 이후 바로 현대로 넘어왔으므로 유교(학)를 장려한 왕조의 차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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