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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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餓狼
- 05.10.31 23:12
-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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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어친
- 05.10.31 23:24
-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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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작은태상s
- 05.10.31 23:30
-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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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3 너울나래
- 05.10.31 23:32
-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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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67 못난잉
- 05.10.31 23:41
-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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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지장
- 05.10.31 23:46
- N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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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린스토끼
- 05.10.31 23:49
- N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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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71 낑깡마스터
- 05.10.31 23:56
- N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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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80 궁상쟁이
- 05.11.01 00:00
- No.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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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3 그자식
- 05.11.01 00:03
-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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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7 나니아
- 05.11.01 00:08
- No.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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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dioSound
- 05.11.01 00:09
- No.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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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풀내음
- 05.11.01 00:22
- No.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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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풀내음
- 05.11.01 00:24
- No.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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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풀내음
- 05.11.01 00:25
- No.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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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꿈꾸는하늘
- 05.11.01 00:32
- No.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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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79 콜로서스
- 05.11.01 00:33
- No.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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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지장
- 05.11.01 00:34
- No.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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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풀내음
- 05.11.01 00:41
- No.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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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지장
- 05.11.01 00:47
- N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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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1 김종학
- 05.11.01 01:00
- No.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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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2 寂滅과自然
- 05.11.01 02:01
- No.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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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6 [탈퇴계정]
- 05.11.01 02:06
- No.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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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수
- 05.11.01 02:12
- No.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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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풀내음
- 05.11.01 02:17
- No.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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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풀내음
- 05.11.01 02:20
- No.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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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2 寂滅과自然
- 05.11.01 03:24
- No. 27
호치/ 독서는 내용이나 줄거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닌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내용을 알려고 한다면, 다이제스트로 압축이 된 글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은 작가들이 수 많은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혹은 집적과 증축을 통해서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속독을 통해서는 결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해서 작가 혹은 독서가들이 속독을 독서의 범주로 집어 넣지 않는 것입니다.
저 또한 내용파악을 목적으로 속독을 할 경우 범우사에서 나온 완역본 <동끼호떼> 한 권 정도는 3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상, 하 두 권을 읽고서 졸업논문 작성. 책을 읽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이 넘지 않았음)
그러나 이 것은 독서가 아닙니다.
독서의 묘미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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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은 한강 맨 아래쪽 물가다. 여기에 이르러서, 강은 넓어지고 산은 멀어져 하늘이 트인다. 저녁마다 서해에서 번지는 노을이 산하에 가득 찬다. 물가의 넓은 갈대숲에서 오리들이 겨울을 난다. 지금은 무성한 여름풀이 강물이 젖어있다. 이 마을에서는 멀리 보기가 좋고 눈이 편하다.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 흐르는 강물 옆에 살면서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나는 이 물가 마을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저녁나절을 보낸다. 이제, 시간에 저항할 시간이 없고, 시간을 앞지를 기력이 없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그리고 그 두 운명 사이에는 사소한 상호관련도 없다는 또 다른 운명도 보인다.
공원에서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고 그네를 타고 흙장난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탄다. 노는 아이들의 몸놀림과 지껄임은 늘 나를 기쁘게 했는데, 혼자서 바라보는 자의 기쁨은 쓸쓸하였다.
날이 저물면 저녁밥을 차려놓은 젊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불러갔다. 아이를 부르는 여자들의 목소리는 플루트의 선율처럼 저녁의 허공으로 떴다. 나는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빈 공원을 감당하지 못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가 앉은 마루 밑에는 쥐들이 살고 마당 모과나무 잎 속에서는 새들이 산다. 쥐들은 수돗가에 나와서 놀고 새들은 가지를 옮겨 다니며 논다. 쥐들은 민첩하고도 경쾌하다. 쥐들의 동작은 생명의 긴장으로 가득 차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가지에서 지껄이는 새들도 그러하다. 쥐가 구멍으로 들어가고 새가 날아가고 나면 바라보던 나는 마루에 남는다.
하루의 시간이 흘러서, 아침과 저녁의 냄새가 바뀌고 빛의 밀도가 성기어진다. 천지를 가득 메운 대낮의 빛들이 사위는 저녁에는 숲의 안쪽까지 잘 들여다보이고 숨쉬기가 편해진다. 빛이 성긴 저녁, 사물의 안쪽은 드러나는데, 그때 대낮의 빛들은 모두 허공으로 불려 올라가 한강 어귀의 노을로 퍼진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빛과 노을과 쥐와 새에게로 건너가지 못하고 마루에 주저앉아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일까.
이제 묶는 조각글들은 이 물가에 살면서 내 영세한 생계를 버티어내기 위해 쓴 것들이다. 본래 그러한 것들을 향해 입을 벌려 지껄일 필요는 전혀 없을 터인데, 나는 일삼아 지껄였고 지껄일수록 가난해졌으니 불쌍하다. 나여, 어째서 늙은 강물 옆에서 침묵하지 못하는가.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저물어서 강가에 나가니, 내 마을의 늙은 강은 증오조차도 마침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 비틀거림은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리하여 나는 말할 수 있는 것들, 말하여질 수 있는 것들의 한계 안에서만 겨우 말하려 한다. 그 작은 자리에서 모르던 글자를 한 개씩 써보면서 나는 말더듬이를 닮으려 한다. 그리고 그 한계는 점점 좁아진다. 다행한 일로 여기고 있다.
책 제목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정하고 나니, 덜 삭은 슬픔이 창자를 씻어 내린다. 거듭, 만경강에 바친다.
-------------------- 김 훈 <밥벌이의 지겨움> 중---
위의 글을 속독으로 읽자면 1분이 채 안 걸립니다.
그런데 위 글을 속독으로 읽고서도 제대로 읽었다는 말이 과연?
학교 후배들이 모두 김훈씨를 싫어했지만, 김훈씨의 이 서언을 읽고서는 오랫동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속독은 활자읽기 혹은 정보취합이 될 수는 있을 지언정, 독서가 될 수는 없습니다. -
- Lv.99 밥도둑
- 05.11.01 07:59
- No.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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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남
- 05.11.01 08:56
- No.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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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99 노란병아리
- 05.11.01 09:18
- N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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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7 연자
- 05.11.01 12:44
- No.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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