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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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光無影
- 05.06.23 23:51
- No.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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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3 묘한[妙翰]
- 05.06.24 00:00
-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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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플매니아
- 05.06.24 00:01
-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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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카밀
- 05.06.24 00:02
- No. 4
음 그 시대가 쓰기가 좋다는 이점이 있어서라 생각합니다.
이미 많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설정으로 독자의 이해가 다른 시대보다
좋죠.
명나라가 원의 지배에서 벗어나 안정기로 접어드는 시기이고,
보통 많이 마교로 불리우는 백련교도 써먹을 수 있고,
초원의 재기도 노릴 수도 있고, 건문제의 확실하지 않은 죽음을 이용
할 수도 있고.....
영락제의 반정이 나올수도 있고...
역사적 배경으로 쓰기 좋은 시대는. 성군시대 보다는... 나라가 혼란한
시기가 이야기 건수가 만들기 좋다는...
너무 올라가거나 내려오면 쓰시는 분도 힘들고 읽는 사람도 좀
이해하기 힘들고....
너무 식상하긴 하지만..
가끔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분도 있죠.. 무지 가끔....
음 참고로 일단 조선왕조에서는 세조의 탈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후대에 와서 몰인정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세조가 힘으로 왕위에 올라 단종을 유폐하고 죽음으로 몬거는
그 당시의 다 인정을 받고 시행을 한 것입니다.
그 정통성을 따지는 유학을 배우는 이들한테....
역사를 평가할때는 후대의 인식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 일단 몰인정하지만 그당시는 그게 선입니다.
권력에는 형제, 자매,부모, 자식도 예외가 없다는걸.... -
- Lv.13 묘한[妙翰]
- 05.06.24 00:08
- No. 5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마치 우리나라 동의보감 사극에서 아지태(맞나요?)가 존재하지 않던 것을 스승인양 시나리오를 수정해서 인기몰이 하는 거랑 비슷라겠지요?
그런데, 그게 시나리오 조금 수정했다고 해서 조선시대가 통일신라로 바뀌어 보일까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무협 소설의 흐름에 맞춰 역사를 조금 수정했다고 해도 중국의 역사인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인용합으로써 겹치고 또 겹치고 겹치고 다시 겹치는 부분들이 생겨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작가에게는 모헙입니다. 밥그릇이 달린 모험이요. 특히 신인이 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작하기도 전에 작가생명이 끝나는 수도 있을 지경으로 말이지요.
독자들이 외면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정말 딜레마 중의 딜레마네요. -
- Lv.92 白冶
- 05.06.24 00:14
- N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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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홍차
- 05.06.24 00:17
- N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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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45 엠보돌
- 05.06.24 00:17
- N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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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레이니블루
- 05.06.24 00:18
- No. 9
능력있는 작가님들이 중국을 벗어나는 시도는 많이 했습니다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별로였습니다. 일단 제 생각은 이런 배경에 다른 나라 -한국이나 일본-가 들어가면 무협의 느낌이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한국이 배경이 되면 너무 주제 의식이 강해져서가 아닌가 합니다. 무협이란 크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좋은 일"을 하고 다니는 일이 되는데 (극도로 단순화 시킨 관점입니다) 한국 배경 무협에서 팔도를 떠돌며 협행을 하고 다닌다라..
차라리 더 가능성 있는 쪽은 아예 지역적 냄새를 빼버리는 것입니다. 구파일방 같은 것도 등장시키지 말고 단지 분위기만 그대로 살리는 것이죠. 이 쪽은 좀 더 거슬리지 않고 잘 읽히더군요. -
- Lv.1 카밀
- 05.06.24 00:23
- No. 10
음 조와 종은 차이가 있습니다.
조는 말그대로 시작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종은 위업을 이어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생각하기 편하실려나..
정확한 설명은 아니나 대충 이런 식으로 주어진 것이나
조선왕조는 후대로 오면서 무시되고 주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초창기 생각하면 태조는 조선왕조를 이룩한 사람,
세조는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라서 조를..
(참고로 세조는 종을 붙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극복했다고 해서 조를.
인조는 반정을 통해. 직계가 아닙니다. 조를
이런식으로 내려오던게 후에 별 의미 없이 주어지게 되었다고
수업시간에 들었습니다. 업적이 있는 왕에게 붙인다고 하던가.
모 대충 이렇게 생각하면 크게 문제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자세한거는 지식인검색이라도..
한 6년이상전에 배운거라 긴가 민가....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
- Lv.45 엠보돌
- 05.06.24 00:27
- No. 11
제 말이 그말인데요...
태조는 왕조를 개창한 공이 있기 때문에 '조(祖)'가 붙습니다.
세조는 조카를 내쫓고 왕위를 차지하였다는 단점이 있지만..
당시의 인식에서는 왕권을 강화한 공으로 '조(祖)'를 붙였습니다.
선조는 애초에는 선종이었지만 선조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광해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구요...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인 위기를 극복하였다는 점을 크게 산 것이지요..
인조는 본래 '열종'이었는데, 반정에 의해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였기에.. 다시 왕통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조가 쓰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영조와 정조, 순조는 모두 원래는 종이었다가..
순조는 철종대에, 영조는 고종대에, 정조는 광무3년에 각각 조로 바뀝니다.
그렇게 바뀐 이유는 대상이 되는 왕 자체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기 보다는 바꿀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것입니다... -
- 검파랑
- 05.06.24 00:27
- No.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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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45 엠보돌
- 05.06.24 00:28
- No.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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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63 김민혁
- 05.06.24 00:31
- No.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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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파랑
- 05.06.24 00:33
- No.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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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45 엠보돌
- 05.06.24 00:33
- No.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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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87 낮잠
- 05.06.24 00:34
- No.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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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카밀
- 05.06.24 00:34
- No.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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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수]설화
- 05.06.24 00:37
- No.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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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99 금기린
- 05.06.24 00:53
- N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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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8 니코
- 05.06.24 00:56
- No.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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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남궁훈
- 05.06.24 01:08
- No.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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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성우
- 05.06.24 01:13
- No. 23
카일님 말씀보단 엠보싱 님 말씀이 조금 정확합니다만.. 그것도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두리뭉실하게는 카일님, 엠보싱님이 말씀하신 조와, 종의 개념도 비슷하지만
여하튼 '조'는 나라를 세우거나 큰 국난을 극복하였거나 '반정'을 통해 왕에 즉위한왕을 말하고. '종'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더욱 발전시킨 왕을 말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창시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큰 공을 세우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종이라고 붙습니다.
저도 배운내용만으로 기억하자니.. 공은 조를 붙이고 덕은 종을 붙인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찾아보니 -_-[인터넷이좋긴좋군요]
"예기"에서 그렇게 언급이 되있다는군요..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닌것이..당시 정치적 성향과 맞물려 그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은 조, 덕은 종 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암튼.. 우리나라 공교육..-_- 몇몇선생은 정말 열심히 하시겠지만 대부분의 선생들은 선생이 성격에 맞지도 않으면서 돈벌라고 앉아서 학생들에게 민폐끼치고 있으니 -_-+ 저도 정말 이 리플들을 ㄱㅖ기로 찾아보지 않았다면 정확히 몰랐었겠더군요 -0- 여튼.. 우리나라 교육 썩었습니다. 퉤퉤퉷!! -
- Lv.1 양소
- 05.06.24 01:52
- No.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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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옥소
- 05.06.24 03:23
- No.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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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암중광
- 05.06.24 05:20
- No. 26
검파랑이란 분은 상당히 우스운 사람이군요. 영락제의 역사를 더 잘알게 되었다고요? 소설에서 나오는 역사적 배경은 거의 대부분이 허구입니다. 영락제를 다룬 많은 소설을 보았지만 영락이 건문제를 패위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이 되지 않았고, 영락이 황제가 된 이후에 국고가 파탄이 나면서 까지 몽고의 원정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된 것은 별로 없더군요.
옛중국사 책을 보면은 영락의 모친이 고려공녀 출신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원장이 그런 그녀를 연왕이 보는 앞에서 죽였지요. 물론 지금이 역사외곡을 하는 중국 역사서에는 전부 없어졌지만 제가 배울 때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이것은 저도 알고 있는 사실이였고 이에대해 어떤분이 평을 해놓은 글을 보았습니다.
전쟁에서 그렇게 뛰어나고 주원장의 사랑을 받던 채가 왜 왕위를 받지 못하고 조카의 제위를 찬탈했을 까요?
그것을 볼려면 고려공녀라는 채의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려공녀는 몽고에 보내졌지 명에 보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채의 어머니는 주원장이 몽고의 수도인 남경을 점령하며 몽고의 왕으로부터 빼았은 여자입니다. 그러니 채가 그렇게 뛰어난데도 왕이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연왕은 주원장의 자식이 아니라는 의심을 주원장에게 받고 있었다. 그예로 주원장이 채가 보는 앞에서 어미를 죽인 일을 들 수 있지요. 그리고 어는 서적에도 주원장의 외모와 풍체는 볼품없이 묘사를 했는데 채는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채도 그런 의심이 있으니 자기 방어 또는 욕심으로 별 거부감없이 조카의 자리를 빼았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몽고왕의 피가 이어졌을 수도 있으니 그 트라우마를 지우기 위해 몽고를 거의 몰살시킬 정도로 정벌을 했을 수도....
아니면 내전으로 파괴된 장강을 복원하는데 만으로도 국고가 휘청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는데.... 내부가 아무리 불안해도 그것을 외부로 돌리기위해 더 백성을 쥐어짜 전쟁 준비를 한다는 것은 일리가 부족합니다.
중국놈들은 되지도 않는 야사인 건륭제가 중화인이라는 것을 우기는데 중국역사를 잘 안다는 분이 겨우 소설한토막으로 그것도 중국에서 왜곡을 해 겨우 일부만 보여주는 것으로 그렇게 판단을 하면 안되지요. 역사는 전부를 보여주지도 않고, 일부만 그것도 충분히 왜곡할 만큼만 보여주니 같은 시대를 다루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접해서 이해할 필요는 있습니다. -
- Lv.1 암중광
- 05.06.24 06:12
- No. 27
중국의 기록으론 주원장이 명 건국 후 고려의 공녀와 결혼 한것으로 되어있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주원장(1328.10.21~1398.6.24) 32세 되던 5월2일 영락제가 태어나니 1360년이다.
明 건국이 1368년이니 永樂帝는 이미 明건국 8년 전에 태어났으며 당시 元을 섬기던 고려에서 국가의 운명을 걸고 상국 元나라의 반란군 홍건적의 두목 주원장에 고려조정에서 공녀를 상납함은 있을수 없는 일이며 더구나 영락제가 태어나던 1360년 이전의 주원장은 당시 황건적의 거대 세력 장사성(張士誠),진우양(陳友諒)등에 가려 별로 드러 나지도 않던 조그만 비적 무리에 고려조정에 공녀를 조공 받았다는 것은 상식이 아님을 알수 있다. -
- Lv.1 암중광
- 05.06.24 06:26
- No.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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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파랑
- 05.06.24 08:27
- No.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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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일신
- 05.06.24 11:14
- No.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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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1 두달수
- 05.06.24 11:53
- No.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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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99 곽일산
- 05.06.24 19:29
- No.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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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혼대살
- 05.06.25 01:54
- No.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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