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6

  • 작성자
    Lv.1 무렴태좌
    작성일
    04.05.24 11:31
    No. 1

    동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리징이상훈
    작성일
    04.05.24 16:44
    No. 2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진왕 정(政)이라고 해야 합니다. 육국을 통일하고 난 다음 시황제로 칭하게 되었으니까요. ( 삼황오제에서 황제를 따옴) 그러나 여기서는 편의상 진시황이라고 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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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9 파천러브
    작성일
    04.05.25 00:45
    No. 3

    그랬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검은마음
    작성일
    04.05.25 02:13
    No. 4

    음......읽어본지 3년은 더되서 기억이 잘 안나지만.....제가 읽은바로는 진시황이 칼을 칼집채로 들고있어서 칼을뽑지못하고 도망다니고 있었는데 어떤궁녀가 칼을 등에지고 뽑으라고 해서 진시황이 살아났고 궁녀는 진시황의 성은을 받았다(나머지 한쪽팔은 뭐한거지 ㅡㅡ;;으음..)고 알고있었는데...잘못 알았던것인가 ㅡㅡ;;; 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리징이상훈
    작성일
    04.05.25 08:51
    No. 5

    무협소설천국 자유게시판에
    어느 분이 제가 쓴 진시황 관련 부분에 대해 이런 반박성 글을 올리셨더군요. 참고가 될까하여 올려봅니다.
    ****************
    그분 글-
    대략적으로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형가가 진왕을 죽이려고 했을 때, 진왕은 신하가 준 칼을 가지고 있었지만 칼이 너무 길어 빼내지를 못했어요. 이상훈님 말처럼 등에 칼이 있었다거나 신하가 등에 칼이 있음을 알려줬다는 식의 이야기는 좀 잘못 아신 것 같습니다.

    진왕이 긴 칼을 소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이 너무 길어 빼내지를 못하고 형가가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비수를 피해 기둥을 사이에 두고 뱅뱅 돌면서 사력을 다해 도망치기만 하니까 밑에서 이것을 보다 못한 신하가 등에다 칼을 지고 뽑으라고 소리를 치자,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진왕이 칼을 등에다 지고 칼집에서 칼을 빼내, 가까스로 형가를 베어서 쓰러뜨린 겁니다.
    이것은 정사의 기록에도 명백하게 남아있는 극적인 부분입니다.

    더욱 작가분이라면 잘못 알고 계신 오류나 헷갈리게 만들 수 있는 지식을 함부로 독자들에게 설명하시면 안 될듯 한데요? 이런 것은 제대로, 정확히 말씀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오히려 독자분들 가운데 이미 이상훈님의 약간은 아리송한 글을 읽으시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차마 이야기를 못하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거나 작가라는 분께서 이런 부분을 독자들께 이야기할 때에는 정확한 지식에 근거해서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제가 쓴 해명 글
    제가 쓴 진시황의 일화 건에 대해 신경써 주신 님께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이만큼 논쟁을 한다는 것은 독자에게나 작가들에게나 많은 즐거움과 아울러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님께서 지적하신 그 내용은 모두 정사에 기록되어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다 인용하시는 것일 뿐인데 기왕에 이렇게 하시려면 이에 대한 이 설(異說)들까지도 일일이 모두 지적해서 밝혀야만 합니다.

    연구논문이 아닌 다음에야 대략적인 것만 알고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 당시 상황을 비디오로 찍어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가 그 당시 상황의 진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까?
    수백년이 지난 후 사마천이 이런 사실을 기록할 당시에도 이에 대한 이설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 진시황에게 멸망당한 당시 6국 사람들은 형가가 진시황을 만나 거의 성공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실패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 이에 대한 (진시황과 형가의 결투 장면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들을 후일담으로 남겼었는데 아마도 사마천은 이들 가운데 자기 취향에 가장 부합되는 부분들만 발췌하여 정사랍시고 옮겨놨을 것입니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님께서는 독자 서비스 하시는 셈치고 이 이설들을 (진시황과 형가와의 싸움에 대한 이설들을) 이곳에 한번 옮겨와 다만 몇가지만이라도 그대로 소개해 주심이 어떠한지요?
    저 자신 언젠가 이에 대한 이설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랬더랬습니다.
    이를 계기로 하여 어느 역사적 사실 한가지 장면에 대해서도 이토록 시각을 달리한 기록들도 있고 따라서 다르게 해석해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저는 가지게 되었지요.
    남의 글을 반박하고자할 때에는 자신이 읽은 부분을 원문 그대로 따가지고 오거나 이것을 정확히 해석한 부분을 인용해가지고 설명해야만 하는 법입니다.
    저 자신 그 원문 그대로 따오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진시황의 이름자 영을 나타내는 한자만 하더라도 너무나 희귀한 글자라서 온라인상에는 도저히 나타나질 않는군요. 그래서 진시황 (당시엔 육국을 통일하지 않았으니 그냥 진왕 정이라고 해야 맞겠지만)에 대한 형가의 암살 실패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사왕비에 대한 허점등을 말씀해 주셨는데 너무 기쁩니다.
    다사왕비는 이제껏 어느 누구도 감히 손대지 못했거나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전문미답의 곳을 본인은 지금 과감하게 정면 돌파해 나가는 중이니까요
    그러니 이에 따른 부작용이나 미흡한 점들이 나타나지 않을리 없지요.
    물론 저는 다사왕비를 쓰면서, 조선상고사라든가 삼국지위지 동이전 등등을 모두 참고하였지만 그보다도 실제 남아있는 유물 유적들에 대해서만 더욱 신용을 하여 글을 쓰고있는 중입니다.
    아다시피 역사 기록은 어느 누군가가 자기 감정에 치우친 채 거짓말을 하는 수도 있겠지만 유물 유적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니까요.
    한번 도전해 보시지요?
    작가의 명예를 걸고...
    이제 곧 등장하는 [다사왕비]의 소재나 전개 방식은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치 못한 놀라운 부분을 건드려가며 진행되어질 것입니다.
    전개 내용을 미리 앞질러 맞춘다면 더욱 좋고, 심지어 과거 어느 책, 아무개의 무슨 책 내용과 비스무리하다는 것만 지적해 주셔도 좋습니다.
    다사왕비 앞에다 예상되는 덫들을 수없이 많이 깔아놓아도 저는 그 사이를 유유히 비집고 걸아가 보겠습니다.
    다사왕비에 대해 줄거리 도전을 하시던 안하시던 그건 순전히 개인의 자유이되,

    어느 생판 모르는 자가 무림에 함부로 뛰어들어와,

    재주있으면 너희들 나 한번 잡아봐라! 하면서 유유히 돌아다니는 걸 마냥 보면서 꾹꾹 참고만 있는 것이
    정녕 무협작가다운 미덕일는지 곰곰히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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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강호투검
    작성일
    04.05.25 15:55
    No. 6

    그러네요.
    미처 몰랐던거 알고나니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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