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풍파무한 서장 올렸습니다...

작성자
진소백
작성
02.09.11 09:13
조회
15,830

많이 지켜봐주세요...

일반연재란에 풍파무한입니다...


Comment ' 3

  • 작성자
    칙촉지판
    작성일
    06.03.19 21:42
    No. 1

    송아도장은 정중히 예를 취했다. 그러자 남궁회극도 마주 예
    를 취했다.

    "남궁회극이오. 미약하나마 남궁세가의 가주를 맡고 있소."

    "허허, 죄송한 말이지만 저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답
    니다. 알고 계실텐데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송아도장의 말은 충분히 남궁회극
    을 자극시키는 말이었다.

    남궁회극은 절로 두 주먹이 불끈 쥐여지는 것을 느끼며 억지

    로 화를 억누르는 것이 분명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아직이란 말이오? 20년이 넘었거늘 아직이란 말이오? 아직
    도 구파는 날 인정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오? 그래서 아직도
    날 인정하고 받아준 남궁가를 적대시하는 거란 말이오?"

    남궁회극의 말엔 억눌려진 울분이 섞여 있었다. 지난 세월
    쌓이고 쌓여왔던 울분이...

    저마다 검을 뽑아들고 있는 남궁가의 무사들은 가주의 울분
    에 공감을 하는 듯 검을 쥐고 있는 손을 부르르 떨며, 더욱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수틀리면 자신들의 가주를 이렇게 무시하고 있는 저들과의
    한바탕 일전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듯이.

    "...그렇답니다."

    송아도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벼워 보이는 음성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직도 무당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명했으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를 소림으로 못 가게 막으려는 것이오?"

    "......"

    송아도장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그렇군. 어쩐지 이상하다 했소. 아직 어린 소화를 도발시키
    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더구나 '비렴풍'이라면 아주 손쉬운
    일이었겠지. 그래서 이제 어쩌실 작정이오?"


    "우린... 그대가 조용히 일행을 이끌고 돌아가길 원합니다.
    소림 장문껜 제가 알아서 말씀드리지요. 그러니 발길을 돌리
    시길 바랍니다.

    이 정도의 도발은 아무 것도 아닐 겁니다. 여러분들이 소림
    에 가게 된다면 유야가 말한 것보다 더 적나라하고, 더 직설
    적인 말들을 듣게 되실 겁니다.

    저희 보다 '그'에게 더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많으니까요.

    이 정도의 말에 그렇게 흥분을 하신다면 조만간 남궁가는 구
    파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겁니다.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
    화된다는 말이지요.

    ...돌아가세요. 그곳은 그대와 어울리는 곳이 아닙니다."



    =============================================


    헉. 설마... 제목을 보고 돌이 날아오는 것은...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만든 이름이랍니다.
    그러니 그저 웃으며 넘어가 주시길...
    글이 짧아 죄송하나이다... 이것 역시 그저
    웃으며 넘어가면... 안 될까요...^^;

    덧: 지원 하지 않는 한자가 꽤 많네요.
    제목 중 '주리에'에서 '리'는 '꾀꼬리'란
    뜻이고, '에'는 '성낼'이란 뜻입니다.
    성깔있는 꾀꼬리란 뜻이지요.
    사족을 붙이자면 '미오'는 '아름다운(?) 까마귀'
    란 뜻이랍니다.

    둘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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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청수 Date : 18-08-2001 11:08 Line : 124 Read : 1624
    [30] 29장. 노미오(盧美烏)와 주리에(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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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저들은 아직까지 그의 아비라 주장하던 자가 해놓은 일들
    을 잊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단지 그의 피를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를, 부자의 인연을 끊고 20년 전에 성까지 바꾼 그를 아
    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소림 장문이 친히 부른다고 하기에 그는 이제야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남궁가는 그를 선택함으로서 구파라는 적을 만들어 버렸다. 못
    내 그게 찜찜했던 그였기에,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
    했었다.

    자신 때문에 남궁가와 구파의 사이가 벌어진 것이니 내 힘으로
    그걸 원상태로 돌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맘을 다잡고 이렇게 온
    것인데...

    소림 장문을 만나기도 전에 무당이라는 벽을 만나버렸다. 그들
    은 더 이상 그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만 하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앞길을 아직까지 막고 있는
    아비에 대한 분노, 그의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자신을 배척하는
    구파에 대한 분노, 자신 하나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야만 했던
    남궁가에 대한 죄책감, 그것들이 합쳐져 어마어마한 분노를 일

    으켰다.

    휘이이잉잉~

    남궁회극의 옷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너무도 화가 났기에
    저도 모르게 내력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그의 주위로 무시무시한 기류가 생성되었다. 그 기류
    는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송아도장의 바로 앞까지 도달
    했다.

    이대로라면 송아도장은 남궁회극의 내력에 밀려 뒷걸음질을 치
    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송아도장 일생일대의
    치욕으로 남게될 것이었다.

    그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사내에 의해 내력에서 밀렸다는 뜻이
    되니까 말이다.

    허나 송아도장은 전혀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며 웃는 얼굴 그
    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번개같이 송아도장의 앞을 막고 나선 한 인물이
    남궁회극의 내력에 대항함으로서 송아도장의 주위로는 아무런 일
    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 인물은 완벽히 남궁회극의 내력을 차단한 것이었다.

    남궁회극이 내력을 일으키고 그 인물이 나서서 내력을 막은 것
    은 눈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궁회극은 자신의 내력을
    차단한 그 인물을 보며 끌어올렸던 만큼이나 순식간에 내력을 누
    그러뜨렸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귀파의 장문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방해를 하는 자네는 누구인
    가?"

    은연중 끼어든 그를 비난하고 있었다. 허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
    으면 당당히 자신을 소개했다.

    "유성이라 하오."

    그 말에 남궁가 측의 무사들이 약간 술렁였다. 유성,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화 역시 뜨악
    한 눈으로 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세상에! 보통은 아닌 줄 알고 있었지만, 천무성검이었다니?'

    천무성검의 3년 비무행은 워낙에 유명한 일이었기에 소화도 그
    일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3년간 무패를 자랑하며 1백의 마두들을 처리한 천무성검의 신화
    를 말이다.

    그녀가 꿈속에서 그려오던 낭군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인물이
    바로 이 천무성검이었는데... 도사만 아니라면 한번쯤 만나보고
    싶다고 그녀는 가끔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천무성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꿈 많은 소녀에게 그 이름만큼 매혹적인 이름은 거의 없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지금 그녀와 유성은 대립하는 입장에서 마주보고 있다. 또
    한 조금 전 그녀는 본의 아니게 유성을 유야등과 싸잡아서 비난
    했다.

    모르고 한 일이었으나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녀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 무덤자리를 찾겠다니 내버려 둘 수밖에. 굳이 몸싸움을
    해가면서까지 막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만약 청수를 한번 믿어보았다면 무당은 소림에서 꽤나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



    전개가 느린가요...
    소림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지루한가요...
    그저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시면 안될까요...
    무리한... 부탁인가요...
    청수가 산을 내려와 경험하는 이야기들이
    지루한가요...
    저로선 넣고싶은 이야기들이었기에 넣은 것인데...
    ...이제 곧 소림으로 가게 된답니다.
    가서 이야기가 진행되겠지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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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청수 Date : 19-08-2001 00:47 Line : 182 Read : 1709
    [32] 29장. 노미오(盧美烏)와 주리에(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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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우..."

    남궁가의 무사들은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당의 도사들 역시 겉으로 드러내진 않고 있었지만 언제라도 검
    을 뽑을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그때, 그런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한숨소리
    가 새어나왔다. 자연 두 세력 모두는 한숨을 내쉰 송아도장을 바
    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칼부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 남궁회극은 한숨
    을 내쉰 송아도장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 한숨의 의미는 무엇이오?"

    그러자 송아도장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휴우... 굳이 벌주(罰酒)를 마시겠다니 저희로선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군요. 허헛, 꽤 많은 무사들을 데리고 온 걸로 보아,
    아주 작정을 단단히 한 걸로 보여지네요.

    힘으로라도 밀고 나가시겠다니 저흰 여러분을 막지 않겠습니다.

    허나, 이것 한가지만은 명심해 두세요. 십방대사께서 무슨 연유
    로 그대를 부른 건지는 모르나, 소림엔 길(吉)보다 흉(凶)이 그
    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부정하려해도 그대는 그의 하나뿐인 핏줄이고, 그에 의해 입은
    피해는 막심한 것이니까요. 특히 화산은 아직도 신용표국(信用驃

    局)의 원한을 잊지 않고 있을 겁니다. 단단히 각오하시는 게 좋
    을 겁니다."

    "자, 장문님!"

    그러자 유야가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장문이 지금 저들을
    막는 것을 포기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꼬리를 말다니? 대 무당이 꼬리를 말다니?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저들을 막지 않는다면 그의 계획은 다시 한번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이미 대충 구상을 잡아놓은 뒤였는데, 그게 모두 무산이 되고 마
    는 것이다.

    이래저래 절대 물러설 수가 없는 상황이거늘, 어이해 장문이 포
    기를 하려는 것인지 유야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허나 송아도장은 빙긋 웃으며 그런 유야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면서 무언의 눈빛으로 유야를 달랬다. 내게 생각이 있으니 걱
    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때, 막 불만을 터뜨리려는 유야의 귓가로 남궁회극의 너털웃음
    이 들려왔다.

    "허허헛, 걱정해줘서 고맙소이다. 허나 나도 내 앞가림은 할 줄
    아는 사람이오. 내가 저지른 죄도 아니거늘, 왜 내가 그런 걱정
    을 해야한단 말이오?
    어험, 그럼 우리에게 볼일은 다 끝난 것이오?"

    "...예. 그래요. 더 이상 볼 일은 없습니다. 다만 소림에선 볼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요."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송아도장을 보며 남궁회극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 곧 작별의 예를 취했다. 볼일이 없다면 더 이상 저 얼굴
    들을 마주보고 있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으험, 가자."

    그러면서 남궁회극은 횡!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몸을 거세게 돌
    렸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
    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 남궁가의 무사들 역시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소화는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가며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여전
    히 웃으며 그녀 쪽을 바라보고 있는 송아도장과 불만이 가득한 표
    정으로 송아도장과 그녀 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는 유야,
    그리고 역시 불만스런 표정으로 그들의 옆에 서 있는 다른 도사들.

    절로 인상이 쓰여졌지만, 마지막으로 키다리들 속에 끼어있어 발
    견하기가 무척이나 쉬운 청수를 보게 된 소화는 속으로 피식 웃음
    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청수의 얼굴은 머엉~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지금 일어난 일들이
    왜 일어난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것 같이 말이다.

    '후훗, 아직 순수하다는 건가?'

    그나마 맘에 드는 도사가 하나있다는 것에 위안을 가지며 그녀는

    얼른 일행의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남궁가의 인물들이 모두 사라지자 유야는 재빨리 불만을
    터뜨렸다.

    "장문님! 어이해..."

    "아아, 너무 걱정 말아요. 저로서는 그게 최선책이었답니다. 그
    리고 일이 재미있어 지게 되었잖아요? 후훗, 소림에 가면 흥미로
    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될 것 같군요.

    전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청수에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여
    줄 수 있게 되었어요.

    자자, 우리도 돌아가죠. 원래라면 여기서 하루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 했지만, 전 더 이상 이곳에 머물기가 싫군요. 모
    두 짐을 챙겨 정문 앞에서 만나도록 해요. 오늘밤은 숭산에서
    노숙을 할까 하니까요."

    역시 말발의 고단수답게 유야가 뭐라 반박을 하지 못하게 만든
    송아도장은 그렇게 모두에게 명을 내리고는 청수의 손을 잡고 짐
    을 가져가기 위해 짐을 풀어둔 숙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할 수 없다는 듯 다른 일행들도 저마다 '한판 할 기회를 잃어 씁
    쓸하다'라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내 비추며 하나둘씩 자신들의 숙
    소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한 식경 후, 무당의 도사들은 원조객잔을 떠나갔고, 그
    뒤를 이어 바로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원조객잔을 떠나갔다.


    그렇게 두 세력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모두 떠나버렸을 때, 사
    라져 가는 남궁가의 사람들을 보며 뭔가를 끄적이고 있는 한 사내
    가 있었다.




    <절정고수(?) 무당소년도사 감시 결과>


    1. 성별 : 남.

    2. 나이 : 30세라 주장하는 15세 어린이.

    3. 외형 : ...볼품 없음.

    4. 성격 : 어린이 성격(남궁소화와 정신수준이 비슷함).
    어리버리함(남궁소화에게 끌려다님, 남궁가와 무당의
    대립 시 상황파악 못해 멍하니 서있음).

    5. 무공 : 파악하지 못함. 허나 무당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미미한 듯 보임.
    절정고수? 심히 의심스러움.
    소비의 식중독 여부를 조사해야 할 것으로 추정됨. 뭘
    잘못먹지 않고서는 절대 그런 결과가 나올 순 없음.

    6. 기타 : ...없음.


    *추신 : 소비야! 분녀 꽁무니 쫓아다닌다고 네가 바쁜 건 안다만,
    이딴 거 두 번 다시 시키면 네놈하곤 의절해 버릴 테다!

    절정고수? 헹! 지나가던 변견이 웃겠다, 이놈아!

    난 네게 내 인생을 건 사람이다. 이름마저 네 오른팔이란
    의미로 바꿨단 말이다. 네놈 좌우명을 내 모르는 것은 아

    니다만 제발 네가 누구인지 좀 자각하며 살아라.

    뒤에 소림으로 떠나는 남궁가와 무당의 세력에 대해 상
    세히 적어놨으니, 그거 반드시 읽어보도록 하고! 저번에
    보내준 팔대문파의 세력도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봐라!

    청수인지 뭔지는 그냥 잊어버리는 게 네 신상에 좋을 것
    이다.

    ......우리가 찾아가게 만들지 마라.

    정파와 사파가 이러니, 이번 오문 정기회의(午門 定期會
    議)엔 꽤나 중요한 얘기들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일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지.

    너도 어느 정도는 준비해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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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청수 Date : 19-08-2001 00:48 Line : 209 Read : 1903
    [33] 29장. 노미오(盧美烏)와 주리에(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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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노숙을 준비하는 무당의 도사들에게 한가지 문제가 생겨버렸다.
    너무 급하게 원조객잔을 떠나느라 제대로 식수(食水)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물이 없다.

    물론 모두가 고수들이니 별 상관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이들은 방금 노루 한 마리를 잡아다 맛있게 구워먹은 뒤였다. 기
    름기 많은 고기를 물 한 모금 없이 깨끗하게 먹어치운 뒤였던 것
    이다.

    뒤늦게 물을 찾아보지만 이미 날은 저문 뒤였고, 냇가는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낮이라면 쉽게 다녀
    올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은 열 발자국 밖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중이었다.

    자연 모두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누구를 보내야 하나?'를 고심
    하게 되었다.

    당연 장문과 송학도장, 별밤 삼 형제는 빠질 테고, 청전 역시
    빠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덕화 일파와 청수인데...

    원래라면 학우가 일어서야 마땅한 일이었다. 가장 어린것은 그
    였으니까. 그래서 모두들 무언의 눈빛으로 학우를 채근하고 있었
    다.

    허나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고는 해도 밤길을, 그것도 산길을
    혼자 다니고 싶어할 바보는 없을 것이기에, 학우는 주위를 둘러

    보며 누군가 같이 가줄 사람을 찾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청수가 입을 열었다.

    "제가 다녀오죠."

    "역시 사형! 하하, 그럼 우리 같이..."

    청수의 입이 열리기 무섭게 학우는 그렇게 반색을 하며 나섰지
    만, 청수가 그의 입을 막으며 재차 입을 연 까닭에 그의 말은 중
    간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허나 학우는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청수의 말은 그만큼
    그에게 득이 되는 소리였으니까.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 테니."

    "예, 예? 정말... 이세요?"

    "그래. 쉬고 있어라. 내가 가서 물을 떠올 테니."

    거부할 이유가 없는 학우는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이 물려질새라 자기자리로 순식간에 달려가 앉았다.

    그 모습에 송아도장은 뭐라 입을 열려 했으나, 청수가 밤마다
    혼자서 뭔가를 꼼지락대고 있다는 것을 대강 눈치채고 있었기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다만 노파심에 이렇게 물어보게 되었다.

    "청수."

    "예, 장문님."

    "물통 만드는 법은 알고 있겠죠?"

    "......"




    주위를 둘러보아 대나무를 찾는다. 대나무가 있다면 그걸 잘라
    내어 2마디씩 자른 뒤, 검으로 대나무 속 마디를 뚫는다. 그러면

    2마디 짜리 물통 몇 개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물을 떠 담는다.

    대나무가 없다면 주위에 중간 굵기의 나무를 잘라 역시 몇 등분
    으로 나눈다. 그리고 검으로 속을 파낸다. 수련을 열심히 했다면
    충분히 물이 꽤 담기는 물통을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물을 담는다.

    '대나무가 어디에 있나?'

    첨벙! 첨벙!

    청수는 오감을 이용해 냇가를 발견한 뒤, 이렇게 한식경정도 걸
    어서 냇가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장문이 일러준 대로 대나무를
    찾기 위해 물 속에 두 발을 담근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장문의 예측대로 청수가 이 일을 자청한 까닭은 거의 숙달이 되
    어 있는 무적청수검법의 응용판, '뛰어올라 공격하기'를 더욱 갈
    고 닦기 위해서였다.

    우선은 물을 떠놓고, 연마를 할 생각이었기에 지금 청수는 물을
    떠 담을 대나무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오호! 저기에!'

    반 각 정도를 두리번거린 끝에 청수는 5장쯤 떨어진 곳에 놓여
    있는 대나무 몇 그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눈이 좋으니 비교적 쉽게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
    청수였다.

    청수는 천천히 그 대나무가 놓여져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첨벙첨벙.

    그때였다. 누군가의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당황한

    것이 역력한 음성이 터져 나온 것은.

    "거, 거기 누, 누구야?!"

    그 음성은 몹시도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앳된 여인의 음성이었
    다. 어디서 한번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청수는 놀란 마음
    을 진정시키곤 조심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아주 당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사람인데... 그쪽은 누구지?"

    "......"

    청수의 대답에 당황한 듯 그쪽에선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허나
    잠시 후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5장 밖의
    수풀이 좌우로 갈라지는 것을 청수는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약간 미심쩍은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호, 혹시 거기... 청... 청수니?"

    그러면서 수풀 밖으로 웬 얼굴 하나가 빼꼼이 내밀어 졌는데 청
    수는 그 얼굴이 낮에 보았던 그 황당하기 그지없었던 소녀와 닮
    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걸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 청수는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아, 아니오. 난 청수가 아니라, 지, 지나가는 과객이라오. 험
    험."

    "......"

    바스락. 바스락.

    "나, 난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사박사박.

    "청수야... 너도 남궁가를 싫어하니?"


    첨벙.

    어느새 이곳으로 다가와 청수가 서 있는 냇물 속으로 한발을 내
    딛은 소화는 청수를 빤히 바라보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소화가 다가오는 것을 어쩔 줄 몰라하며 가만히 보고 있
    기만 했던 청수는 몹시도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니... 근데... 네가 어떻게 여기에..."

    "흥,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걸?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
    니?"

    달도 뜨지 않은 깜깜한 밤이었기에 소화는 청수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그렇게 물었다. 소화의 시력으론 멀리 있는 것도 희미하
    게 볼 수는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어야지만 사물을 정확
    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멀리서도 자세히 소화를 볼 수 있는 청수는 소화가 너무도
    가까이 접근했다 여기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난 뒤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일행이 노숙하고 있으니까. 너는?"

    "흥, 이거 또 우연이로군 그래. 우리도 이 근처에 야숙을 하고
    있어. 근데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물 뜨러... 온 거야. 넌?"

    "에휴... 또 한번의 기가 막힌 우연이구나. 나도 물 뜨러 온 거
    야."



    ===================================


    두개를 붙여 하나로 올릴까 하다가,

    흐름이 끊기는 것 같아 둘로 나누었답니다.

    짧은 것을 둘로 나눠서 미안합니다^^

    청수의 활약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군요^^
    미리 약간만 말하자면^^
    소림으로 가서 좀 많히 센 분을 한분 만납니다.
    그분과 비무를 하지요.
    전력을 다할 듯 보입니다.
    청수가 가진 모든 것을 펼쳐보일 듯 하네요^^
    그리고 젊은 것들과도 문제가 생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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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청수 Date : 20-08-2001 09:32 Line : 262 Read : 1781
    [35] 태극검제 - 29장. 노미오(盧美烏)와 주리에(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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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가 역시 다급히 원조객잔을 떠나느라 식수를 준비하
    지 못했다. 그들 역시 고기를 구워먹은 뒤였기에 누군가
    물을 떠올 필요성을 느꼈는데, 다른 이가 가겠다고 하는
    것을 소화가 자신이 가겠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이렇게 혼
    자 물 뜨러 오게 되었다.

    이유는... 이유는...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심심해
    서였다. 혼자 밤길을 걸어보고 싶기도 했고.

    다행히 냇가로 가는 길을 외워둔 뒤였기에 소화는 별다른
    무리 없이 냇가에 올 수 있었다. 물론 오는 도중 조금 흥
    분을 느꼈고, 조금 두려움을 느꼈으며, 조금 후회를 했지
    만.

    아무도 없을 것이라 굳게 믿었기에 소화는 안심하고 있었
    다. 헌데 그때 갑자기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심하고 있던 상태라 더욱 겁을 집어먹은 소화는, 재빨
    리 바닥에 주저앉으며 본능적으로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청수란 걸 알게되어 안심이 되었고, 누군가 아는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것에 힘을 얻을 수 있었지만, 만약
    청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당당한 모습
    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또한, 스스로 모습을 드
    러내지도 않았을 것이었고.

    청수 외의 무당의 도사들관 모두 껄끄러운 관계였으니까.


    "너희도 식수 준비 못한 거야?"

    조금 긴장이 풀린 듯 청수의 음성은 아직 어색하긴 했지
    만 전보단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소화 역시 긴장이 조
    금 풀린 뒤였기에 부드럽게 그 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 근데 지금 뭐하고 있니?"

    "보면 몰라? 물 뜨려 하고 있잖아?"

    퉁명스럽게 내뱉는 청수를 보며 소화는 조금 심술이 났다.
    겁먹고 있을 때 만나서 그런지 더욱 반가웠는데, 저 목소
    리는 그녀를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2차전을 한번 벌여보자는 듯이. 그러니 나오는 말이
    고울 리가 없다.

    "너 누나한테 자꾸 반말할래?"

    "야! 난 서른이라니깐! 반말은 니가 하고 있는 거야!"

    나이에 민감한 청수였기에 자연 그런 큰 소리가 터져 나
    왔고, 소화는 1차전 때와 마찬가지로 승기를 잡았다는 생
    각에 속으로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훗, 난 서른 둘이라니깐. 반말은 니가 하고 있는 거야."

    "야, 니 나이가 열 여섯인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흥, 그런 니 나이가 열 다섯인 건 내가 모를 줄 아니?"

    "난 서른이라니깐!"

    "아, 난 서른 둘이라니깐."

    다시 잠시동안 그렇게 나이 분쟁이 벌어졌고, 반 각 후

    청수는 또 한번의 쓰라림을 맛보게 되었다. 1차전 때와 마
    찬가지로 2차전 역시 그의 패배로 끝이 난 것이었다.

    역시 말발로는 소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청수였다.

    허나 청수는 모르고 있었다. 말싸움에선 졌을지 몰라도,
    그 대가로 소화라는 당돌한 친구를 하나 얻게 되었다는 사
    실을.

    그리고 그 말싸움이 지금의 이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를 완
    전히 바꾸어 버렸다는 사실을. 그래서 소화와 친구가 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뭐, 청수가 소화와 친구가 되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
    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그 말싸움이 둘
    사이의 분위기를 바꾼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한편 그렇게 말발에서 밀려 씩씩거리고 있는 청수를 보며
    소화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얘는 왜 자신과 이야기하는 걸 전혀 꺼려하지 않는 것일
    까 하고.

    오후에야 그녀가 남궁가의 사람임을 몰랐으니 그렇다고
    쳐도, 지금은 그녀가 남궁가의 사람임을 알고 있을 것인
    데도 불구하고 전혀 오후와 달라진 것 같아 보이지가 않
    았다.

    물론 처음에 그녀를 피하려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녀
    가 남궁가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밤중에 만난 타인에 대

    한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여겨졌다. 그녀의 판단으론 말이
    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게 되었다.

    "나이 싸움은 끝이 없을 것 같으니까 우선 접어두기로 해.
    그보다... 청수야, 너 정말 남궁가를 싫어하지 않니?"

    갑작스런 화제의 전환과, 또한 전혀 엉뚱한 질문에 청수
    는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허나 소화의 눈빛에서 그녀답
    지 않은 진중함을 읽은 청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을 이야기해줄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난 남궁가가 뭐 하는 곳인지 몰라. 그 말은 오늘 처음
    들어본 말이야. 그런 내가 무슨 좋고 싫고가 있겠어?"

    "너...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거니?"

    기가 막히다는 말에 청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믿을 수밖에 없을 거야. 난 태어나서부터 줄곧 무당에서
    만 살아왔거든. 세상에 나온 건 불과 한달 남짓 정도밖에
    안 돼. 내가 알고 있는 건 단편적인 것들뿐이라고."

    그렇다면야... 모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남궁가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조금 더 청수가 맘에 들기 시작한 소화였다.

    그떄 청수가 말을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뭔

    가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이다.

    "근데... 그래서 말인데... 저기..."

    "뭔데 그러니?"

    소화의 독촉에 청수는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난 아직 오늘 오후에 왜 그렇게 우리 무
    당이랑 너희 남궁가가 싸웠는지 잘 모르겠어. 장문님이랑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나오는 대답이라곤 무조건 그
    들관 상종도 하지 말란 것이었거든.

    뭘 이유를 알아야 상종을 하든지 말던지 할 거 아니야?
    그러니... 네가 내게 설명 좀 해 주라. 대체 그 무림공적
    이란 사람이 누군지, 그리고 그가 무슨 짓을 했기에 그의
    아들이라는 너희 아버지를 그렇게 싫어하는 건지 말이야.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널 다시 보게 되니 궁금
    증이 다시 이네. ...얘기해줄 수 있겠어?"

    소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 이야기는 강호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또한 누구도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허나 청수는 그 일을 모르고 있다. 선입견이란 매우 무서
    운 것이어서 처음에 이야기를 곡해해서 듣게 되면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좀처럼 쉽게 믿지 못하

    게 된다.

    처음에 들은 거짓이 알게 모르게 그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입견은 그런 악영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처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고.

    소화가 고민한 것은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지, 아니면 그녀의 주관적인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인지를 몰라서였다.

    또한 과연 그녀의 할아버지인 '그'에 관한 이야기를 타인
    에게 해도 되는 것인지 역시 고민이 되었다.

    청수의 눈을 보니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
    해하는 것이었다.

    소화는 이야기를 해주되 약간 남궁가 쪽으로 유리하게 이
    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뭐, 사실이 그랬으니까.

    "정말 궁금하니?"

    "응. 얘기해... 줄래?"

    "휴우, 그래. 이 착한 누나가 선심 한번 쓰지, 뭐. 대신,
    이 얘기 나한테서 들었다는 말은 하지마. 그리고... 앞으
    로 나한테 누나라고 불러. 그럼 얘기해주지."

    그냥 얘기해주려 했으나, 갑자기 그것보단 뭔가 대가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장난기가 발동한 소화는 그렇게
    청수에게 요구를 했다.

    그녀로선 이번 기회에 당연한 것을 돌려 받겠다는 의도였

    다.

    허나 청수로선 절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순 없는 것이었
    다. 열 네 살이나 어린 녀석에게 존대를 하라니? 차라리
    안 듣고 말... 안 듣고... 안 듣... 휴우... 청수는 고민
    하기 시작했다.

    꼭 듣고 싶은데 저 발칙한 것이 순순히 대답하지 않고 이
    렇게 조건을 건 것이니... 눈 딱 감고 누나라 부를지, 아
    니면 그냥 안 듣고 넘어갈지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다.

    그런 그때,

    '어라? 그러고 보니...... 아하! 그 수가 있었군.'

    아무 생각 없이 소화의 모습을 살피던 청수의 뇌리 속에
    순간적으로 어떤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무척
    이나 쓸모 있는 생각임을 확인한 청수는 득의양양한 표정
    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잠깐, 너 지금 물 뜨러 왔다고 했지?"

    "응, 그건 왜 묻니?"

    "그럼... 물을 어떻게 떠갈 생각이야?"

    "그야 당연히 물을... 떠서..."

    "물을 떠서?"

    "떠서... 떠서..."

    중대한 문제가 떠오른 소화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물을 뜨러 간다는 것에만 중점을 뒀지, 어떻게 떠올 것인
    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헤헤헤, 보아하니 물통을 안 가져 왔구만. 헤헤헤헤."

    '치... 치사한 놈...'


    한방 먹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화였다. 소화는 한
    숨을 푹 내쉬며 허탈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에휴... 넌 가지고 왔나 보구나."

    "당연하지. 자, 그럼 우리의 거래는 성립이 된 거지?"

    "...그래. 내가졌다."

    "그럼 어서 말해 줘."

    "알았어. 얘기가 좀 되니까 우리 저기 가서 앉자."



    ===================================


    조금 전까지 형이 디아블로와 싸우는 걸 구경했답니다.
    그놈 참... 악착같이 때려도 안죽더군요.
    결국엔 형이 레벨을 더 올려 다음에 붙기로 하곤
    끝이 났답니다.^^
    아아... 동생의 설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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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empty Date : 21-08-2001 08:31 Line : 456 Read : 1787
    [36] 태극검제-29장 노미오와 줄리에(6) -밑에짤린것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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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검제-29장 노미오와 줄리에(6)



    그러면서 소화는 오다가 봤던 냇가의 바위를 가리켰다. 청수는
    고개를 끄덕였고, 둘은 곧 바위 위에 걸터앉을 수 있었다.

    "그는 누구였지?"

    "보채지마. 내가 알아서 얘기할 테니깐."

    퉁명스럽게 내뱉는 소화를 보며 청수는 알았다는 뜻으로 두 손
    을 들어올려 진정하라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자 소화는 청수를
    한번 힐끗 노려봐 주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무림엔 구파일방의 명성에 버금가는..."

    "잠깐만, 방금 구파일방이라고 했어?"

    "그래,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말이 끊겼다는 짜증이 섞여 있었지만, 청수는 아랑곳하지 않으
    며 재차 궁금증을 터뜨렸다.

    "구파는 알겠는데 일방은 뭐지? 처음 들어보는 소리야."

    소화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으로 머리를 지끈지끈 누르며 힘
    없이 입을 열었다.

    "일방은... 개방( 幇)이란 곳이야. 엄청 유명한 곳이지. 이번
    구파회의에도 참석할거야. 그런데, 너 정말 모르니?"

    "구파회의에 참석해? 내가 알기론 구대문파의 회의라고 들었는
    데? 구파일방의 회의가 아니라 말이야."

    "에휴... 하긴 넌 위대한 무당의 문하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
    나. 전통적으로 구파회의라고 하면 구대문파와 개방의 회합을

    뜻해. 개방은 구파만큼이나 세력이 큰 곳이거든.

    하지만 개방은 거지들만으로 이루어진 문파야. 조금 더러운 게
    사실이지. 때문에 구파의 수뇌들은 그들을 정보력 때문에 불러
    들이긴 해도, 아, 개방의 정보력은 정말 엄청나.

    대가리... 호호... 너 이말 못들은 걸로 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뚜두둑!). 개방은 머릿수가 엄청나거든. 그 때문에 그들
    의 명성이 구파만큼이나 큰 것이고 말이야.

    아무튼 구파는 그들의 정보력 때문에 그들을 불러들이긴 해도,
    그들과 동격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은 무척이나 싫어해. 아니,
    그들과 나란히 불려지는 것 자체를 모욕이라 생각한다고 해.

    그래서 구대문파의 회의라고 하는 거야. 개방이 들어가지만,
    구파가 그들관 나란히 불려지기를 싫어해서 말이지. 이제 알
    겠니?"

    "대충..."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30년 전까지만 해도 무림엔 구
    파일방의 명성에 버금가는 다섯 개의 가문이 있었어. 세인들을
    그 가문들을 통틀어 오대세가(五大世家)라 칭했지.

    우리 정주 남궁세가(鄭州 南宮世家)와, 하북 팽씨세가(河北 彭
    氏世家), 산동 황보세가(山東 皇甫世家), 산서 한철세가(山西
    寒鐵世家), 그리고 낙양 사마세가(洛陽 司馬世家).


    이들 다섯 가문이 바로 오대세가의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었
    어.

    특히 사마세가는 30년, 아니 25년 전까지만 해도 '천하제일'이
    란 칭호를 썼다고 전해지는, 구파일방도 한 수 접어주는 그런
    대단한 가문이었다고 해.

    반대로 우리 남궁세가는 말석...이 아니라 2인자의 자리에서
    만족하고 있었다고 했어. 험험, 뭐, 실력으로 충분히 사마세
    가를 뛰어넘을 수 있었지만, 당시의 가주님이 워낙에 착한 분
    이셔서 그저 2인자의 자리에서 만족하셨다고 하더군.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제부터가 중요해. 30년 전
    쯤에 강호에 한 명의 사내가 출현했어. 검은 옷을 입고있는 40
    대의 한 중년 사내가 말이야."

    "그가..."

    "야, 말 끊지 말라니깐.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려 한단 말이야."

    "아, 알았어. 아무 말 안 할 테니 어서 계속 말이나 해줘."

    되게 생색낸다고 생각했지만 청수는 아니꼬움을 참으며 최대한
    으로 소화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소화는 다시 한번 청수를 힐끔
    노려 봐주곤 말을 이어갔다.

    "흠, 처음엔 아무도 그를 주시하지 않았다고 해. 강호란 곳이
    워낙에 특이한 사람들이 많은 곳인데다, 그의 모습은 별로 남
    의 이목을 끌만한 것이 못되었거든.


    얼굴은 평범했고, 체구 역시 평범한 수준이었으니까. 게다가
    몸엔 어떤 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리고... 에이, 그냥 결론부터 말할게. 그때까지만 해도 강호
    엔 이런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어.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적의
    숫자는 두 자리 수 안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제 아무리 절정 고수라 해도 세 자리 수
    이상의 사람들을 상대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거였지. 3류 잡배
    백 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상대들이 3류와 2류의 중
    간 사이만 되어도 절정 고수 하나쯤은 충분히 처리할 수가 있
    다고 했어. 머릿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런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는데 그는 그런 고정관념을
    그냥 깨어버렸어. 무슨 이유에서인진 모르지만 그는 단신으로
    오대세가와 전쟁을 시작했거든.

    누구나 말했지. 그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의 정신상태를 염려했어.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이었으니까 말이야.

    오대세가 역시 코웃음을 치며 그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해. 그게 그들의 패인이었지. 그분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무력
    으로 오대세가를 하나씩 차례차례 궤멸시켜 나갔거든.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혼자서 150명을 도살한 적도 있다고
    해. 그것도 일류고수들 150명을 말이야. 세 자리 숫자의 한계
    가 깨어진 거지.

    원래라면 우리 남궁세가도 그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어야
    했어.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 그가 우리 남궁세가
    에 도전을 하러 왔을 때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의 처와 아들이 남궁세가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그와 그의 부인은 남궁세가에서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고 했어.

    그래, 뭐 그의 아들이 내 아버님이야. 그리고 그때 이미 사마
    세가와 우리 남궁세가를 제외한 나머지 삼대세가에 궤멸 적인
    타격을 입힌 뒤였던 그가 내 할아버님이 되는 분이고.

    아버님은 20년 전에 그분과 의절을 했지만 말이야."

    여기서 잠시 소화는 말을 끊고 숨을 골랐는데, 그 기회를 놓치
    지 않고 청수는 얼른 입을 열었다.

    "꽤 재미있는 이야긴데... 대체 그의 이름이 뭐였어?"

    그러자 소화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나직한 탄성을 터뜨리며 입
    을 열었다.

    "어머! 내가 말 안 했니?"

    "...응."

    "그의 이름은... 아니 별호는... 아니, 뭐라 불러야 되지...?
    그는 이름과 별호가 뒤섞여 있는 분이었거든. 원래 그분을 세

    인들은 '죽음의 신'이라고 불렀어. 그분과 마주치고 살아남은
    이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말이야.

    헌데 그분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그분의 이름이 별호에 추가되
    었다고 해. 그분의 성은 짐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무(無)'였고,
    이름은 외자로 '극(極)'이었어. 그래서 만들어진 별호가 바로
    이거야.

    '무극사신(無極死神)'

    그 힘의 끝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신이란 의미이면서, 또한 죽
    음의 신 '무극'이란 의미도 되는 별호이지. 내 생각으론 그분
    이 무림공적이 되긴 했지만 그다지 나쁜 분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해. 단지 그분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들었으니까
    말이야."

    '무극사신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어
    디서 들어봤더라...?'

    소화의 입에서 나온 무극사신이란 말이 그다지 낯설지가 않았
    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는데, 그게 어디서
    였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그때 그의 기억을 떠올려주는 소화의 말이 들려왔다.

    "그분은 원래 맨손으로 강호에 출도 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그분의 손엔 한 자루의 묵(墨)빛 검이 들려있었다고 해. 맨손
    일 때에도 가히 무적이라 불려졌지만, 검을 든 그분은 정말 어

    마어마했다고 했어. 그분의 일검을 막아낸 자가 별로 없었다고
    들었으니까 말이야.

    세인들은 그분의 검을 일컬어 묵린(墨鱗)이라 불렀다고 해. 듣
    기로 무척 뛰어난 보검이었다고 하더군."

    '검? 검은 빛의... 검? 무극사신... 무극사신... 무극...사
    신... 무극...사신... 무극사신무극사신무극사신...무극...
    사신...무극... 사신...무극? 사신무극? 아하!'

    산을 내려와 들렸던 촌 동네 대장간의 노인은 분명 그에게 이
    렇게 말했었다. 검을 한 자루 팔았노라고, 그는 죽음의 신이라
    불려지는 인물이었다고. 그리고 그게 대충 25~30년 전쯤의 일이
    었노라고.

    사신무극이란 자는 30년 전에 출도했다고 했으니, 대장간 노인
    이 말한 무극사신이란 자와 동일인일 확률이 매우 커 보였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고 청수는 생각했다. 검은 빛의 검, 그리
    고 사신,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으니까.

    만나면 꼭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인물이 그렇게나 대
    단한 인물이었다니, 청수는 더욱 흥분이 되는 것을 느꼈다. 또
    한 그 무극사신인지, 사신무극인지 하는 자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야릇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언젠가 꼭 한번 만나봐야 할 무인, 언젠가 꼭 한번 부딪쳐 봐

    야할 무인, 청수는 단정적으로 무극사신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말이다.

    청수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를 보며 소화는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터뜨렸다.

    "야, 너 왜 갑자기 그렇게 웃는 거니?"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청수는 얼른 미소를 지우며 대충 얼
    버무렸다.

    "아, 아냐, 아무것도. 그가 얼마나 강할지 상상해보고 있었어."

    "흥, 너로선 꿈도 못 꿀 분이야. 그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
    제일인이니까 말이야. 일수일검이 천하제일이라 불려지고 있긴
    하지만, 내 생각으론 그분이 더 강할 것 같거든. 정말 무림공
    적만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었을
    분이라구."

    "흥이다. 내가 진짜 마음만 먹으면..."

    "너, 얘기 더 듣기 싫으니? 여기서 끝낼까?"

    "......"

    "이제 가봐야 할 듯하니 간추린 결론을 말할게. 그분은 마지막
    으로 사마세가를 궤멸시키고 강호에서 모습을 감췄어. 그분의
    부인, 그러니까 내 할머님과 말이야.

    아버지는 남궁세가에 남으셨지. 그때 이미 아버지는 어머니와
    깊은 관계였거든. 아, 내 어머니는 남궁가의 전대 가주이신 할
    아버지의 장녀이셨어.

    그런 어머니와 아버진 혼인을 했고, 남궁가의 후계자 후보 중

    하나가 되었지. 사실 후보들 중 아버지가 가장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어. 게다가 '마곡의 신화'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시기도 했고.

    정말 성만 아니었다면 가주자리를 물려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지. 아버지도 그걸 아셨는지 마곡과의 싸움이 끝난 후 바
    로 성을 바꾸셨어. 남궁으로 말이지.

    그리고 가주가 되셨고, 공덕을 많이 쌓았어. 할아버지의 죄를
    그분께서 대신 세상에 갚고자 하신 것이었지. 정말 아버진 무
    척이나 많은 노력을 하셨어. 악을 처단하고, 약자를 돕는 일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셨으니까.

    허나... 아직도 구파는 아버지를 인정하질 않아. 그분이 구파
    에도 약간의 피해를 입혔거든. 그다지 큰 건 아니고 아주 약간
    의 피해를 말이야.

    그게 분하면 직접 그분을 찾아내어 복수를 하면 될 것이지, 아
    무 잘못 없는 우리 아버지를 그들은 핍박하고 있어.

    좀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들이 치사하다고 생
    각해. 당사자에게 볼일이 있으면 그에게 직접 말을 해야 할텐
    데, 애꿎은 아버지를 걸고넘어지고 있으니 말이야.

    ...내 이야긴 이게 끝이야. 하고픈 말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그건 나중에 해줄게. 기회가 생긴다면.


    그보다, 야, 이제 네 차례라고 생각하지 않니?"

    더 무극사신에 대해서 듣고 싶었지만 청수는 일행을 떠나온지
    꽤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소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
    다.

    또한, 소화 일행도 소림에 간다고 했으니, 나중에 다시 볼 기
    회가 있을 것이었다. 그때 더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네. 그럼 날 따라..."

    "어딜 따라간단 말이냐?!"

    그때 차갑기 그지없는 냉소가 터져 나왔다. 소화와 청수는 바
    위에서 일어나려던 그 자세 그대로 황급히 소리가 들려온 쪽으
    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횃불을 들고 있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너무 대화에
    열중하고 있던 터라 그가 이렇게 다가올 때까지 둘은 미처 그
    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타난 사내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오, 오빠?"

    소화의 짤막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두려움과 믿을 수 없다는
    의문이 섞여 있는 탄성이었다. 청수 역시 그를 바라보며 약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뚫어질 듯 노려보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물 뜨러 자청해서 가겠다고 하
    기에 조금 수상하다 생각했거늘, 그게 다 저 놈을 만나기 위해

    서였단 말이냐?!"

    무결은 성큼성큼 소화와 청수에게로 다가오며 그렇게 분노를
    터뜨렸다. 소화는 우연히 여기서 청수를 보게 된 것뿐이라고 반
    박을 하려 했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무결의 눈빛이 너무도 매서
    워 뭐라 입을 열 수가 없다.

    그 사이 무결은 소화와 청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그는 소
    화의 손을 거칠게 잡아채며 청수를 노려보았다.

    "언제부터 무당의 도사가 여색을 탐하게 되었나? 이제 무당은
    속가의 문파로 나선 것인가? 아니면 남궁가의 여식을 하룻밤
    불장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인가?"

    어마어마한 분노가 서려있는 질책이었다. 여동생이 오늘 모욕
    을 받은 무당의 문하와 이런 한밤중에 여기서 단 둘이 노닥거리
    고 있었던 것이니 그로선 충분히 열 받을 만도 한 일이었다.

    청수는 무결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뭐라 반박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소화의 말이 한 박자 빨랐다.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우, 우린 단지 우연히 여기서 만난
    것뿐이라구!"

    허나 무결은 냉소를 터뜨리며 여전히 청수를 노려보는 그 상태
    그대로 입을 열었다.

    "훗, 그래? '우연히' 물을 뜨러 오게 되었는데, '우연히' 이곳
    에서 무당의 도사를 만났다? '우연히도' 그 도사가 오늘 낮에

    너와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던 그 도사였다? 모든 게 '우연'이
    었다? 지금 나에게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사, 사실이라니깐!"

    "가자! 더 볼 것도 없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아무리 네가
    내 동생이라 해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며칠전도 아니고 오늘,
    불과 몇 시진 전에 우리는 저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받았
    거늘, 남궁가의 여식이라는 네가 이곳에서 저런 놈과 노닥거리
    고 있어? 무당의 도사 놈과?"

    여기 더 있을 필요를 못 느끼겠다는 듯, 무결은 그렇게 소리치
    며 억지로 소화의 손을 잡아끌었다. 청수는 입을 쩍 벌린 채 소
    화가 무결에게 끌려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대충 무결이 왜 저리 흥분하는 것인지 감이 잡혔다. 또한 충분
    히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란 것 역시 인정했다. 허나 사실이
    아니었기에 뭐라 변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무결의 말 중 '하룻밤 불장난'이란 말이 워낙에 충격적이 말이
    었기에 그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벌린 채 그저 멍하니 그
    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왠지 어감이 묘했기 때문이었다.
    왠지 가슴이 벌렁거렸기 때문이었다. 왠지 찝찝함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상야릇찝찝불쾌끈적흥분두근거리는 기분
    때문에 청수는 일순 혼돈상태에 빠져들었다.

    끌려가는 소화는 반항을 해 보았지만, 무결의 힘이 그녀보다
    월등히 셌던 터라 도저히 무결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고개를 돌려 청수를 바라보았다. 어두웠지만 무결이 들
    고 있는 횃불의 영향으로 희미하게나마 청수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청수는 입을 쩍 벌린 채 이상한 표정으로 그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엔 그게 뭔가가 허전하다는 듯 보였다. 그리
    고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는 듯 보였다.

    순전히 그녀의 눈엔 말이다.

    갑자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청수를 혼자 내버려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녀의 보호가 필요하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허나 무결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무결에게
    잡힌 채로 냇가를 벗어나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신세
    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무결은 여전히 분노의 눈빛을 거두지
    않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허나 소화는 두렵지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멍
    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휘이잉~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16세 소녀의 가슴에도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꿈 많은 16세 소녀에게 갑자기 이런 동화 같
    은 이야기가 일어난 까닭이었다.

    마지막 청수의 야릇한(소화 생각) 눈빛을 떠올리자 그녀는 저
    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적대적인 두 세력... 남자는 여색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도
    사... 여자는 한 가문의 금지옥엽...
    뭐... 그만하면 준수한(?) 편이잖아? 아아... 내게도 이런 일
    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기 시작하는 소화였다.

    한편 소화가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불길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청수는 서서히 혼돈상태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찝찝한 기분을 웬만하면 다시
    는 맛보고 싶지 않았다. 그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본능적으로 수련에 방해가 될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그의 발
    전을 방해할 거란 생각도 들었다.

    서둘러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상념들을 떨쳐버리며 청수는 조
    금 전에 봐두었던 대나무를 찾았고, 그것으로 물통 몇 개를 만
    들었다.

    그리곤 물을 떠 담아 두 손에 가득 쥐고는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그의 머릿속엔

    이런 결심이 하나 생기고 있었다.

    '걔랑 다시 만나는 건 좀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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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형이 디아블로와 싸우는 걸 구경했답니다.
    렙 76짜리의 어마어마한 동료와 함께 싸워서 그런지
    그냥 뭉개버리더군요^^

    위의 글은 좀 많이 고쳐지지 않은 거랍니다.
    고칠 시간이 별로 없어서리... 올리고 나서 좀
    다듬어 볼 생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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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empty Date : 22-08-2001 02:14 Line : 281 Read : 1654
    [37] 태극검제-30장. 잘난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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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검제-30장. 잘난 사람들 (1)


    남궁세가와 무당파 일행은 거의 동시에 소림에 도착했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법원(法元)과 그의 동문 사 형제 3명은 서로
    은근하게 으르렁거리고 있는 두 세력의 동시 방문을 받곤 그 썰렁
    함에 약간 움찔거린 후, 미리 귀뜸을 받은 대로 남궁가의 사람들
    을 손님이 머무는 곳인 지객당(知客堂)으로 3명 중 1명을 시켜 보
    냈고, 무당파의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이끌고 본원(本院)으로 데
    리고 갔다.

    청전이 간만에 "제가 알기론 소림은 여 시주를 들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라고 남궁소화를 힐끔거리며 법원에게 폼을
    잡았다가,

    "아미타불, 이번 회의기간 동안에는 잠시 그 계율을 묻어두기로
    하였답니다. 이미 화산과 청성, 그리고 종남파의 여 시주들이 본
    사에서 쉬고 계신 중이지요." 라는 법원의 대답에 남궁세가 전체
    의 조소를 받았다는 것은 조용히 넘어가기로 한다.

    또한 유야에게 '있다 보자! 으드득!'이라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받았다는 것 역시 조용히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만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이라면 소화가 은연중 두 세력이 갈라
    질 때까지 청수를 힐끔거렸다는 것과, 청수는 의식적으로 그 시선
    을 회피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무결이 매섭게 노려보

    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관념이 명확히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다
    른 이들은 그 세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무결이 어제의
    일을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두 세력은 헤어졌고, 무당파 일행은 본원에 도착
    해 나한전(羅漢殿)으로 가게 되었다.

    나한전은 소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십팔나한(十八羅漢)들이
    머무는 곳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귀빈을 접대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무당파 일행은 나한전에 여장을 풀었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들이 소림에 도착한 건 오시 초(오전 11시)무렵이었는데, 그들은
    신시 초(오후 3시)까지 휴식을 취하다 그들을 찾아온 법미(法味)
    의 안내로 나한전을 벗어나 방장실(方長室)로 가게 되었다.

    무당파 일행이 도착했다는 말에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머지 팔
    대문파의 사람들이 방장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법미가 전
    했기 때문이었다.

    방장실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송아도장은 자신들을 안내해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칙촉지판
    작성일
    06.03.19 21:42
    No. 2

    다음 날부터 청수에겐 고문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장문에게 불려가 흐뭇한(?) 잔소리를 듣
    고, 옆에 앉아 있던 별밤 삼 형제의 싸가지 없는(?) 잔소리까지
    곁들여 들은 후 밖으로 나온 그에게 악몽 같은 나날들이 기다리
    고 있었던 것이다.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벌써 무당의 가장 나이 어린 도사
    하나가 사대금강을 홀로 격파해버렸다는 소문이 소림 전체에 퍼
    져 있었다.

    무당이 소림에 오자마자 숨기고 있던 후기지수를 내세워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쩐지 늦은 이유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후기지
    수를 조금이라도 더 폼 나게 등장시키기 위해 일부러 늦은 것이
    라고 말이다.

    또한, 그 어린 도사가 무당사수의 하나인 청전도장의 사형이란
    소문이 곁들여지자, '역시 그놈은 무당의 숨겨놨던 비장의 패였
    어. 이건 확실한 새 얼굴의 등장이야.'라고 사람들은 확신하기
    시작했다.

    청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청수는 단 하루만에 유명인
    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송지도장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혈압으로 쓰러졌을 만한 일이
    분명했다.

    자연 사람들의 관심은 단신으로 사대금강을 격파한, 외형은 볼

    품 없지만 속은 알찬(?) 소년도사에게 집중되었고, 너도나도 그
    소문의 소년도사를 만나보고자 희망했다.

    첫날 청수는 소림의 장문 인간향로 자애불을 만났다. 그와 가
    식적인 대화들을 나누었고, 그 뒤에 바로 소림삼신승이란 별밤
    삼 형제와 무척이나 친하다는 놈들을 만나 역시 가식적인 대화
    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 그와 같은 항렬인 소림의 후기지수들을 만나
    게 되었다. 사대금강은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와 헤
    어지자마자 소림삼십육방(少林三十六房)이란 무공연공실로 직행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서 치료를 하고, 무공을 쌓을 것이라고 들었다. 아마도 그
    들은 정말 단단히 결심을 한 듯 보였다.

    특기할만한 점은 소림의 누구도 그에게 사대금강의 일을 추궁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듣자하니 거기엔 사대금강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이번 일은 사대금강과 청수도장의 다툼이었을 뿐, 소림과 무당
    의 다툼은 결코 아니었음을 주장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청수는 치졸한 짓을 하긴 했어도 뒤끝
    은 없는 놈들이라는 생각에,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이 더욱 기다
    려졌었다. 꽤 괜찮은 놈들 같았으니까.

    소림의 수뇌부 역시 그들이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라, 손을 하나 잃은 대가로 겸손함을 가지게 되었다고 크게 기
    뻐하며 오히려 청수를 칭찬해 주었다.

    앞으로 변할 사대금강의 모습이 큰 기대를 주고 있었기에 그들
    은 청수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 일로 청수를
    걸고넘어지지 않도록 말을 해 놓았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고, 다음날에 청수를 기다리고 있
    던 것은 화산 장문 매화 아저씨와의 면담이었다. 역시 그와 가
    식적인 대화들을 나누었고, 그 뒤에 별밤 삼 형제와 같은 배분
    인 매화사검(梅花四劍)이란 밥맛 떨어지는 작자들을 만나 찝찝
    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저녁엔 화산의 후기지수들을 만났다.

    그렇게 하루에 하나의 문파씩 청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문님의
    언질도 있었거니와("허허,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허허."),
    타파의 정식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그 파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덕화 일파가 그를 따라다닌 까닭에(덕화 일
    파에겐 더 없는 기회였기에, 같이 가자고 청수를 졸랐다) 따분
    하지는 않았다는 것과,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는 것 정도였다.


    거기에 위안을 삼고 청수는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소화였다.

    소화는 매일같이 청수를 찾아와 귀찮게 굴었다. 이유는... 없
    었다. 그냥 만나서 놀자는 것이 소화가 그를 찾아오는 이유의
    전부였다.

    매일 밤마다 소화는 그와 만나자며 만날 장소까지 선정해 두었
    는데, 안 나오면 신상에 해로운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그녀는
    엄포를 놓았었다.

    물론 그따위 협박에 넘어갈 청수가 아니었으나, 청수는 그냥
    넘어가 주는 척 했다.

    무척 귀찮았고, 만날 때마다 조금씩 '이건 좋지 않다'라는 불
    길한 예감이 들고있긴 했지만, '오빠'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한
    소화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빠라는 호칭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말을 자주 듣고 싶을 정도로.

    어쩌면 청수가 소화의 협박에 굴복 당한 척을 한 가장 큰 이유
    는 그 오빠란 말을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나면... 인정하긴 싫지만 꽤 재미있기도 했다.

    허나 아직까지 소화는 그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고, 그의 나이
    가 서른이 아니라 열 다섯에서 두어 살 정도 더 많을 것이라고
    만 추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저씨란 호칭대신 오빠란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
    이고.

    그래도 뭐, "청수야."에서, "청수오빠."로 두어 단계 발전한
    것이었으니 청수는 그 호칭이 꽤나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그렇게 8일이 흘렀다. 이제 팔대문파의 사람들도 다 만나봤기
    에 청수는 귀찮은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허나 그건 그의 오산이었다. 매일같이 구파의 후기지수들은 만
    나서 별 시답잖은 대화들을 나누었고, 거기에 그들은 청수가 꼭
    참석해 주기를 바랬다.

    안 가도 되는 자리였지만, 덕화 일파의 간절한 애원으로 인해
    (청수가 그 자리에 참석하면 덕화 일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게
    된다. 그들의 존재감도 부각되고.) 청수는 어쩔 수 없이 그 자
    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무의미한 사흘이 흘렀다.

    그가 소림에 온 지 12일째 되는 날, 구대문파의 회의가 사흘
    앞으로 다가온 그 날, 청수는 덕화 일파의 눈을 피해 몰래 밖
    으로 빠져나왔다.

    오늘만은 시달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소림에 도착한 다음 날
    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시달려온 것이었으니, 오늘 하루정도는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다. 조용히 사색에 잠기고 싶었다.


    그는 방을 몰래 빠져나온 뒤, 저번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던
    장소로 조심해서 걸어갔다. 그곳은 무척이나 넓은 화원이었는데,
    워낙에 꽃들이 만발한 곳이라 그 속에 누우면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일 각 정도를 걸어 청수는 화원에 도착했다. 역시 다시
    봐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꽃향기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꽃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청수는 조심스레 화원의 외곽을 빙 돌아 구석으로 걸어갔다.
    가로질러 가도 되었지만, 아직은 꽃밭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남아 있었기에 마음놓고 꽃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
    이었다.

    그렇게 걸어간 청수는 구석진 곳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추었
    다. 그리곤 조심스레 꽃밭 안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 뒤, 움찔하며 나머지 한 발을 내딛었다.

    여기서 청수는 고민했다. 더 깊숙이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만 뒤로 물리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이곳에 자리를 잡을
    것인가?

    고민은 짧았다.

    털썩.

    청수는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그리곤 하늘을
    보며 드러누웠다. 이제 오늘 하루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것
    이라 생각했다.


    멍~ 하니 하늘을 보고 있으니, 저번에 있었던 대결이 생각났다.
    처음엔 치사했지만, 나중엔 꽤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사대금강... 소림삼십육방이란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조금 많이 기대가 되는 놈들이었다. 손을 부숴 버린 것이 약간
    찜찜하긴 하나, 그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 위안을 삼
    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약점을 극복해 낼 것이라 믿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약점이 있는 자가 더 강한 법이다.'

    불현듯 청수는 이런 말이 떠올랐다. 약점이 있다. 그걸 극복하
    지 못한다면 그는 패배자가 될 것이요, 그걸 극복해 낸다면 그
    는 승리자가 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떠올린 말이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
    해보니... 꽤 멋진 말이라 생각되었다.

    '약점? 후훗... 내게도 통용되는 말이로군.'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청수
    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자신의 문제를 꺼내기
    싫었다. 그저 남의 일로서만 받아들이고 싶었다. 아직은.

    그래서 화제를 바꿔 비무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그는 곧 꽤 흥미로운 문제에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허공을 밟을 수만 있다면...'


    비무 도중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법기
    와 법우의 공격을 받았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강한 반격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허황된 상상이라 생각되었다. 인간이 어찌 허공을 밟을 수 있
    단 말인가? 형체가 없는 공기를 어찌 밟을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밟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었다. 공중에 떠서도 마음대로
    힘껏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반격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
    을 것이니까.

    그것이 실현 가능하게 되었을 때의 효용성이 어렴풋이 청수의
    머리 속에 그려졌다. 하나같이 생각만으로도 흥분되는 것들이었
    다.

    오늘 하루 청수는 이 문제에 대한 고찰에 들어가기로 맘을 먹
    었다.

    생각해보면 안 먹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가 들
    어도 미친 소리라 치부해버릴 만한 말이 분명했으니까.

    또한, 투기를 내뿜는 것을 보고 스스로 호신강기를 만들어 냈
    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는 당장에 미친놈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으니까.

    허나 청수는 그런 불가능한 일들을 해냈다. 오직 자기 혼자만
    의 힘으로. 그런 측면에서 그는 이번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했

    다.

    분명 허공을 밟는다는 생각은 허황된 것이지만, 가능하게 만든
    다면 노력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 확
    실하니,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판단되었으니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들을 바라보며 청수는 생각했고, 또 생각
    했다. 자신이 아는 모든 것들을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 내 어떻
    게든 허공을 밟는 것과 연관지어보려 했다.

    허나 청수는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런
    답을 얻지는 못했다. 뭔가가 떠오를 듯 하면서도 떠오르지 않고
    이상한 잡생각들만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터져 올 정도로.

    그것도 무공에 대한 잡생각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잡생각들이
    떠올랐다. 무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잡생각들이 말이다. 그중
    가장 지배적으로 청수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소화라는 존재였
    다.

    왜 갑자기 소화가 떠오르는 것일까? 왜 무공을 생각하는데 그
    귀찮기만 한 존재가 떠오르는 것일까? 청수는 정말 알 수가 없
    었다.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그의 삶을 지배해온
    것은 무공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지, 그는 그것만을 생각해왔다. 다른 것
    은 전혀 염두에 두질 않고 있었다. 그에겐 그 어떤 것도 무공이

    란 단어 앞에선 빛을 잃었다.

    그는 무공만을 배우며 성장했고, 강해지는 방법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으니까.

    명상도중 딴 생각에 잠긴다? 예전의 그라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상에 의한 깨달음
    이다. 아니, 청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상에 의한 깨달음이
    다.

    그는 명상을 통해 안 먹고도 살 수 있는 내단을 만들었고, 호
    신강기를 만들었으며, 무적청수검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응용판도 명상에 의해 탄생된 것이었다.

    헌데, 여태까지 청수를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었던 명상이
    오늘 그 기대를 저버렸다.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건만 전혀
    엉뚱한 잡생각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무공만이 전부라 생각하고 살아왔던 내가... 변하고
    있단 말인가?'

    겁이 났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라고
    그냥 단순하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게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뭔가가 변해간다고 생각되었다.

    변화, 이것은 어쩌면 그 변화의 시초일지도 모른다. 명상에 잠
    기면 모든 것을 잊고 무공, 오직 무공 한가지만을 떠올렸던 그
    에게 오늘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변화
    가 두려웠다. 신선지도(神仙之道)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사소한 일 같았지만 너무도 두려웠다.

    원인은... 한가지뿐이었다. 모든 것은 그가 소화를 만나고 나
    서부터 시작되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청수는 그걸 인정할 수밖
    에 없었다.

    허나, 알면서도 청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애와 만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태까지 매일같이 만나왔으니까. 마치
    무엇에 끌리듯 밤만 되면 소화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나가
    고 보는 그였으니까.

    "빌어먹을!"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더니 일
    이 더럽게 꼬인 까닭이었다.

    과민반응이라 자신을 합리화시켜 보지만, 그게 아님을 자기 자
    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무공에 대한 생각보단 이 문제가 더 시급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어서 빨리 결정을 해야만 했다.

    물론 방법은 한가지뿐이었다. 청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다
    만 행동으로 옮겨질지가 문제일 뿐.

    그는 다시 머리가 뽀개질 듯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 시작했
    다. 그런 그때, 그의 고민을 방해하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여기서 뭐하시나?"

    흠칫!

    난데없는 목소리에 청수는 흠칫하며 재빨리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리곤 번개같이 상체를 일으켰고,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재빨
    리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왼쪽 소매가 헐렁한 노스님 한 분이 그를 인자한 미소
    와 함께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 전체가 주름살로 덮여 있어
    나이가 100세는 되는 것 같은 분이셨는데, 호리호리한 몸매가
    그런 추측에 한 몫을 더하고 있었다.

    청수는 노인의 미소를 대하는 순간 절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인간향로 자애불은 저 미소에 비하면 인
    간향로 느끼불이 될 판이었다.

    "예?"

    청수의 입에서 무의미한 의문이 새어나왔다. 그 자애로운 미소
    를 본 순간 그는 마치 나쁜 짓 하다 들킨 어린아이 마냥 얼굴에
    당혹스런 빛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죄도 없는데도 불
    구하고 말이다.

    그런 청수를 보며 노스님은 다시 인자하게 웃으시며 입을 여셨
    다.

    "허허, 홀로 꽃 속에 파묻혀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물었네."

    "아, 그게... 그냥 잠시... 쉬려고..."

    청수는 그렇게 더듬더듬 대답하며 얼른 몸을 일으켰다. 연장자
    가 서 있는데 앉아서 대답하는 건 도의에 어긋난다 보았기 때문

    이었다.

    허나 노스님은 그런 청수를 만류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네, 그냥 쉬게나. 내가 자네의 휴식을 방해한 것 같구만.
    허허, 늙으면 다 이렇다니까. 미안허이."

    그러면서 노스님은 몸을 돌렸다. 청수 혼자 쉬도록 몸을 피하
    려는 것이었다. 그런 노스님의 등이 청수는 왠지 쓸쓸해 보였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노스님의 허리와 엉덩이에
    걸쳐져 있는 짚으로 만든 바구니를 보는 순간 그는 그 쓸쓸함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노스님은 이 넓디넓은 꽃밭을 홀로 가꾸는 분이셨던 것이다.
    이 넓은 꽃밭을 홀로 쓸쓸히, 그것도 한쪽 팔만을 가지고 말이
    다. 그런 노스님의 등이 쓸쓸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몰랐다.

    복잡한 생각들을 계속 하느니 청수는 저 노스님을 따라가 조금
    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쩌면 잘 된 일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머리 아픈 생각일랑 싹 잊어버리고, 다시 현실을 도피할 수 있
    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청수는 얼른 노스님에게로 달려갔다. 노
    스님은 그가 꽃밭에 들어올 때처럼 꽃밭의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청수는 노스님과 마찬가지로 가장자리로 걸어

    노스님께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저... 스님?"

    그러자 이미 청수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듯 노스님은 조금도
    놀라지 않으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허허, 무슨 일인가?"

    '꽤...크구나...'

    호리한 몸매와 늙은 얼굴 때문에 노스님의 체구 역시 작을 것
    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마주 선 채 자세히 보니 노스님의
    키는 그보다 한 뼘 반정도 더 큰 것 같았다.

    대략 5척 8촌(약 174Cm)쯤 되어 보였다.

    생각보다 큰 키에 청수는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스님께선 여기를 관리하시는 분인가요?"

    "허허, 그렇네. 헌데 그건 왜 묻는가?"

    "그게...... 혼자서요?"

    노스님의 눈가에 잠시 아픔이 스치고 지나갔다. 허나 그건 잠
    시였을 뿐, 노스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네만... 그건 왜 묻는 겐가?"

    자신의 생각이 맞게되자 청수는 더욱 노인이 쓸쓸해 보이는 것
    같았다. 노인이 허락만 한다면 노인을 돕고 싶었다. 왠지 그의
    늙은 사부를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제가 원래... 꽃에 관심이 많았는데... 기회가 없어 배우질
    못했어요. 괜찮으시다면 스님을 따라다니며 조금... 배울 수

    없을까요?

    그리고... 도와드리기도 하구요. 이래 보여도 제가 꽤 튼튼하
    거든요. 헤헤. 어떻게... 안될까요?"

    그다지 꽃에 관심은 없었지만 청수는 그렇게 핑계를 대었다.
    그런 청수의 두 눈을 노스님은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
    심인지, 아니면 어떤 속셈이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
    다.

    그렇게 청수의 두 눈을 바라보던 노스님은 이내 싱긋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스님은 청수의 눈에
    담긴 진심을 보았으니까.

    "허허, 나야 고마울 따름이지. 그럼, 이걸 좀 들어주겠는가?"

    그러면서 노스님은 어깨에 메고있던 바구니를 청수에게 건네주
    었다. 청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른 노스님에게서 그 바구니
    를 받아들었다.

    "윽!"

    허나, 바구니를 받는 순간 청수는 신음성을 터뜨리며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노스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에
    메고 다니고,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린 까닭에,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땅에 떨어뜨릴
    뻔했을 정도로 바구니의 무게는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수는 다행히 바구니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었
    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왔던 기초훈련과, 수련동에서 겪은 변화

    덕분에 신체 하난 완벽했으니까.

    물론 본능적으로 끌어올린 내력도 거기에 한몫을 했고.

    청수는 천천히 바구니를 어깨에 멨다. 어깨가 축 처져버릴 정
    도로 무거웠지만, 내력을 끌어올리자 어렵지 않게 어깨에 메고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어깨에 바구니를 메고 청수는 노스님을 바라보았다. 노
    스님은 그런 그를 약간은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도 바구니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 정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허허, 그럼 따라오시게."

    노인은 재미있는 소년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청수 역시 흥미로운(?) 노스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그런 노스
    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쪽지와, 메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다단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요.

    메일이 올 때마다 답장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감사합니다'란 말 밖엔 쓸 말이 없어
    답장을 못 보내게 되더군요...
    말 주변이 별로 되지 않더군요... 참... 글은
    잘 적히더구만... 죄송합니다...

    언제나 메일을 받을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답니다.

    그리고 몇번을 읽고 또 읽어보지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무책임한 저를
    용서해 주시길 빕니다...

    필자가 게으른 것도 답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겠지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덧: 제목이 좀 구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요것도 생각한 끝에 결정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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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악마사냥꾼 [[email protected]]


    Subject
    태극검제 - 32장. 생각하는 유회(2)






    노스님이 청수를 데리고 간 곳은 꽃밭에서 유일하게 꽃이 피어
    있지 않은 장소였다.

    여섯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이었는데, 전체 면적이 워낙에 넓
    다보니 그다지 눈에 띄는 곳은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어둔 조그마한 소로를 따라
    이곳에 도착했다. 그 사이 청수는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노인
    의 뒤를 쫓으랴, 바구니에 신경 쓰랴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에 꽃밭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좋은 징조라면 좋은 징조였다.

    허나, 그딴 것에 신경 쓸 여력도 없다는 듯 청수는 빈 공간에 도
    착하자마자 체면이고 나발이고 간에 이제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워낙에 길이 꼬불꼬불 했는지라 무려 3각 가까이를 걸어다녔기
    때문이었다. 무겁디무거운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말이다.

    청수는 바닥에 내려놓은 바구니를 보며 '대체 저 안엔 어떤 마물
    이 들어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정말 오지게도 무거운 바구
    니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저 바구니 자체도 평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평
    범한 짚이 저렇게 무거운 걸 감당해낼 확률은 채 0.0000000001할
    도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는 실을 촘촘히 묶어 만든 바구니인 것 같
    았다. 짚처럼 황금색 비스무리한 색을 내는 가는 실로 말이다.

    점점 노스님의 정체가 궁금해져오는 청수였다. 처음엔 쓸쓸해 보
    여 도와주고만 싶은 평범한 노스님이라 생각되었건만, 이제는 뭔
    가가 있어 보이는 베일에 싸인 노스님이라 생각되고 있었다.

    그런 청수의 마음을 알았음일까? 노스님은 빙긋 웃으며 청수의
    의심을 일축했다.

    "허허, 화원 관리인 일을 혼자만 해오다 보니, 조금은 쓸쓸했던
    것이 사실이네. 다행히 오늘은 이렇게 착한 소년을 만나게 되어,
    쓸쓸함이 사라지는 것만 같구만. 조금 도와주시겠나?"

    "하하... 예. 그러죠."

    청수는 어색하게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
    기 싫다는데 억지로 알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원래 계획대로 청수는 그저 노인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가 누구
    인지에 대해선 신경을 끄고 말이다.

    노인이 청수에게 시킨 일은 바구니에서 꺼낸 조그마한 주머니 속
    에 든 검은 알갱이들을 바닥에 심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노인은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자, 이렇게 검지를 펴서, 이렇게 뿌리까지 깊숙이 바닥에 꽂게.

    그 뒤에 이 꽃씨를 손가락으로 구멍을 낸 곳에 넣고 흙을 덮어주
    게. 그 뒤 반 뼘 정도 떨어진 곳에 다시 검지로 구멍을 뚫어 꽃
    씨를 심게. 그게 다라네."

    "아아~ 예~ 그렇군요."

    정말 쉬워 보였기에 청수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노
    인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그럼 수고 좀 해주게나. 그리고 꽃씨를 다 뿌리거든 이
    바구니를 화원의 중앙, 저기 보이는 저곳에다 가져가 주게. 그
    리고 자네가 시간이 넉넉하다면 거기서 날 기다려 주게나."

    왠지 어감이 이상했기에 청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되
    었다.

    "어라? 저... 어디 가시게요?"

    그러자 노인은 얄밉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네. 원래는 이 일을 끝마치고 가보
    려 했네만, 자네 덕분에 조금 일찍 갈 수 있게 되었어. 허허, 고
    마우이."

    완전 생사람 부려먹으려 한다는 말이 입밖에 까지 치밀어 올랐지
    만, 노인의 '믿는다'는 정감 어린 시선을 받게 된 청수는 푸욱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의 눈빛엔 기대가 담겨 있었고, 그 기대를 저버릴 정도로 청
    수는 마음이 모질지 못했으니까.

    "휴우... 네. 그럼, 다녀오세요. 할 일도 없으니 꽃씨 다 심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 그러게나. 그럼... 있다보세."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노인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 하니 서있던 청수는, 노인이 완
    전히 사라지자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땅을 쑤
    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땅을 쑤시고, 꽃씨를 그곳에다 넣었다. 하지
    만 청수는 조금 하다 지루함을 느끼곤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
    다. 그러다 한가지 기발한 계획이 떠올랐으니, 그게 바로 손가락
    의 대용품을 찾은 것이었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6장을 철저히 복습해 주지."

    검을 검 집에서 뽑아든 청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땅을 노려보았
    다. 이왕 하는 거 무의미하게 하는 것보다는, 수련이라도 하면서
    하는 게 더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방법이었다.

    "정확히, 세 치만큼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치만큼만 박
    는 거야."

    청수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며 재빨리 검을 땅에 꽂았다. 땅에
    꽂는 그의 검이 순간적으로 2개로 늘어났다. 6장, 다침(多針)이
    전개된 것이었다.

    슉슉. 푹푹.

    정확히 반 뼘의 사이를 두고 2개의 구멍이 생겨났다. 청수는 조

    심스레 자신이 방금 만든 구멍에 검을 들이밀어 보았다. 검은 정
    확히 3치만큼만 쑥 들어갔다. 다른 하나 역시 정확하게 3치 만큼
    만 들어갔다.

    "하하하, 역시 난 대단하단 말씀이지."

    아무도 없는 까닭에, 청수는 그렇게 과장되게 자화자찬을 하며
    만들어놓은 구멍 2개에다 꽃씨를 묻고는 흙을 덮었다. 그리곤 다
    시 자세를 잡고 검을 내리꽂았다.

    슉슉슉. 푹푹푹.

    이번엔 검이 3개로 늘어났고, 구멍 역시 3개가 파여졌다. 이번에
    도 청수는 하나 하나씩 검을 찔러보았고, 역시 자신은 대단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청수는 검의 숫자를 하나씩 늘려가며 꽃씨를 심어나갔다.

    승승장구하던 청수가 처음으로 막힌 것은 날이 저물어갈 무렵이
    었다. 그때 청수는 12개째의 다침에 도전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실수를 하고 말았다.

    11개까지는 거의 완벽하다 할 정도로 3치씩 정확하게 꽂혔는데,
    12개째는 어찌된 일인지 하나같이 구멍의 깊이가 들쭉날쭉했던 것
    이다.

    11개와 불과 하나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
    는 너무도 판이하게 틀렸다.

    "설마 11개가 내 한계란 말이야?"

    청수는 믿을 수 없다 생각되었다. 겨우 11개라니... 물론 12개의

    다침을 만들긴 했으나, 그건 그의 제어를 벗어난 쓸모 없는 것에
    불과했다.

    모든 초식은 스스로가 완벽히 제어를 할 수 있어야만 자기의 것
    이 된다 청수는 믿고 있었다. 제어를 벗어난 것은 자신의 것이 아
    니었다.

    그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초식이란 것이 청수의 지론이었다. 믿
    고 쓸 수 없는 초식이란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정도만큼의 깊이로 찌르고,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정도만큼의 힘으로 찌르고, 정확히 자신이 원하는 정도만
    큼의 속도로 찌르고... 청수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다시 한번 도전이닷!"

    청수는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처럼 급히 12개의 구멍을 발로 흩트
    렸다. 그리곤 다시 자세를 잡고 온 정신을 검과 바닥에 집중하며
    검을 찔렀다.

    슈슈슈슉. 푸푸푸푹.

    '제발... 이번엔 됐기를...'

    청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하나씩 구멍에 검을 밀어 넣어 보았다.
    허나, 빌어먹게도 이번 역시 실패였다. 3번째와 8번째, 그리고 11
    번째의 것이 3치보다 더 깊게 파여졌고, 4번째와 7번째의 것이 3
    치보다 더 얕게 파여졌다.

    "으드드득! 좋다 이거야!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구!"

    오기가 생긴 청수는 12개를 성공시킬 때까지 한번 땅과 싸워보기

    로 했다. 도저히 11개가 자신의 한계라고는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험험, 적어도... 적어도... 12개는 돼야지. 아~암, 그렇
    고 말고. 험험.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일을 끝마치고 화원에 돌아온 노스님이 제일 처음으로 본 것은
    어이없게도 어린아이처럼 온몸을 흙으로 도배한 채 화원의 정중
    앙에 대(大)자로 퍼질러 자고 있는 소년도사였다.

    소년도사의 얼굴은 옷과 마찬가지로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
    었는데,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얼굴에 하나가득 미소를 담고 있
    었다.

    그리고 그는 품에 검을 신주단지 모시듯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허허, 귀여운지고.'

    노스님은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가 없는 새에 무
    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역시 젊었던 시절, 그의 사부의 손에 이끌려 이곳으로 온 적
    이 있었고, 이곳에서 사부를 따라 꽃씨를 심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도 저 소년도사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매일같이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조금이라도 더 빠른 손
    놀림을 익히고자 했던 옛날의 추억들이, 저 소년도사를 보고 있으

    니 다시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만 같아 너무도 기분이 좋아졌
    다.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내버려... 두는 것이 낫겠지. 헌데... 저 아이가 사라졌다고 문
    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럼.. 깨울까? 아니야... 저땐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허나,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역시 늙으면 잔걱정이 많아진다고 노승은 생각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소년도사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놓여져 있는 바구니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그리곤 천천히
    화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소년도사를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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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악마사냥꾼 [[email protected]]


    Subject
    태극검제 - 32장. 생각하는 유회(3)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청수는 몸이 찌뿌드드한 것을 느꼈다.

    역시 안자던 잠을 자게 되니 몸이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것이
    라 생각하며 청수는 그 자리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곤 차
    분히 운기조식(運氣調息 : 내상치유와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과
    가 있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 각 정도의 짧은 운기조식을 끝내자 청수는 몸이 개
    운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찌뿌드드함은 이미 사라진지 오
    래였다.

    "어라? 여긴... 어디지?"

    이제야 주위를 돌아볼 여력이 생긴 청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곤 자신이 어제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
    억해 낼 수 있었다.

    "꽃 냄새도... 많이 맡으니 무감각해지네, 그랴."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만발한 꽃들뿐이었다.
    자신은 어제 이곳에서 녹초가 되어 잠이 든 것이었다. 평상시라
    면 녹초가 된 몸을 운기로서 해소했겠지만, 그럴 기운도 없었고
    하기도 귀찮았기에 그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될 대로 되라
    는 심정으로.

    "아하~~아아암~~ 뭐, 가끔씩 자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겠구
    만."

    몸을 일으킨 뒤,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켠 청수는
    가끔은 잠을 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몸이 찌뿌

    드드하긴 했지만, 왠지 나른한 것이 꽤 괜찮은 기분이었으니까.

    "쩝, 그러고 보니... 어제 소화랑 못 만났네..."

    무의식중에 청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조금 많
    이 찝찝했다. 고것이 어제 약속장소에 안 나간 일로 어떤 흉계
    를 꾸밀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헌데 걱정이 된다면서 왜 입가에 미소를 짓는 것인지... 알다
    가도 모를 일이었다. 청수는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금 뒤에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러버렸
    는지 자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라? 방금 내가... 뭐라 말했었지?"

    청수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말의 의미를 깨닫곤 깜짝
    놀라며 그렇게 의문을 터뜨렸다. 무의식중에 나온 말엔 그 사람
    의 진심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다시 어제의 불안이 그의 머리 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허허, 참... 이거 환장하겠군..."

    털썩.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청수는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가 미친 건가?'란 의문마저 들고 있었다.

    "쩝... 그러고 보니... 어제 13개를 성공시키진 못했네..."

    이렇게 말해야 정상일텐데, 그것이 자신의 본모습일텐데, 전혀

    엉뚱한 말을 꺼내다니... 무당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그는 생
    각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공만을 익혔던 그때가...

    수련동의 생활마저 그리워지는 청수였다. 그때는 무공이란 한
    가지 단어에만 집중했고, 그것만을 목표로 살아갔다. 이렇게 복
    잡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이렇게 혼란
    스럽지도 않았다.

    "미치겠군..."

    나직한 독백을 터뜨리는 청수였다. 그때, 그런 그의 말을 받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왜 그런 말을 하는 겐가?"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어제와 마찬
    가지로 어깨에 바구니를 메고있는 노스님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
    다.

    그 인자한 미소를 보는 순간 청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기분이 이상해요..."

    청수의 말속에 담긴 혼란스러움을 노스님도 느낀 것일까? 노스
    님은 청수에게 다가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바
    닥에 주저앉아 청수를 마주보았다.

    "이 늙은이가 들어봐도 될까?"

    청수는 자신의 일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혼자,
    그의 마음속으로만 삭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15년 간을 살다보니, 모든 것을 혼자

    간직하는 버릇이 생겨버린 것이다.

    허나 청수는 이 노스님에게서 사부의 모습을 보았다. 사부에게
    조차 말못했었지만(유회가 슬퍼할까봐), 왠지 이 노스님에게라
    면 괜찮을 듯 보였다.

    그는 사부와 닮았을 뿐 그의 사부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조
    금은 남에게 내보이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대로 혼자 삭이기만 하다간 화병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
    으니까 말이다. 이 자애로운 미소의 노스님이라면, 왠지 모르지
    만 그가 하소연을 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래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모르겠어요... 전 이날 이때까지 무공만을 익히며 살아왔어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죠. 내게 있어선 무공이 전
    부였거든요...

    무당에 있었을 때까지, 아니 소림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허허, 뭔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로군."

    족집게가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청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
    은 채 노스님을 바라보았다. 청수의 둥그래 떠진 두 눈을 보며
    노스님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그리 놀라지 말게나. 그보다... 어디 소년도사의 마
    음을 뒤흔든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청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몰랐다.
    허나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청수는 말을 머뭇거리다 조그
    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귀찮기만 한 애인데... 그리고 전... 도사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심란해 지는지 모르겠어요..."

    짐작하고 있던 말이어서 그런지 노스님은 청수의 말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불가의 사람 역시 여색을 멀리
    하게 되어 있다.

    노스님은 이 어린 도사에게 연장자의 지혜를 베풀어야 할 때라
    고 생각했다.

    "여색이라... 내가 보기엔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 보네. 자
    네는 그 시주를 만나는 것이 두려운가?"

    청수는 움찔하며 눈알을 굴리다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려워요..."

    "왜 두려운지 말해줄 수 있겠나?"

    "그냥... 저... 그냥... 제 수련에 방해가 될 거란 생각이 들
    어서리..."

    "허허, 과연 그럴까?"

    허나 노스님은 청수의 대답에 고개를 설레 저었다. 청수가 자
    기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청수는 자신의 본

    심을 거부하려 하고 있었다.

    찔리는 게 있는지 말이 없는 청수를 보며, 노스님은 나직이 정
    곡을 찔렀다.

    "변화가 두려운 게지... 그렇지 않은가?"

    "......"

    "현재의 것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싶은데...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까닭에 점점 변해 가는 자신이 두려운 게지."

    그러자 청수는 당황한 것이 분명한 얼굴로 아니라는 듯 발작적
    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아, 아니에요. 저, 전 도사라구요, 도사. 여색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도사라구요."

    "허허, 내가 뭐라고 했는가?"

    "그, 그게... 그게..."

    "이제 보니 자네는 그 여시주를 하나의 중생이 아니라, 여인으
    로서 생각하고 있는 게로군."

    노스님의 짓궂은 말에 청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버럭 고
    함을 내질렀다. 누가 봐도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 아니라니까요! 누, 누가 그런, 그런 귀찮은 애랑! 더구나
    전 서른이라구요, 서른. 그 애는... 제 나이의 반밖에 안 된다
    구요!"

    청수의 고함에 노승은 내심 움찔했다. 청수의 나이가 그의 예
    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 말로서 이제야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풀리는 것을 노
    인은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청수를 처음 보았을 때 노승은 그의 두 눈에서 맑고도 따
    사로운 현기(玄機)를 보았다. 도에 이른 도사에게서나 볼 수 있
    을 정도의 정순한 현기였다.

    도저히 어린 소년이 가지고 있을만한 눈빛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의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거늘, 이렇게 청수
    의 나이가 서른이란 말을 듣게 되니, 이제야 그 현기의 정체가
    풀리는 것 같았다.

    '아아... 알만하구나. 육신은 마음을 담는 그릇인 법, 그 마음
    이 어리다면 당연 육신 또한 어릴 수밖에 없겠지... 허허, 이
    녀석은 마치 그 아이를 보는 것만 같구나...'

    노승의 머리 속에 아련한 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눈앞의 이 아
    이만큼이나 순수했던 아이, 허우대만 멀쩡했을 뿐 속은 여리디
    여렸던 아이, 무공 외엔 아는 것이 없어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때마다 변화가 두려워 겁을 집어먹었던 아이,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이었던 아이...

    노승은 이제는 옛 추억이 되어버린 그 아이가 이 아이의 몸을
    빌어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은 기회이리라.

    그의 과오를 씻어낼 기회를 하늘이 다시 준 것이리라. 그가 망
    쳐버린 그 아이를 대신해, 이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라고...


    노승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지켜보고 싶구나...'

    노승은 청수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다. 청수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은 세상
    에 대해 가르쳐 주고 싶었다.

    청수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허허, 그럼 뭐가 문제인가? 그 여 시주를 만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노승은 그렇게 해결책은 간단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청수는 발끈해서인지 몰라도 과장되
    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 그래요! 뭐, 그럼 되겠죠. 안 만나면 이따위 이상한 감정
    같은 건 안 생길 테니까."

    결심이 대단한 듯 그렇게 말을 했지만, 청수는 말을 하고 나서
    무척이나 후회를 했다. 인정하긴 너무도 싫지만 그건 그가 원하
    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노인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맞
    장구를 쳤다.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바로잡아주어야만 했으
    니까.

    그게 노승은 도사로 살아갈 청수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허허, 그럼 된 것이군. 그럼... 내가 조금 도와줘도 되겠나?"

    은근슬쩍 노인은 그렇게 본론을 꺼냈다. 하지만 노인의 속셈을

    모르는 청수는 도와주겠다는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그러자 노인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세. 아마도 자네는 그 여 시주를 피하고 싶겠
    지?"

    "그, 그래요. 피, 피했으면... 좋겠어요. 흥, 워낙에 귀찮아서
    말이죠..."

    마음에도 없는 말은 계속해서 나왔고, 노인은 계획대로 되었다
    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결론을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당장 나를 따라 다녀보지 않겠나? 그럼, 그 여
    시주를 안 만나도 될 것이니 말일세."

    "예?"

    전혀 의외의 말에 청수는 깜짝 놀라며 의문을 터뜨렸다. 그 반
    응에 노승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설마... 말뿐이었나? 속내는 그 여 시주와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좋아요. 어차피 요새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피곤하기만 했는데, 마침 잘 됐네요. 스님을 따라다니면 이리
    저리 안 끌려 다녀도 되고, 그, 그그, 그 애도... 안볼 수 있
    을 테니까요. 좋아요. 스님을 따라다니도록 하죠."

    도발에 걸려든 청수는 그렇게 발끈하며 노승의 제안에 승낙을
    해버리고 말았다.

    만약 소화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당장에 노승을 죽지 않을 만

    큼만 두들겨 패고 열대를 더 패준 뒤, 물을 붓고 먼지가 날 때
    까지 밟아줬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후, 다시는 저런 사람과 상종도 하지 말라고 협박을 하며
    청수를 질질 끌고 가버렸겠지.

    허나 불행히도 소화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청수를 말
    리지 못했다.

    노승은 싱긋 웃으며 청수에게 바구니를 내밀었다. 청수는 '이
    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는 없었는지라 조용히 바구니를 받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곤 노
    승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


    흐름이 끊어져 둘로 나눠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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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악마사냥꾼 [[email protected]]


    Subject
    태극검제 - 32장. 생각하는 유회(4)





    * * *



    솔직히 청수는 송아도장의 반대가 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
    리고 내심 반대해주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할
    망정, 그 시간에 화원 관리인인 노승이나 따라다니겠다는 것
    이니 말이다.

    허나, 청수의 기대를 저버리고 송아도장은 아무런 반대도 하
    지 않았다. 처음엔 반대를 하는 듯 보였으나, 청수가 노인의
    외형에 대한 설명을 한 뒤부터는 태도를 달리하여 그저 열심
    히 배우라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왠지 모를 흐뭇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송아도장은 아예 청
    수의 거처를 나한전이 아니라, 화원 옆에 위치한 노승의 옆방
    으로 옮겨버렸다. 노승의 옆에서 먹고 자고 하며 하루종일 따
    라다니라는 뜻이었다.

    참으로 배신감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청수였으나,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송아도장이 다른 일행들
    에게도 앞으로 청수를 찾지 말라는 명을 내려 완전히 빼도 박
    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이 청수는 그 날부터 노승의 옆방에 기거하며 노
    승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노승은 자신의 이름을 십아(十 )

    라고 밝혔는데, 청수는 종종 그를 '씨바'로 부르곤 했다. 물
    론 속으로만 말이다.

    노승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간단했다(그래서 청수의 일과
    도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청수는 물
    로 때웠다), 그 뒤 준비물을 바구니에 담아 화원으로 간다(바
    구니는 청수가 든다).

    화원에 가서 꽃들을 돌보다(노인은 이렇게 저렇게 해라 지시
    하며 구경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모조리 다 청수의
    몫이었다), 대충 오늘 할 일은 다했다 라고 생각되면 일을 접
    고 화원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대(臺)로 가서 바구니 속에
    있는 물건들을 꺼낸다.

    그때 청수는 처음으로 바구니 속에 담긴 오지게도 무거운 물
    건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현철이었다.
    그것도 적은 양이 아니라, 엄청난 양이었다. 그러니 바구니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수는 노승이 이 많은 현철로 무엇을 하는지 매우 궁금했는
    데, 노승이 그에게도 일거리를 나누어줌으로서 현철의 용도가
    무엇인지 손 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용도를 알았을 때 청수는 노승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수밖
    에 없었다. 어이없게도 노승은 이 현철로 바둑알을 만들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현철은 모두 손톱 만한 크기로 잘려져 있었다. 노승은 두 발
    사이에 그 현철 조각을 끼우곤, 손에 들린 소도로 조금씩 그
    조각을 바둑알 모양으로 둥그스름하게 다듬어 나갔다.

    그러면서 청수에게도 소도를 한자루 주며 자신을 따라 하라
    고 했다.

    소도(小刀)가 현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청수는 두말없이
    그러려니 하며 노인의 말에 따랐을 것이다. 현철이라면 현철
    을 자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으니까.

    허나, 소도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닐 수 없게도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목도(木刀)였다는 것이다.

    그때 청수는 노승이 사람이 아니라 괴물로 보였었다. 노승은
    너무도 수월하게 천하제일 초강력 단단 금속인 현철을 무 자
    르듯 조금씩 잘라내며 다듬어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범상치 않은 존재란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건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노승은 범상치 않은 존재 정도가 아니라, 심상
    치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처음 10일 정도 청수는 낑낑거리며 나무칼로 현철을 다듬어
    보려 별 짓을 다했다. 노승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자신도 가능
    할 거라는 망상을 하면서.

    만약 노승이 조금의 가르침이라도 베풀었다면 청수는 어쩌면

    현철을 자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를 알면 나머지는 스
    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청수의 특기였으니까.

    허나, 노승은 청수에게 아무런 가르침도 내려주지 않았다.
    그저 목도로 현철을 다듬으며 꺼내는 말이라곤 옛날 이야기들
    뿐이었다.

    낑낑거리며 현철을 잘라보려 별 짓을 다하고 있는 청수를 두
    고 노승은 옛날 이야기들만을 해주었던 것이다. 특히 노승은
    선대 정파의 무림고수와 사파의 무림고수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로 해주었다.

    줄거리는 다 비슷비슷했다. 정파인은 착했고, 사파인은 나빴
    다. 정파인은 이러이러한 착한 일들을 했고, 사파인은 이러이
    러한 나쁜 일들을 했다.

    정과 사가 싸우게 되면 언제나 정이 이겼다. 사파인은 이러
    한 비겁한 수를 썼고, 정파인은 전혀 비겁한 수를 쓰지 않았
    다.

    한마디로 사파는 나쁘고 정파는 착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청
    수의 머릿속에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다
    면 모르되, 불행히도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것들
    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청수는 그 이야기들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노승은 매일같이 이야기를 꺼냈고, 청수는 매일같이 그 이야
    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 10일 정도 들으니, 정

    말 정파인은 무조건 착하고 사파인은 무조건 나쁠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청수는 유회의 가르침(네 눈으로 직접 보고 세상을
    배워라.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말고.)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다행히 다른 정파인들처럼 '배타적인 정파인'이 되지는 않았
    다.

    다만 정과 사에 대한 선입견을 쬐끔 가지게 된 것만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노승의 말이 워낙에 설득력
    이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청수에게 선입견을 심어주는 노승의 의도는 명백했다.
    노승은 청수를 완전한 정파인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아직 선악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잡혀 있지가 않으니 이참에
    확실한 선악의 구분을 지어 줘, 나중에 혼란스럽지 않게 하려
    고 말이다.

    그것을 위해 노승은 현철을 깎느라 방심한 상태의 청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했다. 늙은 생강이 맵
    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노승의 의도를 모르는 청수는 노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목도로 현철을 깎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처음 10일 간은 정
    말 불가능한 일로만 보였다.

    허나, 11일째 되는 날부터 청수는 조금이긴 하지만 목도로

    현철을 벨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0일간 노승을 뚫어지게 관찰한 끝에 얻은 쾌거였다.
    청수가 주목한 것은 노승의 손놀림이었다. 언뜻 보면 그냥 무
    성의하게 휙휙 베는 것 같았지만, 청수는 10일간을 관찰한 끝
    에 노승이 휘두르는 목도가 현철에 부딪칠 때마다 순간적으로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턴 일사천리였다. 원리가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이 잡혔
    으니까.

    11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청수는 현철을 조금 베었고, 날이
    갈수록 그가 베는 현철의 양은 늘어났다. 그리고 15일 째 되
    는 날, 그는 드디어 최초로 바둑알을 하나 만들어 낼 수 있었
    다.

    그때의 기쁨이란... 정말 짜릿한 것이었다. 새롭게 얻은 깨
    달음 덕분이라 그런지 더더욱 기쁨이 컸다.

    노승이 가르쳐 주었다면 시간은 절반으로 단축되었겠지만,
    남이 가르쳐주어 얻는 지식은 머릿속에 깊이 남지 못하는 법
    이다. 스스로 깨달아야지 완전한 자신의 것이 된다고 청수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노승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던 것이고.

    노승은 불과 15일만에 현철을 깎아 바둑알을 만든 청수를 보
    며 조금이긴 하지만 놀랐다. 청수의 실력과 자질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고 싶어 해보라고 한 것이었는데(그리고, 그의 이야

    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들을 수 있게 방심시키려는 목적도 있
    었고),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해 내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해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해낸다 하더라도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건만 말이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런
    마음가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 이
    후에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본 것은 이번이 처
    음이었다.

    정말 청수는 그 아이를 닮았다. 노승은 다시 한번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더욱 청수에게 호감이 생겨났고, 더더욱
    청수를 완전한 정파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생겨났다.

    15일 이후, 노승의 이야기는 더욱 정과 사의 대립적인 면과
    사파의 극단적인 면을 지적하는 양상을 띄기 시작했고, 청수
    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급속도로 바둑알을 깎아나가는 시간을
    줄여나갔다.

    그렇게 다시 5일 정도가 흐르자, 청수는 한 식경에 하나정도
    의 바둑알을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그러
    면서도 그는 매일같이 노승에게 한층 강화된 은근슬쩍 주입식

    야이기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25일 째가 되는 날, 노승의 바구니에 들어 있던 현철
    은 모두 바둑알로 탈바꿈되었다. 청수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마지막 현철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으며(노승이 한 톨도 남김없
    이 주워서 바구니 안에 담으라고 했다. 합쳐서 녹이면 다시
    덩어리가 되니, 바둑알을 더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언제
    꼭 한번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해 뒀던 것을 물어보았다.

    "저... 한가지 물어봐도 돼요?"

    "음... 무엇이냐?"

    25일간을 같이 살아와서 그런지 노승은 언제부터인가 청수에
    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노승은 여유롭게 화원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청수의 물음에 몸을 돌려 청수를 바라보
    았다.

    노승의 인자한 얼굴을 보며 청수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대체 이 많은 현철들을 다 어디서 구하
    신 거예요?"

    정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현철이 얼마나 귀한 것인
    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몸으로 적접 체험까지 몇 번 했
    었으니까.

    대장간 노인의 말에 따르면, 현철로 만든 검 한 자루면 족히
    집 두서너 채는 받아 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귀한 것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고, 바둑알을 만들 생

    각을 다 하다니... 당연한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의문에 노승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벼운 어투로 대답했다.

    "이 늙은이를 아직 잊지 않고 계신지, 방장께서 현철을 구할
    때마다 이 늙은이에게 그것을 보내주신 단다. 이 늙은이의
    취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신 게지."

    "취미가... 뭔데요?"

    "허허, 바둑알로 뭘 하겠느냐?"

    용도는 하나뿐이라는 얘기였지만 청수는 그 하나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기본적인 소양이 부족했으니까.

    "그게... 뭔데요?"

    "......"

    노승은 잠시 청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를 놀리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청수의 눈은 정말 궁금
    하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아는 것이라곤 전무한 녀석이었다. 정말
    저 아이의 사부가 누구인지 혀를 내두르는 노승이었다. 무공
    외엔 단 한가지도 제대로 가르쳐준 것이 없으니 말이다.

    "험험, 바둑알로 하는 것은 바둑뿐이란다. 이 바둑이란 것은
    정사각형의 네모난 판에 큰지막한 정사각형을 하나 그리고,
    그 안에 가로세로 17줄씩을 그어 총 가로 19줄, 세로 19줄
    짜리 판을 하나 만든다. 그걸 바둑판이라 한단다.

    험험, 그리고 그 바둑판을 두 사람이 대치하고 마주 앉아,

    너와 내가 만든 이 바둑알 같은 것을 서로 하나씩 번갈아 가
    며 판 위에 두는 것이란다.

    아, 바둑알은 흑과 백으로 나뉘는데, 그건 그 바둑알의 절반
    을 내 있다가 흰색으로 칠을 할 것이란다."

    노승의 친절한 설명에 청수는 잠시 노승의 말을 이해하는 시
    간을 가졌고, 어느 정도 그 말이 이해가 되자 이런 의문이 드
    는 것을 느꼈다.

    "저... 대충 알겠는데요, 근데... 왜 그런걸 하는 거죠? 흑
    돌과 백돌을 바둑판이란 곳의 위에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노승은 잠시 고민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좀처럼
    힘든 이 바둑이란 마물을, 이 순진한 아이에게 가르쳐 주어
    도 될 것인지 말이다.

    허나, 백을 정파라 보고, 흑을 사파라 본다면, 이 바둑이란
    것으로 청수에게 정과 사의 대립을 더 자세히 가르쳐 줄 수
    있게 될 것만 같았다.

    또한 여태까지 혼자서 바둑을 둬오고 있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생각되기도 했다. 잘만 키우면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노승은 내심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확인하는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알고 싶으냐?"

    "예... 조금, 궁금하네요."


    "그럼, 내 방으로 가자꾸나. 그곳에 바둑판이 있으니... 아!
    아니다. 네가 가서 여기로 바둑판을 가지고 오려무나. 방보
    단 공기가 더 맑은 이곳에서 한번 바둑에 대해 생각을 해보
    도록 하자꾸나.

    방의 한켠에 황갈색의 네모난 판이 하나 있을 것이다. 검은
    선들이 그려져 있는 판이 말이야. 그리고 그 옆에 내 미리
    조금 만들어 두었던 바둑알들이 조그마한 목합에 들어있을
    것이다.

    흰 돌이 든 목합과, 검은 돌이 든 목합이 나란히 있을 것인
    데, 검은 돌은 이곳에 많으니 흰 돌이 든 목합만 가지고 오
    려무나."

    청수는 왠지 거창하게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저 말로만 조
    금 설명해주면 끝날 것 같은데, 노승은 그에게 제대로 바둑이
    란 것을 가르쳐 주려는 듯 보였으니까.

    그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란 걱정이 앞
    섰다. 허나, 지난 25일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또한 검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도 하나 배우게 되었기에 노승
    이 원한다면 그 정도는 해주어도 될 듯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도시남아
    작성일
    08.02.13 12:09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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