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한마디로 작가님의 전작인 기사의 일기의 주인공을 기사에서 해적으로 바꾼 느낌입니다.
일단 세계관 자체가 동일하고 분위기나 사건의 전개 방식 등도 거의 같습니다.
회빙환도 없고 여자 주인공입니다.
저는 소설적 허용에 대한 역치가 상당히 낮은 편인데 예를 들자면 먹지도 않고 유지되는 몬스터 군대라든가, 스텟만 오르면 동일한 육체에서 무한히 강해진다든가, 무능하고 부패했음에도 고위직을 어떻게 올라갔는가 등등 들자면 끝도 없겠죠.
이런 점에서 편곤 작가님은 항상 충실한 고증과 있음직한 세계관으로 저를 실망시키지 않아왔기에 좋아합니다.
읽으면서 계속 캐러비안의 해적 영화를 보던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사에서 해적으로 바뀌면서 몇가지 차이점도 있는데
1. 원피스처럼 소년만화가 아니니까 해적이 마냥 착할 순 없죠. 그로 인해서 이익을 위해선 나쁜 짓을 하지만 굳이 안해도 될 때는 착합니다.
2. 순박하던 주인공에서 앞가림은 가능해졌습니다. 답답함이 사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트랜드에 맞추려는 시도이셨지도 모르겠습니다.
3. 좀 더 주도적입니다. 사건이 외부 요건에서 일어나고 대처보다는 주로 직접 항로를 정하고 목적에 따라 행동합니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유명한 해적선의 선장입니다.
현재는 20화까지 나왔고 보물을 추적하고 있는데 그 여정에서 동료들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습니다.
강한 자극은 없지만 동료를 모으는 것과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게 맞물려서 좋은 구성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호를 푸는 과정은 참신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웃음을 주거나, 얼렁뚱땅 일어나는 사건 등 전작에서 나오던 재미 포인트들도 여전합니다.
회빙환 없는 고전 취향 정통 해적 판타지를 찾는 분들에겐 정말 재밌는 작품입니다.
여기서부턴 사족이니까 하고 싶은 말들을 쓰겠습니다. 사실 항상 회차가 충분히 쌓이고 추천글을 쓰는 편입니다. 소위 각이란게 나오고야 쓰는데 연중될 글을 추천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니까요. 이 글은 특히 제가 항상 같은 재미 포인트로 보고 전 2개의 작품도 추천글을 썼기에 또 비슷한 내용으로 추천글을 쓰게 될 거 같아서 더 망설였습니다. 그럼에도 더 두고 보기가 힘들어서 추천글을 결국 씁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응원하는 작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잘된다는 것이 원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최소한도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는 수입이기도 한데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존에도 꼼꼼하게 읽어왔고 추천글을 쓰면서도 다시 봤지만 글에서 문제를 찾을 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지표는 암울합니다. 여기서의 결론은 저와 같은, 작가님과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짧게 말하자면 ‘연극과 삶의 차이’겠지요. 모든 사람의 삶은 항상 극적일 수만은 없고 사람은 목적 달성만을 위해 달리는 존재는 아니죠. 그럼에도 짧은 연극에서 압축시켜 재밌는 부분만을 뽑아, 목적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보여주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을 끄는 것 역시 필연일겁니다. 더 달콤하고 자극적인 작품들이 널려 있기에 이 작품처럼 담백한 재미는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것일까요. 시장을 거스를 순 없겠지만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한 명의 독자로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몰락은 참으로 씁쓸합니다. 그저 문피아가 타 플랫폼으로 독자를 빼앗겼을 뿐이고 전체 독자수는 유지되고 있을거라 위안을 삼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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