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그러니까 3월이었고, 봄 냄새가 슬슬 나기 시작하던 어느 날.
<변경의 죄수는 검성을 꿈꾼다>에 ‘다크 판타지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추천글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조금 부끄럽군요. 취향에 맞는 글이 있으면 꼭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편이라.
이번에도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전작을 워낙 재미있게 따라가며 읽었던 터라, 신작 소식을 접하고 헐레벌떡 들어가 보았지요.
전작이 완결 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즐거움을 주시나 싶어서 설렜습니다.
그렇게,
제목을 보자마자 탄식을 금치 못했고,
1화를 다 읽고 난 후에는 말을 잃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최신화까지 쭉 달려 버렸습니다.
이번에도 이 작가님다운 고집이 느껴지는 건 둘째 치고,
읽으면서 두 가지 정도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1. 분량이 이게 맞나?
2. 분명 학원물(사관학교)인데 왜 잘 쓰시는?
일단 분량이 좀 말이 안 됩니다.
이 부분은 장단을 떠나서 불가항력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분량을 늘리고 뿌듯해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줄이고 줄였는데 남은 게 저만큼이라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반부의 익숙한 학원물 분위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소년 캐릭터(중2)들을 너무 잘 묘사한 부분이나, 학사일정에 따라 이들의 부딪침, 성장이나 고민을 세밀하게 짚어주는 부분들이 말이지요.
전작의 암울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참 바람직한 초반부이긴 한데.
사관학교에 입학한 소년들이 티격태격하며 지내는 흐뭇한 모습들이 뭔가 끔찍한 일에 대한 복선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일단은 재미있어서 계속 보게 됐습니다.
제국, 전쟁, 예언, 이능력자(발트 능력자), 적성 검사, 사관학교, 베오바쳐(근위대)
여기에 예언을 제외하면 최근까지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백수귀족 작가님의 <배드 본 블러드>와 비교되는 지점들도 있어서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한 나라의 절대자가 신탁이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행동을 했을 때,
그러한 행위 자체가 그것의 실현을 돕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이미 고전이 되어 버린 이야기이긴 합니다.
라이오스 왕이 신탁을 믿고 오이디푸스를 죽이려 했던 것도 그렇고,
동방박사들이 헤롯왕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할 때에도 그랬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딘가 <듄>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전작이 암굴왕에 모티프를 두고 있듯이, 이번 이야기도 이후의 전개나 결말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에른스트는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국 반역을 저지르게 될 운명이겠지요.
작가님이 작중에 자주 쓰는 말을 인용하자면, ‘아니면 말고요’.
그럼에도 이 작가님은 그러한 클래식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Cadilet 클래식’ 정도가 되겠군요.
다소 팬심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드리게 되어서 좀 민망합니다.
‘빠가 까를 만든다’라는 말을 잘 알고 경계하고 있어서 지나치지 않았나 추천글을 자꾸 되짚어 보게 되네요.
그런데 저도 이 작가님의 전작을 읽기 전까지는 안 이랬단 말이지요.
혼자만 당할 수는 없기에,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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