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작가님을 처음 만난 곳은 시리즈였습니다. <해결사와 엘프는 락스타를 꿈꾼다>라는 작품이었는데, 그때부터 눈여겨보기 시작했죠. 문장을 아주 맛깔나게 치는 분이셨거든요.
‘꽤 독특하다. 그리고 글의 체급이 좋다.’ 제가 이 작가님의 글을 보고 느꼈던 감상이었습니다. 장르 선정도 그렇고, 글도 경쾌한 서술을 지향하는 웹소설 메타와는 살짝 결이 다른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무겁다고 말하기에는 또 문장에 간간이 섞이는 개그와 위트가 윤활유 역할을 정말 잘해준단 말이죠. 그래서 체급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작가님은 그냥 문장을 잘 씁니다. 대화와 서술을 가리지 않고 전체적인 체급이 좋습니다.
오랫동안 문피아를 뒤적거리면서 한가지 품은 소망이 있는데, 한번쯤은 정말 재밌는 정통판타지를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리뷰가 올라온 작품들은 한번씩 찾아가서 맛을 봤었죠. 그리고 그때마다 튕겨져 나왔습니다. 재미가 없는게 아니라, 글이 숨막힐 정도로 무거웠거든요.
분명히 맛은 있어요. 다 잘 쓰는데, 종이책을 놓은지 십 년이 넘어가는 저는 정판 스타일에 도전하기엔 이미 너무나 나약해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헬스 매니아가 탄수화물에 타락하는 것처럼, <반지의 제왕>, <얼음과 불의 노래> 이런 통나무같은 글 읽으면서 무게 치는걸 그만둔지 너무 오래되서 이제는 더 이상 묵직한 문장을 견디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요. 저는 사실 정판을 원했던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정판 스킨 씌운 웹소설을 원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작가님을 발견하고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판의 향기가 나면서도 웹소설처럼 읽기 쉬운 그 미묘한 무게감을 정확하게 잡아채는 솜씨, 바로 이게 제가 그토록 찾아 헤메었던, 백마 타고 나타난 정판(같은 웹소설)의 초인이었던 것입니다.
주인공은 학살당한 야만족 출신이지만,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제국의 군인 손에 길러진 인물입니다. 능력있는 아버지에게 충분히 훈련받아 유능하지만, 친구와 투닥대는 부분은 그 나이 소년같은 풋풋함이 있습니다. 정판식 성장물의 소년 주인공에서 답답함을 확 빼고 챙겨야할 낭만만 남겨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정판이 땡기지만 긴 빌드업을 싫어하는 저같은 사람들을 맞춤 저격한 캐릭터 메이킹이라고 하겠습니다.
배경 설정은 판타지스럽다고 할 정도로 비틀었지만, 너무 이질적이지는 않을 한계를 정확히 지켜냈구요. 글 솜씨도 그렇고 문장이나 설정이나 딱 이븐하게 구워내는 능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설정의 독창성, 문장의 완성도와 독자가 느낄 부담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실력이 절묘합니다.
정말 재밌게 보고 있고, 완결까지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설입니다. 추천글을 쓰는 지금도 연중공지가 올라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벌벌 떨고 있습니다. 제발 한번만 살려주십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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