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계의 유명한 잠언이 하나 있죠.
“작품 속 캐릭터의 지능은 작가의 지능을 넘을 수 없다”
이 잠언은 특히나 “천재물”이 하나의 장르로 형성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천재가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보기에 멍청한 짓을 하면 몰입이 깨지기 마련인데, 그 주인공이 가진 가장 큰 개성이 지능이라면? 딴지 걸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주인공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 태클을 걸 것이고 작가님의 지능의 안부를 물어보는 댓글을 달겠죠. 때문에 작가님들도 여러가지 테크닉을 통해 이 태클을 피하기 위해 장르를 변화 시켰고, 요즘에 와서는 “지능” 그 자체를 다루는 글은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르는 천재물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 아닌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천재를 그리는 방법을 발달시킨거죠.
그런면에서 보면 <뇌 각성 100퍼>는 요즘 추세랑은 오히려 약간 비껴간, 올드한 소재를 썼습니다. “지능” 그 자체를 상승시키는 작품, 생각해보면 참 간만이지 않나요?
<뇌 각성 100퍼>는 수능을 10일 남겨둔 고딩이 어떤 조직에 의해 실험을 받아서 뇌가 각성하는 이야기입니다. 14화 까지 나왔는데, 이 각성한 뇌로 서울대도 가고 주식으로 수십억을 벌고 몸도 엄청나게 좋아지고 그럽니다.
벌써부터 뇌가 녹는 것 같고.... 주인공이 천재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작가의 지능이 막 짐작될거 같고.... 까지 스토리가 진행이 되었네요.
하지만 이런 악담을 쓰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닙니다.
테드 창이라는 SF 작가의 소설 중에 <이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떤 호르몬 치료를 받은 주인공의 뇌와 지능이 점점 각성해서 마침내 인간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과 결말을 다룬 단편 입니다. 플롯만 보면 문피아 공모전에 <뇌 각성 100퍼>같은 제목으로 올라올 것 같은 양산형 웹소설처럼 느껴지지만, 유감스럽게도(?) 테드 창은 천재였기 때문에 이 작품을 SF 역사에 남을 걸작으로 만들 수 있었죠.
제가 이 글을 쓰면서도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뇌 각성 100퍼>를 14화 까지 읽으면서 테드 창의 <이해>가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플롯의 유사성에 대해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14화까지의 뇌각성은, 분명 읽기만 해도 뇌가 녹는 것 같은 먼치킨 천재물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곧 이 소설의 장르가 드리프트를 할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듭니다.
<이해>는 SF이기도 하고, 스릴러이기도 하고, 첩보물인 동시에, 능력자 배틀물이었습니다. 14화 까지의 뇌각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장르지요. 하지만 몬가... 몬가... 이상합니다. 분명 인연이 없는데, 글이 천천히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마치 <이해> 처럼, 어둡고 스산함이 느껴지는 세계로 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추천글이라기 보다는, 아직 나오지 않은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쓰는 일종의 기우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거 없었고 제가 느낀 예감은 그냥 착각일 뿐이며 앞으로도 뇌가 녹는 먼치킨 천재물로 쭈욱 나아간다면 그냥 저 혼자 흑역사 하나 적립하고 말 뿐이겠지만, 원래 저점 매수는 야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본격 첩보 스릴러 능력자 배틀 SF <뇌각성 100퍼>가 정말 온다면 첩보물도 스릴러물도 배틀물도 SF도 너무너무 사랑하는 저 같은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즐거울 것 같습니다.
제발!! 제발!!! 제가 느낀 가능성이 진짜였길 바라며!!! 뇌각성의 장르 드리프트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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