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디스토피아라는 말에 낚여 들어오신 SF 팬분들이 계시다면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오늘 추천하고자 하는 작품은 날아오르기 작가님의 “킹메이커, 정도전이 되다” 입니다. 현대 사회 최고의 선거공학자였던 주인공 최상한이 정도전으로 빙의한다면? 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초기 조선을 개혁하며 이방원을 밀어주는 이야기입니다.
보통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조명할 때에는 고려를 뒤엎는 측면이 많이 부각이 됩니다. 하지만 드라마 정도전에서 극중 이성계의 대사에도 있듯이 “깨부순 뒤에는 새로이 쌓아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측면에서 정도전의 역할을 다루는 작품은 많이 없지요. 물론 이 소설 내에서 정도전의 내면의 최상한이기 때문에, 완벽히 정도전이 했던 행보를 답습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조선을 개혁한다면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주인공 최상한이 이방원을 밀어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사의 승자가 된 이방원을 알고 있고, 이방원과 대립을 계속 한다면 자신이 죽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방원을 밀어줘야 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이방원의 공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 수단으로서 개혁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데, 아뿔싸 여말선초는 생각보다 더더더더욱 암울합니다. 식인과 온갖 미신 등 현대 사회의 상식을 깨부수는 이 시대의 상식은 정도전 안에 있는 최상한을 아연하게 합니다.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개혁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정도전이 조선에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고, 하나하나가 상당히 암울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분위기가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국뽕성 비장함 가득한 소설 아니면 초전개 소설을 쓰셨던 날아오르기 작가님이 이정도로 유머와 진지함이 밸런스를 갖춘 소설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합니다(저도 날아오르기 작가님의 작품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인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만). 정도전이 도저히 못 볼 꼴을 보여주는 조선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개혁안을 내면 주변 인물들은 ‘정도전이 이번에는 뭘 꾸미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확대 해석을 하고, ‘과연 정도전’이라고 몰아가는 착각물 요소가 이 씁쓸한 여말선초 디스토피아에 적절한 단맛을 가미합니다. 여말선초의 암울한 분위기를 건조한 설명문이 아닌, 투머치토커 조준의 입을 빌려 설명합니다. 고증과 계산이 철저하다는 것은 대사를 자세히 뜯어본다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는 사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서 재미를 부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역물을 볼 때 가장 재미있는 시대는 역시 여말선초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정말 다이나믹하고, 잘 알려져 있고, 이것저것 시도해볼 여지가 많거든요. 이 지옥도같은 시대에서, 정도전이 계속 활약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찬성: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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