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코끼리손님....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망했다고 하는 자체가 거짓이라거나
임진왜란 서술에 대한 부분에 대한 링크가 있거나 보충설명이
있었으면 합니다.
임진란과 그 전쟁 이후의 손해는
특히 인구수 전지결수에서 조선의 시계를
거의 200년을 뒤로 돌린 것과 같습니다.
세계사적 흐름은 보통 서양 국가 체제의 발전에 관련된 개념으로
임진란때 도쿠가와막부가 들어선 일본이 봉건 체제를 따라갑니다.
이에 유일하게 동양에서는 일본이 세계사적 흐름에 발전했다고
보고있습니다.
최근에는 동양사 시각에서 보는 역사학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서양사에 비해 극히 미약합니다.
물론 이런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세계사적 흐름을 어떤 의도로 썼는지 궁금합니다.
중국의 경우 봉건제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이 서양의 봉건제와는 다른 군현제도라 보고있습니다. 봉건제의 성립은 3가지 요소가 있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참고하시고요.(전 배운지 좀 되서 까먹은지라)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이후 3가지 요소중 2가지 요소를 충족시킨 반 봉건제 사회를 구축합니다.(종사제 은대제였나?)
중앙집권 관료제 체제를 갖춘 나라가 근대로 발전한 경우는 없다.=이것이 서양사에 편승한 단계 발전론의 축입니다. 봉건제-혁명국이나, 봉건제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반식민지나 식민지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호오리아님 일단 동양의 대부분이 봉건제가 생길 여지가 없었습니다. 말그대로 서양에서 동양사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자립해서 근대화가 될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로마 이후 문명의 퇴보라.....문명이 퇴보가능한 범주가 있고 아닌범주가 있는데, 정치 제도같은 경우는 아닌범주에 가깝다고 볼수 있죠.
1. 조선은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조선시대에도 왕권이 강한 편이 아니였습니다. 광해군, 연산군, 문종, 사도세자 등이 왕권이 약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왕권이 제도적으로 완비된 나라는 청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대째 부터 완벽한 왕권을 구축하게 되죠.
2. 식민지 지배에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일본이 이 논리를 차용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는 이것에 반박을 많이 했었는데.....씁쓸하네요.
19c-20c에는 유물론적 역사관이 대세였고, 그때 당시에는 진리급이였습니다. -막스의 발달단계론 이야기입니다.
요즘에는 세계사를 서양식으로 보는 그러한 관점에 많은 비판을 가하면서 세계사적 시각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막스의 시각을 부정합니다.
결론은 그래서 윗글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하지만 세계사적 흐름하면 제가 이야기 한게 아직까지 대세.....
조용조용님의 글 답변
단순히 봉건제도라고 일본이 서유럽중심의 세계사적 흐름에 편승한 발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까?
봉건제도 자체가 서유럽중심의 국가체제이니 만큼 봉건제도와 비슷한 일본 체제, 부루주아 혁명과 비슷한 메이지 유신이 있었다는 측면(메이지 유신의 해석은 5가지 정도가 있고 3가지정도가 유럽중심의 세계사적 흐름에 편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제국주의를 통해 식민지 전쟁에 나선 점 등을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적 흐름에서 공통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완전하지만 동양내에서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강력한 중앙집권 관료제 체제를 갖춘 나라는 근대로 이미 발전한 거와 같지 않습니까?
사회,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 등에서의 일정한 변화가 근대화의 기준입니다. 정치체제는 그닥 상관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평등하고, 경제로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이념에 접목되어야 합니다. 매뉴팩쳐, 도시 등 여러가지를 특징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어느정도 이득을 본건 일본 뿐이었죠.
어떻게든 정리해야하는 불만 세력을 일소하고 대륙과 서양의 선질문물을 흡수가 원활해져 풍요로운 에도시대의 기반을 마련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명은 멸망했고 조선은 말그대로 파산해 버립니다.
불행한 근세사 때문에 조선이란 나라가 폄하되긴 하지만 임진왜란 전의 조선은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였죠. 그게 이황이나 이이같은 대학자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조선은 일부 폭정에 당한거 빼고 굶어죽는자가 드물없던 유래없는 국가였습니다. 백성들이 탐관오리 수탈에 힘들다 힘들다 해도 이웃나라 들에
비교하면 천국이었죠.
하지만 임란 크리로 농경지 작살(은결 포함)에 지방 통제력 상실 인구감소 등등으로 거의 고려말 황폐한 시기 수준으로로 역행합니다.
잃어버린 100년을 지나 이게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게 숙종때였고 영조 때 근세 사회로 진행되며 르네상스를 맞지만 순조 이후 세도정치 크리로 결정적으로 주저않게 되죠.
인구야 그전부터 밀렸지만 조선이 경제력에서도 일본에게 넘사벽으로 밀리기 시작한게 임진왜란 이후입니다.
이 때 벌어진 차이를 영정조때 간신히 따라잡았다가 세도 정치 크리를 다시맞으면서 경술국치 때까지 회복 못한거죠.
전술적으로 본다면 임란에 참전한 세나라가 모두 패자죠.
명은 망했고 조선은 황폐화 되었고 일본은 극심한 사회혼란을 가져왔죠.하지만 전후에 얻은 이익을 놓고 본다면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은 일본의 전략적 승리였습니다. 에도막부라는 안정적 정치체제를 탄생시키는 바탕이 되었으니까요.
작열탄안에는 화약이 들어갑니다. 물과 기름이 아니라. 그리고 당시 기술로는 충격신관을 만들기가 난해해서 비격진천뢰 정도 수준의 심지형식의 폭발탄이어야 하는데, 이것도 요즘 것처럼 몸체가 터져나가기 보단 위로 뿜어지거나 약한부분인 반구부분이 깨지는 정도의 화력이지 글내용중의 위력은 안나오지요. 작중 위력이 나오려면 화약의 엄청난 개량이 먼저 필요하고 접촉신관은 못되도 최소한 지연신관은 나와야함. 또한 외부가 금속으로 둘러싸인 포탄에 내부가 기름이어 봤자 얼마 들어가지도 않을 뿐더러 포탄이 떨어진 곳에서 부서진다는 보장도 없고 포탄이 깨지면서 불이 붙는다는 보장도 없음. 거기다 식물유라 불을 직접 가져다 대더라도 불붙는데 시간이 걸림. 카트라이더의 물폭탄도 아니고 그 조그마한 포탄에 집어넣을 수 있는 기름의 양은 얼마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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