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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소수자의 운명

작성자
Lv.41 태하(太河)
작성
21.09.30 14:26
조회
122

예나 지금이나 인간 세상에는 남다른 신체적 특징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들이 발각되면 마녀사냥의 제물이 되어 화형당했습니다. 그러면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어떻게 하였을까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소수자에 관한 기사가 두 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을 소설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때 함경도에서 기이한 장계가 올라왔다.

 

길주(吉州) 사람 임성구지(林性仇之)는 양의(兩儀)가 모두 갖추어져 지아비에게 시집도 가고 아내에게 장가도 들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

 

장계를 받아본 이환은 뭐라고 할 말이 없어 입을 떼지 못했다. 임금에게 보고하는 문서라 표현을 점잖게 했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임성구지라는 자는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자였다.

 

조선의 인구가 천만 명 가까이 되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남자하고도 통정하고 여자하고도 통정하다 관리에게 적발된 것이다.

 

인구가 많으면 양성애자도 있을 수 있고, 성소수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그들의 인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만약 이런 일이 유럽에서 일어났다면 당장 마녀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당했을 것이다. 다행히 조선의 인권은 이런 면에서는 유럽보다 조금 나은 편이었다.

 

임성구지의 일은 법전에도 적용할 조문이 없다. 그러니 이 일은 먼저 전례를 살핀 뒤에 논의해야 할 것이다.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는가?”

예전에 성종조(成宗朝)에 사방지(舍方知)라는 자가 있어 조정에서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사방지는 성종 때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천(私賤)이었다. 그의 어미는 사방지에게 치마와 저고리를 입히고, 연지와 분을 발라주고 바느질을 가르쳤다. 그러나 사방지는 나이가 들면서 남성성을 발현하여 여종들과 정을 통하기 시작했다.

 

사방지는 여장(女裝)하고, 여자로 살면서 점점 더 많은 여자와 통정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사대부 집안의 과부와 통정한 것이 들통나 물의를 일으켰다.

 

판원사(判院事) 이순지(李純之)의 딸은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과부가 되었다. 그런데 마침 과부가 된 이씨의 눈에 사방지가 들어왔다. 이씨는 함께 수놓는다는 핑계를 대고 사방지를 끌어들여 통정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십 년 동안 정을 나누며 살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게 마련이었다. 사족(士族)의 과부가 불륜을 저지른다는 고발장이 들어가자, 사방지는 사헌부에 끌려가 국문을 받았다. 사헌부 관리들이 사건을 조사하니 사방지 주변 인물들이 모두 한 입으로 증언했다.

 

사방지는 치마를 두르고 있지만, 그의 치마 속에는 커다란 양물(陽物)이 달려 있습니다.”

 

사헌부 관리들은 그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관비(官婢) 반덕에게 사방지의 양물을 만져보게 했다.

 

아주 큰 양물이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이리 큰지 모르겠습니다.”

 

사방지를 직접 만져본 반덕은 혀를 내두르며 증언했다. 사헌부 관리들은 모든 조사를 마치고 임금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이 해괴한 사건을 보고받은 성종은 웃으면서 판결했다.

 

이 일을 크게 벌이면 이순지의 명예가 더럽혀질 것이다. 그러니 사헌부는 더 이상 그를 추국하지 말고 이순지에게 주어 처리토록 하라.”

 

사방지를 넘겨받은 이순지는 곤장 십여 대를 치고 쫓아냈다.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된 듯했다. 그러나 인간의 끈질긴 욕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마 후 이순지가 죽자 과부 이씨가 또다시 사방지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들의 행각은 또다시 발각되어 조정에 보고되었다. 사방지에 관한 보고가 다시 올라오자 중벌을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성품이 인자한 성종은 나름대로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그자가 강상(綱常)을 크게 어지럽힌 죄가 있지만, 그런 일로 사람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된다. 곤장 열 대를 치고 먼 곳으로 유배하라.”

 

경국대전에 처벌 조항이 없으니 이런 사건은 결국 전례를 따를 수밖에 없다. 성종 때 판결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곤장 열 대를 치고 유배형을 내려야 한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엄중한 처벌이다. 그러나 조정의 여론은 예전보다 더 좋지 않았다.

 

전에 성종조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위에서 은혜를 베풀었지만, 그들은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음란한 짓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개 음란한 자들의 소행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엄중히 처리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임성구지는 아내도 거느리고, 지아비에게 출가도 하여 인도(人道)를 양용(兩用)하였습니다. 그러니 그자는 천지간에 요사하고 음예(淫穢)한 요물입니다. 옛 전적을 보면 이 같은 자는 인도(人道)를 어지럽게 한 죄를 물어 사형시켰습니다.

더구나 임성구지는 무격(巫覡)을 핑계로, 남자 의복과 여자 의복을 바꿔 입으며 남의 가정에 드나들면서 몰래 음란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 자의 죄악이 이처럼 지극하니 가볍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사형으로 단죄하소서.”

 

임성구지에 대해서는 훈구파도 사림파도 무관들도 모두 한목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임금이라도 여론이 이렇게 한목소리로 몰아가면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결국 이환은 말귀가 통하는 중신들을 불러 막후에서 조정했다.

 

지금 중전이 회임하여 과인은 종사를 이을 영특한 원자가 태어나기만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들은 임성구지 같은 자를 죽여 과인의 손에 더러운 피를 묻게 하려는 것인가?”

 

이환이 중전의 회임을 핑계로 압박하자 조정 대신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좋지만, 만약 여기서 입을 잘못 놀리면 평생 임금과 척이 질 것이다. 신하들이 모두 입을 다물자 정렴이 타협안을 내놓았다.

 

임성구지를 처리하는 것은 당장 급한 일이 아니니 조금 더 시일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라. 그자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인도 좀 더 숙고할 것이다.”

 

이환은 중전의 회임을 핑계로 판결을 유보하고 시간을 벌었다. 만약 임성구지가 죽을 운명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면 살아날 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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