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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 래몽래인
작성
23.05.30 13:22
조회
108

공모전을 통해 처음 문피아 입성해 본 늙은 신인입니다.


인터넷 초찾기에 하이텔에 유머란이 있었어요.
제가 그때 쓴 글이네요.
그때는 하이텔 유머란이 핫플이었답니다.
대충 30년 정도 된 글?

참고로 글이 길어요. ^^
수정하지 않아서 연도나 수치는 2~30년 전 기준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에서 흡연을 하는 장면도 나와요.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

추억은 단지 아련한 감성의 모태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사이가 소원해진 연인들에게 함께 했던 날들의 기억은 그들을 다시 묶어주는 매듭의 역할을 하며, 인생의 내리막에 선 장,노년들에게 젊었던 날들의 기억은 다시 한번 용기를 갖게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특히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민감한 우리 민족은 이런 이유로 더더욱 혈연과 학연, 지연 등에 연연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과거가 없는 사람이며, 과거가 없는 사람은 현재도 무의미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과거란 한때 현재라는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내게도 몇 가지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이 있으나, 오늘은 그중에서 내 자아와 성장의 텃밭이 된 모교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이 이야기 안에는 하나의 안타까움과 두개의 감동이 있다.


   

 

<안타까움, 한가지>

 

신라의 천 년 고도 경주.
거기 분황사 근처에 자리한 것이 바로 내가 3년간 다녔던 K고등학교이다.


눈치가 밴댕이 깨금발(사투리던가?)보다 느린 사람도 눈치 챘겠지만, K고는 지명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이름의 학교이다.
내가 85년도에 졸업할 때 34회였으니 지금은 50회를 넘을 것 같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재래식 변소(왜 화장실이라고 하지 않고 변소라 하냐면 그곳에 화장실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왠지 흰빤쓰에 보디가드란 레밸 붙이듯 외형과 명칭이 절대로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가 있었는데 얼마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지 큰일 보는 곳은 마루판자로 바닥을 대어 놓은 시골의 정랑(뒷간)과 같은 구조였으며 작은 것을 보는 곳은 군대에서 볼 수 있는 시멘트 봇도랑 (문지방처럼 올라온 곳에 서서 도랑안에 쉬를 갈기면 낮은 곳으로 졸졸졸 흘러가서 빠지는)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변소에 가서 쉬를 쌀라치면 가뭄에 번데기 마르듯 쪼그라져 있던 아랫도리 수도꼭지가 자기도 모르게 한국형 신형 88탱크 우람한 포탑처럼 강건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 선배들이 이루어 놓았고, 또 우리들이 뒤를 잇고 있는 반세기의 대역사 때문이다.

 

봇도랑 형식의 변소는 쉬를 하면 일단 벽에 부딪혀 벽을 타고 봇도랑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오오... 그런데 바로 그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백설공주 속살 마냥 뽀오얀 하얀색이었을 그 벽이 건강을 상징하는 노오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두께가 30CM는 족히 될 벽이 사람 하나 설 너비로 20CM 이상씩 움푹움푹 패여 있는 것이다.


바로 몇십 년에 걸린 소변의 힘으로 말이다.

 

“아아, 존경스런 선배님들이여. 그 쾌적절륜하옵신 정력으로 매 휴식시간 아낌없이 존엄한 쉬를 쏘시어 이처럼 장엄한 공사를 이루셨군요!”

 

난 항상 이런 경건한 마음으로 화장실 구멍파기에 미력한 힘이나마 더하곤 했다.


그때 조금이라도 큰 보탬이 되고자, 나오는 쉬를 잠깐 참았다 한발 쏘고, 또 참았다 한발 쏘는 점사법을 자연히 익히게 되었으며 이는 군시절 M60 사수로 복무할 때 큰 도움을 준 것은 물론 나의 여인 관련 생활에도 상당히 큰 보탬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러분들도 오늘부터 소변 볼 때 그냥 배설치 말고 똥꼬 오무리기 무공으로, 끊었다 쏘기를 연마한다면 소녀경을 萬讀하는 이론적 성취보다 몇배는 훌륭한 쾌적절륜한 정력의 축적은 물론 36가지 방중술과 109가지 응용술을 보다 쉽게 익힐수 있는 근본을 이룰 수 있으리라.

 

각설,

물론 그 변소가 워낙 낡은 관계로, 큰일 치르다 판자로 만든 발디딤판이 부숴지면서 반세기 동안 쌓여온 보약과 같은 똥통 안에서 배영, 평형, 접영, 자유형을 연마한 친구들도 몇명 있긴 했으나 그래도 그 자리에 서기만 하면 우리들의 정력에 대한 묘한 사춘기적 자부심에 배설의 똥꼬째리한 기쁨과 함께 자기 만족의 쾌감까지 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졸업 후 몇 년이 흐른 뒤 찾은 학교에는 그 변소가 있던 자리에는 낯선 초현대식 바이오퍼지인텔리전트수퍼울트라변신 화장실이 대신하고 있었으니...

 

오호 통재라, 잃어버린 역사여!
오호 애재라, 사라져간 추억이여!


교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진입로에 좌우로 늘어서 있던 아름드리 버드나무 20여 그루. 


존경하는 선배인 이 시대 최고의 만화가 이현세 선배님이 그 나무그늘에서 까치와 엄지의 로맨스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그 버드나무들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베어진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변소를 깡그리 부숴버린 것은 아직도 가슴 아픈 안타까운 기억이다.

 

독일이 통일되고 나서도 베를린 장벽의 일부는 남겨 두었다던데 그 변소에서도 「정력의 벽」 일부만은 남겨두었더라면 새싹처럼 자라나는 후배들 역시 나와 같은 정력째리한 자부심을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낼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게 내가 가진 안타까운 하나의 추억이다.


 

< 감동, 하나 >


6.25 전쟁.
그것은 우리 민족으로선 크나큰 불행이었음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우리 전후 세대들은 말로만 알 뿐이지 실제로는 벼룩이 왼쪽 뿡알에난 나쁜 털 만큼도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인 K고에는 에는 그 사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전몰학도병충혼비"


교정 외진 한 곳에 놓여진 이 충혼비 때문이다.

 

전쟁 발발 후 남으로남으로 쫓겨내려 온 국군은 마지막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세를 역전시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때 낙동강 방어선의 동부전선은 형산강을 끼고 포항과 안강 지역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한 국군이 후방으로 빠져 군세를 정비할 동안 이 지역을 방어해줄 <총알받이>가 필요했다.


바로 학도병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도 피 끓는 젊음을 조국에 내던지기 위해 50여 명의 선배들이 학도병을 자원했다.


그렇게 모인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열몇 살짜리 소년 학도병들은 낡은 M-1 소총과 실탄 몇 발을 받아 들고 전선으로 향했다.


아직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교무실 옆 본관 현관에는 당시의 낡은 사진들이 몇 장 게시되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사진은 패잔병의 모습으로 힘없이 후퇴하는 국군들의 행렬 옆으로 교복차림의 학도병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우렁찬 행진가를 부르며 힘차게 전선으로 행군하는 모습의 흑백사진이다.


아마 당시 어린 동생들에게 전선을 맡기고 후퇴하는 국군으로선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후퇴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결과적으로 포항안강전투에서는 어렵게 어렵게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학도병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몰’이라는 접두어를 달게 했다. 


총 쏘는 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전선에 나서야 했던 그 어리고 싱싱한 목숨을 내어주는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회에서 활동하던 내가 그때 써 놓았던 유치하기만 한 시를 이 자리를 빌어 그들의 영전에 바친다.


                 전선의 밤


    긴 어둠을 깨고
    적진으로 흐르는 전사의 넋.

    능선을 젖어흐르는
    형산강 지류에 실려
    죽은 학도의 갈증은
    군번도 없이 동해로 스며든다.

    바람마저 죽은 밤이면
    한반도 가득
    살기가 포화되고.
    피에 주린 적막을 가르며
    포연처럼 피어오르는
    전우의 신음소리여,
    천지에 목놓아 토하는
    반도의 통곡소리여.

    별들이 투신해
    버릇처럼 번득이는 물살을 끼고
    빈 시공의 출렁임 속을
    밀도 짙은 해몽으로 피어나는 어둠은
    고지마다 몇줌씩의 객혈을 하고
    피묻은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
    아픈 가슴의 우리땅을
    쓰다듬고 있다.

    새벽이 오면
    울먹이며 피어날 진달래 기슭.
    단군의 어린 후손이
    가득히 불러보는 휘파람소린
    긴 어둠을 깨고
    후방으로 흐르는 전사의 넋.

 

   - 이 상 훈 .. 83년 봄 -

 

어느 날 오후 수업에 열중하는 선생님을 제껴 두고 디비 자고 있을 때, 5교시 국어 선생님이 들어온 걸 보고 잤는데 깨어보니 수학선생님이었던 6교시.


모두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듣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조회 대형으로 모이자 중년의 신사 한 분이 조회대로 올라섰다.


그분이 바로 포항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학도병 중의 한 분이었다.


물론 우리 학교 선배들은 전몰 하셨으니 생존해 계신 분이 없었지만 그분은 함께 타 학교의 학생으로 참전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생환하신 분이었다.


그 분은 당시의 전투 상황과 학우들이 하나씩 쓰러져 가던 이야기들을 눈물과 통한의 어조로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 감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방자하게도 선 채로 졸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보다도 한편의 코만도나 람보 씨리즈가 더 즐거웠던 나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막바지에 갑자기 그 분은 낡은 상자를 조용히 꺼내셨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을 꺼내 펼쳐 들었다.

 

그것은..... 피에 물든 대형 태극기였다.


낡고 바랜 그 태극기에는 출전에 앞서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쓴 학도병들의 이름들이 가득 적혀있는 것이다.


그것을 높이 펼쳐 든 그분은 그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셨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전우여 잘자라.........


꼬박꼬박 서서 졸던 ,
그리고 몇 몇은 서서 잠들었던 우리들은 그 순간 머리 끝이 쭈볏 칼날처럼 일어서며 등줄기를 짜르르 타고 흐르는 일백만 볼트의 전류 같은 충격을 받았다.

 

붉게, 아니 세월의 탓으로 검붉은 피로 물든 태극기,
그 태극기를 흔들며 눈물을 흩뿌리면서 전우,
아니 학우를 그리는 노래를 부르는 노신사.


우린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조국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게.......
내 첫번째 감동이다.


 

 

< 감동, 둘 >


한문 선생님.

 

아주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 교사정년 65세를 훌쩍 넘어선 나이.
거기에 개구장이같은 말투와 행동.


정말 난 그분을 바람 난 처녀가 중풍 걸려 고자된 영감 무시하듯 만만히만 봤다.


고등학교에서 한문 수업이란 어디나 그렇듯이 책만 펼쳐 놓고 다른 과목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며 또 그래야만 했지 않은가?


한문 시간만은 정말 학생들이 제멋대로였다.


노는 애, 자는 애, 치는(뭘?) 애, 잡는(또 뭘?) 애, 하는(젠장..) 애 등등 실로 난장판을 방불케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특유의 깔랑발랑한 음색으로 혼자 열심히 판서하고 읽고 가르쳤다.

 

그때 교실 뒤에서 물만두라는 친구 녀석이 가요책을 펴놓고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녀석이 노래만 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잘하지도 못하는 노래를 지멋대로 작,편곡 해서 부르자 옆에서 자던 친구와 시비가 붙은 것이다.


물론 선생님이 그들을 불러내어 일장연설을 했다.

 

선생님 : “어저구 저쩌구..... 그러니 대학 갈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친  구 : “전 대학 포기했는데요”
선생님 : “뭐? 그래도 인생을 살려면 어쩌구 저쩌구...”
친  구 : “저 인생도 포기했는데요”
선생님 : “뭐?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
친구 :“저 인생도.....”

 

아무리 만만하지만 그래도 상대가 선생님인지라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원래 교 실분위기가 시끄러운지라 그 소리는 노쇠해서 가는 귀가 먹기 시작한 선생님의 귀에 더욱 작게 들렸나 보다.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버럭 고함을 쳤다.

 

“야, 니들 정말 조용히 못 해?”

 

우리는 선생님이 간곡히 부탁하자..... 못 들은 척 계속 떠들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고함 소리가 애들의 잡담 소리에 잠겨버리자 얼굴이 파르스름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니들 자꾸 그러면 나 칵 죽어버린다!”

 

그래도 그 분은 선생님이시니만큼  그렇게까지 말씀 하시자 ...
역시 못 들은 척 계속 떠들었다. -_-;;

 

사실은 ‘못들은척’이 아니라 아예 ‘안듣고’ 있었던 게 맞을 것이다.

 

돌발 상황은 그순간 발생했다.
화가 난 선생님은 황영조처럼 우아한 포즈로 교실 창문으로 달려가더니 (참고로 우리 교실은 3층이다) 창문 위로 훌쩍, 아니 낑낑 올라선 후 우릴 돌아보고 외치셨다.

 

“니들 조용히 안 했지? 내 말 안 들었지? 나 무시했지? 봐, 이제 칵 죽어 버릴꺼야!”

 

일순 정말로 거짓말처럼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선생님을 향했다.

 

아...
가슴 아프게도 선생님의 눈에는 염분을 함유한 눈물이란 이름의 액체가 금방이라도 또르르 굴러내릴듯이 글썽이고 있었다.

 

그때 우린 깨달았다.


이건 연습 상황이 아니다.
한마디로 선생님은 장난이 아니신 게다.


그 슬픈 표정과 단호한 말투에서 우린 정말 선생님이 뛰어내리시려는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절대 절명의 순간, 선생님이 의기 논개처럼 우아하게 창밖으로 몸을 던지기 위해 잠시 무릎을 움추린 그 순간, 


앞에 서있던 물만두(친구의 별명)가 몸을 날려 선생님을 간발의 차이로 잡았다.

물만두는 사력을 다해 선생님을 교실로 끌어내리려 했으나 선생님은 의외로 창틀을 잡고 완강히 버티셨다.

 

“싫어 임마, 이거 놔. 나 칵 죽어버릴 테니까 니들 떠들던지 자든지 맘대로 해!”

 

실장이 다급히 다려나가서 물만두와 함께 선생님을 만류했으나 선생님은 정말 ‘죽어도 죽고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눈물이 콧물과 범벅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실장이 대표로 선생님을 달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정말입니다. 우리 다시는 안 떠들고 하늘천 따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래도 안 부르고요. 야, 물만두 이 새꺄, 너도 빨리 빌어!”

 

물만두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선생님께 한번만 봐달라고, 제발 죽지말라고 빌기 시작했다.
우리는 황당함과 우스움에 배알이 간지러웠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모두 얼굴근육을 차렸 시키고 사태의 추이를 관망했다.

 

뛰어내리려는 선생님을 실장이 잡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워낙 강하게 창밖으로 몸을 밀고 있어서 등이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만약 실장이 손만 놓는다면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배트맨처럼 날아 반대편 건물에 부딪혀 버릴 것만 같은, 인터넷을 통째로 뒤집어도 발견되지 않는 우아한 체위였다.


실장도 서서히 팔에 힘이 빠지자 다급해졌다.

 

“야, 이새끼들아, 니들 모두 선생님께 빌어. 다들 일어나서 대가리 박어!   이 새끼들아~~~~~~.”

 

우린 주섬주섬 일어나 모두 원산 폭격, 대가리를 박았다.

 

“선생님 보세요, 다들 박았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선생님이 죽어버리시면 우리는 한문을 누구에게 배웁니까?   한문 못 배우면 신문도 못 본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내려오시기만 하면 우리 모두 영어 수학 때려 치고 한석봉이 같은 명필이 되겠습니다! 불을 끄고 저희들은 글을 쓸 테니 선생님은 떡을 써십시오.”

 

반 애들 전부가 대가리를 땅에다 심고 엉덩이를 하늘로 추켜 세우자 선생님은 조금 화가 풀린듯 창틀을 잡은 팔에 힘을 풀었다.


그리곤 실장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벌려 보였다.

담배를 달라는 소리다.

 

"야, 담배 있는 새끼 빨리 가져와.“

 

누군가가 은하수를 한 개비 들고 나왔다.
선생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다른 누군가가 당시 품귀 현상까지 일던 거북선을 한 개비 들고 나왔다.

 

선생님은 창틀 위에 쪼그리고 앉아 서녁 하늘을 바라보시며 빠꼼빠꼼 맛있게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다.
어쩜 그렇게 아껴가며 맛있게 피는지.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리를 꼬나 박고 있는 우린 힘이 들었다.
물론 나처럼 머리 강도가 포항제철 쇠대가리 수준이라 박은 채로 자는 애도 있지만.

 

담배를 다 피고 나자 꽁초를 정성스레 털고 주머니에 넣으시더니 갑자기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으시며 이렇게 말하신다.

 

“아휴, 담배 한 대 피고 나니까 요렇게 기분이 좋은 걸~~~!”

 

 

그날 나머지 수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안에서 이루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서클룸에서 3학년 선배에게 그 얘기를 했다.

 

“와하하하. 또 그러셨어? 그거 연례행사야. 니들 버릇 잡는거지. 우리 때도 그러셨고 그전에도 그러셨대. 왜 국어 선생님이 그분 제자잖아?   근데 국어 선생님이 학생 때도 그러셨다던 걸. 하하하  근데 참 이거 아니....?”

 

선배는 한참을 웃다가 놀라운 사실을 들려주었다.


한문 나부랭이(?)나 가르치는 선생님이 실은 일제 치하에서 동경제대를 졸업 하셨단다.


당시 동경 제대를 나왔으면 식민치하에서는 최고의 엘리트였음에도 조국의 발전은 후학 양성에 달렸다고 뜻하고 교직을 선택하신 것이다.

 

지금은 노쇠하셔서 한문을 가르치지만 물론 처음에는 영어를 가르쳤으며 특히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한 제자가 있으며 정말 죽을 만큼 패서 버릇을 고치던 그런 무서운 분이셨다 한다.

 

그리고 나중엔 정치권의 중심부에 있던 동경제대 출신 친구들이 선생님을 불렀지만 응하지 않고 교직에 남으신 것이다.


그것도 사립학교의 말단 평교사로 말이다.

 

이듬해 선생님은 늦은 퇴임식을 하셨다.

(정년을 벌써 지났지만  퇴임이 늦어진것은 재단이 워낙 약해서 퇴직금을 마련 못해서라는 웃지 못할 우스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교생이 모인 장소에서 선생님은 눈물과 함께 퇴임사를 하셨다.

그때 퇴임사 중에서 이런 말을 하셨다.

 

“나는 다른 모든 길을 버리고 교직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식민 치하를 거쳐와 가난에 찌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선  젊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저의 신념 때문입니다.
 제가 걸어온 이 교직의 길은 부도, 명예도, 권력도 없는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그래서 똑같은 선택의 길에 섰을 때 누군가가 제게 어떤 길로 갈 것인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

“「나는 열 번을 물어도 다시 이 가시밭길을 가겠노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선생님이 다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어디선가 박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둘 씩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박수는 10분 이상 계속되었고 박수 소리에 선생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시다가 박수가 그치자 우리를 향해 훠어이 손을 한번 흔들고는 조회대를 내려가셨다.


아니, 조회대를 내려가신게 아니라
평생을 걸어온 그 가시밭 길을 내려가신 것이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
깔깔하고 가는 음색.
추레한 구식의 단벌 양복 차림.
어디 달동네 뒷골목에서 흔히 부딪힐 법한 모습의 그 선생님은,

그분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커다란 뜻을 지니신
「거인」이셨다.

 

이것이 나의 두번째 감동이다.

 

~~~~~~~~~~~~~~~~~~~~~~~~~~~~~~~~~~~~~~~~~~
오래전, 30년 전의 글이라.... 참 부족하고 부끄럽네요 ㅎㅎ

각설하고~

지금 공모전 중인 환타지 무협물입니다.
낙장불입- 눈 떠 보니 무림

한 작품 더 하고 있어요. 
근미래 좀비물입니다.
5월22일 인류 멸망이 날

선호작, 좋아요, 추천 해주시면 감사~
공모전이야 바닥권이겠지만 끝까지 달려 볼랍니다.

여기도 옛 글 꾸준히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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