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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활에는 귀천이 없다.

작성자
Lv.52 사마택
작성
19.04.20 03:19
조회
522

 활에는 귀천이 없다.

 고려말.

 광릉에 노비 이옥이 있었다.

 그는 활과 화살을 만들은 관노였는데.

 이옥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천한 몸을 이끌며 광릉에 온지 일년. 장내가 일순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관졸들과 민간인들이 뛰어다니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왜구다. 왜놈들이 왔다-아!”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 틈을 해치며 관군들은 무기를 버리고 다급히 도망갔다.

 이옥이 도망치는 어느 무장의 팔을 억세게 잡았다.


 “나으리. 망할 왜구가 왔는데 이게 무슨 짓...”


 이옥은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순간 눈 앞이 번쩍 하더니, 고개가 왼쪽으로 팩 돌아갔다.


 “이 천한 노비가. 네놈 말대로 왜놈들이 왔잖느냐! 여기 있을 시간이 없다. 네놈도 그 천한 몸뚱이가 아깝다며 다리를 놀려라.”


 이옥은 도전적으로 그를 노려봤으나 무관은 투구까지 벗어던지고 저 멀리 사라져갔다.

 사람들의 고함소리. 아이들의 울음 소리. 절망에 찬 노인의 외침. 여인의 비명.

 사람들은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이옥도 이를 바득 갈고는 화살이 그득 담긴 몇개의 전통과 각궁 한자루를 짊어지고 어딘가로 뛰었다.

 모두들 도망가는 와중 왜구들의 눈과 칼을 번뜻이며 사람들을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했으며 노략을 일삼았다.

 몸이 불편한 아비를 부축하느라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부녀를 본 왜놈의 칼에 아비의 피가 찐득하게 묻어 뚝뚝 떨어졌다.

 젖살도 안 빠진 소녀의 눈물과 비명을 무시한 채 저고리를 잡았다.

 소녀가 온몸으로 저항하니 왜놈은 눈쌀을 잠시 찌푸리다가 칼을 바닥에 꽂고는 우악스럽게 두손으로 그녀의 옷을 벗길려 하였다.

 그럼에도 뜻대로 안되자 화가난 왜놈이 그녀의 뺨을 때렸으나 그럴수록 저항은 거세졌다.


 “빠가야로!” 쪽빠리 개객끼!


 땅에 꽂아둔 칼을 성급히 빼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

 소녀는 죽은 아비를 잠시 보고는 눈을 꼭 감았다.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렸다.

 눈물 방울이 바닥을 적시기도 전에 저 흉악스런 칼에 죽으리라.

 그러나.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왜놈은 목을 부여잡고 뒤로 자빠졌다.

 소녀의 눈을 크게 떠 주변을 살폈다.

 시위가 파르르 떨리는 활을 움켜 잡은 사내.

 이옥이다.

 그는 고리눈을 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개만도 못한 왜놈들아!”


 그의 외침에 호응하듯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무장한 왜구들이 몰렸다.

 몇놈이 그를 잡기 위해 뛰었으나 몇 발자국 못가서 목과 이마, 심장에 화살이 박혔다.

 연달아 활을 쏜 이옥은 그들의 죽음을 확인 하지도 않고 당연하다 여기며 몸을 돌려 숲속으로 뛰었다.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욕을 하면서 도발했고 간간히 허리를 돌려 왜놈들을 쏴 맞추었다.

 시작은 몇몇이었으나 이내 이옥을 쫒는 왜놈들이 발소리가 수십이 넘었다.

 이미터가 넘은 긴 활을 든 왜놈들의 화살은 이옥의 주변으로만 떨어졌다.

 이에 약이 오른 왜놈들은 숲 깊숙이 들어왔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 없이 누군가 죽어갔다.


 “칙쇼. 저놈이 화살도 이쯤이면 동 났을 거다. 잡아라! 산채로 내 직접 배를 가를 것이니.”


 화려한 갑주로 몸을 둘러싼 변발의 우두머리가 졸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화살은 계속 해서 여기저기에서 날아와 왜놈들을 죽여갔다.

 이옥은 애초부터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천한 관노였으나 어린 시절부터 대가 쎄고 근골이 좋았다. 철이 들기 전부터 야장일을 해온터라 단단한 체격과 체력이 있었다. 완성된 활과 화살이 하자가 없는지 늘 사격을 통해 검증한 이옥은, 고려의 실력 있는 무장들과 견주어도 우위에 서는 명궁이 되었다.


 - 이옥이 활을 당기기만 하면 반드시 명중하니 죽은 자가 즐비했다. - 용재총화


 그렇다. 이옥은 도망가고자 한 것이 아니라 숲 곳곳에 가져온 화살을 잔뜩 꽂았고 다시 돌아와 왜구들을 유인한 것이다.

 꽂아든 화살이 반이상 소비하면 자리를 옮기고 활을 쏘고, 다시 돌아와 남은 화살을 뽑아 쏘아 교란시키니, 혼란에 빠진 왜놈들은 급기야 공포에 떨었다.


 -이옥이 나무에 꽂아두었던 화살을 뽑아 종횡으로 달리며 화살을 쏘았다.- 용재총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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