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클리앙에서 본 것인데요, 페이스북에 올라 온 친일에 관해서 올라온 글을 캡처한 글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배운 건데요, ‘친일’이라는 단어에서 사용된 ‘친’이라는 한자는 ‘부모로 모신다’는 뜻으로 사용된 한자라고 합니다. 일본을 부모처럼 모신다는 뜻이라는 얘기죠. 일제시대만 해도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횡행하던 시대였으니까, 일본천황을 부모님과 동급으로 모시자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의미가 좀 달라졌죠. ‘친미’라는 단어는 미국을 부모처럼 모시자는 의미로 쓰이는 게 아니죠. 그냥 미국과 친하게 아주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친중도 마찬가지이고요. 적대관계나 원한관계도 아닌 나라들과는 두루 친하게 지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게 우리나라의 국익에도 맞는 거고요.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는데요, 일본과의 관계 설정이 확정된 건 1965년이었습니다. 35년간의 식민지배를 당한 우리나라 국민들이 일본을 우호적인 이웃나라로 설정하는 데에 걸린 시간입니다. (그것도 박정희정부의 뻘짓으로 망쳐 버리기는 했지만 말이죠...) 국내에 있는 친일파들과 그 후손들을 제대로 처단하지도 못한 채로 얼렁뚱땅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반일감정은 남아 있었죠... 그래서 무슨 축구경기 등 스포츠 경기만 벌어졌다 하면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행태를 보이곤 했습니다.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였죠...
오늘날에 벌어지는 일본에 대한 친일은 ‘일제시대의 친일’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예. 요즘은 친일해야 합니다. 일본을 부모처럼 모시자는 친일이 아니거든요. 일본도 이웃나라의 하나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뜻의 친일입니다. ‘친’이라는 글자의 어감이 이렇게 사용되므로 어쩔 수가 없이 ‘친일’이 사용됩니다. 같은 단어인데, 뜻이 2가지가 되어 버린 것이죠.
오늘날에도 반일감정이 폭발하는 때가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도 반도체용 무슨 가스 때문에 반일감정이 불타올랐었죠.. (아, 단어가 기억이 안 나요... ㅠ ㅠ) 그 보복으로 우리나라에도 노 재팬 불매운동이 벌어졌고요... 독도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 위안부문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 등은 반일감정 폭발력이 큰 사안들이죠. 이런 문제들은 참과 거짓이 뒤섞여 있어서 해결이 잘 안 됩니다.... 말을 꺼내기만 하면 바로 욕이 되돌아 오니까요...
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다시 말합니다. 오늘날에 우리나라는 이웃나라들과 두루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친미도 해야 하고, 친일도 해야 하고, 친중도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국익을 위한 길입니다. 묵은 원한을 꺼내고, 격렬한 사안들로 선동하여 반미, 반일, 반중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국익을 해치는 뻘짓입니다.
1990년에 전문대 1학년일 때 읽었던 책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코즘](?) 어쩌고 했던 책인데요, 제목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요.. 어쨌든, 이 책에는 전세계 국가들이 서로 경제적으로 얽매여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미국이 만드는 미사일에 미국 부품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일본 부품이 들어갑니다. 그럼 미국이 미사일을 팔아먹을 때 일본은 미사일 부품을 팔아먹을 수 있게 되지요. 만약 미국이 이 부품까지 미국제로 만들려고 하면, 새로 공장을 짓고, 이 공장을 운영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파산하지 않게 하는 게 쉽지 않지요. 그래서 그냥 부품을 수입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됩니다. 이렇게 각국의 기업들이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은 상호의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과 국교를 단절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의존되던 부분이 올스톱이 되거나 다른 수입선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지요. 중국과도 상호의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 중국이 희토류의 반출을 중단한다면, 요소수 사태가 재연되고, 삼성전자가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겁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반일 반중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국익을 해치는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지요...
제가 반중/반일하는 글이나 댓글에 반응하는 건 이런 사람들의 말에 다른 독자들이 선동되지 않기를 바라서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방위병으로 18개월 군부대로 출퇴근하면서 복무하고, 해외여행 한 번 나가보지 않은 저를 두고 조선족이 의심된다고 하니, 가끔은 뚜껑이 열립니다... ㅎㅎㅎ
<인용> 전우용 역사학자의 페이스북에서
옛날에는 “염병할”이 아주 심한 욕이었습니다. 염병(장티푸스)은 흔한 질병이었던 데다가 이 병에 걸리면 대개 참혹한 죽음을 맞아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정도로까지 떨어지고 치료법이 발달한 덕에 이제 이 말은 ‘욕도 아닌’ 게 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단어의 어감과 어의(語義)가 달라지는 건 흔한 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친일파’라는 단어를 “일본과 친하게 지내자는 일파” 정도로 이해합니다. 친(親)이라는 글자에서 바로 ‘친구’를 연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에서 ‘친일파’라는 말이 비난의 뜻으로 쓰이는 건 한국인들이 과거에 연연하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실 '일본과 친하게 지내자'는 건 비난 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관계와 관련해 친(親)이라는 글자를 처음 쓴 건 중국인 황준헌입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그는 <조선책략>에서 조선 생존을 위한 외교 전략으로 ‘친(親) 중국, 결(結) 일본, 연(連) 미국’을 제시했습니다. 연(連)은 연합, 결(結)은 동맹으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시 조선의 종주국 행세를 했던 중국에 대한 친(親)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당연히 동맹보다 더 강력한 관계였습니다. 그 시대에 친(親)은 선친(先親), 양친(兩親), 엄친(嚴親) 등에서 보듯 대개 아버지 또는 어버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조선책략>이 제시한 ‘친중국’은 ‘중국을 어버이로 섬기며’ 또는 ‘중국의 품 안에서’라는 뜻이었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겁니다.
‘친일파’라는 말은 갑신정변 전후 일본 언론에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조선 정치 세력을 ‘친청당’과 ‘친일당’으로 구분하면서 마치 조선 내에 ‘일본을 새 종주국으로 받들려는 세력’이 있는 것처럼 호도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친일파’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건 을사늑약 이후입니다. 이때의 ‘친일파’도 같은 의미였습니다. 조선은 일본의 ‘보호’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일본을 부모로 섬기는 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토왜(土倭)와 친일파 모두 ‘한국인이면서 일본을 부모로 섬기는 자’라는 의미였습니다.
한국의 불매운동 구호인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에 대응해 일본 우파들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습니다”라는 구호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부모이거나 스승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저들의 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일본 우파의 저런 오만방자함을 뒷받침해 준 건 예나 지금이나 일본을 ‘경외(敬畏)’해 온 한국 내 ‘친일파’입니다.
친(親)이라는 글자의 뜻이 변했기 때문에, 이제 ‘친일파’라는 말로는 일본을 부모처럼 숭배하는 자들의 본질을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일본 군국주의가 낳은 정신적 사생아라는 의미에서 ‘토왜’나 ‘토착왜구’라는 말을 쓰는 게 낫다고 보지만, 이 말이 불편해서 '친일파’란 말을 계속 쓰려면 본디 ‘일본을 부모처럼 섬기는 일파’라는 뜻이었다는 건 알아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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