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사의 난이 진압 되었지만 이것으로 중앙 정부는 절도사를 통제 할 힘이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났다.
고구려 유민계 당나라인 이정기는 평로군 속한 24살의 젊은 장수였다.
조정에서 임명한 평로절도사 유정신이 연이은 전쟁에 패하자 왕현지가 내분을 일으켜 그를 죽이고 조정으로부터 반강제적으로 평마절도사를 인수한다.
왕현지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이 세습을 하였는데, 얼마 못가 이정기가 군사를 일으켜 죽여버리고는 사촌 후희일을 평로절도사로 추대한다.
권위를 잃은 조정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절도사들이 각지에서 힘을 키워 독자적인 세력으로써 군림하였는데. 후희일과 이정기의 세력은 날로 번창했다.
이들 휘하에는 고구려계 유민이 다수였다. 망국의 후손들 특유의 끈끈함으로 이어진 그들의 결속된 단결력은 하극상의 시기인 당나라의 그 어느 군벌 보다 막강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세력을 키우는 도중 후희일은 많은 이들이 사촌 동생인 이정기를 따르자, 그를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장졸들이 오히려 후희일을 축출하고는 이정기를 추대한다.
담대한 성격의 이정기는 무력이 뛰어나고 잔정이 넘치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 하였고 부하들을 아꼈으며 손이 커 재물을 하찮게 여겼다.
또한 시대를 흐름을 읽을 줄 알고 그것을 이용하는 정치력이 있었다.
무작정 조정을 업신 여기는 다른 절도사와 달리 겉으로는 조정을 존중하는 척 하며 조정과 마찰을 일으킨 다른 절도사를 반역 토벌의 명문으로 영지를 뺏어갔다.
그의 세력이 나날이 커지더니 통일 신라보다도 영토가 더욱 커지자 조정과 다른 절도사들은 이정기를 매우 두려워했다.
이정기의 군대는 고구려계 유민을 주측으로 엄격한 군율로 훈련된 정예병이었다. 질 좋은 병장기로 무장하고 넉넉한 군마까지 갖추었다.
이것이 가능한게 이정기가 근거지로 잡은 산동 반도를 토대로 상업을 부흥시켰기 때문이다.
이정기가 죽자 그의 아들 이립이 대를 이어 제나라를 건국했으나, 얼마 안가 내분이 일어나 세력이 쪼그라들게 된다.
제나라는 삼대까지 이어지지만 결국 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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