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에서 유명한 말이 있죠.
“강호에서는 어린아이, 여자, 늙은이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혼자 다닐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산적과 수적이 즐비한 강호고 길에서 비명횡사하면 아무도 모를 세상인데 힘이 없어 보이는 여자나 노소가 여행을 다닌다면, 특히 혼자 다닌다면 고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암살자가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변장한 경우는 수도 없고 말이죠.
그런데 무기를 소지한 자는 물론이고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어린아이를 경계한다면 세상 사람 모두를 경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원한이 많은 사람이면 음식이나 차, 물에 들어있을 독은 물론이고 잘 때 암살자까지 경계해야죠.
이거 사람이 정신병 걸리기 아주 좋아보이는 조건이네요. 게다가 사람들을 경계하니 친구 사귀기도 매우 힘들테고요.
지체 높은 정파나 사파 집안의 자제, 혹은 안정적인 문파의 제자라면 주위 가문이나 문파 사람과 친분도 만들고 같은 항렬의 동기들이나 위나 아래 항렬들과 친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흔한 무협의 주인공처럼 기연으로, 혹은 일인전승의 무공을 배워서 강호로 나오면 친구 만들기가 매우 힘들어 보이네요.
정사지간이라면 정파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할테고 사파 사람들은 친구라고 하기에는 힘든 상하관계가 정립될 겁니다. 정파로 소속을 잡는다고 해도 뒷배경이 없으니 상당히 무시당하겠죠. 어떻게 하든 무협 주인공이 친구 만들기는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연공하다가 주화입마 걸릴 위험이 많은 것도 당연합니다. 온갖 것들을 경계하느라 신경이 곤두서고 심신이 지쳐있으며, 믿을만한 친구도 없고, 무공 수련한다고 연공실이나 심산유곡에 짧게는 1년, 길게는 수십년을 처박혀서 사람도 안 만나고 맛대가리 없는 벽곡단과 물만 먹으며 뭔 헛소리인지도 모를 무공 구결을 이리 뜯어보고 저리 씹어보고 머리에 쥐나도록 생각하다가 가끔씩 허공에 쉐도우복싱 하는 생활을 한다면 저라도 미쳐버리겠네요.
강호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내적, 외적으로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가 무협에 떨어진다면, 혹은 무협에 환생한다면, 일단 강호인이 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겠습니다. 자기 몸을 지키거나 건강에는 좋으니 무공을 익히는 것은 좋지만 굳이 강호인이 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무섭네요.
그렇다면 뭘 해야할까요? 주점은 온갖 무림인이 꼬여서 싸워대는 곳이니 탈락이고, 기루도 마찬가지고, 의원도 무림인과 엮이면 위험하니 안 되고, 대장장이나 기관진식, 목수도 위험하고.
그냥 얌전히 농사를 짓거나 작은 상회에서 허드렛일, 가능하다면 과거를 봐서 지방의 관아에서 일하는 게 가장 좋아보이네요.
여러분들이 무협 세계에 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P.S 황제가 관과 무림은 상관하지 말자고 방침을 정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저라도 저런 미친놈들과는 상종하기 싫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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