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내가 살아온 삶 중에서 첫번째 가는 백년대계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애 정체를 관통하는 큰 사건 중에 김영란법에 준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으나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라 내 머리속과 내 가슴에서 받아 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요즘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고 있다. 부쩍 느끼는 것은 소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데 고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상식의 상식화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며, 그런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예컨데 황제노역이 그렇게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하루 수천만원대의 황제노역이 이뤄지고 있다. 왜 한숨이 나오냐면 이미 한차례 개정을 했는데도 이모양이라는 것이다.
내가 시사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떠올리는 일만 해도 아마 밤새 얘기해도 모자랄 정도로 많다.
불합리 하거나 또는 비리와 부패와 관련된 일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가장 암울한 것은 내부고발을 하거나 사고가 터저 희생자가 발생하거나 그 어떤 일로도 개선되지 않고 항상 그대로인 상황 그 자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분노와 좌절은 절대적인 부분과 상대적인 부분이 공존하는데(절대적인 기준을 넘느냐 아니냐는 예컨데 당장의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아 굶어죽는다던가 하는 극단적인 부분) 우리는 상대적인 불합리성에 너무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문제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라는 것은 언제 어느때 새로이 터질지 알 수 없다. 다만. 함께 노력하고 개선하고자 할때 그러한 문제들로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 그러나 당장의 고통으로만 보면 비슷할지라도 상황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문제의 반복이 지속되는 경우라면 그것은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는 변환기 역할을 하며 심적인 고통은 배가되고 암울함은 절망의 그림자를 넓게 드리우게 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소잃고 외양간을 방치하는 여러 분야의 일들이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다.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진통이 너무나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김영란 법이라는 여러 부패와 비리의 핵심 줄기 중 가장 효과적이고 나라의 백년을 바꿀 중대한 법이 통과되어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체질을 바꾸는 것이지 당장의 문제 해결에는 많이 부족하다.
한순간에 세상이 유토피아가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불합리성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는 모습이 더욱 많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최소한 우리를 분노케 했던 일들이 개선되지 않아 같은 문제로 재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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