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이 사라지고 있다. 구들장이 사라지면서 아랫목 아버지 자리가 없어졌듯 30, 40대 초반 가정에서는 안방 개념이 없어지는 분위기다. 집에서 가장 큰 안방을 아이들 방이나 가족 공동체를 위한 공간, 영상 감상실 등 취미를 위한 휴식방으로 꾸미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 안방은 집안 어른이 꿰차야 한다는 관습이나 전통적인 풍수 인테리어도 약발이 서지 않는다. 실용성을 추구하고 가족 서열을 따지지 않는 권위의식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안방 주인요? 애들이죠! 서울 중구 신당동에 사는 혜진이(11)는 욕실이 따로 달린 가장 큰 방을 쓴다. 3년 전 이사오면서 부모가 안방을 내줬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혜진이가 자기 방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벽면 한 쪽은 아예 대형 거울로 바꿨다. 동생과 함께 뛰어 놀고 공부한다. 두번째 큰 방은 동생 형석이(10) 차지다. 대신 아버지 최기남씨(42)와 어머니 이화정씨(41)는 현관 쪽 작은 방에 기거한다. 붙박이 작은 옷장과 침대가 있을 뿐 살림살이가 없다. 신혼 때 장만한 장롱은 다행히 크기가 작아 옷방에 들여놨다. 자녀에게 큰 방을 내주자고 주장한 사람은 어머니다. 따로 돈 들이는 일도 아니고 부모가 안방을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만 바꾸면 아이들에게 좀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어서다. 이씨는 “아이들이 큰 방을 쓰게 되면서 독립심과 책임감이 커지고 어른스럽게 생활하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혜진이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면서도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아버지 최씨는 처음엔 안방 내놓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침대만 달랑 놓인 문간방이 옹색해 아버지의 권위마저 위협받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 “내 집에서 내가 제일 구석방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평했다.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개인사업을 하기 때문에 귀가가 늦어 굳이 넓은 방을 차지할 필요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친구 같은 아버지’로 점수 따는 게 요즘 세상에 맞춰 사는 길 같다. #가족실에서 책 읽고 놀아요 ‘왜 식탁을 두 개나 사느냐?’ 이달초 서울 양천구 목동의 38평형 아파트로 이사한 이주희씨(33·내과 의사)는 가구를 고르면서 자주 받은 질문이다. 6인용 탁자 두 개를 한꺼번에 구입했기 때문이다. 지금 두 개의 탁자는 주방과 안방에 각각 놓였다. 커다란 탁자가 한 가운데 놓인 안방은 가족실 겸 서재다. 이씨는 “진작부터 안방을 가족실로 꾸미고 싶었는데 전에 살던 집은 평수가 작아 엄두를 못냈다”며 “거실에는 TV가 놓여있어 오히려 가족실이 대화하고 함께 음악 듣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실 3개 벽면은 모두 책장이 둘러싸고 있다. 문이 있는 벽면에는 책상과 오디오 세트가 놓였다. 책장에는 남편 박정훈씨(36·피부과 의사)와 이씨의 전공서적을 비롯해 역사·과학·소설류들이 즐비하다. 창가 밑 책장엔 딸 지원이(4)의 장난감과 동화책이 꽂혀있다. 지원이는 엄마·아빠와 놀고 싶어 자연스럽게 가족실을 자주 찾고 혼자서도 그림책을 꺼내 보고 만지고 논다. 둘째 선규(1)는 물론이고 어릴 적부터 책과 친근하게 만들기 좋은 것 같아 흐뭇하다. 가끔 ‘안방을 변형하면 풍수상 좋지 않다’는 걱정을 듣는다. 그러나 별상관하지 않는다. 살고 있는 사람이 편리하고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32&article_id=0000109026§ion_id=103§ion_id2=245&menu_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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