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에는 시상자 커플이라는게 있기 마련이다.
남녀 커플이 나와 자연스런 대화를 나누면서 수상자를 발표해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색한 분위기가 자주 연출되고 있다. 생방송이라 다시 방송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담당 작가가 대본을 만들어 주는데, 일회성 행사라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어 아예 대사를 읽는 수준의 시상자들도 많다.
이런 관습을 좋아할 리 없는 전유성은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아예 여성 파트너 없이 솔로 시상자로 나타나 “후배들이 많은 상을 받는게 참 좋다. 그러나 진정으로 코미디를 사랑한다면 녹화장에 탈의실 하나쯤은 마련해달라”는 강한(?) 애드립을 날렸다.
이런 건 가뭄에 콩 나듯 한 일이고 시상자 대본에 등장하는 유머는 대개 이런 식이다.
예컨대 남자 개그맨이 미모의 여자 탤런트에게 “어떤 개그맨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질문하면 여자 탤런트는 질문을 한 남자 개그맨을 댄다.
이렇게 결과가 ‘생뚱맞게’ 돼버리면 하는 말이 “대본에 이렇게 쓰여있다”는 해명이다.
그러다 보니 시상자들은 항상 재미있는 멘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 같다. 지난 25일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이완과 함께 시상자로 나온 옥주현의 “김태희 도벽 있다”는 농담이 논란을 빚는 것은 여기서 비롯됐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옥주현은 나름대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대사를 준비했다. 김태희의 친동생인 이완도 그 말이 설정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
이날 대사를 다시 끄집어내 보자.
“김태희와 이완씨 모두 예쁘고 잘생겨서 부럽다.(옥주현)”
“옥주현씨가 더 예쁘다.(이완)”
“김태희씨의 숨겨진 비밀이나 버릇 같은 게 없냐?(옥주현)”
(이완이 옥주현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절대 말 안할께요, (김태희가) 도벽이 있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요.(옥주현)”
이게 뒤늦게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옥주현에게 비난이 빗발치듯 하고 있는 발언의 전부다.
만약 김태희가 도벽이 있는데 옥주현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옥주현은 연예계는 물론 이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금치산자로 분류됐을 것이다.
옥주현에게 죄가 있다면 농담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목소리도 아주 작게) 했다는 것이다. 능숙하고 매끄럽게 했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터이다. 옥주현으로선 소화하기 힘든 ‘하이 개그’였던 셈이다.
물론 생방송에서의 발언은 주의를 요한다. 방송 MC가 부단한 노력 없이 대충 말하다가는 시청자한테 멍청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파문(?)은 재미있게 말을 하면서 지나치게 조심하다가 발생한 설화(?)다.
이걸 아는 네티즌들은 이미 다 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이 상황을 즐긴다.
‘김태희 정말 도벽있음... 남자들의 마음을 훔침’과 이의 변형 댓글들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email protected])
http://news.naver.com/hotissue/daily_read.php?section_id=106&office_id=112&article_id=0000001699&datetime=200412281923000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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