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독일의 어느 보수적 역사가가 이런 식의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가라면 모름지기 2차대전 말기에 독일군인들과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십분 느끼지 못한다면, 2차대전의 역사를 쓸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일견 그럴듯한 말이지요. 전쟁기의 사람들이 경험한 고통, 분노, 절망감… 이런 것들을 기록해 내지 못하고서야 제대로된 역사서술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독일의 역사가가 <독일인의 고통>을 강조한다는 것 … 뭔가 언밸런스 하지 않습니까?
그 시대 독일인들이 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까.
바로 독일인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과 범죄행위 때문입니다.
독일인의 고통을 낳은 것은 그들 자신들이 행사했던 전쟁과 범죄행위 때문이었던 거지요.
앞의 그 역사가는 이 <고통의 연쇄>를 –반쯤은 의도적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 모두는 참담한 심정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정말 가슴이 찢겨져 나가는 듯 하며, 무력감이 나를 엄습해 옵니다.
하지만 그 무력감이 복수심으로 변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비참한 현상은 우리들을 얽어매고 있는 <폭력과 고통의 사슬>에 원인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연쇄를 끊어내는 것이지, 그 사슬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테러범들은 분명히,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처벌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으로써 테러리스트들만을 처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인 이라크 국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건 그들도 우리에게 같은 방법으로 대응할 지도 모르지요.
파병이 이루어지고 한국군이 참전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사슬>에 더욱 더 묶이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라크 사람들도 그 쇠사슬에 옭죄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얽매고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바로 그 사슬입니다.
이제는 이 사슬을 끊어내야 합니다.
더 큰 폭력과 고통을 차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파병은 절대 이루어 져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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