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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43 관독고
작성
03.11.04 19:55
조회
268

내일이 수능인지라 날씨가 몹시 쌀쌀하군요.

고무림 수험생 여러분께 악영향을 끼치지 않나 생각되어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후, 수능.

저에게도 수험생 시절이 있었고 수험에 대한 여러가지 추억이 있습니다.

갑자기 잊어버리고 싶던 과거가 생각나는군요.

수험생 분들 중 이 글을 오늘 보실 분은 아무도 안 계시겠지만 어쨌든 올리려 합니다.

수능 며칠 전이었을 것 입니다.

당시 저희 모교는 수험 막바지라 학교에 저녁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 또 독서실에서 잠 자며 등교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권장하고 있었죠.

그런 빡빡하고 하드한 생활이 저에게는 도무지 맞지 않았습니다.

매일 매일이 힘들고 따분했지요.

그런 어느 날, 저는 천벌을 맞을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학교 근처의 문방구들을 이 잡듯이 뒤졌지요.

당시 같은 반 급우인 K군과 Y군은 아무 것도 모르고 저를 따랐왔는데 사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저녁 시간에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군것질을 하던 터라 우리 모두 거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일 때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

마치 영화 친구에서 나오는 한 장면 같았지요.

그러나 우리의 화합은 10분 후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문방구에서 '그 물건'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부루마블-

"미x놈."

"너 인간 맞니?"

"Dog Baby..."

이런 말이 난무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대의가 어찌 풋내기같은 우정에 깨지겠습니까?

당시 저에게는 10000원이 있었는데 7000원을 그 악마의 물건에 투자를 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나머지 3000원을 교실에서 학업에 열중할 굶주린 아해들을 위해 떡볶이며 순대를 사갔지요.

(당시 제 단골집 기준으로 3000원이면 10명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입니다.)

역시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음식이 들어가자 아귀처럼 달려드는 급우들.

"너 착한 녀석이었구나."

저는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착한 녀석'이란 말을 들어봤습니다.

등골을 짜르르 타고 흐르는 전율의 느낌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지요.

10분 쯤 후 녀석들이 음식을 다 먹어치웠더군요.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스럽게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했던 전개로 가지 못하자 저는 실망했지요.

그래서 자리로 돌아가 부르마블을 꺼내 돈은 돈대로 카드는 카드대로 나누기 시작했지요.

당시 제 자리가 1분단 첫 자리였고 제 옆자리에 Y군, 걸상 하나 더 가져다 세자리로 만든 K군이 있었는데 3분 쯤 후에는 여섯자리 정도로 늘어나더군요.

저를 도그 베이비로 몰아붙이면서도 게임 준비를 착실히 도우던 Y, K군.

돈을 뜯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저를 매도하고 있었습니다.

묘하게도 저는 그들의 욕설에서 쾌감을 느끼고 있었지요.

'너희들이 나를 매도해도 어차피 부루마블의 노예일 뿐이다, 클클클.'

저는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어느 새 반 전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부루마블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 가지고 모든 급우가 즐기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10명 정도였으니까요.

교대로 하자니 심심하고 감질 맛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러자 급우들 사이에서 이상한 공기가 흘렀지요.

5분 후 너도 나도 1500원씩 보태서 15000원 짜리 초대형 부르마블을 사오기로 결정 보게 되었지요.

저는 점차 두려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녀석들은 어느 새 수능에서 벗어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 해탈하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추첨을 통해 한 명이 담을 넘어 부루마블 하나를 다시 구입해 오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와 S군이라는 녀석이 뽑혔습니다.

저는 솔직히 1차 부루마블을 제공한 자로서 탐탁치 않았지만 어찌 사나이가 대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챙기겠습니까?

결국 저는 아쉬운 마음을 뿌리치고 D군과 함께 높은 담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승천하는 비조가 그러할까?

D군은 엄청난 도약력으로 담 위로 올라타더군요.

그러나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바람잡이 역할을 하기로 하고 D군이 사오기로 했지요.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D군이 돌아오지 않는 것 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D군은 잠시 후 돌아왔습니다.

...학주를 데리고 말입니다.

결국 저와 D군은 정말 먼지나게 맞았지요.

더불어 엄청난 욕을 얻어 먹었습니다.

학주, 그는 우리의 대의를 꺾으려는 악질 분자였던 것 입니다.

그러나 대의가 어찌 목숨보다 중하리오?

우리는 결국 대의를 저버리고 동료들을 배신한 변절자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학주를 인도해 동료들이 부루마블을 즐기는 곳을 덮친 저와 D군.

배신의 쾌감은 생각외로 멋진 것이더군요.

곧이어 이어질 질타와 급우들의 보복을 생각하면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짜릿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주가 정신이 나갔는지 교실 앞에서 두리번 거리며 들어가질 않는 것 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색하게 급우들의 틈으로 끼인 학주는 그들과 함께 부루마블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에서 저와 D군은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배신자는 저와 D군이 아닌 반 급우 전체였다는 것을...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죽이기 전에 먼저 죽이고 배신당하느니 먼저 배신해라, 세상이 나를 버릴 것이면 내가 먼저 세상을 버리리라!-

...고 말 입니다.

*추신*

그 날 학주는 저희 담임 선생님까지 불러 부루마블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인가 부터 선생들이 당직 서면서 부루마블을 즐기더군요.

정말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배신의 아픔에 눈물을 떨군 아픈 기억입니다. 지금도 그 곳에서는 부루마블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을까요?

수능과는 별 관계없는 일이었지만 수험생 분들께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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