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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1 교동일괴
    작성일
    06.03.13 11:06
    No. 1

    물소뿔이 수입품이긴 하지만 몽고에서 들여도지는 않았죠. 우리의 각궁은 고구려시대의 벽화에서도 그 예를 볼수 있는데 몽고에서 왔다 하면 시대가 맞질 않죠..

    그리고 애기살의 위력은 작은 살에 멀리 가는 것 그리고 당시 사용한 사람의 실력때문에 우리나라의 비밀병기였죠,
    그리고 지금의 실력으로 당시를 평가한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요?

    현재 몽고에서도 복합궁을 사용합니다. 물소뿔이 아닌 사슴의 뼈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물소뿔을 찾아 낸것은 여러 시험을 거쳐서 만들어낸 우리민족의 지혜와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죠..

    조선시대의 활중에 우리의 황소뿔로 만들기도 했다는데..

    그리고 활하나로 봤을땐 우리나라 활이 최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우리 각궁과 비교할만한 활은 옛영국의 롱보우와 터키의 각궁정도...

    그리고 노 즉 석궁은 먼저 장전을 해놓을 수 잇다는 점과 활보다는 수련이 쉽다는 이점에서 많이 사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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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86 고라니
    작성일
    06.03.14 00:03
    No. 2

    궁기병의 경우 고구려 벽화등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말+궁을 동시에 수련하는 것이 농경사회였던 사회상 장수급이나 국책 사업이라면 몰라도 병사급에서 가능했을리가 없다고 봅니다. 몽고나 금의 경우 기본으로 기병양성이 가능했으니 그만큼 궁에 대해서는 한발짝 앞서 나간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더욱이 인도에서 물소뿔을 수입해서 그것이 고려까지 흘러가기까지 몽고의 무역정책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은 인지하셔야 겠지요. 이렇게 힘들게 제작해야 했고 또 계절마다 손을 봐야 했던 각궁(아교 자체가 여름과 겨울에는 녹여서 다시 붙여야 하니) 역시 병사가 사용하기는 꽤나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석궁의 경우 20여미터에서 한발 쏜뒤에는 바로 전장에 투입되어야 했으니 양성이 쉽다기 보다는 거의 일회성 무기로 봐야 겠지요. 중장보병뒤에 숨을수 없는 석궁병이라면 단 한번의 교전으로 전멸될 것이 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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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어코드진슈
    작성일
    06.04.07 23:06
    No. 3

    활에 대한 글을 보니 어릴적 양궁부에 들어

    처음엔 고무줄 땡기는 연습에서... 나무 활 18파운드자리 였나... 그 걸로 연습했던 기억나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新]Akash..
    작성일
    06.10.06 22:19
    No. 4

    《위지(魏志)》에는 “고구려의 한 종족이 소수맥 나라를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맥궁이라는 좋은 활이 산출된다”라는 말이 맥궁에 대해서는 거의 유일한 문헌기록인데, 여기서는 그저 좋은 활이라고만 언급했기 때문에 주재료에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살았던 지형적 조건(높은 지대, 깊은 산, 추운 기후)을 고려해 볼때, 깊은 산에서 자란다는 박달나무로 만든 단궁(檀弓)이나 짐승의 뼈, 쇠붙이로 만든 각궁(角弓)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두 재료 모두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좋기 때문에 좋은 활의 재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구려변방의 예족과 소수맥족의 활인 맥궁이 위력이 가장 세다고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목의서
    작성일
    06.10.07 15:33
    No. 5

    활은.. 잘 모르겠지만..저희나라가.. 최강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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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2 월명신무
    작성일
    06.11.13 03:16
    No. 6

    1. 원이 성립하기도 한참 전인 고구려 시기에 군대를 무장시키기 위하여 페르시아지역으로 부터 말을, 동남아 지역으로 부터 물소뿔을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각궁이 원으로 부터 전래되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고대의 무역이라는 것은 국가차원의 대사업이었고 위험도가 높은만큼 막대한 이익을 보장해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상선을 무장시킬 능력이 있는 거대세력들에 의해서 현대인들이 흔히 상상하는 규모를 훨씬 초월하는 지역을 범위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국방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명대 조공무역을 위해 파견되었던 정화의 함대는 그 중 일부가 심지어 현재의 아메리카대륙 일부에까지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게 학계의 주장입니다.

    2. 흔히 애기살로 불리는 편전이 그 발군의 사거리와 관통력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극악한 명중률과 연사속도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편전은 사냥용 화살이 아니라 전쟁용 화살입니다.
    전쟁에서 활은 저격용 무기가 아니라 백병전 전에 적의 밀집대형에 대해 탄막을 형성함으로써 적의 수를 줄이고 대형을 와해하여 백병전에서 아군에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데 가치가 있는 무기입니다.
    따라서 명중률 같은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개별 조준사격 같은건 하지도 않을테니까요.
    수천명의 궁사가 한덩이로 뭉쳐서 돌진해오는 수만의 병력을 향해 쏘는 겁니다. 눈 감고 쏘지 않는 한에야 적어도 절반은 어디에 맞아도 맞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영국의 롱보우 부대의 경우 한 시위에 화살을 세발씩 얹어서 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임란때는 화차 처럼 아예 화살을 뿌려버리는 무기도 있었습니다.
    연사가 어렵다는 것도 어차피 일반궁시는 닫지 않는 장거리에 사용하는 무기이니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편전용 활이 따로있는 것도 아니니 일반 궁시의 사거리에 들어오기 전에 다만 얼마라도 적의 숫자를 줄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고 일반궁시의 사거리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일반궁시로 사격하면 되는 거니까요.
    보통화살로도 충분히 닫는 거리에서 굳이 편전을 쏘는 바보가 그다지 흔한건 아니었을 테니까요.
    오히려 편전의 최대 약점은 기본적인 조작이 숙달하기 어려워서 대규모 인원을 길러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대규모 인원을 편재해야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가 운용병력을 길러내기는 극도로 힘들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거죠. 그래서 그 무기로서의 성능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전쟁에서 크게 활약했다는 기록은 그다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3. 석궁의 경우 조선에는 부인노라는 무기도 있었습니다. 조작이 쉽고 다루기가 간편해서 여성이라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그런 이름이 붙었죠. 서양의 경우 교회에서 석궁의 사용을 금지하는 바람에 석궁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지만 동양의 경우에는 함선용의 대형 포궁부터 부인노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서양의 석궁이 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에 의해서였지 석궁 자체의 무기로서의 가치가 다른 것만 못해서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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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2 커엽냥이
    작성일
    06.12.12 18:41
    No. 7

    이런 자료올릴때에는 조사를 확실하게 하시길 자기 주장이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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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5 보랏빛하늘
    작성일
    09.01.18 12:01
    No. 8

    애기살은 임진왜란 때도 마지막에서나 투입되었던 우리나라 비밀 병기라고 하죠. 확실히 애기살이 정확성이 없을 수 있으나 애기살의 사거리를 생각해보면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애기살은 애초에 시야가 닿는 거리의 사거리를 가지고 잇는 것이 아닙니다. 적군의 활이 날아오기전에 우리가 먼저 쏘는 거죠 제가 조사 해본 결과 애기살의 사거리는 600미터 정도 라고 합니다. 과연 이보다 멀리 쏘아보낼수있는 활이 다른 나라에 존재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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