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구공이라는 의미)는 봉의 일종으로 양끝을 굴게 하고 중앙이 가는 봉을 말한다.
중앙의 가는 부분을 잡고 양끝의 굵은 부분으로 적을 가격한다.
타격병기의타격력은 무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양쪽 끝을 굴게 하였다.
소재로는 나무, 철, 동을 사용하며, 나무를 한가운데 넣고 바깥을 철로 입혀 위력을 강화시킨 것도 있다.
여러 저 중 전체를 철로 만든 것이 가장 공격력이 뛰어났는데, 갑옷으로 무장한 적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가 있다.
저봉(杵鋒)은 송나라 때 저의 일종으로 양끝의 굵은 부분은 나무를 한가운데 넣고 바깥에 철을 입힌 것이다.
전체 길이는 150cm이고 타격부의 길이는 각각 약45cm이며 양 끝에는 15cm 정도의 예리한 칼날이 부착되어 있다.
양 끝의 타격부 전체에는 살상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길이가 약 15cm되는 날카로운 철못이 박혀 있다.
역사와 세부 내용
저는 절구와 함께 곡물을 찧기 위해 옛날부터 사용해오던 도구로, 전설에 의하면복의()가 만들었다고 하고, 황제의 신하인 옹부가 만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저의 용도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공법인 판축(版築)은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벽이나 담장을 두르는데, 이 흙을 벽돌로 만들기 위하여 짓이길 때 이 저를 도구로 사용한다.
성벽을 판축으로 만드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어서 저는 이런 저런 이유로 군대와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병기로서는 그다지 오랫동안 사용되지 못했다.
저봉을 『무경총요』에 찾아 볼 수 있는 것처럼 저 형태의 타격병기가 출현한 것은 송나라 때의 일이다.
중무장 기병이 유행하던ㄷ 이 시대에 저 형태의 타격병기는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적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무기로서 크게 유행되었으며, 철저(鐵杵)의 달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인물이 나타난다.
그 달인인 왕규(王珪)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왕규는 북송 사람으로서 왼손에는 철저, 오른손에는 철편을 휘두르는 무술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탕구트족 서하(西夏)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하였다.
1040년 서하군이 송의 요새를 포위하여 싸움이 한창이었을 때 적장의 도전을 받은 왕규는 적장의 창에 의해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왼손이 철저로 상대방의 머리를 공격하여 큰 부상을 입혔다.
계속해서 도전해 오는 적장의 창을 한 쪽 옆구리 사이에서 기세가 꺾인 서하군은 포위를 풀고 퇴각한다.
그러나 1041년의 호수천(好水川) 전투에서 송군이 대패했을 때 왕규는 포위상태에 놓인 사령관을 구하기 위하여 서하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1백 명 이상의 적을 쓰러뜨리고 분전하였지만, 눈에 화살이 명중하여 퇴각하게 되고 이 상처가 깊어져 마침내 사망하게 된다.
소설세계에서는 『봉신연의』의 위호(韋護)가 사용하는 항마저(降魔杵)가 저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위호는 불교의 호법신(護法神) 중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위타천(韋馱天)을 모델로 하는 인물로서, 『봉신연의』에서는 곤륜십이선(崑崙十二仙)의 한 명인 도행천존(道行天尊)의 문하생으로 나온다.
은나라와 주나라가 천하를 다툴 때 위호는 스승의 명을 받들어 주나라 군사(軍師)강자아(姜子牙)의 밑으로 들어간다.
위호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항마저를 사용하여 은나라를 편드는 선인(仙人)들 싸움에서 큰 활약을 한다.
이 항마저는 단순한 저가 아니고 은사인 도행천존이 심혈이 기울여 만든 법보(法寶)로서 굉장한 법력을 지닌 가공할 병기였다.
그냥 가지고 있을 때는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지만 적을 명중시켰을 때는 태산(泰山 :산동성에 있는 명산)처럼 무겁게 되어 일격에 적을 분쇄하고 만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