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즈나이트와 퇴마록을 읽고 처음으로 소설을 썼던 때입니다.
그전에도 만화를 그리고 쯔꾸르로 게임을 만들며 세계관을 만들고 캐릭터를 만드는 걸 너무 좋아했기에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25년 전 제 첫 소설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채, ‘보물상자’라 이름 붙은 라면박스 속에 고이 모셔졌습니다.
그리고 2000년, 20세기 마지막 해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지 저는 게임 개발사에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덜컥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 어필했으니 첫 업무는 게임 시나리오를 짜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6개월 만에 도망치듯, 회사를 뛰쳐나왔습니다.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한다고 잘하는 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깨달았죠.
그래도 좋아하는 걸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세고 뭐가 됐든 인생을 어딘가에 갈아 넣기에 충분한 성격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이력서 한 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실패만 있었습니다.
열 개의 게임에 참여했지만, 남들이 기억해 줄 만한 게임은 없었습니다.
세 개의 웹소설을 완결 지었지만, 수익은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라는 사람들과 연을 끊고 사람 구실하라는 가족들을 등지고 어느새 혼자 남았습니다.
제 글을 읽고 재밌는지 물어볼 사람조차 없습니다.
’도대체 인생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싶다가도 그렇기에 더 재밌는 글을 쓰려면 어째야 하나 고민합니다.
나이를 많이 먹었습니다.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삐그덕거리는 몸뚱이를 어쩌지 못할 만큼 여러 병을 달고 살지만, 아픈 몸보다 더 아픈 건 마음입니다.
요즘엔 이대로라면 죽을 때까지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진 못하겠구나.
하는 불안감에 잠에서 깨기도 합니다.
할 만큼 했다. 하는 생각이 든다면 멈출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 업계를 떠난 게 그 이유였으니까요.
주절주절 쓰다 보니 이게 소설 홍보인지 넋두리인지 모르겠네요.
어느 게시판에도 비슷한 느낌의 글을 썼더니 소설보다 게시글이 재밌다는 웃픈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이번에도 그럴까봐 두렵습니다.
새벽 감성에 그만 주절 거리고 소설 제목이나 투척하고 가겠습니다.
지망생 여러분. 작가 호소인 여러분. 힘내십쇼.
아포칼립스 공작가 망나니가 힘을 숨김
https://novel.munpia.com/36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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