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현비
작품명 : 하룬(1~11권 출간 중)
출판사 : 로크 미디어
동네 책방 주인이 요즘 최고라고 극찬한 책입니다.
문피아 골베 부동의 1위 그리고 감상란, 비평란을 통한 개념작 혹은 수위급 게임소설이라는 많은 호평들, 거기에 11권까지 출간된 인기작이라 읽어봤습니다.
그럭저럭 볼만 했지만 한편으로 장르 시장 수준이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엿볼 수 있는 한 지표가 되었습니다.
간단한 시놉시스는 무시무시한 괴물들과 오염된 공기의 외부환경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 갇혀사는 먼 미래 사회. 그곳에서 최하층민으로 희망없이 살던 주인공에게 어느날 고성능 에고형 게임캡슐이 선물로 전해지며 벌어지는 인생역전 이야기쯤 될까요.
여기서 게임과 현실이 연동된다거나 현실에도 게임과 비슷한 몬스터가 등장하는 등 재밌을만한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그래서 설익은 문체- 중에서도 칼로 입천장만 뚫으면 끝장나버리는 중요하지만 너무나 단조로운 위기 상황, 아다츠 미츠루를 만분의 일쯤 떠올리게 할 뻔한 다수 여성체들와의 미묘한 애정 묘사, 영어식 무공 설명이나 정령 이름 등에서 보여지는 난감한 작명센스 -는 처녀작가라며 십분 감수할 수 있습니다.
기교는 하루 이틀에 느는 게 아닐테고 차차 경험이 쌓이면 능수능란하게 독자를 적셔줄거라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아이템 즉 소재의 활용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소재에 대해 명확한 목적 부여가 되지 않고 흥미 위주로만 사용된다면 결국에는 고갈될테고 독자는 떠날테니까요. 더불어 작가의 발전도 힘들겁니다.
하룬에 대해선 '글의 구성 요소로서의 소재'와 '게임 속의 아이템' 두 가지 모두 짚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글의 소재는 명확할수록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집니다.
반전의 열쇠가 되거나 이야기의 전체를 관통하는 정수가 되거나 그 말고도 요소요소 작가 마음데로 사용하여 원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찰이 필요할테고 그게 작가의 과제이겠죠.
하룬에서는 '인공 수정 생명체'와 '에고형 고성능 게임캡슐'이 특히 중요한 소재입니다.
인공 수정 생명체는 도입부의 핵심단어이고 매권 마다 여러번 나오는 명칭입니다. 하지만 능력자 출현 빈도가 높다는 등의 몇가지 소소한 설정 아닌 설정을 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작가가 해당 소재에 대해 명확성을 갖지 못하다보니 인공수정생명체와 자연생명체 간의 비교 등을 통해 소재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끈임없이 나열만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게임이건 현실이건 등장인물의 9할은 인공수정생명체들 뿐입니다.
어쩌면 글의 후반부에 준비된 강력한 한방이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11권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죽어버린 소재를 되살리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또한 '에고형 고성능 게임캡슐'은 공간확장과 현실구현화기능이 부가된 거의 신급아이템입니다. 이정도면 정체가 궁금할 수 밖에 없고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축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저 흥미로운 소재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중요한 분기점에서 비슷한 기능의 자매가 하나 더 늘더니 이후로는 부하격인 안드로이드들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분명 좋은 소재라고 생각하지만 재탕되서 나열만 되니 흥미는 점점 삭감될 겁니다. 물론, 중간중간 "마스터(주인님!)"라거나 에고형 자매들간의 몰래 대화로 뭔가 있을법한 신호가 주어지기는 합니다만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결국 두 가지의 소재는 장식용으로 눈요기는 될지 모르나 소재로서 생명을 얻지는 못합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게임 속에서의 아이템 활용은 아득할정도로 암울합니다.
간단히 말해, 하룬에서는 화력한 이펙트와 함께 아이템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아공간으로 들어갑니다. 끝입니다.
부연하자면 주인공은 초반부에 고대정령을 얻습니다. 나름 매력적이라 잘만 사용하면 충분히 재밌었을텐데 잠깐 쓰다가 그냥 창고에 넣습니다. 그리고 물, 바람, 대지, 불의 정령을 차례로 획득합니다. 결국 5개나 되는 정령을 특별한 규칙없이 이따금 꺼내 쓰기는 하지만 거의 장식용에 가깝습니다.
전대 고수의 단검세트는 아이템이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요한 축입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주인공은 전대 고수의 단검세트를 거의 모왔지만 여전히 그냥그냥 사용하는 장식품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듭니다.
또한, 단검세트를 모으는 과정에서 보스급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희귀 가죽같은 제작재료 등을 추가로 획득하지만 대부분 창고행입니다.
그러는 틈틈히 이런저런 선행을 하여 원소, 정령, 마나석 등의 기능성 돌맹이들을 잔뜩 상으로 받습니다. 당연히 창고행입니다. 그래도 이건 사탕봉지에서 사탕 하나 꺼낸만큼은 사용하지만 새로운 기능성 돌맹이가 추가로 창고를 더욱 채울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11권까지 진행된 지금, 지난 몇 권의 분량에서 다뤄진 던전 에피소드를 통해 마법책 6권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템에 대하여 두근거리는 기대감은 쉽게 들지가 않습니다.
끝으로 레전드라 할만한 <드래곤 라자>에는 '마법의 가을'이라는 소재가 있습니다.
글의 전체를 관통하는 정수라서 책의 모든 내용을 지워도 이 단어 하나만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소재가 명확합니다. 그만큼 길게 길게 여운을 만듭니다.
최근의 익숙한 글로 <열왕대전기>에는 '책을 좋아하는 말기 암환자의 생존 욕구'라는 소재가 있습니다. 글 요소요소에 사용되며 설득력을 배가합니다.
비슷한 예로 게임 소설에는 <달빛 조각사>가 있습니다. '가난과 그로인한 지독함'이 소재일테고 역시 유효적절하게 사용됩니다.
하룬은 '약자였던 주인공이 금전과 실력을 키워 뭔가를 이루려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뭔가가 뭔지 모르니 주인공이 왜 강해지고 왜 돈을 벌고 무엇보다 왜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정관계의 여성체도 점점 늘고, 돈도 쌓이고, 무공도 쌓이고... 그렇다고 설마 장식품 수집이 목적은 아니겠지요.
여하튼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니 글이 또렷하지 못하고 흐물흐물합니다. 그럼에도 책방주인의 극찬처럼 요즘 최고의 책, 골베부동의 1위, 개념작 혹은 수위급 게임소설이라는 호평을 받습니다.
조금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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