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카르마이
작품명 : 전제군주
출판사 : 영상노트
미리니름이 산재합니다.
0.
<전제군주>가 전6권으로 완결되었다. 퓨전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아닌 전제주의를 표방하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그리고 완결권을 읽은 현재, 이렇게 평을 쓰고 있다.
본 평이 저자 카르마이에게 독(毒)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하를 기술한다.
1.
<전제군주>는 퓨전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잘 표현된 퓨전 판타지다.
주인공인 철민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다. 젊은 백수, 무기력한 나날, 궁핍할 정도의 생활은 그에게 '다른 세계로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하여 판타지 월드의 황제가 된 그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던 것을 꿈꾼다. '남자라면 한 번쯤 꿈꾸는' 절대권력자를 지향하고, 치열한 삶을 비추는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는 제목 그대로 <전제군주>다. 리얼 월드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판타지 월드에서라면 가능하다.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르는 절대군주를 지향하여, 결국 그것을 이루어내는 주인공.
<전제군주>라는 제목은 내용과 주제를 아우르는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전제군주>가 '퓨전 판타지'라는 장르에 가장 부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장르에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퓨전 판타지의 강점을 훌륭히 펼쳐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 '전제군주'는 주인공 알테인의 욕망의 정점에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황제야말로 그가 꿈꾸는 이상이다. 그리고 이는 엄연히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가 현대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두 가지가 정보의 양과 질이 과거와는 감히 비할 수 없이 방대해졌다는 점, 그리고 폭군의 등장을 가장 확실히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적은 시대에는 군주제로도 국가의 운영이 충분할 것이며, 또한 군주의 성품이 훌륭하다면 오히려 민주제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전제주의가 민주주의보다 반드시 뒤떨어진 국가체계인 것은 아니다. 전제주의와 민주주의는 엄연히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며, 다만 현대의 국가는 민주주의가 더 어울릴 뿐이다.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의 대립에는 항상 뒤따라오는 말이 있다.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전제주의 국가가 우민(愚民)이 다스리는 민주주의 국가보다 낫지 않은가"라고. <전제군주>는 이 말을 그대로 실현한 작품이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불편한 일일 수 있으나, <전제군주>는 모두가 오른쪽을 볼 때 왼쪽을 바라보며 쓰인 글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니 불편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
앞서 말한 바를 연장해 보자.
<전제군주>의 모토는 '뛰어난 군주에 의해 이루어지는 전제주의'라 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가장 이상적인 국가 운영이라 할 수 있으며, 배경인 중세 수준의 시대에는 가장 어울리는 국가 체계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 형태는 분명 민주주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나올 수 있는 반박이 있다. "성군의 다음 대 군주 또한 성군일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매 군주마다 어질고 뛰어나다면 그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리얼 월드의 역사가 증명한다.
민주주의가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이야말로 절대권력자의 탄생을 견제하고 무능력한 지도자의 선출을 방지한다는 것 아니던가. 지도자가 유능하지 못한 한이 있더라도 폭군의 등장만은 확실히 막는다는 점은 전제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한 민주주의의 특징이자 의의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비추어 <전제군주>를 보면 뒷이야기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주인공 알테인은 어질고 뛰어난 군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의 아들이, 그의 손자가 황제가 되어도 여전히 뛰어난 군주일까? 리얼 월드의 지식과 소양을 갖춘 알테인의 뒤를 잇는 황제가 알테인만큼 뛰어난 군주가 될 수 있긴 한 걸까?
오히려 <전제군주>의 앞이야기를 상기해 본다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기까지 하다. 건국황제의 서거로부터 500년이 지난 <전제군주>의 현실은 황권이 빈약하다 할 만큼 국가체계가 근본적으로 뒤틀려있다. 그것은 엄연히 전제군주제의 수장인 황제의 탓인즉, <전제군주>의 후일도 그렇게 될 것은 또한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무능력한 이가 황제가 되는 순간부터 시작될 것이며, 전제군주제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4.
<전제군주>는 겉보기에는 정상적으로 완결된 소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자인 본인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제군주>는 조기종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전제군주>의 배경은 전체적으로 체르나 제국과 필리얀 왕국이다. 그 외의 왕국이니 공국이니 하는 국가도 여럿 나오긴 하나,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상의 배경은 두 국가로 좁혀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완결권인 6권에 들어 갑작스레 앞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던 대륙 북부의 왕국들이 등장한다. 실로 뜬금없는 등장이라 작위성마저 의심될 판이다.
또한 '2만의 요정'도 전혀 언급된 바 없는 설정이다. 건국황제인 글라인 대제에 대한 암시는 5권까지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숙원이라던 대륙 통일 또한 마찬가지다.
실로 파란의 6권이었다. 북부 연합의 침공도 갑작스러웠고, 평범한 인물로 표현되던 시리스 후작의 변화 또한 뜬금없는 사건이었다. 요정도 그렇고, 글라인 대제의 유산도 그러했다.
이 모두를 '완결을 위한 행보'라고 표현하는 것은 평자로서는 무례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을 조기종결을 위한 갑작스러운 변화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전제군주>라는 작품 자체의 플롯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구조에서 결말만이 홀로 괴리된 이 상황을 어떻게 납득하겠는가.
5.
<전제군주>를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라 하면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군주제와 민주제를 고찰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욕망인 절대권력을 지향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사건과 사건의 연계가 긴밀성(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 작위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점, 그 외에도 숱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전제군주>는 특이성에 주목해야 한다. 전제주의를 표방하는 좌향적 성향에 관심갖지 않으면 별 의의 없는 평범 또는 그 이하의 글에 휩쓸릴 것이다.
<전제군주>는 저자의 고심이 표현되지 않은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전제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교를 야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을 만하다. 다만 이 점 하나만은 높이 평가한다.
덧. 영상노트의 교정능력이 통탄할 수준이라는 점은 심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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