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예전 시대로 갔으면서 혁명이니 무자비한 정치탄합을 하는 것들을 할거면 현대물을 쓰지. 굳이 대체역사소설을 봐야 하냐는 의문인거죠.
라고 하셨는데, 저는 조선 시대에 민주주의니 뭐니 하는 것보단 입헌군주제쪽으로 나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봅니다.
민주주의라면 국민들 전반적인 수준부터 교통, 통신의 발달이 필요죠. 도시국가도 아니로 하나의 국가를 다스리는데 교통 통신도 미비한 상태에서 무슨 민주주의닙까...라는 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섭정으로써 권력을 잡은 주인공이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실을 없애거나, 왕조를 교체하는 건 조선 시대에 말도 안 돼는 일이죠, 솔직히...)
또 환빠드립인지 뭔지 하시는 것도....뭐, 현실에서도 우리나라가 강대국이었다면 밀어붙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강대국들의 논리가 먹혀들어가는 것처럼 환빠드립도 소설 속의 조선이 강력해지니깐 축적된 힘을 방출하고 싶은데 무턱대로 '걍 공격 ㄱㄱ!'이러는 것보다 '오! 만주가 오~래전 우리 조상들의 영토였다! 고토회복!'이러는 것이 '명분'면에서 낫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 같은데. 무조건 환빠다 뭐다 하시는 것보단....
요즘에 민족이나 잃어버린 역사를 말하면 그냥 '환빠'라는 이상한 단어로 싸잡아서 매도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사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그럼 어떤 역사를 제대로라고 생각하시는건지... 사료들을 일제가 왜곡하거나 다 없애버린 후에 골수 친일파들이 주창한 실증주의사관은 그럼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그네들은 친일빠라고 해야하는건가, 아니면 실증빠?
결국 대체역사소설을 쓰려면 실증주의사관에 의한 친일빠에 역사관이랑 이른바 환빠로 대변되는 민족주의사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데, 저라면 민족주의사관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건데, 애신각라가 드립이라는건 어떤 확실한 근거가 있는건가요? 예컨대 유력한 학설이 나왔다던가 하는식으로 간단한 링크라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환독 풍기는건 무조건 거부입니다. 옆집 돌쇠가 정력에 좋다는 낭설을 듣고는 똥을 먹으면 나도 먹겠다는 분들은 먹으세요 전 거부하겠습니다. 환단고기 추종자들이 줄줄이 터뜨린 병크를 모르는채-혹은 알고도- 옹호하는 분들은 공정하고 현명하고 우월하게 양시론 물타기 하세요. 타국의 역사조작이 지금까지도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 괴괴한 음모론 믿는 분들은 믿으세요. 난 거부할랍니다. 대화도 논의도 거부합니다. 아직 디씨 역갤이 디씨 최고의 학술갤이던 시절부터 환빠들 봐왔고 고조선 피라미드의 변천사 같은건 직접 겪었습니다. 나는 질렸음 이제...사족 달자면, 거짓부렁 지어내서 거기에 안주하고 싶다는 말은 그렇게 당당하게 하는게 아닙니다. 한국사는 그 자체로 자랑스러운 민족의 자취입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명문에 붓도 아니고 싸구려 싸인펜으로 가필하려들지마세요.
저기, 일몰왕님.
제 글 제대로 읽으셨나요.
분명 '거짓부렁은 안되지만'이라고 썼습니다.
제 글 어디가 그렇게 일몰왕님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너무 공격적인 건 아시나요?
또 환빠가 뭔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환빠라고 비난하지 맙시다....라는 것이 제 댓글의 요지였는데 일몰왕님께선 무조건 '환빠 거부'라고 하시면 댓글을 다시는 이유가 그저 '난 진짜진짜 환빠 싫어. 아예 말도 꺼내지마!'라는 식으로 들리는데, 제가 맞게 이해했나요-_-
왜 환빠가 안 좋은지 설명해주시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환빠라는 것은 자기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걸로 논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환단고기라는 역사적 근거없는 소설책으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애초에 그 단어 자체가 욕인데, 환빠라고 당당하게 말하신 분은 아무래도 환빠를 '자기 역사에 긍지를 가진 사람, 그걸 좀 과장하는 사람'으로 알아들으신듯합니다.
몇몇 환빠는 환단고기에 기초하여 과거 우리나라가 러시아 땅까지 다 먹고 유럽에 진출하려했다는, 간디가 BE폭력 논하는 소리와 같은 레벨의 소리를 늘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돋지요.
님한테 무슨 악감정 있는건 아닙니다. 거의 7년 전부터 환빠에 시달려서 환 소리만 나와도 말이 곱게 안나오네요. 황당한 역사 왜곡을 통해 '우리 민족은 사실 고대의 킹왕짱이었다'라고 요약할법한 주장을 해대는 지적 장애인 무리가 환빠입니다. 그들이 숭배하는 환단고기, 규원사화는 모두 위서 판정을 받았고 대동강 문명설 같은걸 주장하는 어찌보면 환빠들이랑 코드가 맞는 북한에서도 환단고기는 부정했지요. 하지만 슐레이만의 트로이 발굴이 어쩌구하며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사례를 끌어들이며 헛된 개망상임이 확실해도 그 진위 여부를 가려야한다(이미 진위 여부를 가려서 판정이 났는데도)고 주장하고, 혹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그래 이거 개망상이야 근데 이걸로 민족 자긍심 고취하면 되는거 아냐? 같은 말도 꺼내기 싫어지는 주장을 하는게 환빠입니다. 대충 요약은 이정도 밖에 못하겠네요.
1. 역사를 통해 자부심을 가지는거 좋지요. 그런데 조작된 역사를 통해 자부심을 갖느니 차라리 안갖는게 좋을 것 같군요. 임나일본부설 믿는 일본인이나 동북공정 믿는 중국인들을 비웃지는 못할망정 같은 수준이 되자뇨, 옆집 개똥이가 똥을 먹으니 우리도 똥을 먹자는 소리 아닙니까.
만약 증조부가 친일파였다고 가정합시다. 참 욕이 나오죠.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숨기고 돈을 써서 '우리 증조부님은 독립투사였뜸!' 이라고 한다면 그게 자랑스러울까요. 하물며 사실 그대로의 우리 역사도 충분히 자랑스러운데 뭣하러 굳이 날조된 우주제국을 만들어야 합니까.
2. 실증주의와 뉴라이트는 그다지 관계 없습니다. 사료와 유물을 통한 교차대조를 통한 검증과정이 '실증주의' 라면, 이것은 역사학의 기본 토대일 뿐입니다. 역사학에서 모든 것을 판가름 하는 것은 사료일 뿐, 어줍잖은 일제의 조작이 먹히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학계가 독립 후 여태까지 해온것들이 바로 일제가 뿌린 독버섯들을 뿌리뽑는 작업이었고, 환단고기니 재야사학자니 떠들던 자들이야말로 일제시대때 일본에 부역하던 자들이지요.
옛날 일부 일본 사학자들은 '왜가 바다를 건넜다' 라는 기록을 토대로 임나일본부설을 수립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곧장 삼국사기, 삼국유사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까지 총동원해서 '그딴거 없다' 라는 반론을 날렸죠. 사료싸움에서 관광탄 일본아저씨들은 기울어가는 대세를 어떡하든 해보자고 온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삽질을 벌였지만 결국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증거를 찾진 못하고 임나일본부설은 관광탔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역사 검증 과정입니다. 하물며 환단고기같은 책은 검증은 물론이요 위서라는 증거가 아주 쏟아집니다.
3. 애신각라는 만주어의 음차에 불과합니다. 설사 애신각라 = 신라를 사랑하자 라는 뜻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애신각라 = 신라 후손 = 여진은 우리역사 라는 논리는 역대 고려왕들은 당황제의 후손이라 주장 = 고려는 중국사 라는 논리 또한 적용되는 셈입니다.
4. 환단고기를 숭배하는 분들이 바로 '지나친 민족주의' 를 보여주고 있기에 경계해야하는 것입니다. 환단고기를 숭상하고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거부하는 반응의 근저에는 결국 간도수복, 고토회복과 같은 민족주의의 결정체가 자리잡고 있죠. 애초에 잃어버린 역사같은게 없는데 뭣하러 가공의 국가를 끌어들이고 남의 민족의 신을 끌어들어옵디까. 우리민족의 역사가 보잘 것 없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라 봅니다.
치우는 묘족의 신입니다. 우리랑은 눈꼽만큼도 관계 없습니다. 그리고 삼황오제 부분은 사기를 쓴 사마천조차 '역사가 아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세조가 역사서를 불태웠다? 진시황 이래로 <분서> 는 폭군의 상징이자, 언론탄압의 대표적 방식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그 어떤 나라들보다 신권이 강력하고, 언로(言路)를 중요시 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조선에서 만약 분서를 명령한다면 제 아무리 세조라 해도 목이 붙어있지 않을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기록은 남아있거나요. 세조는 사가(私家)에서 보유하고있는 몇몇 종류의 책들을 수집하여 관청에 수납하라는 명령은 내린 적 있으나 분서는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아 그리고 간단히 생각을 해보세요. 어쨌든 소위 '나는 환빠가 싫어요' 하는 분들도 조선시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역사서가 대부분 소실되었다는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겁니다. 왜 하필 남은게 영 이상한 삼국사기니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자 그럼 그런 환빠를 극도로 경멸하는 갑이란 분이 조선시대로 날라갔다고 생각해보죠.
상황은 이미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뿌리깊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갑은 조선을 강국으로 키울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삼국사기류와 그에 반대되는 '우리민족 짱쎄다'라는 견지에서 쓰여진 역사서가 있었다고 치죠.(당연히 이당시만해도 있었을겁니다. 그 진위를 불문하고 말이죠.) 갑은 당연히 후자의 역사서는 보고서 코웃음을 치겠죠. 순 거짓말이라고요.
갑의 계획은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부국강병을 이룬후 찝적대는 중국을 발라버릴 생각입니다.
이때에 갑은 어떤 사서를 택할까요? 갑이 어떤것을 진실이라고 믿든지간에 후자를 택할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도 이제는 후자를 진실이라고 믿어의심치않아야합니다. 스스로 하늘을 우러러 꺼림직함이 없어야 모든 일에 당당해지는거죠.
이건 정치적으로 당연한 선택일수밖에 없습니다. 환빠건 환빠까건 이건 필연적인 선택이죠. 대체역사류를 보시면서 그게 거슬리시는분은 그럼 어쩌자는건지 사실 이해가 안갑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바는 제가 이해하기로 이거입니다.
조선조는 선대의 역사서를 민간이 소지하거나 연구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수거하여 태우기도 하였고, 설혹 태우지 않더라도 따로 떼어 보관해서 민간과 격리시켰다는거죠.
그럼 보관했으니 괜찮지 않느냐 하면, 그 의도가 설혹 선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처참하였다는겁니다.
그게 한곳에 그런식으로 모아놓았기에 임진왜란등의 외침이 있을때마다 홀랑 타버리고 약탈의 대상이 되었고, 그나마 남아 있던 사료들도 일제가 약탈해가기 쉽게 되어서 결국 남아나는게 없게 되었다는거죠.
저 태종실록이란게 조선왕조실록일텐데 저거는 거의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합니다만..
환단고기 이야기만 나오면 역시나 리플란이 불이 나네요.
환단고기 역사관은 고대에 한반도를 포함해서 일본, 만주, 중국의 일부
혹은 대부분을 아우르는 커다란 국가가 있었고 우리가 그 정식 계승자라는 게
핵심입니다. 근데 이런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과거에 하나의 큰 국가를 형성했던 민족이(당시에는 민족이란 개념이 없었지만
편의상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갈라진 채로 문화와 언어가 이미
다르게 변화했다면 대체 어떤 국가가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환국 논리가 옳다면 지금의 일본도 중국도 우리나라도 과거에 하나였던
형제국 같은 거니까 이제 하나로 뭉쳐도 상관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죠?
네, 이거 일제 시대의 대동아공영론에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입니다.
이 두 논리의 핵심구조는 우리나라의 고대역사에 매우 자부심을 가진 분들의
열렬한 환호와 거의 동일합니다. 차이점은 단지 누가 주체냐일 뿐입니다.
즉,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대한다면서 환국이론을 들고 여긴 사실 과거 우리 땅이었다라고
외치는 것이 오히려 동북공정의 논리를 도와주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현재 우리가 중요시 해야할 것은 과거의(일단 진위를 떠나서) 국경선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 간에 이어져 온 문화와 정신이라 하겠습니다.
과거에 큰 연관이 있었다 하더라도 언어와 문화가 크게 나뉘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면 그건 서로 존중해야 할 다른 역사이고 문화로 봐야지, 종주를 따져서
원주인을 가리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죠.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큰 영토를 건설해놓았다가 그걸
시간이 갈수록 다 까먹고 그때의 기억마저 모조리 잃어버린 바보들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주변국에 좀 많이 치여서 고생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만큼이나
나라를 발전시켜 놓았고 앞으로도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덧없는 환국 이야기에 목숨 걸지 말고 정치와 선거에 더 관심을 쏟읍시다.
그리고 이유립 선생님께서 저술한 환단고기는 이미 역사학계에서 위서 판정을 받았습니다.
위서란 내용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서지정보, 즉 출판연도, 저자, 판본 등의 정보가
책에 써있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조작의 흔적이 있었거든요.
이건 선거에 나온 후보자가 약력을 위조해서 나온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그 후보자가 능력 있고 훌륭해 보이더라도 약력위조는 선거의 약속을 시작부터
어긴 것이라 일단 떨어트려야 하죠.
그래서 환단고기는 현재 역사적 사료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오해하시는 것 중 하나가 환단고기가 수천 년 전부터 전해내려온
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환단고기란 책은 1970년대에 튀어나왔고, 그 이전에는
어떤 문건이나 기록에도 그 언급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건 수천 년간 비밀리에 구전되었다가 그때 글로 엮어서 그렇다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근데 이 주장은 환단고기를 역사로 접근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거기다가 환단고기가 처음 국내에 나왔을 때는 별 관심을 못 받았다가 일본어로
번역된 번역본이 다시 한글로 번역되어서 국내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또 해석과 번역 오류의 논란이 벌어집니다만 더 따지진 맙시다.
사서란 아무리 유실된다고 해도 크던작던 다른 어딘가에서 그 존재의 흔적이
남아있게 됩니다.
그 복잡한 기록들을 파고들어서 관계를 밝혀내는 게 역사학자들의 일 중 하나입니다.
사학자들 굉장한 사람들이에요. 그냥 놀고먹으면서 선배가 했던 거 똑같이 베껴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식민사학자라 환단고기를 상대 안 하는게 아니라
환단고기가 역사학이라는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올 자격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겁니다.
명분을 만들거면 백도라지님 처럼 해야죠. 찬란한 제국이였나 광할한 제국이였는지 기억은 안나는데요. 바이칼호를 접수해야 한다고 주인공인 조선왕이 신하들에게 역설했는데 이는 우리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하들은 뭔 뜬금없는 소리를 들은 듯 하나 폐하가 그렇다면야..라고 러시아를 정벌하는데요. 이런 소설에 나타난 상황묘사를 통해 바이칼이 민족의 성지운운은 그냥 전쟁을 위한 주인공의 억지명분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인종은 정말로 그게 사실인양 서술해나가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역사와 픽션을 구분못하는게 나타나네요.
제가 말한건...... 명분이 아니라 역사입니다...
고요한 아침님....
<a h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D%83%9C%EC%A2%85+17%EB%85%84+6%EC%9B%94+1%EC%9D%BC&keyword=%ED%83%9C%EC%A2%85+17%EB%85%84+6%EC%9B%94+1%EC%9D%BC
target=_blank>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query_ime=%ED%83%9C%EC%A2%85+17%EB%85%84+6%EC%9B%94+1%EC%9D%BC&keyword=%ED%83%9C%EC%A2%85+17%EB%85%84+6%EC%9B%94+1%EC%9D%BC
</a>
저 내용이 어떻게 어떻게 사서를 불살르는 내용이 되는건지 설명 좀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장례,제사 절차를 중요시했던 유교적인 내용의 논쟁 후 군소의식을 하는 파들의 책들을 불살랐다는 내용인 것 같은데.... --;
그 원문의 번역을 보면 서운관의 구장(잘 보시면 여기의 장은 장례장자가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보관해왔던이라고 해석하면되겠죠)의 참서(참언을 적은책)를 불사르라고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밑에 내용을 잘보시면 알겠지만 구장의 참서이하에서는 장례이야기가 아니라 도참, 비기에 관한 책을 논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네들이 논하는 참서라는거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고대사에 관한 책이 있었을 거라고 하면 과연 억측이겠습니까?
또 제가 링크한 곳에 글을 잘 읽어보시면 조선왕조실록 여러곳에서 계속해서 민간에서 논하거나 연구하지 못하다록 역사책을 거둬들인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위에도 썼듯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바는 그런식으로 모인사서들이 결국 임란이나 기타 외침을 통한 소실과 일제시대의 역사왜곡을 더욱 쉽게 하였다는겁니다.
지금 고려왕조실록조차도 임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과연 고대사의 책들이 지금 남은게 다라고 생각하시는거냐는겁니다.
원래 무척 많았을 것들이 조선시대의 정책으로 소실되었다는 점, 일제강점기하의 치밀한 민족 말살정책으로 약탈되었다는것은 사실이라는거죠.
지금 서적이름만 남아서 전해오는 역사책만해도 많습니다. 고작 일제가 인심써서 남겨둔 삼국사기따위만을 믿고 정설로 따른다는것은 좀 이상하다고 봅니다만.
그런 건 댓글로 일일히 써줄 순 없고요.
<a href=http://orumi.egloos.com/ target=_blank>http://orumi.egloos.com/</a>
<a href=http://xakyntos.egloos.com/ target=_blank>http://xakyntos.egloos.com/</a>
이쪽에서 일독을 권합니다
야스페르츠님의 연혁은 잘 르지만 초록불님은 서강대 사학과(유일하게 화랑세기가 진서라고 생각하는 학교)출신에 역사책들도 몇권씩 집필하셨으니 이해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부디 개안을 하시길
초록불님은 환독들의 논리를 타파한 글들을 블로그 첫장에 정리했으니 펼쳐보시면 됩니다
장례제도 맞습니다. 조선왕조 실록 원본에 보면 그 내용 시작이 이렇죠.
“옛날에는 천자(天子)는 7개월, 제후(諸侯)는 5개월, 대부(大夫)는 3개월, 사(士)는 유월(踰月)4532) 이어야 장사지냈는데,
.........<중략>..............
서운관書雲觀에 간직하고 있는 참서讖書 두 상자를 불살랐다. 풍속이 전조의 습관을 인습하여 음양 구기陰陽拘忌를 혹신하여 부모가 죽어도 여러 해를 장사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대부분의 환단고기 관련 글들이 사서의 일부를 복사해서 그 부분만을 자의적인 해석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상황이고 그것에 혹해서 정말인양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들이 드는 근거가 제대로 됐나 확인만 해도 대부분 탈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죠.
조선왕조실록은 어느 포탈싸이트 가서 검색만하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 한국에서 사서 데이타 베이스 구축이 가장 잘된 역사책이니 저런 글 읽지 마시고 직접 조선왕조 실록 읽어 보세요.
그리고 도,참서 하시니 생각나는데 아예 국가 정권 자체가 넘어간다는 왕조시대에 가장 위협적인 정감록 같은 책도 다 없애지 못해서 아직까지 내려 오고 있는데 단지 역사서 같은걸 조선왕조가 어떻게모조리 없앤다는 건가요?
장제(葬制)를 의논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옛날에는 천자(天子)는 7개월, 제후(諸侯)는 5개월, 대부(大夫)는 3개월, 사(士)는 유월(踰月)4532) 이어야 장사지냈는데, 이제는 간혹 유년(踰年)4533) 이 되어도 장사 지내지 않는 자가 있으니, 심히 고제(古制)에 어긋난다. 또 가장(假葬)4534) 한다고 일컬으며, 들판[原野]에 두고서는 ‘아무 해[某年] 아무 달[某月] 아무 날[某日]은 어느 아들[某子]·어느 손자[某孫]의 생일(生日)을 범하므로 누구누구[某某]에게 표적이 된다.’고 하면서, 그 자손의 이해(利害)를 불러가며 헤아리니, 그 자손이 많은 사람은 혹 2년에서 3년에 이르도록 장사지내지 않는 자도 또한 많게 된다. 만약 사(士)는 유월(踰月), 대부(大夫)는 3개월에 장사지낸다면 상사(喪事)가 미비할 것이니 이것 또한 염려가 된다. 그러나 전조(前朝)4535) 의 말기에 3일장(三日葬)을 행한 자도 있었으니, 어찌 그 자손의 이해를 가림[擇]이 있었다 하겠는가?”
예조 판서 변계량(卞季良)이,
“3일장(三日葬)은 고제(古制)가 아니니, 청컨대, 5월·3월·유월(踰月)의 제도를 따르게 하소서.”
하고, 이조 판서 박신(朴信)이,
“음양가(陰陽家)에서 제가(諸家)의 장서(葬書)를 모았기 때문에 이론(異論)이 봉기(蜂起)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誘惑)하였으니, 장서(葬書)를 모두 모아서 서운관(書雲觀)으로 하여금 그 대요(大要)를 추리게 하고, 기타의 괴이한 서적은 모조리 없애고 쓰지 말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미혹을 막으소서.”
하였다. 임금이,
“법제(法制)의 창립은 모름지기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개정하지 않게 하여야 하는데, 갑자기 법제를 세우게 되면 이것이 무너짐도 반드시 빠를 것이다. 경 등은 예전의 장사지내던 법에 의하여 제도를 정함으로써 영구히 전할 것을 도모하라.”
하니, 조말생(趙末生)이 예조(禮曹)의 장계(狀啓)에 의거하여 아뢰었다.
“대부의 장례는 3개월, 사(士)의 장례는 유월(踰月)의 제도로써 하소서.”
임금이,
“이것은 진실로 미법(美法)이다.”
하고, 대신(大臣)으로 하여금 의의(擬議)하여 정하게 하니, 좌의정 박은(朴訔)이,
“장례에 관한 서적으로 괴이한 것은 불태워 버림으로써 사람들의 미혹됨을 막으소서.”
하였다. 변계량이 말하기를,
“서운관에 있는 괴서(怪書)는 모조리 불살라 버릴 수 있으나, 사사로이 간직한 괴서 같은 것을 어찌 다 불살라 버릴 수 있겠습니까? 법을 세우게 되면 사람들이 스스로 복종할 것입니다.”
하니, 박은이,
“사람의 사삿 연고란 다단(多端)합니다. 서운관과 함께 통행(通行)할 장일(葬日)을 의논하게 하되, 만약 결정된 것이 그 달 안에 연고가 있으면, 연장(延葬)하는 법도 아울러 논하게 한 뒤에 괴서(怪書)를 모두 불살라 버리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물러가서 다시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고, 또 말하였다.
“내가 서운관 구장(舊藏)의 참서(讖書)4536) 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있다는 말인가? 내가 비록 불민(不敏)하지만 두루 제왕(帝王)의 행적을 보았더니, 참위(讖緯)의 설(說)을 논자(論者)들은 모두 취하지 아니하였다. 술수(術數)로 말하면 수(數)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지만, 참위 같은 것은 허탄(許誕)한 데에서 나온 것이라, 심히 믿기에 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와 같은 총명을 가지고도 오히려 도참(圖讖)에 미혹되었으므로 논자들은 이를 비평하였는데, 이것은 광무제가 도(道)에 불순(不純)한 때문이었다. 우리 조정에 이르러, 참서(讖書)에 말한 바, 목자(木子)4537) ·주초(走肖)4538) 의 설(說)은 개국 초(開國初)에 있었다. 정도전(鄭道傳)은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호사자(好事者)4539) 가 만든 것이다.’하였지만, 마침내 이 책을 따르게 되니, 조정의 대신들도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정안군(靖安君)으로 있을 때에는 이것을 믿지 않았는데, 천도(遷都)하는 날에,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이 심히 이 책을 믿어 도읍을 모악(母岳)4540) 으로 정하고자 하였지만, 나만이 믿지 아니하고 한양(漢陽)으로 도읍을 정하였다. 만약 참서를 불살라 버리지 않고 후세에 전한다면 사리(事理)를 밝게 보지 못하는 자들이 반드시 깊이 믿을 것이니, 빨리 불살라 버리게 함이 이씨(李氏) 사직(社稷)에 있어서 반드시 손실(損失)됨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생각을 해보죠. 과연 옆에서 빤히 보고서 사초를 적고있는데 그 앞에서 역사책을 불살라 버리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과연 유교적인 문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도참이니 비기니 하는것들, 고대사나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설파한 사상서, 이런것들이 안들어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링크건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래서 그런류의 역사책이나 이런거 다 거둬들이라는 명을 여러번 내리죠. 분서까지는 아니지만요.
그리고 고대사와 같은 연구를 민간에서 못하게 거의 막습니다.
왜 막았을까요. 뭐 그 이유야 여러개지만 결국 중국과의 관계가 계속 껄끄럽기때문이겠지요.
그럼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게 왜 중국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까요. 지금 말대로라면 고작 한반도안에서 지지고 볶는 민족이었는데, 왜 통큰 대륙인들이 불쾌해합니까.
뭐 그 이유야 결국 공상이라고 몰아붙일테니 여기서 그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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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계속 말씀드리는것은 결국 여러 조선이후 사건들로 인해서 사서가 민간에서 거의 사라지고 새로운 역사연구는 거의 불가능한 반면에 예전의 사서들은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는겁니다.
그곳에 불이라도 나거나 힘쎈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있으면 바로 끝장이란거죠.
계속 말씀드리지만 고려왕조실록 이거 지금 찾을수 없습니다. 임란때 소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삼국시대 사서들이라고 멀쩡했겠느냐는겁니다.
게다가 그나마 남았던 것들도 일제시대때 36년간 지속적으로 우리 사서들을 약탈해갔습니다. 이넘들은 아예 양반집을돌아다니면서 수색을 해댔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사서들은 결국 극히 일부분이라는거 동의하시지 않는분이 계신거 같은데 뭐 서로 생각이 다르니 어쩔수 없죠. 다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관이 중요시하는건 역사서의 보호가 아니라 사관의 소신의 지킴입니다. 마침 본문에 언급되는 태종 이방원과 사관과의 일화에서 그 내용을 잘 알수 가 있죠. 유명한 일화이니 잘 아실거라 생각해서 굳이 쓰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고대의 유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는 건 이상한게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특별하게 잘 보존되지 않은 이상 종이나 비단 같이 잘 삭는 재료로 만들어진 책들이 막 다뤄져 왔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은 원래 시간이 갈수록 적어집니다.
게다가 한반도는 중국처럼 무덤이 대형화 했던 시기가 거의 없고 기후 문제때문에 왕릉 같은 부장품이 많은 곳에서도 서적류는 거의 출토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일부러 없앨려고 하지 않아도 어느정도는 알아서 사라질 수 밖에 없던 것이죠.
실제로 그런것들이 사라질 경우는 고요한아침님이 주장하시는 국가적인 제거 정책 보다는 전란이 더 가능성이 클겁니다.
좀 뭐랄까.. 막막합니다.
제가 글을 잘 못쓰는거겠지요. 읽는분이 자꾸 오해를 하시니..
제가 주장하는 요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삼국사기는 일제가 남겼는지 그것이 우연히 살아남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제는 무수히 많은 사서를 우리나라에서 약탈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건 인정하시죠?)
그 와중에 많은 책들이 소실되거나 일본에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이거는 인정안하신다는거 같습니다만..)
소실된게 맞을겁니다.
제가 잘못알고 있는게 아니라면 지금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사서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외에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 있다면 몇개 예를 들어주시면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꼴랑 고대 한민족들은 삼국사기랑 삼국유사외에 다른 역사서를 안썼습니까? 김부식이마저도 자기가 여러 책을 참고 하였다고 서문에 쓴걸로 압니다만.
김갑환님도 제글을 잘 읽어보세요. 제가 사서가 사라진 이유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위에서 누누히 말했지만 왜 제 글을 그렇게 왜곡하시는지.
1. 조선시대때 민간에서 역사를 연구하지 못하게 하고 여러차례 수거하여 들였다.
2. 결국 한곳에 모인 사서는 전란이나 무슨일이 생기는것에 엄청 취약하다.
3. 누가 힘쎄고 나쁜놈(예컨대 일제)가 그거 강도질하기 참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저는 그 사서를 분서했던 수거했건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사서의 소실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아까부터 몇번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김갑환님이야말로 제가 링크한 곳의 글들을 제대로 읽어보셨는지요.
님이야말로 제가 링크한곳 좀 읽어보시죠?
전 솔직히 지치는군요.
헐 그래요. 저 그냥 비긴걸로 하고싶습니다.
일제가 사서들을 가져갔다는것을 부정하시나요. 그건 기록에 있는걸로 압니다. 아마 그 일제가 우리나라에서 펴낸 신문에서도 있는걸로 압니다.
또 일제가 어떤 지침을 가지고 책들을 수거하고 '반도'역사를 편찬해냈는지도 기록에 있잖습니까.
그럼 그에 반대되는 증거인 사서들을 그냥 두었을거 같습니까?
만약에 일제가 주장하는 역사가 사실이라면 그 수많은 증거품들을 왜 싹 가지고 가서 안내놓는걸까요.
그냥 잠이나 잡시다. 솔찍히 별로 님하고 얽히고 싶지 않네요. 좀 무섭다고나 할까..
어린애 억지라...
역사를 논하면서 어째 표면만을 보고 그 속은 살피려하지 않는지.
성인이라면 마땅히 그 속이 어떤지를 봐야 할겁니다.
하다못해 우리나라랑 다른나라가 조약을 맺는것만해도 그 속에 담긴 의미가 여러개로 해석될텐데.
역사적 사실만을 나열하고 그 속의 의도를 살피지 않는다면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갑환님께서 그럼 제가 설명을 해주십시요.
일제는 왜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서 한국사를 연구했을까요? 돈도 엄청퍼부었더군요. 일제는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경제적인 이득이나 여러가지 이득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돈도안되는 우리역사를 자기네 돈을 퍼부어서 연구해준거죠?
어떤 단체가 이해할수 없는 행동을 할때는 반드시 그 숨겨진 의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무슨 의도였습니까? 설마 순수한 학문적호기심이라고 말씀하시려나요?
아 난 고대 한민족이 위대했다고 믿습니다. 영토? 거대한 제국? 그딴거 없어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결국 현대에 남는 것은 문화죠. 지금 계승해야할것도 역시 정신적인 것일테고요. 저는 민족이란거 핏줄보다는 그 정신과 가치관이 구별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민족이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홍익인간 제세이화. 무슨말이 더 필요한가요?
그리고 하고 싶은말은 이겁니다.
어쨌든 고대사 관련 사료는 많이 소멸되었고, 삼국사기를 정사 기준으로 삼기에는 너무 미흡하다는겁니다.
근데 세상은 넓고 굉장히 다채로운 분들이 존재한다는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사십시다. 님하고 나는 전혀 의견의 통일이 있을수 없을테니
그냥 우리 도발이나 하지 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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