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풍종호
작품명 : 검신무(劍神舞)
출판사 : ROK 미디어
먼저 글의 표현, 서술에 있어 ‘세밀(細密)’과 ‘간략(幹略)’에 대해서 말해야겠습니다.
무협이라는 장르적 특성의 하나로, 주인공의 독주를 들 수 있습니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여러 이야기(캐릭터)가 변주될 수 있지만, 그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인물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자연히 주변의 이야기, 인물들에게는 소홀히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면, 이야기의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 뿐 아니라 처음 글의 목표와는 동떨어진 결과를 향해 진행 될 수 있고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이야기가 돼버릴 수도 있죠.
가장 나쁜 것은, 독자의 외면입니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되니 독자가 떠나버립니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대하소설이라고 해도, 세밀하게만 묘사할 수 없고 간략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사항은 장르 소설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글에 포함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의 무협 장르에서 이 세밀과 간략을 가장 잘 견지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저는, 작가 용대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글은 자기완결성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활용도적인 면에서도 낭비되는 바가 없다!’라는 탄사로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이제 작가 풍종호의 이번 작품 [검신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긴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글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 하나가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죠.
작가 풍종호는 자신의 처음 주제인, 한 소년의 검신이 돼가는 춤사위를 아주 깊이 있게 표현해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참신하고 다양한지, 작가 스스로도 더 넓어지려는 이야기를 안으로 안으로 포괄해가는 것이 힘들었다고 5권의 후미에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흥미로웠죠. 덕분에 주인공뿐 아니라 ‘주인공에게 얻어맞는 이 셋’에게도 관심이 끌립니다.
덕분에 독자의 관심은 그의 결말이 너무도 궁금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독자들에게서 표현되는 아쉬움과 비평의 대표입니다.
- 이야기를 펼쳐 놓기만 하고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과연 그럴까?
작가 풍종호는 글의 자기완결성을 이룩하지 못하는 작가인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들,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절대 장황하지 않습니다. 겨우 몇 줄, 몇 쪽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그 인물에게 관심이 쏠리게 합니다.
이렇게 세밀과 간략의 경계선을 넘어서게 하는 작가의 인물 표현력은 너무도 의미심장해서 저로서는 함부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동씨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무협이라는 장르의 세계에서 매우 정형적인 위치입니다. 소위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정형적인 인물이죠. 그렇지만 그들에 대해 표현(서술)하기를, ‘비장하게 무인으로 죽었다!’가 아니라, 그 묘사가 한 쪽이 조금 안 되지만, 구체적인 과정을 표현함으로 해서 그들은 이 무협 세계가 어떤 것이고 그 안에서 개인의 존재와 무협이라는 세계에서의 무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바로 옆에 있는 주인공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면 그들은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입니다. 능소능대의 능력을 보이는 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일반적으로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과정이 전술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동씨 형제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것은 그들의 자존성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존성이란, 그들이 공부(수련)하는 무술에 있습니다.
단순하게 손발을 놀려서 힘이 세지고 파괴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행동뿐 아니라 생각마저도 그 무술의 공부(수련)에 담아있습니다. 즉, 인생 자체가 무술 수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존성을 헤친다는 것은, 무술 공부의 목적을 잃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의 모든 것,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손을 내밀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멋지죠!
이런 깊고 장대한 이야기를 겨우 한 쪽도 되지 않는 공간에 풀어 논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의 상황에서 그려 볼까요!
‘너는 자존심도 없니?’
이 말은, 너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니? 라는 말과 같습니다.
어떻게 같으냐고요?
여러 개체가 모여 집단을 이룬 사회에서 자신을 타자와 구별하는 것은 바로 이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이야말로 스스로를 지키며 사회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죠. 그렇기에 자존심을 잃는 것은 스스로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자존심 따위 언제든지 버릴 수 있어!’ 가, 아닙니다.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과정(방법)이 자신을 보존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자존심이 없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방법, 방식의 차이를 있다 없다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작가 풍종호는, 검신이 되려는 아이의 춤사위에 장구를 치며 이끄는 고수도 집어넣고 관객도 넣고 춤사위가 더 흥미있으라고 요란한 사물놀이패도 어울리게 하는 겁니다. 그들의 울림이 요란한 것은 훨훨 뛰어오르는 소년의 춤사위를 돋우는 것이죠.
우리는 목마르지만, 춤은 완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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