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강현
작품명 : 뇌신
출판사 : 드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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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저자 김강현의 전작인 '마신'은 재미있다는 평가를 두루 들은 작품이었다. 그에 힘입어, 이번에 나온 <뇌신>은 출간되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솜씨를 믿을 수 있는 저자, 그리고 어느 정도는 작품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신 시리즈'라는 점까지, <뇌신>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할 만큼의 화제였다.
출간된 <뇌신>은 어떤 작품인지, 그리고 장단점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그에 대해 늘어놓고자 한다.
1.
뇌신을 조금 풀어보자면, 어렸을 적에 벼락을 맞아 몸져누은 주인공 화무영이 몸을 고치러 갔다가 그대로 제자가 되어 스승의 유지를 이어받게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이야기다.
그의 스승은 신선에 가까운 사람이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애로운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화무영 이전에 제자를 한 명 길러낸 바 있다. 그리고 제자인 화무영을 번듯하게 길러냈으며, 그에게 자신이 살아온 지론을 답습토록 했다. 떠돌이 약장수라고는 하나 그 실상은 민초를 위한 약선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스승의 영향인지 천성인지, 주인공인 화무영은 순박하기 짝이 없는데다 성품이 어질기까지 하다. 빈민을 위해 거저나 다름없는 값에 약을 팔고, 자신의 약을 갈취당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치료해주며, 다친 이를 앞에 두고 반드시 선행을 베푼다는 점에서 그의 성품이 잘 드러난다.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의 성품이 잘 조화된 설정이다. 지극히 선한 주인공과 약이라는 소재와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그러한 설정에 잡초만으로도 능히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약이라는 설정의 첨가는 이야기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으로 작용했다.
설정만으로도 이미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했으니, 도입부를 크게 호평함이 마땅할 것이다.
2.
도입부가 지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흐름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나 인물의 심리는 그리 자연스럽다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뛰어난 약을 만들면서도 아무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약사, 그의 존재를 노리는 세력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면서도 어린 나이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신체로 인해 실제와 상반되는 평가를 받으니,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듯 이어지는 이야기는 자연스러운 한편 절묘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세력간의 다툼으로 인하여 다친 이들이 눈앞에 있을 때,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만든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성품이 어질기 때문이니 이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의 심리는 자연스럽다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림과 연관되지 말라는 스승의 당부를 어겼는데도 그에 대해 반성하는 행위도 없었으며, 무림과 연관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또한 스승이 그런 당부를 한 이유에 대해 몸소 깨달을 수 있는 사건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단순한 사건으로 치부되었다.
그렇다고 화무영 그 자신이 만든 약에 대해 자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무림인에게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람의 탐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또한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당부를 어긴 것에 '무림과 연관되고 말았다'는 생각 외에 아무런 반성도 없었다는 것은 인물의 심리의 흐름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화무영의 스승인 천복의 행동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제자의 성장에 지극히 만족스러워할 뿐, 제자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책도 충고도 하지 않는다. 2권의 후반에서 드러난 그의 행동은 마치 제자가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는 것 같으나, 실상은 제자가 어디에 있는지, 스승의 인연을 제자가 어떻게 잇고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으니 필시 화무영과 무림의 관계 또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당부를 어긴 것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넘어갔으니 역시 자연스럽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노릇이다.
3.
스승 천복의 행동으로 미루어 이야기의 관점을 다르게 바꿔볼 필요가 있다.
화무영에게 무림과 연관짓지 말고 민초들과 함께할 것을 당부한 천복은, 동시에 '구대흉마는 보는 즉시 때려죽여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구대흉마는 민초들에게 해악하다'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구대흉마가 무림인에게만 해악한 이들이었다면 무림인과 연을 맺어서는 안 될 제자에게 구대흉마를 죽이라는 말을 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대흉마를 죽이는 행동'은 곧 무림과 연을 맺는 행위라는 점에서 스승의 당부는 모순이 된다.
구대흉마를 죽이지 않고도 무림과 연을 맺지 않으려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이는 수밖에 없을 것인데,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절대적으로 모순이 될 수밖에 없는 당부였다. 이것이 모순이 되지 않으려면 '무림과 연을 맺는 것을 가급적 피하라는 것이었지 아예 끊고 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라는 결론으로 얼버무리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으리라 보여진다.
4.
<뇌신>은 분명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 설정과 구도만으로도 이미 재미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이야기를 빚어내고 맛깔스럽게 버무린 저자 김강현에게는 찬사를 보내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뇌신>은 이미 모순임에 확정된 설정이 등장해버렸다. 또한 그 모순과 함께 설정에서 작위성을 드러냈다. 이야기는 재미있으나 이야기의 가치를 절하당한 작품, <뇌신>은 수작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이 이미 높아진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미 출간된 책을 회수해서 뜯어고치기란 요원한 일이니, 저자 김강현이 이 소설을 어떻게 이끌어가는지에 귀추가 주목될 것이다. 이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지, 주인공 화무영이 스승의 족적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될지, 그리고 잡초로 만든 그의 약이 민초와 무림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이러한 점들이 완결 이후 평가의 주안점이 될 수 있으리라.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재미 외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은 평자로서 굉장히 슬픈 일이다. 그러한 경우를 <뇌신>에서마저 찾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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