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학부생이 쓴 논문을 진지하게 읽는 교수'에서 빵 터졌네요. 다른 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 대학에서는 학부생 따위가 쓴 걸 읽어줄 사람은 거의 없죠.
학부생이 제대로 된 걸 써낼 수가 없다는 고정관념은 잘못 된 게 아니에요. 대다수의 고정관념이 그러하듯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고정관념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그런 고정관념들을 유용하게 사용하기에 인간은 쓸모 없는 데 시간을 덜 낭비할 수 있고 그래서 더 큰 지식을 탐구할 수 있는 것이고.
다만, 소설에 대해 쉴드를 치자면,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꿈을 꿀 수 있는 것이고. 저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팔 작가분과 유사한 꿈을 안고 있었죠.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일 거라는 환상요. 하지만, 학부생에게 있어서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과 절차를 탐구하는 곳이더군요. 그 이상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 이상을 하려 해도 쉽지 않죠.
그러나, 꿈이란 게 있잖아요? 헛된 꿈이란 것은 실제로 좋은 원동력이 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저런 '수학자 천재' 타입이 30권이나 팔리며 먹히는 것도 분명 그러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진리의 상아탑에 꼭대기가 있다는 허황된 꿈이나마 꾸고 싶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구 말이죠.
뭐 실제 살아가는 데엔 뻘짓 관두고 토익이나 공부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러게요.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빼면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원래 말도 안 되는거(이를테면, 철권에서 한 대 맞고 쭉 날아가는 등) 좋아하거든요. 뭔가 유쾌하기도 하고... 단지... 뭐랄까요. 이왕 쓸 거면 좀 더 화끈하게, 지식에 관한 디테일도 갖추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커서 위와 같은 글을 남긴 것 같아요. 저는 '1254 동원예비군'이란 책으로 처음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여운이 생각외로 오래남아 지금도 비슷한 부류의 책을 찾곤 해요. 그냥 아쉬움이 많아 끄적였는데 관심들을 너무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연구실에서도 거의 혼자 지내는 터라 이렇게 관심받아 본 기억이... ㅠㅠ)
전 사과물엿님의 말씀에 훨씬 공감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학에 대해 거의 모를뿐더러 대학과 진리에 대해 별 생각이 없죠. 학점을 따면 그만이지. 안 그렇던가요?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천재 학부생'이 먹히는 거죠. 그게 먹히니까 저렇게 쓰일 수밖에 없고. 제가 절팔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작가님도 사실 상황을 다 알면서 일부로 개연성을 삭제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상업성을 위해서요.
지식과 디테일이 없을수록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디테일이 커지면, 그걸 위해 부연 설명이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독자는 책을 던지고 tv를 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1. 그 분야에 대한 압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2. 그걸 아주 쉽게 일반인들에게 이해시켜 줄 능력이 선행되어야 하죠.
자! 이제 사과물엿님이 재미난 수학 소설을 써서 저 같은 수학 잉여자들의 수학 능력을 좀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걸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댓글 감사해요. 음... 근데 마지막 줄 말씀하신 의도를 잘 모르겠어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언어를 모르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게 현대수학인데, 문제는 주인공이 '문제만 읽고 답을 구했다'는 데에 있어요. 학부까지 마쳤으니 '학부에서 배운 언어로 서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거에요.
수학계에도 주인공과 같은 부류의 천재들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수학자 갈루아를 들 수 있는데, 이 사람은 천재임이 분명한게, 이 사람의 열 장도 채 되지않는 논문이 가히 세상을 바꾸었다고 해도 틀릴 정도가 아닐만큼 새로운 길을 제시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이 사람이 배운 언어 외로는 서술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어서 군데군데 오류도 있었고 그걸 납득시킬 수단도 없었으며 수학으로서 존재할 만한 견고함도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차후에 데데킨트를 포함한 수많은 수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어를 구상해내고 이를 통해 탄생시킨 것이 오늘날의 '갈루아 이론'이에요. 학부에서 공부 좀 제대로 한 학생들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갈루아를 기점으로 아마추어와 프로의 수학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때문에 주류 수학계에 몸담고 있지 않으면 천재 유무를 떠나 흐름과 언어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심히 억지스럽다는 말도 하고 싶었어요. 이는 지식과 지혜를 떠나 흐름간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아느냐에 관한 문제인데 비유하자면
'커맨드 앤 컨커에 관한한 우주를 논할 만한 엄청난 천재가 차후 발매될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에 나오는 신유닛과 밸런스의 문제를 정확히 논하고 해결할 수 있는가?'
랄 정도로 괴리가 느껴지는 대목이었거든요.
제가 아쉬웠던 점은 바로 이런 거에요. 글쓴이가 좀 더 부지런했다면 하다못해 인터넷 검색만 해보고도 쓸 수 있는 '문제를 본 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사용하는 최신 대수학 언어와 서술 스타일을 알아보고자 한동안 읽어보다 해결점을 찾아냈다.'는 식의 말 한 줄 집어넣으면 될 일을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걸 사실인 마냥 집어넣었다는 건 문제가 있기에 언급한 겁니다.
저는 그냥 독자로 하여금 지식에 관해 언급되는 근방을 사실로 오인시킬 우려가 있어서 위 글을 쓴 거에요. 저는 이제 곧 박사과정에 진입할 예정인 수학도이고, 비교적 늦게 수학을 해서 다른 여러 분야에 아주 무지한 채 수학만 공부한 외골수도 아니에요. 댓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저는 위 책을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으며 장르 소설이란 게 현재 어떤 흐름이고 어떠한 점에 중점을 두고 출판해야되는 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해당 분야의 고급 지식인으로 지적하고 넘어가야 될 것은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 겁니다. 단순히 트집 잡으려고 쓴 것도 아니고, 그렇자니 지식자랑 하려고 쓴 것도 아니에요. 지금 이 댓글 내에서 언급한 대로, 가뜩이나 글쓴이도 학부 시절 수학과 아주 무관한 이가 아닌데, 조금만 성실성을 발휘했다면 앞서 언급한 한 줄 정도의 설명을 넣어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충분히 메울 수도 있다는 점 역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사람 생각이 다 다르지만, 난바라다 님께서 생각하시는 저란 사람의 글이 꽤나 부정적으로 비춰진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해요. 천재 학부생을 부정하는게 아니에요. 개연성은 갖춰줬으면 더 좋았을거란 아쉬움과,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고자 그런거니 고깝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하지만, 사과물엿님의 댓글에서조차 많은 걸 배워갑니다.
수학이란 학문이 굉장히 접근하기 어려워서 저 같은 외부인은 그 분야에 대한 개괄적인 진행 상황조차 모르거든요. 사과물엿님의 비평글과 댓글을 통해서 제가 생각했던 수학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이미지를 정정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 점에서 사과물엿님에게 고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고마움이 있으니 장문의 댓글을 달아 본 것입니다. 제 입장에선 그런 모습은 아주아주 긍정적이죠.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원하는 독자들과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 나뉜다는 말씀을 하고 싶었어요. 위에 제가 말씀드렸 듯 소설에 전문지식을 넣게 되면, 그 논리의 완결성을 위해 좀 더 복잡한 설명이나 설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에잇 머리 아파! 안 봐! 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죠.
양판들의 구조를 간략하게 말해서 "a가 b를 통해 c라는 세계에서 깽판을 쳤다."로 둔다면, a,b,c라는 변수에 무엇을 넣어도 상관없죠. 독자들을 30권이나 사서 보게 만드는 힘은 저 구조 자체이지 변수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변수의 완결성에 집착하다보면 독자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구조에 소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팔리는 거죠.
물론 제가 수학으로 소설을 쓴다면, 당장 수학과에 베스킨라빈스를 들고 찾아가서 인터뷰라도 하고 쓰겠지만요. 하지만, 그 시간에 독자들을 분석해서 잘 팔리는 상품을 찍어내는 게 더 돈이 되는 건 사실이죠. 그리고 그 시간에 토익 공부해서 취직하는 게 더 돈이 되는 건 진리고.
해당 분야에 대해, 수준 높은 책들을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그런 책들을 읽을 의사와 능력이 없죠. 저 같은 경우는 수학에 관한 고급 지식을 얻고 싶지만, 능력도 안 되고 그것을 위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할 의사가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반면에 그런 수준 높은 책들을 읽을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은 그런 책들을 다시 읽을 필요가 없겠죠. 왜냐하면 이미 다 읽었거나 자신도 그런 책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저도 사과물엿 님의 문제 의식에 굉장히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 의식을 지녔고 수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가지신 분들이 abc구조에 그런 지식을 녹여냈으면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얘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제가 말한 지식과 욕구라는 평행선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해보시는 게 어떠냐고 여쭈어 본 겁니다.
그 점에서 제 의도는 전혀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어요. 말주변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비평을 위한 지식자랑을 전혀 고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의하면, 지식은 권위에서 나오고 귄위는 자랑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걸 부정한다면 학문부터 부정해야겠죠.
아직도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이 계시네요. 일단,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페르마 앤드류 부분이 좀 의아하다는게, 혹시 본인께서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만약 아니라면, 그냥 본인께서 알고 계신 바탕으로 한 짐작으로 그러시는지 궁금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앤드류 와일즈가 유명해지진 계기는 TS-추측(타니야마-시무라 추측)에 관한 논문에서 소개한 representation의 획기적인 테크닉에 있습니다. 다른 수학자 정리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왜 '정리'라 붙지 않고 '추측'이라고 붙었을까요? 글쓴이께서 생각하시는 '관련성'이라는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논문에 접근할 만한 수학능력이 되신다면 아시겠지만, 이전에는 그 연관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도 소설이라고 치부할 정도였습니다. 다른 수학자 정리가 있다면 오히려 제가 여쭤보고싶어요. 정확히 어떤 정리가 rupin님이 반례로 드는 정리인지)
다만 수학계에서 와일즈가 소위 말하는 월드스타로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이 추측을 풀면서 Galois representation을 좀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 예컨대 Algebraic topology라는 체계를 만든 푸앙카레가 기하 모델을 Group으로서 해석할 수 있는 철학과 여러 기교를 잘 다져놨기에 여러 다양체를 대수적으로 비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의 테크닉에 의해 타원 곡선에 대응하는 Group을 생성하여 이것을 대수적으로 representation 하는 방법을 거의 처음으로 잘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기하는 당시에는 획기적이었으면서 다소 생소했는데, 여기에 많은 수학자들이 가세하면서 보다 자세히 Eliptic curve에 대한 Group table을 완성해 나갑니다. 여담입니다만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김민형 교수님이 이러한 작업을 잘 하셨었고, 그래서 그쪽 대학에서 와일즈에게 나중에 대학을 옮길 때 함께 대학서 연구할 사람 두 명을 추천할 것을 권했는데, 와일즈는 김민형 박사님을 추천했고, 그리하여 김민형 교수님은 그쪽 대학과 한국의 대학을 오가는 교수로 재직하게 됩니다.
실제로 언론에서 떠든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론에서 그리한 것이고, 여튼 타원곡선과 group representation으로부터 arithmetic geometry라는 새로운 체계를 열면서부터 타원곡선을 암호에 쓰기 시작합니다. 이미 대수적으로 잘 정리되었으니 암호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데 무리가 없었고, 이를 계산하는 속도를 따져봤을 때 RSA보다 나은 점이 있고 가벼워서 각종 모바일 기기에서 쓰이는 암호기반으로 자리잡습니다.
그 이야기를 위에서 한 것입니다. 저는 algebraic geometry쪽이라 만일 rupin님이 실제로 arithmetic쪽을 하시는 분이라면 위 철학을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 이야기를 의아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인데...
쓰다보니 살짝 혼란스럽네요. rupin님의 글을 읽어보면, '내가 알고있는 것으로부터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건데, 그 '알고있는'이 전제되면 절대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올 수가 없는데... 그렇자니 설마 그냥 교양 서적 몇 권 읽으시고 이러한 질문을 하셨을 리는 없을테고요.
이에 대해 저도 궁금하니 답변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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