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가입부터 이런 글을 쓰니 좀 그렇긴 한데, 여튼 쓰긴 써야 할거 같아서 쓸게요.
사실 저는 만화책 좋아하는 독자에요. 주로 웃음코드 가득한 거... 하루는 책방 가니 아저씨가 ‘너 수학 한대매? 여기 이 책이 말이야...’ 하면서 위의 전능의 팔찌란 책을 소개해줬거든요. 앞에 몇 권 그냥 훑어봤는데 처음에는 그냥 그럴 듯해서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 보기 시작했거든요.
아 근데... 이분 전문지식 남용이 지나치게 심하네요. 글 분위기야 ‘내가 제일 짱 세!’라는게 판타지 소설의 트렌드라길래 그냥 그런갑다 했죠. 뭔가 따지는거, 그냥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별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데 이런저런 글 쓰다보면 작가님이 눈팅하시는 거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과 혹시 이 책 보고 어설픈 지식을 상식으로 흡수한 분들이 계실까봐 몇 자 적어볼려고요. 다 적긴 좀 그렇고, 적어도 수학에 관한 것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잘못된 것이 있음을 밝히는게 나을 거 같아서요. 뭔가 다 이야기하면 지금 읽고계신 분들한테는 폐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냥 돌직구 날리면
“지가 아무래 울트라캡숑천재라고 해도 학부생은 그렇게 읽고 논문 쓸 수 없어요.”
입니다. 이건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학부 수준의 지식으로는 현재 난제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가 정답일거에요. 지가 아이큐 200, 300이래봤자 애초에 논문에서 언급하는 수학적 정의 및 기호의 의미를 모르는데 어떻게 논문을 쓴다는 건지... 수학적 정의는 현재 수학 계에서 말하는 여러 의미들과 맞물려 수학자들이 편의상 만드는 거라 오래 몸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거든요. 이건 추론의 영역과는 다른, 경험과 관련된 영역이거든요.
차라리 주인공의 지적 능력을 설정에서 아예 올려버리세요. 애초에 주인공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쌓고 쌓아올린 상아탑이 지금의 현대 수학인데, 글의 내용으로부터 좀 더 비약하자면 주인공은 수천년간 쌓아올린 상아탑보다 더 높은 탑을 한 번에 쌓아올릴 수 있다는 말도 만들 수 있거든요. 이건 좀 너무한거 같아요.
그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같은 난제를 다시 푼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푼 앤드루 와일즈가 단번에 유명인이 된 이유는 350년이나 끌었던 문제를 풀어서가 아니라 타원 곡선과 모듈라가 관계있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쓰인 테크닉이 수학, 과학계에서 상당히 의미있기 때문이에요. 예컨대 비약 없이, 그가 그 문제를 풀었던 테크닉 덕에 조그만 모바일 기기로도 지금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걸 들 수 있어요. 모르면 아예 그냥 언급을 하지 말지, 그 ’수학 난제를 쓰다보면 원래 100여페이지가 넘는다'라는 발언의 근거는 대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실제로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수학 난제들 중에는 열 장 내외의 논문으로 끝나는 게 훨신 많아요.
그리고, 학부생이 쓴 그 논문을 진지하게 읽는 교수는 대체 무엇이며, 그걸 또 며칠 내에 이해하는 교수는 또 뭡니까? 그걸 그 단 시간내에 이해할 정도면 차라리 그걸 그 교수가 쓰고 말았을텐데... 현대 수학의 트렌드가 뭔지 이해도 못하며, 수학적 도구가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논문 쓴 것도 코미딘데 그걸 단기간에 이해했다며 호들갑떠는 상황 자체가 웃음코드 하나 없는 개그 프로 단막극 같아요. 비유하자면
‘주인공은 중세시대 초초초울트라천재 벽돌공인데 피사의 사탑을 어떻게든 바로세우려고 요전번에 개발한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새로운 청사진을 만들면서 크게는 건설현장에 필요한 포크레인과 지게차 등, 작게는 전기드릴을 발명해 왕국 유명 건축가에게 찾아가 방법을 말했더니 다 듣고는 무릎을 탁 치고는 다 이해했다며 좋아하더라!’
랑 전혀 다를게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천재는 그럴 수도 있지 않아?’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접한 적도 없으며, 그것도 물질계가 아닌 추상계내에서 통용되는 정의랑 체계를 지 머리로 유추해서 알아낼 정도면 예언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당연히 이쯤 되면 현실계에서 아웅다웅하는걸 유치하게 느끼고 해탈하는게 차라리 더 그럴 듯 합니다. 적어도 주인공이 보이는 물욕과 관련된 행위와는 다른 뭔가가 있어야...
그래도 이 글이 원래 그런갑다 생각하며 다 읽긴 했어요. 중간에 깨알같이 나오는 지식들도 그런갑다 하고 넘겼어요. 근데 이거 별 생각없이 읽다보면 그냥 그렇게 알고 마는 것 같아 뭔가 아쉽기도 해서 이렇게 주저리 몇 자 남겨봐요. 작가분께서 혹시나 이 글을 보신다면 바라건대, 적어도 수학을 글 중에 언급하고 싶으면 못해도 만화책 Q.E.D의 반의 반 정도만 충분히 알아보고 쓰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단순이 이것저것 해내는 걸로 마는 게 아니라, 뭔가 대단한 걸 해냈다면 그에 맞는 개연성도 갖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 행위를 논리적으로 보면 보통은 그 사람의 IQ와 비례하는데, 하물며 초특급 천재인 주인공이 매번 그 평균에서 벗어나 반전 아닌 반전을 상식처럼 일으키는 그 언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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