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사람에 따라 사서삼경과 사서오경을 다르게 부르고, 사람에 따라 오경에 들어가는 책을 다르게 정의하기도 합니다.
주자가 유교 서적에 주석을 다는 작업을 하면서 예기 부분에서 대학, 중용편을 분리시켜 독립시켰고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 체제를 완성시켰습니다. 이후로 사서와 달리 오경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는 했는데 7,8가지 테두리 안에서 사람에 따라 5개를 포함시켰습니다.
아... 글을 보니 저도 혼용해서 썼군요. 오탈자 계속 수정했는데도 항상 이러는군요; 사서삼경이나 사서오경이나 결국 같은 범주의 말이니 크게 신경 안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1-'명상의 단계를 넘어서 묵상의 단계에 이르렀다'는데 명상이나 묵상이나 비슷한겁니다. 작 중에서 몰아일체 수준의 깊은 명상 단계를 묵상으로 표현했는데 보통은 천주교 성당에서 기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실제로 기 수련, 명상, 요가 단체에서 약간 다르지만, 대부분의 궁극적인 목적은 명상에 들기 위합입니다.
그런데 초보자 분들이 반가부좌 혹은 결가부좌에 들고 명상을 시작하면 바로 명상을 하실 수 있느냐 는 절대(99%) 못하시게 됩니다. 몸은 몸대로 인스턴트 식품과 운동부족으로 문제가 많아서 10~30분 이면 다리를 바르르 떠실 테고 또 몸이 충분히 이완되셨다고 하셔도 호흡은 또 제멋대로(?)시고 또 몸과 호흡이 준비되셨다고 하셔도 "잡념"이 끊임없이 나를 붙잡습니다.
그래서 수련에 익숙지 않는 분들을 위해 말그대로 명상(밝은 형상)을 갖도록 유도 합니다.
이렇게 수련하다 보면 점점 몸도 건강해지고 호흡(기)도 어느 정도 안정화 되면 명상중에 깊숙히 자신의 내면(마음 또는 참된 자아)을 들여다 보게 되는데 이를 묵상이라 합니다.
아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명상은 묵상의 범주에 들어 간 것이고 앞의 명상은 수련초보 신분들의 명상이라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명상 >>> 묵상에 들다 라는 표현은 맞는것 같군요.
2-거기다가 그런 트랜스 상태에서 주인공이 속으로 '어?!' '어,어라? 내 눈이 침침해진건가?' '이,이게 도대체 무슨...' 같은 생각을 하는데 몰아일체의 세계에서도 잡생각을 하는건 좀 그렇네요.
명상 수련을 단 1번이라도 제대로 수련해 보신분은 생각(잡념)이 내가 수련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방해 하는지 아실 겁니다.
그럼 여러분께 한번 물어보지요. 우리가 깊은 명상 상태에 이르면 그 상태를 얼마나 유지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제가 이리 위 비평에 얼두 당투 않는 논리로 말하는 것은 위 글이 재미 있다 없다를 또나서 나름 수련이란 것을 해본 경험으로써는 작품에서 사용 하신 명상, 묵상의 표현과 물아일체(?) 상태에서의 잡념이 드는것은 나름 크게 문제된다고 생각치 않아서 입니다.
어수선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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