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글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런 주장은 상당히 위험하네요. 김용이 중화주의자라면 중국이 배경이고 외세와 싸운다라는 전제만 놓고 말씀하실게 아니라, 거기에 묘사된 몽골, 거란등등의 민족들이 어떻게 거론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시길바랍니다. 신조협려에서 몽고 왕자는 의기가 있는 인물로 그려졌으며(중화주의자라면 각 민족의 특수성보다 중국의 우수성을 깔고 이야기를 했겠죠?), 녹정기에서 청나라 황제 강희의 묘사는 매우 총명하고 의기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명 복원 운동을 하는자(자세히 기억이 안납니다만..)가 한탄해서 말하길, 강희 황제의 치정이 매우 뛰어나서 사람들이 그 안락함에 명나라 복원을 잊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오지요. 또한 여러면 강희 황제의 선정을 거론하기도 하고요..
김용의 작품중에서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유일한 이민족은 러시아인이고, 나머지 이민족은 그런게 없죠? 왜 그러냐면 나머지 이민족은 현재 중국내에 존재하고 현대 중국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민족들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표현을 김용이 했다면, 이 이민족들은 가슴에 상처를 입고 살아 갈겁니다. 이런게 쌓이면 나중에 중국이 혼란할때, 중국 대륙이 분열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김용이 작품속에서 한족을 아무리 비열하고 어리석게 그렸다해도, 현대 중국에서 권력을 잡고 앞으로 권력을 잡을 사람들은 한족입니다. 비열한 한족에 대한 묘사로 인해서 현대 중국의 한족은 전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아요.
아~ 그러니까 강희 황제를 높힌것도, 몽골 왕자를 의기가 있는 인물로 그린것도, 죄다 중화사상 때문이다? 참....크크크크크크크크 근데 한족을 비판적으로 그린건 아무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그대의 전제가 중화주의니 텍스트 전체를 그렇게 구부려 본다고 생각 안하시오? 한족을 무능력하게 그린거까지 무시하면서? 크크크크크 만약 그 전제가 중화주의가 아니라 이민족에 대한 균형있는 시각이었다면? 이것도 그럴듯합니다만크크킄
예를들면 조국을 침략하는 외적들(신조협려분)을 잔인하게 묘사하다가도 동시에 그들의 왕자를 의기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또한 녹정기에서 진근남 같은 명복원 운동의 의기있는 인물을 한족의 상징처럼 다루다가도 그가 같은 한족들의 모함에 의해서 무너지는 장면도 그렇고, 강희 황제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빠진 무능한 사람으로 그려지면서도 위소보를 가장 압박하는 총명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죄송한데 더 읽으시오. 식은 술 그만 드시고. 이런 이중성이 바로 김용을 중화주의자가 아닌 리얼리티 작가로 이해해야하는 단초니..
김용을 중화주의자로 읽으면 영원히 못 읽는다고 생각함. 왜냐면 김용은 민족이든 개인이든 이중적인 모습을 계속해 그려냈으니까. 한쪽으로 매도하면 그거야 말로 김용을 왜곡하고것 아니겠소? 예를들면 곽정의 아내인 황용을 봅시다. 약삭빠른데다 지략도 갖췄지만 미련하게 곽정을 사랑하며, 미련하게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려고도 했소. 이런 이중성은 곽정에게도 나타는데, 멍청하지만(신조협려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을 대하는 것은 황용보다 낫다고 묘사되어 있지요?
이만 합시다. 어짜피 뭐 중화주의라고 못 박고 모든걸 꿰어맞추려는 분과의 대화는 무의미할테니...
후, 기본적으로 김용의 작품에서 한족 이외의 이민족에 대한 시선은 수차례 바뀌어 왔습니다.
초기에는 한족중심의 기술이었으며 그것은 후대의 작품으로 갈수록 점점 완화되었죠. 그건 역사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음을 의미하긴 하지만 동북공정과 연계하기는 힘들듯 보입니다.
오히려 한족중심의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역사적인 포용의 관점으로 본 것일테고, 그걸 비판하긴 힘들듯 싶군요.
문제는 이후로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정부와 어용학자의 필요성에 의한 동북공정및 역사왜곡이 이루어진것이 문제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오히려 한족의 우월함을 주장하는것이 더 중요했을 시기입니다.
김용이 중화주의자냐 민족주의자냐는 건 김용의 소설 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더우기 몇십년 전에 쓴 소설로는요. 현재까지의 김용의 언행을 가지고 판단하여야겠죠
단 녹정기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주된 사상은 중화주의라고 봅니다.
위소보의 롤모델 격인 강희제와 진근남을 보면 전자는 중화주의자, 후자는 민족주의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은 강희제 편으로 흘러갑니다. 진근남은 실패하죠.
소설 속의 예를 들면,
현재 중국의 영토 문제도 줄거리로 나오는데 위소보가 러시아와의 전쟁에 이겨 당시 중국도 러시아 땅도 아닌 지금의 연해주 지역까지 중국 영토로 인정 받는 부분(근대에 다시 러시아가 차지하죠)과 그걸 비분강개하게 여기는 후대 사람들에 대한 묘사,
끝부분에 같혀 사는 섬의 이름이 조어도(현재 일본과의 영토 분쟁 지역이 조어도죠)라는 점들이 중화주의 적인 요소라고 봅니다.
죄송한데 조어도는 대만과 중국과 일본 사이에 영토 분쟁을 낳고 있습니다. 뭐 중국과 일본 사이에라면 편리하겠지만, 대만과 중국 사이에 분쟁을 거기에 끼워 넣는다면 그 이름 때문에 중화주의라 말씀하시는건 오도한 것이라 생각 됩니다.
또한 진근남이 민족주의인건 인정하겠는데, 강희제를 중화주의자의 표본으로 보는것은 확대해석 같습니다. 그가 중국의 사상들을 통해 국가 본위를 세우는 묘사들이 많은데, 그건 역사의 나열이지 어떤 극적 장치를 위한 작위적 해석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중화주의를 기본으로 내세웠다면, 위소보는 애초부터 그런 캐릭터가 되지 말았어야합니다. 녹정기의 주인공은 강희제가 아니라 위소보입니다.
김용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한 사람으로 김용 소설이 민족주의에서 중화주의로 발전해 갔다고 느꼈지만, 이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대중 소설'의 특성상 독자의 취향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절대 김용은 한국 티벳 몽골 독자들을 위해서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글은 김용에 대한 비판이 문학성에 맞추어 찬양되고 있기에 김용 소설의 문학성에 촛점을 맞추어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는 김용 소설의 문학성에 대한 비판은 무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섹스피어 소설과 비교할 바가 안된다고 봅니다.
1. 폭력에 대한 해결
2. 작가 설정에의해 왜곡되고 편집적인 무술체계
3. 묘사의 진부함
4. 이야기의 진부함
위 비판은 무협이란 장르 안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차연님이 김용 소설을 섹스피어에게 비교하셨기 때문에 김용 소설의 리얼리즘의 한계를 말씀드려 봅니다.
밑에 글은 삭제 됐지만 계속 김용 관련 글이 올라오는군요.
차연님 저도 김용 무협을 읽기 좋아합니다만, 김용은 중화주의자 맞습니다.
100년이 안된 원과 400년 정도 중국땅을 다스린 청을 비교하지 못하죠.
400년동안 중국땅을 다스린 청을 이민족라고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요? 중화주의자라도 건드릴수 없는 부분입니다.
실례로 김용이 표현한 여진족의 나라인 금나라와 같은 땅의 발원인 청나라를 보십시요. 사조영웅전에서 금나라는 왕자가 비도덕한 쓰레기로 나오지만, 청나라의 표현은 그저 중화에 한 왕조 같죠.
중공또한, 몽골에 대한 북방공정이나, 청나라가 발원한 땅의 고대국가인 고구려에 대한 동북공정을 할지언정. 만주족 자체에 대한 외곡작업은 없죠.
흔히 김용을 표현할때 중국의 사상을 잘 무협에 녹였다고 하는데, 이건 유선뿐만 아니라, 중화 사상도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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