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Comment ' 5

  • 작성자
    Lv.79 하늘이좋다
    작성일
    07.12.14 14:14
    No. 1

    너무 길어서 끝에 3줄만 읽은 1 人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3 Umbro23
    작성일
    07.12.14 18:49
    No. 2

    와 ..

    전 꼴에 역사좀 안다 자부햇는데

    파고들으면 파고들을수록 신기해지네요...

    사학자가 꿈인데....

    좀 자세히 알아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패스워드
    작성일
    07.12.15 00:34
    No. 3

    수부타이님이 말씀하신 용산 박물관만 다녀와도 눈이 새롭게 띄여지실 겁니다. 님은 부정하려하지만 님이 가지신 역사관은 완전히 허구에 가까워요..한반도에서 청동기유적, 그리고 철기 유적이 언제 발단되었는지, 그리고 청동기라는 것과 철기라는 것이 문명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공부해보면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 배달민족이론 말인데...역사라는 것은 주로 사료를 통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이죠...하지만 위에서 분서갱유등을 통해 사료가 많이 없어지자 중국인들이 역사를 날조했다고 하셨는데..그게 날조인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남아있는게 없는데..사기가 날조라 해도 적어도 그건 2000년 전의 날조죠. 우리가 21세기에 배달민족 운운하며 한,송,명 외에는 전부 배달민족국가다.....이런 소리 늘어놓는 것은 사실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설득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해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소설'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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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7.12.15 01:13
    No. 4

    블로그에 들어가서 자료확인이나 하고 말 좀 하시죠. 거기에 학계나 신문,뉴스 등 여러 자료들이 있으니... 어떻게 확인해 보라고 그렇게 말해도 계속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지...<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5289466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5289466</a> 에 있는 경향신문의 '코리안루트'나 사이언스타임즈의 '한국인의 고향'이란 자료만 봐도 능히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뿐만 아니라 kbs나 mbc 중앙일보,동아일보 등의 뉴스나 영상프로그램 등 여러 자료들이 있어 확인해보라고 그렇게 소개해줘도 보지 않고 댓글 다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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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07.12.15 17:13
    No. 5

    집요한 `역사공정` [중앙일보 2006.12.18 ]



    이젠 한반도 문화 뿌리까지






    중국이 한반도와 만주 문화의 뿌리로 알려진 랴오허(遼河) 일대의 북방 신석기 문화를 자국 문명권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가속하고 있다. 선사(先史)시대 중국문명의 판도를 기존 학계가 주장해온 황허(黃河)와 창장(長江) 유역에서 여타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이른바 '중화문명 탐원공정(探源工程)'에 따른 것이다.

    17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국가문물국은 랴오닝(遼寧)성 뉴허량(牛河梁) 신석기 유적 등 35개를 세계유산위원회에 등재 신청할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 목록에 포함했다.

    국가문물국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예비 목록을 수정해 제출하도록 한 '세계문화.자연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1996년에 이어 이번에 목록을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뉴허량 유적을 랴오허 유역에 분포한 북방 신석기 문화의 대표적 유적의 하나로 분류해 왔다. 랴오허 일대 문화는 한반도와 만주 문화의 원류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조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을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이들 문화의 원류인 랴오허 일대의 북방 문화를 중국 문명권에 편입할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사학계는 황허와 창장 유역을 중국문명권으로 분류하고 랴오허 일대는 중국문명과 뿌리가 다른 북방문명으로 파악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올해 선양(瀋陽) 박물관에서 '랴오허 문명전'을 여는 등 일련의 역사 왜곡을 진행하면서 북방문명을 중화문명권에 편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편 새로 작성한 예비 목록에는 뉴허량 유적 외에도 ▶대운하(大運河)▶실크로드▶장경동(藏經洞)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시 보하이(渤海)진에 있는 옛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은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목록에서 빠져 당분간 신청이 어려울 전망이다. 예비 목록에 오른 유산 중에서 2008년 32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등재 신청할 유산이 최종 선정된다.

    장세정 기자

    ◆ 뉴허량 유적=랴오닝성 링위안(凌源)시 젠핑(建平)현 근교에서 1981년에 발굴된 신석기 유적. 북방 신석기 문명(기원전 7000년)의 하나인 훙산(紅山)문화에 속하는 유적으로 황허 유역의 중원 신석기 문명보다 일찍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랴오허강 일대에 기원전 3500년 무렵에 형성됐다. 섬세한 옥기(玉器)와 돌무지무덤(적석총) 등이 발견됐다. 특히 흙으로 빚은 여신의 두상(頭像)은 전형적인 몽골 계통의 피부색을 하고 있어 중원문명과 확연히 구별된다.

    ◆ 탐원공정=상고사를 고쳐 써서 선사시대 중국문명의 판도를 확대할 목적으로 중국 당국이 벌이고 있는 사업이다. 랴오허 일대에서 황허문명(기원전 3000년)보다 더 일찍 발생한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자 중국 당국이 이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기 위해 2003년부터 해온 사업이다. 랴오허 일대를 편입하면 중국문명이 기원전 1만 년까지 올라간다. 현재의 정치 사정에 맞춰 역사 왜곡을 시도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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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紅山(홍산)이라는 산이 있다. 몽골사람들이 ‘우란하따(烏蘭哈達)’라고 부르는 이 붉은 바위산 인근에서 학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제단(壇)과 신전(廟)`적석총(塚) 등 거대한 후기 신석기 문화가 발견됐다. 100여년 전의 일이다. 중국 요녕성과 내몽골, 하북성 경계의 燕山(연산) 남북, 만리장성 일대에 널리 분포된, 국가 체제를 완벽하게 갖춘 이 유적을 ‘홍산문화’라고 부른다.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세계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일대는 현재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으나 중국의 방해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 하고 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서기전 4천500년~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가면과 玉(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청동기 시대의 고조선 초기(고조선 중기 이후는 철기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신석기 시대의 배달국 초기(한웅배달국 후기는 청동기시대)가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라는 말이다.

    ◇2006년에 중국이 뉴허량 유적 등 35개를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예비목록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遼河(요하) 일대의 북방 신석기 문화를 중국 문명권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探源工程(탐원공정)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내 학자들은 “고조선과 부여`고구려`발해 등을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를 중국문명권에 편입할 의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30년 전 중화문명의 시발점을 앙소문화에서 하모도문화로 바꿔 재설정한 중국은 뉴허량 유적 발견 이후 홍산문화를 ‘요하문명’이라 부르며 중화 3대 문명의 시발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漢族(한족)의 것과 엄연히 다른 동이족 문화인데도 과거 일제가 한 것처럼 한민족의 뿌리마저 잘라버리려는 역사왜곡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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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21일 (일) 09:53 연합뉴스


    BC 7세기 철기유물 강원 홍천서 출토





    "철기시대 개막 앞당길 획기적 자료"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기원전 7세기 무렵에 제작돼 사용한 것이 확실시 되는 철기 유물이 강원도 홍천에서 출토됐다.

    이는 기원전 300년 무렵에 철기가 제작, 사용됨으로써 한반도는 '초기철기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한국 고고학계 통설에 일대 의문을 던지게 하는 획기적 성과가 될 전망이다.

    강원문화재연구소(연구실장 지현병)는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도 44호선 홍천 구성포-두촌간 도로확ㆍ포장 공사구간에 포함된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1246-16번지 일대 12만6천509㎡(3만8천268평)를 지난해 2월 이후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한 주거지에서 송곳과 같은 형태의 단조품 철기 1점을 수습했다고 21일 말했다.

    지현병 실장은 "이 소형 철기는 무문토기가 출토된 58호 주거지에서 유물을 수습한 뒤 바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면서 "주거지 내부에서 수거한 목탄(숯) 시료를 채취해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연구원 AMS연구실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BC 640-BC 620년(BP 2540±80, BP 2500±50)이라는 연대를 얻었다"고 전했다.

    지 실장은 "청동기시대 중기 또는 후기에 만들었다고 판단되는 주거지에서 철기가 출토된 것은 국내 최초이며, 특히 그 연대가 기원전 7세기로 확인된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면서 "이는 철기가 한반도에 출현한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는 획기적 자료일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뚜렷한 정설이 확립되지 못한 청동기시대의 하한 연대도 결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소 최종모 조사3팀장과 현장책임자 김권중 연구원은 "후대에 만든 철기가 지층 변화 등으로 인해 폐기된 청동기시대 주거지에 휩쓸려 들어갔을 가능성을 두고 유적을 더욱 세밀히 검토한 결과,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주거지가 활용된 청동기시대 제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철정리Ⅱ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적석 유구(돌무지 흔적)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66기ㆍ주구묘(周溝墓) 9기ㆍ지석묘 하부구조 1기ㆍ소형 석관묘 2기, 철기시대 주거지 19기, 삼국시대 석실묘 4기를 비롯한 총 230기 이상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 중 청동기시대 대형 주구묘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묘제(墓制)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구묘란 도랑처럼 땅을 파 사방으로 두른 무덤으로 이번 철정리 유적에서는 이런 주구가 평면형태 기준으로 볼 때 모두 장방형이었다.

    이 중 2호 주구묘는 길이가 무려 43.28m에 이르지만(폭은 3.96m) 훼손된 부분을 감안하면 원래 길이는 45m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이 외에도 철정리 유적에서는 한강 유역 한반도 중부지방 철기시대 문화층에서만 독특하게 출현하는 평면 呂자형과 凸자형인 주거지가 다수 발견되고, 그 중 일부는 벽체 시설과 부엌 아궁이를 비롯한 내부 구조가 완벽하게 남아 있어 당시 가옥 구조 해명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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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반도식민사관학자들의 오류는 무조건 한반도내에서만 유물,유적을 찾으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원래 기원은 몽골,만주,연해주,중원대륙의 북부와 동부인데 자꾸 한반도로만 국한시켜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일례로 짱골라 한족이란 존재도 순날조요.

    다음의 기사들만 봐도 알 수 있소.

    中교수 “순수한 漢族은 없다”… 多민족 섞여 혈통 불분명


    2007년 02월 16일 | 글 | 베 이징=하종대 동아일보 특파원ㆍ[email protected] |


    일개 민족이 전 세계 인구의 19%인 13억 명이나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진 학자가 있었다. 중국 란저우(蘭州)대 생명과학학원의 셰샤오둥(謝小東) 교수. 회족(回族)인 그는 한족(漢族)과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유전자(DNA)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다. 중국 서북지역 소수민족의 기원과 이동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였다.

    조사 결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는 한족은 실제로 1개의 민족이 아니었다. 한족이라고 부를 만한 순수한 혈통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중국 언론은 13일 셰 교수의 연구 결과를 자세히 보도했다.

    셰 교수는 “오래 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는 어느 한 시기에 한족을 주변 국가 또는 민족과 구별하기 위해 지역적으로 획정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적으로 ‘염제와 황제의 자손(炎黃子孫)’으로 생각돼 온 한족이지만 연구 결과 염제와 황제의 발원지는 중원이 아닌 ‘북적(北狄·북쪽 오랑캐)’지역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황제(黃帝)의 발원지는 현재의 간쑤(甘肅) 성 친양(沁陽)에서 톈수이(天水)에 이르는 지역이고 염제(炎帝)의 발원지는 간쑤 성 동부에서 산시(陝西) 성 서부에 걸쳐 있는 황토고원으로 이들 지역은 원래 ‘북적’ 지역이었다.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산시(山西) 성 남부와 장쑤(江蘇) 성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성 서북부를 포함한 허난(河南) 성 일대.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바로 중원 사람이라고 생각돼 왔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셰 교수는 “연구 결과 현재 소수민족이 된 객가족(客家族)이 오히려 고대 중원인의 문화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순수한 한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주변의 소수민족이나 주변 국가가 한족과 융합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셰 교수의 연구결과에 중국의 일부 누리꾼은 셰 교수가 한족의 ‘동포감정’을 훼손했다며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한족의 비율은 중국 대륙이 92%, 대만이 98%,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95%와 9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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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동아>에서

    “漢族, 단일민족 아니다 해!”

    중국 유전연구소 충격 발표 … “지배민족 편입된 ‘가짜 한족’ 수천 년간 묵인”

    중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중국의 남쪽과 북쪽 사람의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외한이 보더라도 광둥(廣東) 지방 사람과 베이징 사람과는 겉모양이 뚜렷이 구분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을 같은 한족(漢族)이라며, 한족과 닮지 않았다는 말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이들을 몹시 불쾌하게 할 만한 발표가 있었다. 54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임에도 13억 인구의 92%가 한족이라는 중국 정부의 공식 인구 통계를 부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 거대 순수 혈통으로 인정받던 중국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는 이번 연구 결과는 중국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번 발표가 중국 한족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중국 한족의 ‘순수혈통론’에 반기를 들고 나선 주체가 바로 중국 국영 연구소라는 점이었다. 중국 과학원 소속 유전연구소 인류유전자연구센터가 지난 5월 26일 15년 동안 진행한 중국인의 성씨와 유전자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족이 단일한 민족이 아니라고 전격 선언하고 나선 것. 분석자료를 통해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중국 남부 지역인 푸젠성(福建省)과 장시성(江西省)에 걸쳐 있는 우이산(武夷山)과 난링산맥(南嶺山脈)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 거주하는 ‘한족’이 혈연상으로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연구팀은 두 개의 ‘한족’이 한족과 소수 민족 간 유전적 차이보다 더욱 큰 차이점을 보였다고 발표해 파장을 더했다.

    난링 산맥 경계 두 개의 ‘별개 집단’

    이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한족이 통치하던 송나라와 명나라 시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등 모두 세 차례의 인구조사 내용을 분석하고 500여 편에 이르는 고문헌과 족보를 참조했다”며 “동시에 수백만 명의 중국인 혈액을 검사해 분석한 결과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유전학자들의 이런 연구 결과는 일부 소장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의 역사는 황허(黃河) 유역 한족세력의 남방 침략과 정복의 역사였고, 이 과정에서 남방의 토착민이 자신의 출신을 속이고 한족 행세를 하면서 이같은 결과가 빚어졌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북경의 한 역사학자는 “한족만이 중국 사회에서 정치적 파워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토착민들이 우월한 중화문화권에 편입하기 위해 한족임을 자처했다”며 “중앙 정부도 소수민족 복속정책의 일환으로 그것을 묵인하고 장려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가짜 한족’ 외에도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후손 중 절대 다수가 소수민족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에 유리한 한족을 택한 것도 한족 양산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에서 부모의 출신 민족이 서로 다르면 자녀에게 선택 권한이 주어지지만, 소수민족을 택하는 자녀는 거의 없는 실정.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다.

    결국 한족은 ‘가짜 한족’에 대한 묵인과 ‘민족 선택제’라는 소수민족 통치 기술로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는 거꾸로 지배민족으로서 한족의 위치를 수천 년 동안 보전하는 힘이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소수민족을 한족의 수로 압도하려는 중국 정부의 ‘인해전술식’ 인구정책의 결과물이 바로 92%라는 통계수치라고 비웃는다.

    어쨌든 ‘중화주의’라는 민족적 개념을 통치 이념의 전면에 내세우는 중국 당국에게 ‘한족이 사실상 두 개의 별개 집단’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인류유전자연구센터의 이번 발표는 국영 연구소의 발표임에도 중국 언론매체에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다. 한족의 이익이 중국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였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 소준섭/ 상하이 통신원 > <a href=mailto:[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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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일례로 삼국지연의와 삼국지정사를 구분 못 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더군요. 삼국지연의는 소설입니다. '연의'란 뜻이 '소설'을 의미합니다. 삼국지정사는 사서입니다. 전혀 다른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여령의 '삼국쟁패'에 있던 댓글에서 알게 되어 몇가지 덧붙이리다. 사실 이 블로그 알게 된 것도 '삼국쟁패'에 있던 댓글에서 알게 된 것이니....

    지나의 삼국지에 나오는 백만 어쩌고 하는 것은 사실 뻥이죠. 지나놈들의 농간에 불과합니다. 그 당시 인구 대비로 따져도 그것은 억지죠.
    실제로는 1/2에서 1/3정도 즉 50만에서 30만정도의 군사력 밖에 안 됩니다. 고구려,백제의 인구 및 군사수에 관한 자료가 있던데
    참고해도 좋을 듯 하네요. <a href=http://blog.daum.net/hearo9mars/4924656 target=_blank>http://blog.daum.net/hearo9mars/4924656</a>
    나관중이 지은 연의에는 장판파에서 조운이 80만의 군대 속을 홀로 유린했다고 하지만 실제 정사의 기록을 보면 조조의 군세는 8천뿐이었다고 합니다. 나관중의 허무맹랑은 상산 조자룡에만 거치지 않죠. 관우의 청룡언월도 그것 역시 거짓입니다. 언월도란 무기 자체가 송나라 시대 이후에나 등장해 원나라때 자주 사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즉, 후한 말기 언월도란 무기 자체가 없었습니다. 툭하면 100만 대군 하는데 이 역시 거짓이죠. 하여튼 역사와 판타지를 구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죠. 무조건 짱골라들의 허풍은 믿으면서 반면에 우리의 역사는 외면하죠, 위 글에서도 나오듯이 과학의 발달로 서서히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고 있죠. 유물,유적 등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데는 사학자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죠. 그 유물,유적 등에서 나오는 물질을 분석하기 위해서라도 인류학자,화학자,생물학자,고고학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야의 여러 학자들이 함께 동원되죠. 이런 여러 관련 분야들의 학자들이 서로 연관되어 연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딸랑 사서 하나만 연구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위 댓글들을 보면 [사고전서]란 것이 나오는데, 이 사서 [사고전서]는 청나라 건륭 황제 때 연간 1000여명의 학자를 동원, 10년에 걸쳐 국력을 기울여 편찬한 동양 최대 총서로 무려 7만9천여권에 달합니다. 고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원의 주요 문헌들을 거의 다 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그 사료적 가치를 국내외에서 모두 인정하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총서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동이 사료 안에는 한국역사, 동양역사의 물꼬를 바꿀 수 있는 그야말로 새로운 발견에 필적하는 귀중한 자료들로 가득 차 있죠. 상(은)나라나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이 모두 동이족이라는 것도 다 밝혀져 있죠. 만약 고대부터 청나라때까지 역대 중원대륙 모든 왕조들의 역사서들을 그 출처로 하여 종합편찬한 [사고전서]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 출처였던 중원대륙의 모든 사서들마저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죠. 청나라의 [사고전서]나 후조선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이미 디지털화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확인이 가능하죠. 민족이란 말이 근대 국민국가 이후에 생겨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요사,금사,원사,청사 등에 보면 그들이 모두 고구려나 흉노 등 배달계통 동이의 후예 또는 갈래민족이란 것을 다 밝히고 있죠.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청나라 모두 고구려의 후예라고까지 자처했으며, 특히 신라가 망한 후 그 신라 왕족 일부가 이들 나라들의 건국에 참여했다는 것도 얘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 증거로 말미암아 이번 2007년부터는 고조선 역사가 국사에 편입됐을 뿐만 아니라 홍산문화,요하문명 등 우리 고대의 역사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죠. 그것을 짱골라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역사탐원공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삼국쟁패 댓글들을 나름대로 잘라서 퍼왔습니다.

    도대체 누가 소설 쓰는지 헛웃음만 나올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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