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진세인트
작성
09.09.09 10:38
조회
926

후크는 기분이 좋았다. 갈수록 낭만이 사라지고 로망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모처럼만에 19C로 돌아간 듯한 매력적인 바를 찾았기 떄문이었다. 그는 파이프를 옆에 내려놓고 코냑을 마셨다. 투명한 술잔에 비치는 춤추는 사람들, 그 시절의 음악, 그 시절의 분위기가 후크를 사색에 잠기게 만들었다.

삐걱이는 나무판자 소리, 잔에서 물결치는 술의 음율, 가식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대화까지. 후크는 지금 자신의 오른팔엔 손가락이 다섯개 모두 멀쩡하다는 사실도 잊은듯 갈고리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투두두 둑, 투 두두 둑─, 갈고리처럼 딱딱하고 강인한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후크는 만족스러웠다. 이런 기분을, 도대체 얼마만에 느껴본단 말인가?

술잔을 비울수록 음악과 시대는 천천히, 하지만 취할수록 빠르게 변해갔다. 마침내 잔잔한 올드팝이 바를 가득 메우자, 조명은 약해지고 사람들은 서로의 몸에 더욱 밀착했다. 익숙한 애무, 다른 사람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고 은밀한 밀담을 나누는 연인들을 보며 후크는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

올드팝의 시대가 끝난다, 시끄러운 기계음이 섞인 소음에 가까운 음악이 음악이랍시고 바에 울려 퍼졌다. 재미가 떨어졌군, 이빨자국이 선명한 파이프를 입에 물어, 한 모금만 피우고 나갈 생각이었던 후크에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운이 좋군.'

얼굴? 착하군. 몸매? 착하군. 그럼 된거다. 후크는 오늘 밤을 즐길 파트너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며 불과 파이프를 도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멋드러진 양복을 입고 있는 그는, 지금 누가 봐도 멋쟁이 신사였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바, 고독을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는 매력적인 남성을 보고, 반하지 않을 여자가 그 어디 있을까. 여자는 자신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후크를 공략했고, 후크는 그런 여자와 적당히 말을 섞으며 결국 여자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바에서 나왔다.

"어머, 자기 멋지다."

후크가? 아니면 후크의 차가? 여자는 바에서 나올 때보다도 더 후크에게 달라붙었다. 밖에 나와서도 예쁜 얼굴이었지만, 어차피 하루면 끝날 관계였다. 이런 여자에게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후크는 속으로 그녀를 비웃으며 운전석에 앉았다. 여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옆 좌석에 앉았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여차피 보여질 속살을 핸드백으로 가렸다. 우습군. 후크는 한 손을 창 밖에 내놓고, 한 손으로 가볍에 차를 몰았다.

어두운 거리, 검은 도로. 라이트에 비추는 것은 넘실거리는 검은 바다였다. 탐욕과 거짓, 인간의 모든 욕망으로 끌어올린 도시에서 빠져나와 도착한 곳은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가에 세워진 저택이었다.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귀족의 휴양지처럼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자, 여자는 황홀해졌다. 대단한 남자를 낚았다는 만족감, 이제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당장에 옷을 벗고 섹스를 하겠지. 그럼 저 남자는 내꺼야. 이런 대단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남자와의 섹스라니. 만약 그가 조루라도 오르가슴을 느끼는 듯 대단한 심음성을 내야겠어. 여자의 허벅지가 단단해지며, 핸드백 줄을 쥐고 있는 손엔 땀이 맺혔다.

하지만 여자는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광격에 하- 하는 신음성을 내뱉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갔다. 후크는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는 해변의 도로에서 여자가 어떻게 집에 돌아갈지 궁굼하지도 않은지 멍하니 열린 문 안을 보고만 있다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널부러진 술병들, 술잔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는지 거실엔 온갖 종류의 술병이 쇼파 위에, 바닥에, 텔레비전 아래, 테이블 위에, 아래에, 온갖 곳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후크가 거실을 둘러보는 사이에도 새로운 빈 술병이 데구르르 굴러가, 후크의 발 아래서 멈췄다.

"왔어요?"

헤실헤실 웃으며, 여자가 말했다. 후크는 가까운 곳에 널부러진 술병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쇼파에 누운건지 앉은건지 명확하지 않게 기댄 여자의 손에서 술이 반쯤 남은 술병이 떨어졌다. 물처런 흰 술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후크는 걸레를 가져와 흐른 술을 닦아내고, 여자를 쇼파 위에 제대로 눕혔다.

여자는 술에 취해 무언가 말했지만, 혀가 꼬이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들으나 마나 어차피 자고 나면 잊을일, 기억하고 있을 필요조차 없기에 후크는 여자의 말에 신경을 끄고 온 집안에 널부러진 술병을 치웠다. 술병을 모아 한 곳에 정리하고 나니, 생각한 것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이 정도면 주량을 넘고도 전에 넘었다. 취하면 그냥 곱게 그 자리에서 널부러질 것이지, 취해놓고 계속해서 더 마시다니, 이곳에 찾아온 것부터가 그냥 아아 그래, 하고 넘길 일이 아니기야 하지만 이렇게나 술을 마셨다는건 그동안 마음고생이 무척이나 심했다는 것을 알기에, 후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술에 취해 잠이든 여자를 보았다.

"후크…."

그래, 내가 후크다. 후크는 여자를 자신의 침대에 눞히곤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거실에서 통하는 베란다로 나갔다. 바다가 보이는 의자에 앉아 후크는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에선 불이 나오지 않았다. 칙, 칙, 칙. 후크는 파이프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밤, 새벽에 가까운 시간. 후크는 의자에 앉았다기보다는 기대어 있었다. 용과 마법, 요정과 환상이 있는 세계에서 돌아온지 얼마나 됬다고 벌써 또 귀찮은 일이 생겼단 말인가. 한동안은 방금과 같은 도시의 탐욕이 길러낸 여자들과 아무런 고민 없이 섹스나 하며 지내고 싶었다. 제법 반반한 여자였는데, 후크는 불도 없이 파이프만 물며 바닷바람을 맞았다.

고요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는 고요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후크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단절, 그것은 끝없이 다가오는 현실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후크는 천천히 눈을 떠,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아아 젠장할─

"또 아침이잖아."

난 아침이 싫어. 하고는 후크는 해장국을 끓였다. 냉장고에 뭐가 있나, 하면서 냉장고 안을 뒤적뒤적 하면 그래도 사둔게 있긴 있었다. 해가 막 떳지만 아직도 세상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후크가 칼질을 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해장국을 다 끓였을땐 전등을 키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밝아졌다. 저택이 남향이라는 사실이 정말 좋긴 좋군. 알록달록한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로 해장국을 조금 떠 맛을 보았다. 두부가 없는게 조금 아쉽군. 하며 혼자 살면 요리사가 된다는 진리를 터득한 후크의 뒤로 여자가 다가왔다.

"여전히… 요리솜씨가 좋네."

"가서 씻고나와라."

여자는 뒤에서 후크를 끌어안고는 그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앞에는 해장국이, 뒤에는 술냄새가 가시지 않는 여자 사이에 둘러쌓인 기분이란! 후크는 그녀를 억지로 떼어놓고 어지러운 테이블 위에 밥상을 차렸다. 여자가 씻고 나왔을땐 머리만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말릴뿐, 몸을 가리진 않았다. 식탁 앞에서 앉아 있던 후크는 한숨을 내쉬곤 방에 들어가 그녀에게 옷을 건냈다. 자, 어서 입어.

식탁 앞에 서로를 마주보고 앉은 둘은 수저를 들었다. 후크는 수저를 들었지만 입안에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와구와구 먹는 여자는 자기 밥그릇에 수북히 쌓인 뜨끈뜨끈한 흰 쌀밥을 다 먹고도 모잘라 후크가 덜어주는 밥까지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그렇게나 먹고도 배가 고픈지 빈 밥그릇을 후크에게 건냈다. 후크는 꾹 꾹 밥을 눌러담았다.

제목은 훼이크고 이제 저는 당신의 노예.

우리가 아는 동화와 모르는 동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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