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에 가까운 드래곤즈의 외야수 차영훈. 이혼 후 전혀 야구에 신경을 쓰지 않던 그.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그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 집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 와야 하는 스포츠 야구. 차영훈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하려 한다.
영훈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TV를 보고 있었다. 하품을 하며 배를 긁는 폼이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였다.
“오늘 해피 베이스볼! 2014년 마지막 날이니 만큼, 신임 감독님들의 인터뷰와 과거 활약상을 준비해 봤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영훈이 달력을 바라봤다.
‘벌써 12월 31일인가?’
영훈이 놀라는 사이 TV 화면에는 블랙 캡스의 신임 감독 한해령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그 선수들을 만나 봤는데, 다들 눈이 초롱초롱한 거이 내년에 포스트 시즌 가겠다 싶었디. 두고 보라. 내년에 우리 팀 때문에 깜짝 놀랄 거이 분명 하니까니.”
이북 사투리와 서울말이 섞인 한해령 감독 특유의 말투. 그 말투와 한해령 감독의 굵직한 목소리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이 가게 만들었다. 눈이 초롱초롱하다고 포스트 시즌에 갈 순 없다. 그렇지만 특유의 악바리 야구로 6개 구단 시절 아월스를 2연속 우승시키고, 91년 다이아몬즈에 부임해 첫 해는 포스트 시즌 진출, 92년에서 94년까지 3년 연속 우승을 일궈 낸 그의 이력은 말투에 홀렸다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믿음’을 모두 설명해줬다.
그러나 영훈은 그런 한해령 감독의 말투 따위에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블랙 캡스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영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얼마 전에 분석했던 블랙 캡스의 투수들이었다. 영훈은 다시 한 번 그들의 투구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복습하고 있었다.
그 사이 TV 속에선 김천욱의 인터뷰가 흘러 나왔다.
“내년 시즌 성적이라. 의미가 없는 질문이군요. 모든 감독, 선수, 코치, 프런트 그리고 팬들은 소속 팀의 우승을 목표로 움직이고, 응원하는 것 아닙니까? 내년 시즌 드래곤즈의 성적이 어떨 것 같냐니. 당연히 우승 아니겠습니까?”
김천욱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있었다. 그때 영훈의 휴대전화에 문자가 도착했다. 혜정의 이름을 확인한 영훈이 얼른 문자의 내용을 봤다.
[Happy New Year! 한 살 더 드셨으니까 두 배로 힘내세요. 으쌰으쌰!]
영훈은 문자를 보고 피식 웃었다.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니 정각 12시였다. 들릴 리가 없는 제야의 종소리가 밖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영훈은 얼른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TV에서는 여전히 김천욱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년 팀의 목표는 한국 시리즈 우승입니다. 우리 팀은 코치들부터 선수들까지 모두 고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집은 우리에게 기회를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며 느낀 것입니다. ‘확신을 가진 고집’은 결코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온 적이 없습니다.”
영훈은 김천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뭐라고 적을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영훈은 몇 번이나 문자를 썼다 지우며 고민했다. 그러다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래. 고민하지 말자. 하고 싶은 말 그대로 포장 없이….’
문자를 전송되자 영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영훈의 얼굴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답답했던 한 해를 마친 뿌듯함 때문일까. 영훈은 웃음의 이유도 모른 채 실없이 웃었다. 옆에 놓인 휴대전화는 아직 화면이 꺼지지 않아 문자창이 떠있었다.
[아직 30대! 우리 3회도 채 안 끝났어요. 경기는 지금부터. 파이팅!]
새해가 밝고 처음 찾아오는 달. 1월은 모든 사람들의 목표를 담은 달이다. 그저 매년 오는 달이고, 그것을 나눠 이름 붙인 것뿐이지만, 사람들은 1월이 되면 저마다 새로운 해에 대한 상상을 품고 목표를 정한다. 누구는 금연을 목표로, 누구는 저축을 목표로, 또 누구는 새로운 연인과 만나는 것을 목표로.
-Home in 中-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