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궁화의 진실'을
쓰면서
현재 장편소설 '무궁화의 진실'을 연재하고 있는 저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민 1세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나 '퇴물이 되어 무엇을 하면서 이 지루한 여생을 살아가야 하나?'라고 고민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요. 지난 수년간 소설을 공부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최근에는 은퇴 시 일하던 직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문인의 길을 가려고 하다가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로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거의 30년 가까이 살아왔습니다. 1975년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 가난한 미국 유학생이었는데, 여름방학을 맞아 로스앤젤레스로부터 뉴욕시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하였지요, 수백 달러의 거금(?)을 주고 산 중고차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사람을 옆에 태우고 신혼여행 겸 긴 여행을 떠났지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텐트를 사서 야영을 하면서 갔습니다.
로키산맥을 넘었고 네브래스카 주의 사막 언덕 지대를 통과하고 나자, 중부의 몇 개 주가 우리를 기다리더군요. 출발한 지 10일쯤 되던 때 우리는 오하이오 주의 경계선을 넘었습니다. 천생이 약골인 저는 야영으로 지친데다가 온몸은 모기에게 물려서 몰골이 한심했어요. 갓 미국에 도착한 집사람은 운전할 줄 모르니 할 수 없이 모텔에 들어가 자기로 작정하고 고속도로에서 나가서 지방도로로 들어갔습니다. 지친 나그네의 눈에 해가 뉘엿뉘엿 지며 옅은 주홍색의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방도로를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신호등이 나왔습니다. 지친 저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에 합류하여 정차한 뒤 피곤한 목을 좌우로 돌렸습니다. 얼굴이 좌측으로 돌아간 순간 얼핏 눈에 익은 뭔가를 본 듯하여 다시 자세히 보니 무궁화였습니다.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니라 커다란 주택의 넓은 정원을 모두 감싸고 있는 수십 그루의 무궁화였지요.
"당신 방금 내가 뭘 보았는지 맞춰봐!"
차만 타면 쉽게 잠에 빠지는 집사람을 흔들어 깨우면서 저는 외쳤어요. 부스스 눈을 비비면서 잠에서 깬 아내는 제가 바라보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아이들처럼 즐거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무궁화, 무궁화다! 뺑 둘러선 무궁화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 꽃 삼천리강산에 우리나라 꽃~"
마당에는 중년의 백인 아저씨가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잔디깎이의 모터를 끄고 저를 보면서 미소를 짓더군요. 저는 서슴지 않고 큰 소리로 말을 걸었지요.
"저희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지나가다가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보고 반가워서 잠시 들렸습니다."
중년의 사나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서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어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왔어요. 저의 조상은 한국인입니다."
그의 성은 Corea였습니다. 그가 베푼 저녁을 먹고 나자 그는 낡은 상자 한 개를 가져와 조심스레 열어 뭔가를 꺼내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누더기가 되다시피 닳아버린 흰색의 바지저고리와 퇴색된 비단인 듯한 옷감에 붓으로 쓴 듯한 두루마리 기록물이었지요. 두루마리에는 지금은 없어진 4개의 자음과 모음이 드문드문 보이는 우리말이 적혀 있었어요. 대강 읽어본 나는 그의 조상이 200년쯤 전 왜구에게 붙잡혀간 조선인임을 알아내었습니다. 일본으로 끌려간 그는 서양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긴 항해 끝에 여러 나라를 거쳐 이탈리아에 정착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며칠간 그의 집에 머물면서 그에게 아리랑과 한글을 가르쳐 주었지요. 그의 모습에는 머리카락이 검다는 것 이외에 한국인 같은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한국인의 후예로 자랑스럽게 소개했어요. 그의 가슴과 영혼에 남아 있는 '무궁화의 진실'을 본 저는 그에게 고개를 숙였어요. 그 후 무궁화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무궁화! 장미나 백합 또는 모란과 같이 화려하지도 않고 짙은 향기도 없으나, 그 모습이 청초하고 수수하며 일 년에 무려 100일간이나 피어 있는 이 꽃을 저는 좋아합니다. 영어로는 무궁화를 rose of Sharon이라 부릅니다. 성경 '솔로몬'에 이 꽃 이름이 나와서 한국에서는 샤론의 장미로 번역되어 알려졌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샤론의 장미가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일부 한국의 교회는 그 옛날 예수님이 한국까지 오셨다는 대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한반도에 오셨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롭지도 않은 꽃이지만 청초하고 수수한 꽃을 일 년에 무려 100일이나 피어 대는 무궁화의 특징이 바로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본인처럼 간사하지도 않고 중국인처럼 음흉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상대의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한가족으로 반만년의 역사를 지켜왔습니다. 비록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지금은 남북이 분단되어 있지만, 무궁화야말로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끈질기고 진실한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무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궁화(無窮花)는 이름에 꽃을 나타내는 한자 '花'가 들어가서 화초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무궁화는 화초가 아니라 나무입니다. 한국에서는 정원을 가꾸는 분들이 무궁화를 화초로 착각을 하셨는지 무궁화의 가지를 마구 잘라 내버려 무궁화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난쟁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곳 아메리카 대륙에서 제가 보아온 무궁화는 매우 키가 큽니다. 가지치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놓아두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국화 무궁화를 제대로 알고 가꿔주시기를 조국에 계신 동포에게 호소합니다. 제발 과도한 가지치기를 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계속 자라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무궁화가 뭔지 모르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게 무궁화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매년 봄만 되면 저는 집의 뒤뜰에 작은 무궁화 묘목을 얻어와 심고 조국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키워나갑니다. 비록 몸은 외국에 나와 살고 있지만 저는 매일 무궁화를 보면서 '무궁화의 진실'을 배워 나갑니다. 이 아메리카 대륙이 온통 무궁화로 덮이는 날이 올 때까지 저의 무궁화에 대한 염원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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