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소탈출 #종이책느낌 #현대판타지
처음엔 이 소설이 왜 현대판타지인지 몰랐습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주인공의 현실적인 좋소 생활기가 너무나도 짠내나서 여기 어디에 판타지가 있지 했는데, 알고보니 그 주인공이 웬 야산에서 900억을 캐는게 판타지였더군요. 그건 판타지가 맞죠.
900억을 얻은 주인공이 무슨 짓을 할지 스포하고 싶지만, 줄거리보단 문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정말 독특합니다.
주인공은 국문과였습니다. 도스트예프스키를 좋아했고, 주인공 친구는 톨스토이를 좋아했죠. <사람은 얼마나 많은 토지가 필요한가>, <부활> 같은 톨스토이 말년의, 종교적이면서도 허무주의적인 색채가 찐하게 나는 작품들을 주인공은 극혐합니다. 사실 톨스토이는 수많은 소작인을 거느린 대농장주였고, 돈 많아서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다가 죽을 날이 다가오니 그제야 덜컥 겁이 나서 천국행 티켓을 따내려고 그런 종교적인 소설을 썼던 것이며. 돈많은 부자가 나 살아보니 돈 많은거 의미 없더라 한탄하는 위선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화를 냅니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저는 웹소설에서 이런 방법으로 주인공의 캐릭터성을 표현하는 작품을 정말로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굉장히 효과적이었고 국문과라면 이럴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긴 하는데, 보통 웹소에서 이렇게까지 하나요? 톨스토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국문과 좋소직원이라고 하면 이야 살기 뭣같겠구나하고 이해하잖아요.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설명이 좀 어려운데, 정성스럽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이 작품은 소설로서 정성스럽습니다. 주인공을 묘사하는데 대단히 진지합니다.
이 부분이 제가 이 소설에 매력을 느낀 지점이었습니다. 캐릭터성의 구축에서 이 소설은 출판문학의 향기가 찐하게 납니다. 그런데 표현하는 언어는 웹소식이란 말이에요? 출판문학다운 진지한 내용물을 웹소식의 가벼운 드립을 섞어 풀어내는데 그게 신기하게 어울립니다. 민트초코가 아니라 불고기피자가 되었어요.
사실 오타와 비문이 전무하다는 점도 큰 장점이지만, <마늘밭에서 900억을 캔 사나이>는 그걸 넘어서 대단히 유니크합니다. 웹소설과 출판문학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간만에 종이책이 마려운데 그 딱딱한 문체와 숨막히는 진지함에 튕겨져나갈 것 같은 독자분들이 있다면 저는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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