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불량식품보단 자극적인 불닭볶음면이 맛있다.
웹소설계를 강타한 재벌물에 맛들려 한창 새로운 재벌물을 찾아 읽었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이 흥행한뒤 뒤를 쫓은 아류들은 언제나 기대에 못 미쳤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듯, 산경 작가의 ‘재벌집 막내아들’을 맛본뒤에는 더더욱 다른 소설들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마치 불량식품 같은 소설들이지만 어차피 재벌물은 보는 이유는 대리만족의 명쾌함이다. 그래서 웬만큼 지뢰작이지 않다면 한번씩 읽어봤다. 맛있으니까.
그러던 중 발견한 이 소설은 불량식품이라기보단 한없이 맵고 자극적인 불닭볶음면 같다. 245편의 분량을 내리 읽으면서 생각한건 참 호불호가 많이 갈릴것 같은 소설이다.
소설의 간략한 줄거리는, 주인공 ‘한새’가 우연하게 90년대 초반 고등학생인 ‘한영’의 몸으로 회귀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종자돈을 마련해 승승장구하고 IMF를 거치며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다. 그런데 보통의 재벌물과 다른 것은 주인공의 캐릭터성이다. ‘한새’와 ‘한영’ 둘다 고아이며, 피아노 천재이다. ‘한새’는 회귀하기전 세상에 닳고 닳아 매우 염세적이어서 ‘한영’으로 살게된 뒤에도 철저한 자본주의자로서 주변에 독설을 날리며 시종일관 독자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부분에서 여러 독자가 하차를 선언하지만, ‘한영’의 이런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작가는 고아로서 주인공이 가진 결핍을 꾸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가진게 많은 주인공은 내면이 결핍되어 있고 이를 인정해가면서 소설이 진행되면서 알게 모르게 주변의 영향을 받아 변화를 시작한다. (아직 변화의 극 초반이라 한참 남았다.) 단순히 재벌이 되어 갑질하는,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만이 아니라 결핍된 한 인간의 내면과 그 변화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피아노 천재’라는 설정이다. 주인공은 보잘것 없는 고아지만 한국을 빛낼 피아니스트로서 상류층의 사람들과 인연이 닿는 개연성을 줄 뿐 아니라, 연예계물을 보는 즐거움도 준다. 소설 전반의 50화 분량이 피아니스트로서, 그리고 방송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과하지 않고 재밌었다. 국밥집에 갔다가 사이드 메뉴로 수육을 맛있게 먹은 느낌이다.
앞에도 서술했다시피 작가가 주인공의 말을 빌어 전하는 독설은 자본주의와 인관관계에 대한 주인공의 신념을 독자를 가르치는것 처럼 보이고 이런 장황한 대사에 질린 일부 독자들은 비난하지만, 장황하거나 현학적인 말도 필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쓸 수 있다. (287000 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되어 검색해보니 여러 작품을 완결냈더라.)
어린아이가 쓴듯 유치한 불량식품 같은 소설보다는 차라리 맵고 자극적이지만 계속 손이가는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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