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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28 소백린
작성
23.10.03 07:03
조회
678
푸른 피라는 말이 있다.
귀족들은 평민들과 인체를 구성하는 아주 기본적인 피조차도 다른, 아예 격이 다른 존재라는 뜻이다.

귀족은 백인이다.
피부가 하얗다.
그래서 푸른 정맥이 돋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창백한 피부에 도드라져 보이는 푸른 정맥으로 얼마나 순수한 혈통인지를 과시했다.

반대로 뙤약볕에서 노동하던 평민들은 피부가 거칠어 지고 그을릴 수 밖에 없었다.

푸른 피를 가진 귀족.
붉은 피를 가진 평민.

이것은 중세를 대표하는 계급 사회를 극명히 보여주는 예시라 볼 수 있다.

소설 속 세계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하다.
이세계의 인간은 두 부류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사와, 마법사가 아닌 가축.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
그렇지 못한 가축.

현실의 역사가 귀족을 기사, 즉, 검을 다루는 자들을 귀족이라 칭했다면, 이 세계는 마법사를 귀족이라 칭한다.

격차도 더 심하다.
현실의 기사는 평민 수십 명이 모여들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마법사는 몇 십, 몇 백 명이 모여들든 마법사에게 대항할 수 없다.
그로 인해 가축들은 뿌리 깊은 노예 의식을 가지게 됐다.



* * *



길을 지나던 아이는 개미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아이는 손가락으로 개미를 짓눌려 죽인다.
아이의 부모가 말한다.
"더럽게 뭐하는 거니? 집에 가서 손 씻자."
인간에게 '개미를 죽인다'라는 것은 살해가 아니다.
길을 걷다 풀을 밟아 꺾는 것만큼 무가치한 일이다.

마법사들에게 인간은 개미였다.
언제든 짓눌려 죽일 수 있는 존재.
그들이 그러지 않는 것은, 이 개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가축이기 때문이다.

양은 양털을 준다.
소는 밭을 일군다.
닭은 알을 낳는다.

그러니 마법사는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
자신의 우리 안에 가두고 키운다.
그리고 닭장 속에 키워지는 닭은 자신이 잡아먹힐 걸 알면서도 안락한 닭장을 벗어날 수 없다.
그게 당연한 사회였다.

주인공 이무직이 등장하기 전까진.
 


* * *



지구에는 여신이 존재했다.
그녀는 너무 심심해서, 취미를 가지기로 했다.

여신의 취미는 인간 세상에 개입하여 사건을 일으키고 그걸 지켜보는 것.

그런데 몇 번 하다보니 신도들의 반발이 심해졌다.
그래서 다른 세상에서 하기로 했다.

모종의 이유로 신이 자신의 세계에서 관심을 끈 이세계에서.

그렇게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머리가 깨진 탓에 죽어버린 이무직은 여신의 뜻을 받들어 이세계로 파견됐다.

여신이 그에게 내린 지상명령은 단 한 가지.

- 이 땅을 지배하는 사악한 마법사들을 몰아내고 죄 없는 자들을 구원하여 정의의 기치를 바로 세우는 것.

길게 말하자면 이것이고.
짧게 말하자면.

"Deus Vult."

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 * *



이무직은 마법사 살해의 스페셜리스트이다.
여신에게 받은 모든 가호가 마법사 살해에 특화되어 있다.
마법에 대해 압도적인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물리 공격에는 좀 취약한 편이다.

하지만 마법사가 주류로 자리 잡고, 갑옷에 칼을 들고 다니는 놈은 미친놈 취급 받는 세상.
그에게 제대로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이무직은 여신의 가호를 휘두르며 마법사들을 말 그대로 썰어버린다.

하지만 이무직이 마냥 최강인 것은 아니다.
그에겐 단 하나, 거대한 제약이 있다.

그가 개인이란 것이다.

마법사들은 이미 세계의 주인이다.
그러니 이무직이 하는 행동은, 홀로 세계에 전쟁을 거는 행위다.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막지 못한다.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무직이 마법사를 죽이며 그들의 힘을 흡수해 강해질수록, 그의 악명 또한 커진다.

레벨이 오를수록 성장은 더뎌지는데, 악명은 그와 상관없이 커져만 간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선 더 강한 마법사를 죽여야 하는데, 그러면 더 큰 악명을 얻게 된다.

결국 성장과 악명의 그래프가 서로 교차되어 역전되는 시기가 찾아오고 만다.

그렇게 되면 개인인 이무진은 그를 경계하는 마법사 군단에게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런 미래가 이무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어째야 하냐?"

자신을 죽인 자를 향해, 죽어가는 고대의 마법사가 대답했다.

"이 땅에 네 여신의 이름을 알려라."

이 땅엔 마법사의 지배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는 가축들이 많다. 아무리 못난 가축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감사할 줄 아는 법이지. 그들에게 여신의 이름을 알려. 약자에겐 신앙이 필요한 법이니.

네가 신의 이름으로 사악한 마법사를 죽이다 보면 필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겠지. 신의 이름 아래에 사람이 모이면 무슨일이 생기는지 아나?

- 신앙이 생긴다.

강력한 마법사를 죽이려면 그 혼자만 상대할 게 아니라 지배하고 있는 영지 전체와 싸워야 한다.
그러니 여신의 이름 아래에 사람들을 해방하고, 결집하여 세력을 이루라는 것이다.

이무진은 이 땅에 구원자로서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여신이 마법사를 죽이라고 했기에 죽이는 것 뿐이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충고로군, 확실히."

이무진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게 더 많은 마법사를 죽일 수 있는 방법 같았기에.

그것이 여신께서 원하시는 것이기에.

"좋은 말씀 나누러 왔습니다."

이무진은 길 가다 마주친 남자부터 전도하기로 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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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전하러 왔다니까요? 안 들으시려고?”



국산 크루세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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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con 문피아운영자   등록일 : 22.01.05   조회 : 2,733   좋아요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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