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문피아에도 중국 판타지소설들이 번역/연재되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좋은 작품들을 읽게 되어 한없이 기쁜 일이 되겠지만, 소설가 입장에서는 블루오션이 레드오션으로 변하는 나쁜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라마다 사람들의 좋아하는 부분이 다르므로, 어쩌면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추천할 작품은 [교랑의경]입니다. 주인공은 정교랑이라는 15세 가량의 소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바보여서 모친 사후에 부친이 어린 정교랑을 집에서 내보내어 도관에서 자라게 합니다. 어느 날 도관이 벼락을 맞아 불타고, 정교랑은 바보에서 ‘기이한 의술+의류 디자인+요리’ 능력을 가진 소녀로 변합니다. 아마도 누군가의 영혼이 빙의한 듯합니다. 부친은 관리이고, 수도에서 천리나 떨어진 강주라는 지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교랑은 몸종인 반근과 함께 강주로 가려고 하지요. 그러나 시절이 고대인 만큼 여행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몸은 병약하고, 운동도 부족해서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고 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술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마부와 마차를 고용해서 이동하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의술로 돈을 벌고요. 정교랑의 얼굴이 바보의 얼굴이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초저질 체력의 소유자이고, 특이하게도 평범한 병은 고치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사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을 지경의 사람만 고치는 특이한 의사가 되지요. 초반의 설정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쁘고, 말 잘하고, 몸매 좋은 여주인공은 여러분도 많이 봤을 겁니다만, 바보에 말도 못하고 초저질 체력에 성격마저 특이한 여주인공은 여러분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주인공이 매력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매력적입니다. 이 여주인공은 기이한 말을 하고, 기이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다음 말과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대하게 됩니다.
여주인공은 일반적인 미각과 식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종 반근을 시켜서 요리를 만들어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요리들 중에 일부가 ‘먹방물’을 만들게 됩니다. 맛이 좋지만 기존에 없는 요리라면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지요.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다들 먹어보고 싶어하게 되지 않겠어요? 하니버터칩 과자도 바로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의 생활은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로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방영되는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서 보는 사람도 적고, 실제로 중국역사드라마의 숫자도 적죠. 그래서 아직도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판타스틱한 느낌을 줍니다. 고대 중국 관리들의 사고방식, 가문 안에서 안주인의 활약, 문인들이 서로 사귀는 방식, 여기에 중국인 특유의 고집과 오만 같은 사고방식이 판타스틱하죠. 우리와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정서나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교랑의경]은 초기에는 매일 2편이 연재되다가, 최근에는 한꺼번에 몰아서 올리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정말 아쉽지만, 연재가 되는 날은 끝내주게 기분 좋은 날이 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멋있어 보이거나 적절해 보이기 때문에 모방하게 되는 거겠죠. 어른이 되면 이런 모방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지만,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모방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교랑의경]을 보면, 저는 모방하고 싶은 말도 있고 모방하고 싶은 행동도 있습니다. 먹방물을 보면 더더욱 따라하고 싶어지네요.
[교랑의경]에는 웃기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등장인물들이 어벙하게 언행하는 것을 보면서, 1980년대 한국의 시골 읍에 살던 저로서는 등장인물들의 순박한 부분이 추억과 비슷해서 좋더군요. 물론 좀 멍청하게 보여서 답답한 고구마 같은 장면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만....
[교랑의경]에는 아주 악독한 등장인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작품 전체가 부드럽기도 합니다. 무협소설과 선협소설은 전투와 죽음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온갖 악인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작품을 추천할 때 제가 좋아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작품만 추천합니다. 여러분의 취향과는 조금 다른 부분도 있겠죠. [교랑의경]은 제가 무척 좋아하고 재미있다고 여러 번 복습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언급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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