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소개
일국을 이끌어가며 온갖 칭송을 받던 재상 비텐다임.
그러나 어느날 눈을 떠보니 중년사내의 육신은 온데간데 없고, 10대 소녀의 몸만이 남아있다.
자신임을 증명할 방법은 오로지 재상으로서의 기억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 기반해 자신이 재상임을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은 집사 윌리엄이 유일하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재상은 자신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텐다임이었던 자신은 사라지고 없다는걸 점차 실감하게 되고
지금껏 자신이 쌓아온 유산을, 성과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 정치판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되는데...
II. 왜 재밌을까?
1) 재상님이라는 메인 캐릭터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보통 작품이었다면 ‘뛰어난 언변’을 보여주는 부분부터 퍽 난관을 겪었을 것이다. 캐릭터는 절대 작가를 뛰어넘는 유능함을 보일 수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외교적 언사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며 상대방을 궁지로 모는데 거리낌이 없다.
추파를 던지는 애송이 외교관을 향해 비꼬는 말을 던지는건 물론이거니와, 충고까지 해주는 모습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또한 재상의 성격 또한 이성적이고 냉철해서 좋다. 타의로 소녀의 몸으로 변했음에도 10대 소녀의 감성으로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심리묘사가 나와도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하게 끊어진다.
동시에 40대 중년아저씨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가져오려고 하지만 10대 소녀의 몸이기에 기존 생활습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서술을 틈틈히 넣은 것도 좋다. 이를 통해서 재상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부분에 독자들은 더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된 서술자가 매력적이라는 건 매우 큰 장점이다. 적어도 보면서 화자의 멍청함 때문에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기 떄문이다.
2) 재상과 집사 윌리엄의 우정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때 가장 큰 역할을 하게되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이다.
그는 40년간 재상의 친구로서, 인생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단순히 보좌하는 인물을 넘어 인간적으로 우정을 공유하는 인물을 설정한건 신의 한수였다.
만약 재상이 여자가 됐음을 아는 인물이 단순한 보좌관에 불과했다면 재상의 정체성 고민은 외면적으로 뚜렷하게 표출되지 못하고 홀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식으로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만약 이런 전개로 갔다면 분명 지나치게 많은 심리 서술묘사에 전개는 늘어지고, 가독성도 좋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갔을 것이나
재상 스스로 고민을 털어놓고, 재상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끈의 역할이 됨으로써 정체성 고민이 외면적으로 표출될 수 있게 만들었다.
상황, 행동, 사건으로 심리를 묘사하는건 언제나 옳다. 독자도 상황이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런 제반설정이 있기에 1부 마지막에 정체성을 확립하는 부분을 참으로 맛깔나게 쓸수 있었을것이다.
3) 정치적 올바름
소설속의 시대상은 18-19세기의 근대로 보인다. 귀족계급이 사라져가고 있고 몰락귀족도 심심찮게 보이는 시대.
그러나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차이는 명확하다. 남자가 할수있는일, 여자는 할수없는일. 명확하게 그 역할이 나뉜다.
남성 정치인이었던 비텐하임은 습관처럼 여성으로 변한 신체에 맞는 신사복을 맞추기 위해 30년간 옷을 맡겨온 재봉사를 불러오지만
재봉사는 여자에게 신사복을 재단해 주는건 자신에 대한 모욕에 가깝다며 완곡하게 주문을 거절한다. 재상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 남성이었던 자신은 할 수 있지만, 여성인 자신은 할수없는것.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낀다.
대신 그녀에게 신사복을 맞춰준건 명성없는 여성 재단사다. 하반신 불구이며, 레즈비언인 재단사는 그녀를 위해 기꺼히 재상의 신체에 맞는 신사복을 맞춰준다. 보통 장애인은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시대상을 감안해보면 꽤나 파격적인 인물 선정이다.
이 뿐만 아니라 재상이 본격적으로 여성의 몸으로 정치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때, 그가 참고하는건 그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던 부인이었다.
최초의 여성 장교이며, 남자같은 말투를 쓰며, 군복을 입고다니는 그의 부인. 그게 바로 여성이 된 재상이 참고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설정이 아닐수 없다.
보통 정치적 올바름을 함유한 소설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재미가 없거나,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 소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한 부분들을 끼워넣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흥미위주의 장르소설에서는 그다지 가산점이 되지 않는 부분이나,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다방면으로 생각하면서 작품을 썼다는게 느껴져 흥미로웠다.
III. 치명적 단점
작가가 최근 생사를 오가는 뇌수술을 겪은 탓에 연재주기가 들쑥날쑥하다. 그래도 최근에 한편 올라왔으니 느릿느릿하게라도 연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IV. 요약
새 몸으로 다시 시작하는 재상의 정치 재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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