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판타지를 규정하는 첫번째 요소는 설정입니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관이 얼마나 치밀한가에 따라 독자는 그 세상에 몰입하게 되죠. 하지만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서사입니다. 설정이 아무리 치밀하고 기가막히다 해도, 소설은 사건의 전개를 서술하는 겁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추동력이 없다면 소설에 흥미가 떨어지죠. 설정만 좋고 서사가 약한 판타지가 초반에 흥미진진하게 읽히다가 설정이 다 밝혀진 다음 급격하게 흥미가 식는게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정뿐 아니라 서사도 짜임새 있는 판타지는 참 드뭅니다. 판타지적 설정은 기발함의 영역이고, 소설에서의 서사를 챙기는 것은 차분하게 개연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다 잡는 작품은 쉽게 접하기 힘듭니다. 제가 이 추천글을 쓰는 이유는 이 두가지를 다 충족하는 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는 그 둘 모두를 챙기는 작가님을 추천드리고 싶네요.
바로 전작으로 ‘은둔형 마법사’, ‘변방의 외노자’를 쓰신 후로스느님이십니다. 은둔형마법사에서는 이야기 전개가 아기자기하게 시작되서 급격하게 확대되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그 스케일의 연결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참 글 잘 쓰신다 싶더군요. 은둔형 마법사의 세계관도 놀라웠는데 후속작 변방의 외노자에서는 또다른 세계관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이 작품에서 현실세계의 수많은 매타포를 끌어가 녹여내고 심지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뒤 엎는 글재주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이 두 소설 모두 소설 곳곳에서 떡밥이 뿌려지고 또 적절한 시점에 뿌려진 떡밥들이 회수되는 걸 보면서 작가님의 치밀한 설계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네요.
후로스트님깨서는 신작(?)으로 또 다른 세계관을 가진 작품, ’민감한 대리님‘을 연재하고 계십니다. 제가 신작이라는 말에 의문부호를 붙인 이유는 이 작품이 이미 170화 넘게 연재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재를 시작한지 10개월 정도 된 작품을 신작이라 하기엔 좀 어색하지만, 독자 유입이 그다지 많지 않아 이 추천글을 읽는 분들 중 많은 분들께는 신작이나 마찬가지려니 싶습니다.
이 소설 ’민감한 대리님‘에서도 후로스트 작가님의 장점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기발한 설정과 치밀한 전개죠. 설정은 한꺼번에 확 까발려지는 게 아니라 이야기 전개 구조 안에서 서서히 떡빕이 회수되는 식으로 전달됩니다. 소설의 이야기 전개 뿐 아니라 설정의 확인 과정에서도 어떤 부분은 제 예상이 맞아서 즐겁고 어떤 부분은 작가님의 상상력에 탄복하며 즐겁게 글을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뻑뻑한게 아니라 중간중간 해학과 성찰도 있어서 더욱 즐거운 소설입니다.
유료독자 유입이 너무 작아서 조만간 적당히 마무리 하시겠구나 싶었는데, 그 이후로도 꾸준히 완성도 높은 좋은 글을 써 주시는 작가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 추천글을 씁니다. 작가와 치밀하게 머리싸움 하는 재미를 아시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추신: ’변방의 외노자‘를 좋아하셨던 분들은 외전이 연재되고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딱 외전스러운 소재들이 후로스트 작가님 특유의 깔끔한 전개로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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