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추천글을 쓰네요.
얼마 전 완결이 난 글이고, 연재하는 동안에도 많은 찬사를 받았던 글입니다.
특별한 문체 때문에 호불호가 좀 갈리는 모양이지만...
제 생각엔 그 찬사에 충분히 부합하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형이 이제 스물여섯 살 때, 그때가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비였어.
항상 보면 고비 뒤에 기회가 기다리고 있잖아. 그 고비를 잘 넘기면 기회를 만나는데, 그 고비 앞에서 무너지면 답이 없는 거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 근데 적성을 앞에 두고 헷갈리기 시작하는 거야. 글은 쓰고 싶은데, 딱히 재능은 없는 거 같고. 그렇다고 글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
2화 본문 중 발췌했습니다.
아주 독특한 특색인데, 소설의 모든 지문이 이와 같은 대화체로 서술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점을 견디지 못하시고 일기는 혼자 보라면서 화를 내기도 하시더군요.
하지만 제 경우엔 펜션에서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면서 인생을 먼저 산 형에게서 인생 얘기를 듣는 것처럼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을 맺었을 때는, 내가 이제 이 형을 알게 됐구나, 들을 가치가 넘치도록 있는 이야기였고, 앞으로도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글은 한국 지방 4년제 학력의 주인공이 스위스 시계 소매 업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에 시작됩니다.
젊은 나이의 주인공은 사람을 잘 대하고 독기가 있는 반면, 똘기가 넘쳐서 막 들이받는 면모도 있습니다.
그런 주인공이 업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자신의 사람들을 만들어나가는 장면을 이 소설은 완전한 1인칭으로 그려나갑니다.
최근에 유행했던 전문직 소설... 그것도 터무니없이 희귀한 워치 리테일 산업을 다룬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런 전문직 경향의 스토리에서 재밌는 포인트는 주인공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흔히 전문직 소설이 보여주듯 특별한 초능력이나 노력으로 주인공이 주변을 압도하고 찬사를 받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은 객관적으로는 성공을 거듭하면서도 자꾸 실수를 통감하고 고쳐나가려고 하죠.
주변 인물이 찬사를 베풀어도 거기에 기뻐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계속 변하려고 노력합니다.
겸손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삶을 배워나가려는 그 모습에서 전 진짜 총명하고 강인하다는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중요한 포인트가... 전문직 소설이라면 마땅히 해당 업계를 정확하게 조사하고 실감나게 써야 한다는 점이겠죠.
스위스 시계 업계와 중국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실감이 넘쳐납니다.
끝까지 정독하신 독자들 중에서도 실화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을 정도로요.
그만큼 시계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이고, 자료조사도 철저하게 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허접한 설정과 무리수로 읽으시는 분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예상치도 못했던 역풍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며 점점 거인으로 성장해가는 주인공과 그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작가님께 반해버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색을 또 하나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무척이나 가정적입니다.
신나는 스토리 전개에 가족 이야기가 웬 말인가! 하면서 불편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바로 본편의 이야기에 자꾸 가족이 무리하게 끼면 스크롤을 빨리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저이지만, 이 글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업 쪽 일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미치겠는데도 주인공의 가족과 연인의 가족들이 등장하면 그게 또 재밌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조차 술술 읽게 만드는 게 진짜 필력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더군요.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주인공은 후반부가 되기 전에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장인을 만나게 되죠.
이미 1화에 주인공이 꺼내는 이야기라서 부담없이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그 장인의 이야기도 명품조연 급으로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그 외에도 시계 업계의 동료들과 상사, 부하들, 업계의 전설들, 연인의 지인들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때로는 고구마를 선사하기도 하고,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행복과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역으로도 마찬가지죠. 주인공은 때로 그들의 잘못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그 안의 고충을 이해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관계로 향상시켜나갑니다.
그 과정이 아주 달아요.
고구마가 아니라 고구마무스예요. 따뜻하고 달달합니다.
주인공 혼자 생각하고 혼자 해결하는 일대기가 아니라 정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쓰신다는 느낌이 팍 듭니다.
총평을 하자면, 신선하고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예의가, 삶을 삶으로 대하는 깊이가 있는 글입니다.
제 경우엔 읽으면서 한 순간도 실망하거나 하차할까 고민했던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소설 목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 소중한 글인지라 이미 많은 분들이 살펴보셨을 글임에도 추천글을 쓰는 바입니다.
혹시 초반부에서 별 거 없네 하면서 하차하셨던 분들께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시길, 그래서 저와 같이 ‘형’의 단짠단짠 스토리에 푹 빠져보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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